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아트인> ‘희열과 쾌감’ 김경원·장세일

2022.12.08 09:12:40 호수 1404호

플라시보 효과? 플라시보 바이러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서울 중구 소재 충무로갤러리에서 김경원·장세일 작가의 2인전 ‘플라시보 바이러스’를 준비했다. 플라시보 바이러스는 ‘플라시보 효과’에서 비롯된 합성어다. 이번 전시에서 두 작가의 플라시보 효과를 느낄 수 있을 전망이다. 



플라시보 효과는 의료진이 제안한 가짜약 혹은 꾸며낸 치료법으로 병세가 호전되는 현상을 말한다. 환자의 긍정적인 믿음, 즉 심리적 요인에 의해 병세가 나아지는 현상이다. 예를 들어, 불면에 시달리는 환자에게 수면제 모양의 소화제를 건네면 신기하게도 편안하게 잠든다고 한다. 위약 효과, 가짜약 효과라고도 한다.

보통 사람을

바이러스는 혼자서는 증식이 불가능해 숙주 세포 내에서 복제가 이뤄진다. 짧은 복제 주기 때문에 빠른 속도로 변이가 가능하다. 변이가 지속될수록 초기 모습을 잃어버려 나중에는 다른 바이러스라고 봐도 될 정도로 달라지기도 한다. 작가들은 이 두 단어를 합쳐 ‘플라시보 바이러스’라는 새로운 단어를 만들었다.

김경원은 대상을 무수히 반복시켜 다른 형상을 만드는 작업을 해왔다. 대상을 중첩시키는 현재의 작업방식을 갖게 되기 전에는 특정 동물을 의인화하는 작업을 했다. 예를 들면 젖소가 소파에 앉거나 대관람차를 타는 등의 묘사다. 

그는 “고유명사를 가진 동물 한 마리에서 출발했지만 그것을 하나씩 정성 들여 묘사하는 동안 어느새 전체가 아닌 객체로 보이기 시작했다”며 “마치 사람을 그리는 동안 얼굴을 익히고 친분을 쌓고 각자 다른 별명을 짓듯 내 작품에서 소떼는 그냥 소가 아니라 각각 별명이 있고 내 눈에만 보이는 각각의 특징도 있다”고 설명했다. 


긍정의 믿음
심리적 영향

이 과정에서 김경원은 소, 닭, 개라는 전체를 아우르는 명칭은 있지만 사람처럼 고유의 이름은 없다는 점에서 안쓰러움을 느꼈다. 이런 생각은 작가 자신이 무리 속 이름 없는 한 마리 동물 같다는 생각에서 온 서글픈 공감에서 비롯됐다. 

이후 김경원은 무수히 많은 젖소를 중첩해 그리기 시작했다. 고된 노동은 몸을 혹사시켰지만 반대로 마음은 편안해지고 해소되는 감정을 느끼게 했다. 그에게 있어 플라시보 효과는 반복된 노동에서 오는 평온감이었다. 

닭의 붉은 벼슬, 젖소의 검정 얼룩을 반복시키면 점과 선, 면이 돼 별과 꽃, 하트 산 등 여러 형상으로 보인다. 서로가 없으면 안 되는 바이러스처럼 연결돼 새로운 형상으로 나타났다. 꽃 형상이 된 닭은 닭이라고 해야 할지, 꽃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 된다.

‘닭이 꽃이 됐구나’ ‘꽃이 닭으로 이뤄져 있구나’ 등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김경원은 “수없이 많은 이름 없는 동물이 중첩돼 형태를 이루고 있는 작품을 바라보면서 치열한 경쟁사회는 잠시 잊고 모두가 모여 하나의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상상을 해봤으면 한다”고 설명했다. 

장세일은 도시환경에 적응하기 유리하게 진화한 형태로 이뤄진 상상의 동물 ‘stand animal’ 시리즈를 통해 인간사회 이야기에 공감하고자 했다. 무리 지어 사는 동물은 대부분 자신이 속한 사회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모습, 즉 보편적으로 선호하는 외모나 성격을 추구한다.

선호 범위는 곧 표준이 되고 그 안에 들어야 무리에서 낙오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 

반복 통한 다른 형상
각면으로 만든 동물

장세일은 “지난날 나 역시 남들처럼 되기 위해 부단히 애썼다. 또래 친구와 같은 옷, 머리 모양, 말투, 취미 등 유행을 열심히 찾아보며 살았다”며 “학교 성적도 어느 정도 나와야 안심이 됐고 컴퓨터게임도 어느 정도 실력이 돼야 친구와 어울릴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정말 뭘 하든 내 위치는 중간 어딘가 쯤에 있었다”고 회상했다. 


보편화된 관념과 취향에 맞춘 표준화된 모습은 마치 무리 속의 한 마리 동물이나 곤충처럼 느껴졌다. 장세일은 그 모습에서 ‘자연선택설’을 떠올렸다. 현대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는 특성만이 살아남아 모두 비슷한 모습과 행동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그는 동물의 형태를 이용해 표준화된 현대인의 이야기를 하고자 했다. 

직접 인간의 형상을 표현하는 것보다 귀여운 동물의 형태를 빌어 표현하는 것이 지나치게 심각하지 않게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 과정에서 등장한 게 바로 상상의 동물 ‘stand animal’이다. 

‘stand animal’은 도시 빌딩의 직선 환경에 맞게 진화된 각면으로 이뤄진 동물이다. 무수한 삼각형과 사각형이 모여 동물의 형상을 이룬다. 단순한 직각 도형이 모여 하나의 동물 형태가 되는 쾌감은 사회 속 승리자 같은 느낌을 선사한다. 

꿈꾸다

충무로갤러리 관계자는 “두 작가는 보통 사람이 되기 위해 부단히 애쓰는 사람이다. 수많은 현대인도 두 작가와 비슷할 것”이라며 “김경원은 똑같은 모습을 반복적으로 제시해 조화로움을 추구하는 형상을 만들었다면, 장세일은 동물을 통해 도시환경에 맞게 변화하는 현대인의 모습을 직각 도형을 통해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김경원이 반복의 노동을 통해 희열을 느꼈다면, 장세일은 평면 각면 조각이 모여 입체동물이 되는 쾌감을 느꼈다”고 덧붙였다. 전시는 오는 20일까지.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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