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만 버티면 땡?’ 대형 포워딩 기업 사기 의혹

2022.11.25 11:34:42 호수 1402호

가해자는 없고 피해자만 있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부산의 유명 포워딩 업체 A사가 주인 몰래 화물을 빼돌렸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피해자는 수협으로부터 A사가 보관하고 있는 화물의 선하증권을 매입했다. 하지만 A사에서 보관하고 있다는 화물은 이미 빼돌려진 상황이었다.



선하증권의 허점으로 인해 국내 포워딩(화물배송·보관업체) 대표 기업 A사로부터 수억원의 피해를 입었다는 제보가 들어왔다. 선하증권이란 해상운송계약에 따른 운송화물의 수령 또는 선적을 인증하고, 해당 물품의 인도청구권을 문서화한 증권으로 매매와 양수, 양도가 가능하다.

법 허점 이용
화물 빼돌리기

제보자는 “A사가 법의 허점을 이용해 수입자와의 공모로 수억원대의 화물을 빼돌렸다”고 주장했다. A사는 물류 운송 전반을 다루며 중국, 베트남 등에 해외 지사를 거느리고 있는 물류기업이다. 해상, 항공운송뿐만 아니라 내륙운송 및 운송을 위한 포장, 운송 일정을 맞추기 위한 컨테이너 터미널 등 관련 시설과 운송 서비스까지 지원한다. 

A사에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B씨에 따르면, 그는 2017년 9월 수협은행에서 감정평가를 받은 화물 2건에 대해 선하증권을 매입했다. 이후 수협은행으로부터 받은 선하증권으로 A사에 화물 인도를 청구했다.

B씨는 “기본적으로 선하증권 원본을 제출하면 그에 따라 곧바로 화물을 인도해야 하는 게 원칙이다. 하지만 A사는 인도를 차일피일 미뤘다”고 주장했다. 의구심이 생긴 B씨는 선하증권 이전 소유자인 수협과 함께 조사에 나섰다.


전 직원 동원한 연극…“감쪽같이 속았다”
상법 제814조… “1년 지나 부적법” 판결

결국 A사가 2014년 3월 무단으로 화물을 불법 반출한 사실을 알게 됐다. B씨는 “A사는 수년간 화물을 보관 중인 것처럼 속여왔다. 이 사기행각에는 회장, 대표를 비롯한 전 직원이 동원됐다”고 주장했다.

선하증권의 이전 소유자인 수협 측은 “주기적으로 화물 보관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 때마다 A사는 화물을 보관 중이라고 거짓 보고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수협에서는 주기적으로 실사를 나가 화물을 확인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A사 측은 동종의 다른 화물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마치 보관 중인 것처럼 속이는 수법을 썼다.

B씨는 “A사와 수입업자는 불법 출고를 예전부터 관행적으로 하는 사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A사를 상대로 민·형사상 고발했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도 발생했다. 법원은 “상법 제814조 1항 ‘화물을 수하인에게 인도한 날로부터 1년 이내에 재판상 청구하지 않으면 청구권이 소멸한다’에 적용돼 제소 기간을 도과했기 때문에 소송이 부적법하다”고 판결했다.

동종피해 급증
피해자만 속앓이

누구에게도 피해를 보상받지 못하게 된 것이다.

B씨는 “수협과 A사에서 화물을 잘 보관하고 있다는데 재판할 이유가 있느냐”고 반문하며 “애초에 A사가 ‘화물은 무단 출고되고 없다’고 했으면 수협에서 선하증권을 매각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내가 매입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라고 토로했다.

B씨는 “A사는 1년만 속이면 발각되더라도 법에 아무런 저촉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악용해 회장 및 전 직원이 타인의 화물을 동의도 없이 조직적으로 무단 처분했다”면서 “누가 봐도 ‘도둑질’이라고 볼 수 있는데 1년만 속이면 아무런 처벌도, 배상도 안 된다는 것이 전혀 납득되지 않는다”고 억울해했다.

관련 피해 무더기… 법 개정 목소리
법무부 “법규정 달리하는 방법 고려”

B씨와 비슷한 피해를 본 사건은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화물운송업체 B사는 중국에서 화물을 들여온 뒤 선하증권을 발급했다. 발급한 선하증권은 곧바로 C씨에게 매각됐다. 이후 B사는 수입업자와 공모해 해외로 화물을 빼돌렸고 C씨는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본인 화물이 제대로 보관돼있다고 믿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 자신의 화물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B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를 진행했다. 하지만 이 사건을 맡았던 법원도 상법 제814조 1항을 들어 소송이 부적합하다며 패소 판결을 내렸다.

또 다른 운송업체 D사는 튀르키예에서 들여온 화물에 대해 선하증권을 발행했고 E씨에게 매각헀다. 하지만 D사가 보관업체로 화물을 이송하던 중 화물의 80%가 파손됐다. D사는 해당 사실을 2년 동안 숨겼다. 시간이 흘러 이 사실을 확인한 E씨는 D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진행했지만 앞서와 같이 패소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계속된 선하증권 사기사건에 피해자는 있고 피의자는 없는 상황”이라면서 “배상받을 길이 없어진 피해자만 모든 것을 떠안는 사태가 발생한다. 조속한 법 개정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입법의 문제
법무부 나서나

‘제소 기간이 도과했을 때 피해자는 그 이익을 포기해야만 하는가’에 대한 질문에 법무부 관계자는 “이는 입법정책의 문제”라며 “원만한 분쟁 해결을 위해 법적 성격을 달리 규정하는 것도 고려해볼만하다”고 답했다.


<ktikt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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