중국발 ‘감기약 사재기’ 음모론

2023.01.03 10:14:47 호수 1408호

‘따이공’이 다 쓸어간다고?

[일요시사 취재1팀] 남정운 기자 = 감기약이 귀한 시대다. 제약업계에선 생산량을 최대로 끌어올려 품귀현상 해소에 온 힘을 쏟았다. 이에 감기약 수급이 차츰 정상궤도로 올라서던 가운데, 중국발 변수가 터졌다. 최근 중국이 코로나19 대유행을 겪으면서 주변국의 감기약을 ‘싹쓸이’할 수 있다는 우려다. 실현 가능성은 적다 해도, 불안감은 여전하다. ‘마스크 대란’ 때의 기억이 생생한 탓이다.



국내 ‘감기약 대란’이 발생 1년여 만에 일단락되는 모양새다. 지난해 초 정부는 코로나 ‘오미크론’ 변이가 유행하자, 일반 관리군(무증상·경증 환자)을 재택 치료로 전환했다. 그러자 일반감기약 사재기 현상이 벌어졌다. 한때는 약국에서조차 감기약을 구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변이 유행

정부와 제약업계는 감기약 공급 안정화에 총력을 기울였다. 정부는 감기약 생산 증대 지원 방안을 잇달아 발표했고, 제약업계는 생산라인을 1년 내내 ‘풀가동’했다.

결국 지난해 말 들어 수급이 비교적 안정화됐다. 유독 사재기 현상이 심각했던 ‘아세트아미노펜’ 성분의 국내 공급량 역시 계속해서 정부 목표치를 넘기고 있다. 당초 정부는 지난달 주당 공급 목표량을 1661만정으로 잡았다. 지난달 실제 공급량은 1주차 3170만정·2주차 2201만정·3주차 1779만정에 달했다.

그런데 막판에 변수 하나가 급부상했다. 중국의 코로나 대유행 상황이 심상치 않다. 일각에서는 ‘따이공’이라고 불리는 중국 보따리상이 국내에서 감기약 사재기에 나설 것으로 우려한다.


현재 중국은 코로나 유행 이후 유례없는 혼란을 겪고 있다. 그동안 강력한 확산 방지정책(제로 코로나)을 고수하던 중국 정부는 지난달 7일 일명 ‘위드 코로나’로 방역 기조를 급전환했다. 상시 진행해오던 PCR 전수검사도 이날부로 중단됐다.

국제정세 전문가들은 중국 정부가 지난해 11월 하순 극에 달했던 ‘반(反)제로코로나’ 시위를 의식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후 중국 내 코로나 확진자는 걷잡을 수 없는 수준으로 불어났다. 정부가 확진·사망자를 정확히 집계하지 못할 수준이라는 진단도 나왔다.

이재갑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지난달 26일 CBS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해 “사망률 추이가 우리나라의 10배 이상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사망자가 너무 많다 보니까 추산도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국내 수급 안정화 추세…정부 목표 상회
중, 확산세 급등에 품귀…주변국 ‘불똥’

중국 정부는 코로나 관련 지표 공개를 중단했지만, 해외 의료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중국 내 코로나 확진자가 이미 2억명을 넘었다”는 추측이 지배적이다. 하루 확진자 수는 최소 2000만명에서 최대 3700만명에 달할 수 있다는 예상이 나온다. 

확산세가 급증하면서 중국 내에서는 의약품 사재기가 횡행하고 있다. 중국 시민들은 코로나 관련 의약품뿐만 아니라 소독제, 심지어 비타민까지 모두 ‘싹쓸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중 일부는 코로나 치료제를 구하지 못해 암시장에서 인도산 복제약을 불법 구매하고 있다. 

문제는 확산세가 아직 정점에 다다르지 않았다는 점이다. ‘중국식 설날’인 춘절 연휴에는 수억명이 귀성길에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국제 의료계는 중국 내 확산세가 춘절 직후 정점을 찍은 뒤 완화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확산세가 진정되기 위해선 최소 3주 이상이 더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이에 덩달아 떠오르는 것이 ‘중국발 감기약 사재기’설이다. 이미 일본·싱가포르·대만 등 여러 중국 주변국에서 관련 사례가 보고되고 있다.

