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기획> 가습기살균제 참사, 그후 ③공정위-가해 기업 수상한 상부상조

2022.10.17 15:02:39 호수 1397호

팁까지 주고받고…몰래 한 스킨십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의 세월호·가습기살균제 사건 진상규명 활동이 지난 6월 마침표를 찍었다. 작은 성과가 있었으나 피해자와 유족의 눈높이에 맞는 결과물을 내놓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사참위 가습기살균제 사건 진상규명 소위원회가 4년 가까이 조사해온 결과물을 입수한 <일요시사>는 공정거래위원회와 SK케미칼 간의 유착 의혹에 대해 알아봤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은 공정거래위원회가 가해기업들 중 SK케미칼에만 유독 약한 모습을 보였다고 주장한다. 가습기살균제 원료인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염화에톡시에틸구아니딘(PGH)과 클로로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CMIT)·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MIT)을 만들었음에도 제대로 된 처벌을 받지 않았다는 것이다. 실제 공정위는 SK케미칼에 대해 무혐의라는 면죄부를 던져줬다.

전관 미팅에…
조사 않고 무혐의

공정위는 2011년 9월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와 시민단체의 신고로 제조·판매업체들에 대해 조사하기 시작했다. 처음 조사 대상이 된 기업은 애경산업과 이마트다. 이들 기업은 CMIT·MIT 성분이 포함된 가습기메이트, 이플러스 가습기살균제를 판매한 사업자였으나 2012년 2월14일 서울지방공정거래사무소장(심사관) 전결로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심사관은 표시·광고 행위의 책임자이자 제조원 및 라벨 표시에 관여했던 SK케미칼은 조사하지 않았다.

사회적참사 가습기살균제진상규명소위원회(특조위)는 공정위가 법령상 충분한 조사 기간이 있었음에도 자세한 사실관계 확인 없이 안건을 처리했다고 봤다. 통상 공정위 신고가 접수된 후 사건처리까지는 4~5개월 정도의 시간이 소요된다.


그러나 공정위는 충분한 조사기관과 법령상 조사업무 협조를 받을 수 있는 기관들이 있었음에도 적극적으로 사안을 검토하지 않았다.

특히 SK케미칼로부터 받았다며 애경이 공정위에 제출한 안전성 검토자료에는 ‘안전성이 155배 확보돼 안전역(Margin of Exposure) 판단 기준인 100배보다 크므로 제품의 안전성이 확보됐다’고 적혀 있었으나, 이 자료는 2016년 국회 가습기살균제 국정조사에서 전문가에 의해 안전성을 확보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위험하다는 것을 입증한 자료였다.

이외에도 공정위는 표시광고법 제5조(표시·광고 내용의 실증 등)에 따라 실증자료의 객관성과 타당성을 판단하기 위한 업계, 학계 등 관련 전문가의 의견이나 자문을 구하지 않았다. 표시광고법에 따르면 공정위는 조사 대상이 된 기업이 제출한 실증자료가 요청한 내용에 따르지 않아 보완의 필요가 있는 경우 보완을 요청해야 한다.

또 사업자가 제출한 실증자료를 심사할 때 표시·광고에서 주장하는 내용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지를 판단해야 한다. 제출된 실증자료가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자료라 하더라도, 실증자료에서 입증한 내용이 실제로는 표시·광고에서 주장하는 내용과 관련이 없는 경우 표시·광고 내용에 대한 합리적인 근거로 인정되지 않는다.

두 번째 조사인 2016년도 결과는 같았다. 신고를 접수받은 서울지방공정거래사무소는 2016 국회 가습기살균제 국정조사 업무(자료 제출) 등을 맡았다. 당시 사건 접수를 검토했던 공정위 실무관계자들은 사안의 중요성을 들어 태스크포스(TF) 구성이나 공정위 본부 차원의 재조사를 제기했으나 김학현 당시 공정위 부위원장은 새로운 신고사건으로 보고 서울사무소 처리를 지시했다.

전관예우 규제책? “오히려 늘었다”
“12·16·18년 모두 부실·소극적 대응”

결국 사건의 중대성을 감안하지 않은 당시 부위원장의 판단 및 공정위의 지원(본부 차원의 TF구성 등) 부재는 이후 부실 조사를 초래했다.

2012년과 같은 사건이라고 판단한 공정위는 애경과 SK케미칼이 제출했던 ‘가습기메이트 표시·광고 관련 소명’ 자료도 들여다보지 않았다. 이들 가해기업이 제출한 자료는 2012년과 마찬가지로 안전성 검토와는 관련 없는 자료들이었다.

정치권과 언론의 비판이 이어지자 공정위는 2017년 9월29일부터 12월13일까지 가습기살균제 TF를 구성해 운영했다. TF는 공정위의 2012년 사건처리와 관련해 SK케미칼을 조사하지 않은 행위가 잘못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CMIT·MIT 주성분 가습기살균제에서는 폐섬유화 소견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질병관리본부의 동물 실험 결과 발표 내용(2012년 2월)이 주된 근거였다.


해당 사건 제품의 기사성 신문광고의 광고행위 종료일(처분시효 기산점)은 기사 게재 시점 등 행위 시점으로 판단했고 2012년 사건 처리 당시 기사성 신문광고의 처분시효가 도과돼 질본의 결론에만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TF는 2016년의 판단은 잘못됐다고 인정했다. TF가 지적한 공정위의 사건 처리는 다음과 같다.

▲CMIT·MIT 함유 가습기살균제 제품의 인체 유해 가능성이 존재함에도 공정위가 인체위해성이 명확히 증명되지 않았다며 위법성 여부를 판단하지 않고 심의절차를 종료한 것은 표시·광고법의 입법 취지에 맞지 않음 ▲사안이 중대했음에도 전원회의가 아닌 소회의에서 처리한 점 ▲공정위 소회의를 유선통화로 심의 진행하면서 피해자 현황 등 중요 사실을 논의하지 않은 점 등이다.

TF는 공정위의 이 같은 부실행정을 지속하면서 SK케미칼을 포함한 가해 기업들에 대한 추가 조사와 재심의를 권고했다.

공정위는 가해 기업 조사 중 전관이 포함된 기업관계자와 면담을 진행했다. 특조위는 공정위의 해당 행위가 기업에만 일방적인 진술 기회를 준 것이라고 판단했다. 소극적 심의 절차를 거치는 과정에서 심의를 운영하는 주심위원이 사건과 관련된 자료를 부실하게 확인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사실상
면죄부

<일요시사>가 입수한 특조위 가습기살균제 참사 보고서에 따르면 김성하 전 공정위 상임위원은 내부규정을 어겼다.

공정위 고시 공정위 회의 운영 및 사건절차 등에 관한 규칙 제30조 제2항과 제3항을 보면 심의 절차와 조사 관련 면담을 진행하는 담당자는 피심인 일방만을 접촉해서는 안 된다. 특히 상임위원이 사건 당사자를 면담할 경우 담당 심결보좌 입회하에 설명을 청취해야 하고 입회한 직원은 사건 당사자의 방문일시 및 목적·내용 등을 방문일지에 기록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공정위 직원은 기업관계자 14인이 2016년 8월3일부터 8월9일까지 주심위원을 방문할 때 방문일지를 작성하지 않았다.


같은 해 SK케미칼 측은 관계사를 통해 가습기살균제 사건에 관여하는 공정위 직원을 접촉했다. SK하이닉스에 재취업한 공정위 과장 출신 A씨는 심의 개최 약 한 달 전인 7월15일과 심의 당일인 8월12일 공정위 조사부서인 서울사무소에 방문했다.

8월12일은 공정위는 소회의 심의가 진행된 날이다. 이 심의엔 기업 측 대리인도 참석했다. 공정위는 1주일 뒤 ‘유해성이 입증되지 않았다’며 사실상 ‘무혐의’ 조치인 심의 절차 종료를 결정했다. 이 사건을 신고했던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는 사건이 처리되는 동안 심의위원을 만나지 못한 데 이어 소회의도 참석하지 못했다.

2018년 국회에 제출된 공정위 재취업자 출입기록에는 A씨가 주심과 두 차례 면담 자리를 가졌다. 공정위 조사관 출신 한 관계자는 “공정위 직원이라면 이름 1명만 적어도 타 기관·기업 관계자와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다”며 “안에서 정확히 몇 명이서 미팅을 했는지는 확인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공정위 퇴직자와 사건 담당자의 접촉을 규제하는 장치는 전무했다. 표시·광고법 등과 관련해 사업자에 대한 법적 제재 수위를 결정하는 공정위 회의가 사실상 법원의 1심 기능을 하기 때문에 퇴직자와 심의위원의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비판이 상당했다.

퇴직자와
심의위원

공정위의 마지막 조사는 2017년에 시작됐다. 가습기살균제 진상규명에 힘쓰겠다고 공언한 김상조 전 공정위원장은 “2016년 심의종료 결정할 당시 처분시효는 지난해 5월까지고, 향후 환경부가 실험을 통해 CMIT·MIT의 인체 위해성 인과관계를 입증할 경우 언제든 과징금 부과, 경고 등 제재가 가능하다”고 밝힌 바 있다.

이후 환경부는 2017년 9월경 공정위에 유해성 관련 공문을 보냈다. 공정위 사무처는 내부적으로 SK케미칼과 애경산업에 각각 250억원과 81억원 한도 내에서 과징금을 부과하고 전 대표이사 등을 형사 고발하는 내용의 심사보고서까지 작성했지만, 최종 결론은 뒤집혔다.