홍콩 매체인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지난달 27일 “중국에서 온 고객들이 감기약을 쓸어가면서 일본 도쿄 약국들이 구매 제한제를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해당 보도에 따르면 코로나 증상 완화에 효험이 있다고 알려진 일본·홍콩 등의 현지 감기약은 이미 품귀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가격도 종전 대비 2~3배 오른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불안감이 커지는 배경이다. 실제로 우리나라 역시 과거 비슷한 상황에 부닥친 바 있다. 코로나 유행 초기였던 2020년, 중국인의 마스크 사재기 사례가 여럿 적발되면서 여론의 공분을 샀다.

2020년 3월17일 한 중국인이 국내에서 마스크 2만9000개를 사재기했다가 경찰에 적발됐다. 그는 마스크를 압수당할 위기에 몰리자, 결국 지역 학교에 전량 기부했다. 당시 정부는 적발 11일 전인 3월6일부터 ‘마스크 및 손 소독제 긴급수급 조정 조치’를 시행하고 있었다.

마스크 공급 불안정으로 일명 ‘마스크 배급’을 실시하던 시기였다.

당시 유사 사건이 계속 벌어지면서 진위 여부가 불투명한 ‘중국발 사재기 목격담’이 온라인을 중심으로 퍼졌다. 이후 2년여 만에 다시 비슷한 우려가 반복되고 있다. 국내 수급이 안정적이지 않은 상황이 불안감을 한층 더하는 배경이다.

조용히 출몰 싹쓸이 소문 왜?
국외반출 금지로 ‘이중 봉쇄’

현장 전언에 따르면 이는 전혀 실체가 없는 ‘단순 음모론’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다만 실현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

대한약사회는 지난달 중순 “현장에서 따이공이 도매상·제약사와 접촉해 감기약을 대량으로 사 가려 한다는 첩보가 들어왔다”고 밝힌 바 있다. 

과거 마스크 대란 때는 따이공이 명동 등지에서 박스째 구입해 나르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번엔 아예 제약사·도매상의 정식 공급 내역에 잡히지 않는 물량을 대량 입수한다는 내용이다. 완전히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감기약은 ‘일반의약품’으로 분류돼 의사 처방 없이도 누구나 구매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선 주변국 사례도 비슷한 상황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감기약 국외 대량 반출의 현실화는 결국 쉽지 않다는 게 정부와 제약업계의 공통된 의견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지난달 21일 “아직 감기약이나 마스크 수급에 문제가 생기지는 않았다. 다만 중국 상황이 급변하고 있어 면밀히 모니터 중”이라고 밝혔다. 이어 “만약 코로나 초기처럼 사재기, 해외 대량 반출 등의 조짐이 보이면 국외반출 금지 조치가 다시 내려질 가능성도 있다”고도 덧붙였다.

관련 법에 따르면 1급 감염병의 유행으로 의약품 등의 급격한 물가 상승이나 공급 부족이 발생할 때, 보건복지부 장관이 공표한 기간 중 관련 물품의 수출을 금지할 수 있다. 현재 코로나는 2급 감염병으로 분류돼 법의 직접 영향권에서는 벗어나 있다. 다만 정부의 유사시 신속 대응 방안은 마련돼있는 셈이다.

제약업계 관계자 역시 “우리나라에서 의약품 유통은 상시 모니터링 대상”이라며 “사재기로 의심될만한 대량 이동이 발생하면 곧바로 추적할 수 있는 구조다. 감기약은 특히 ‘주요 관심 대상’인 만큼 정부의 눈을 피해 빼돌리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가능한 얘기?

국내 중국인 입국 규모가 크게 감소한 덕에, 실제 사재기가 벌어져도 타격이 크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국내에 들어온 중국인은 2만1669명에 불과했다. 코로나 유행 이전인 2019년 동 시점에는 45만1186명이 입국했다. 약 95.2% 감소한 수치다.


<jeongun15@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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