공정위는 SK케미칼과 애경, 그리고 유사 제품을 자체 브랜드(PB) 상품으로 판매한 이마트에 시정명령과 과징금을 부과했다. 과징금은 SK케미칼 3900만원, 애경산업 8800만원, 이마트 700만원이 각각 부과됐다.

각 기업에 적용된 혐의의 처분시효가 지났다는 지적이 제기되면서 공정위와 가해기업 간 소송이 진행되기도 했다. 서울고등법원은 2019년 10월 SK케미칼이 ‘시정명령 및 과징금 납부 명령을 취소하라’고 제기한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단했다.

법원은 이마트와 애경이 각각 제기한 시정명령 취소 행정소송에서도 공정위 패소를 판결했다. 재판부는 “2011년과 2016년 조사는 동일한 사실관계에 대한 조사”라며 “기본적 사실관계가 동일한 이상 그에 대해 두 번 이상 조사를 하면서 그때마다 조사의 단서를 달리했거나 새로 적용법령을 추가했다고 해서 조사의 대상이 달라지거나 새로 생기는 것은 아니다”고 판단했다.

판결 직후 피해자들은 “공정위가 손 놓고 있는 사이, 기업이 인체에 무해하다는 광고로 사람을 죽여도 아무런 처분을 받지 않는다는 선례를 만들어 준 셈”이라면서 비판에 나섰다.

표시광고 행위 책임 조사 검토도 안 해
부적절한 만남 후 면죄부 던져준 정황

그러나 대법원 2부(주심 천대엽 대법관)와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지난 4월 애경·SK케미칼이 공정위를 상대로 낸 시정명령·과징금납부명령 취소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애경과 SK의 위법 행위가 종료되는 시점을 다시 따져봐야 한다며 달리 판단했다.

2012년 3월 개정된 공정거래법은 ‘위반행위 종료일로부터 5년’이던 기존의 제척기간을 ‘조사 개시일로부터 5년 또는 행위 종료일로부터 7년’으로 바꿨는데, 두 업체의 위반 행위가 개정 공정거래법 시행일(2012년 6월) 이후에 끝났다면 새로운 제척기간이 적용되므로 공정위 처분이 유효할 수 있다고 대법원은 설명했다.

대법원은 “공정위가 조사에 착수한 시점 전후에 걸쳐 위반 행위가 계속된 때는 그 위반 행위가 종료된 시점에서야 비로소 ‘최초로 조사하는 사건’이 된다”며 “공정거래법이 정한 조사 개시일은 ‘위반 행위 종료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표시광고법을 위반한 상품이 유통될 수 있는 상태가 계속되는 이상 상품 수거 등 시정조치가 완료될 때까지 위법 상태가 계속된다고 밝혔다. 위법 상태가 끝나는 때는 ‘생산 중단’이나 ‘적극적으로 수거하기 시작한 시점’이 아니라 시중에서 문제의 상품이 모두 사라져 소비자가 더는 피해를 보지 않는 ‘위반 행위 종료일’이라는 것이다.

대법원은 애경과 SK가 2011년 8월 말부터 표시광고법을 위반한 가습기살균제를 생산·유통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이지만, 이후에도 제3자에 의해 유통된 적은 있다고 했다. 그럼에도 원심(서울고법)은 공정위 처분이 제척기간을 지난 점만 따졌을 뿐 그 처분 내용이 적정한지는 제대로 심리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가습기살균제 참사에 대한 공정위의 조사가 마무리될 줄 알았으나 지난달 29일 헌법재판소가 가습기살균제 관련 광고성 온라인 기사도 공정위 조사 대상이라는 결정을 내리면서 상황은 반전됐다. 2016년 조사 당시 공정위는 기자 이름이 쓰인 2005년의 온라인 기사는 심의 대상에서 제외했다.

그러나 헌재가 기사 형식이라도 광고로 볼 수 있고, 처분시효가 지나지도 않았다고 판단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해당 기사 3건은 여전히 구글과 언론사 홈페이지에서 찾을 수 있다. 헌재는 ‘당시 공정위가 사건을 종결할 때까지 인체 위해성 여부가 판단되지 않았으므로 거짓·과장 광고로 보고 행정처분과 고발을 할 가능성도 있었다’고 지적했다.

마지막 기회
일부로 놓았나

이번 공정위의 조사는 속도전이 될 전망이다. 표시광고법상 제품이 마지막으로 판매를 위해 마트 등에 진열된 시점을 기준으로 공소·처분시효를 계산하기 때문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사건 처분시효와 공소시효가 오는 31일까지라 헌재 결정이 나온 이후 바로 현장조사에 들어갔다”며 “최대한 빨리 결론을 내고 검찰에 고발하는 등의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말했다.

공정위가 이달까지 결론을 내지 못하면 과징금이나 시정명령을 부과할 수 없고, 검찰에 고발하더라도 공소시효가 지나 기소가 불가능하다.


<hounder@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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