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면서 가는’ 박용진 외로운 사투, 왜?

2022.08.22 13:55:02 호수 1389호

여기서도 저기서도 고립무원

[일요시사 정치팀] 정인균 기자 = 보통 선거에서는 양대 세력이 싸운다. 1·2위 후보들은 세력을 등에 업고 상대 후보와 치열하게 다투며 서로 의지하기도, 의지받기도 하면서 ‘함께’ 싸운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 당 대표 선거에 뛰어든 박용진 의원은 2개월째 ‘외로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 그의 당선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있는 사람이 극소수인 탓이다. 그는 선거운동에서 ‘함께’할 세력이 없다.



더불어민주당 강훈식 의원이 전격 사퇴했다. 지난 15일, 강 의원은 국회 긴급 기자회견에서 “오늘 당 대표를 향한 도전을 멈춘다”며 “두 분 중 누가 당 대표가 되더라도 가슴 뛰는 민주당을 만들 수 있게 가장 낮은 곳에서 헌신적으로 돕겠다”고 밝혔다.

나홀로

그동안 박용진 의원으로부터 꾸준히 단일화 러브콜을 받았던 강 의원은 이날 단일화에 대한 언급 없이 대표 후보를 사퇴하겠다고만 밝혔다.

당권 도전을 선언했던 ‘97그룹 4인’ 중 이제 박 의원만 남게 됐다. 강병원 의원과 박주민 의원은 1차 컷오프 문턱을 넘지 못해 탈락했고, 컷오프 통과의 이변을 일으킨 강 의원도 5%대의 낮은 지지율을 이기지 못하고 끝내 사퇴한 것이다.

사실 이들이 그룹으로 묶일 때만해도 네 명이 ‘원팀’이 되어 싸울 줄 알았다.


‘세대교체’ ‘민주당 쇄신’ 등 젊은 재선 의원들의 의지가 통했던 면이 있었고, ‘비명(비 이재명)계’의 대표 세력인 ‘친문(친 문재인)’계가 후보를 내지 않았던 면도 있었다. 당초 민주당 내 주류로 세력을 넓혀가고 있던 친명(친 이재명)에 대항해 항전하던 친문 세력은 세대교체를 명분으로 젊은 의원들에게 힘을 실어주려 했다.

그러나 막상 본게임이 시작되자 97그룹의 단합도, 친문의 전폭적인 지지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우선 97그룹의 분열이 그 신호탄이었다. 시작부터 말썽이었던 건 박주민 의원이었다. 그는 세 명의 의원이 줄줄이 출마 선언할 때 혼자 백팔번뇌에 들어간 바 있다.

그는 강병원, 강훈식, 박용진 의원이 일찌감치 비명 노선으로 방향을 잡으며 선거 전략을 고민할 때, 친명과 비명 사이에서 갈등을 했다고 전해진다. 당시 박 의원으로선 당 대표 선거에 나온다는 의미는 비명 노선을 타는 것이었고, 친명에 줄을 섰으면 당 대표에 나와서는 안 됐다.

결국 후보 등록 막바지에 출마를 선언한 그는 1차 컷오프에서 친명계의 표가 갈리며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박용진 의원 입장에서 불행 중 다행이었던 것은 강훈식 후보가 컷오프를 통과한 것이었다.

그나마 포섭 가능한 후보였던 강병원 의원과 강훈식 의원 중 한 사람이 통과하길 내심 기대하고 있던 박 의원은 1차 컷오프가 끝나자마자 강 의원에게 단일화를 제안했다.

이재명 의원과의 압도적인 표 차이를 예상한 그는 비명 진영에서 힘을 합해야 승산이 있지 않겠냐는 계산에서였다.

박 의원은 컷오프 다음날인 지난달 29일,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한 달이면 천하를 두세 번 뒤집을 수 있는 시간”이라며 “저는 (단일화에)긍정을 넘어 엄청 적극적”이라며 단일화에 대한 압박 수위를 점차 높여 나갔다. 그러나 이 시점에 대해 설왕설래가 많았다. 컷오프가 끝나자마자 단일화를 요청하는 시점이 잘못됐다는 것이다.

본인의 홍보 목적이 섞여있는 당 대표 후보에게 본인을 알릴 기회조차 주지 않고 컷오프 하루 만에 단일화를 제안했다는 게 비판의 핵심이었다. 사실상 박 의원은 당시 본인으로의 단일화를 꾀했다고 평가받았다.

일부 극소수 지지…97그룹도 친문도 외면
배려 없는 단일 제안과 극단적 성향 때문?

근거는 단일화 시점에 대한 입장 차이였다. 박 의원은 “유권자들, 특히 당원들에게 선택의 시간을 줄 수 있으려면 첫 전당대회 투표가 시작되는 대구·경북·강원의 투표가 시작되는 8월3일 이전에 할 수 있으면 가장 좋다”며 구체적으로 날짜를 짚었다.


그러나 강 의원의 태도는 미온적이었다. 지금 두 사람의 단일화에 명분도, 실리도 찾아볼 수가 없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었다.

또, 75% 이상의 득표율을 기록하고 있는 이 의원에 대항해 두 사람의 미미한 득표율이 어떤 도움이 되겠느냐는 계산도 기저에 깔려있었다. 오히려 단일화를 택하지 않고 비명 색채를 덜어내는 선택이 최선이라는 게 평론가들의 시각이다.

야권에 친숙한 한 정치평론가는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에서 “(정치의)수로 치면 ‘사퇴’가 ‘단일화’ 보다 더 높은 수”라며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버리면 다른 한쪽은 ‘적’이 된다. 이번에 (강 의원이)사퇴를 단행하며 박 의원의 기대를 무너뜨렸지만, 사퇴만으로도 단일화 효과를 불러올 수도 있고, 그렇다고 친명계에 밉보이는 선택도 아니었다”고 평가했다.

이어 “박 의원이 요즘 이 의원을 향한 네거티브가 너무 과격한 것도 한 몫한 것으로 보인다. 요즘 보면 박 의원이 꼭 지난 대선 때 문재인 전 대통령과 등을 돌린 이 의원이 떠오른다. 아슬아슬하다는 느낌을 종종 받는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이 의원은 2016년 대선 경선 과정에서 문 전 대통령을 과하게 비판해 아직까지 ‘친문’ 세력의 미움을 받고 있다. 평론가는 “그때의 이 의원처럼 이 의원을 과도하게 비난하고 있는 박 의원이 위태로운 처지”라고도 했다. ‘강 의원 또한 그런 박 의원 뒤에 서는 것이 부담이었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97그룹 중 누구의 지원도 받지 못한 박 의원은 친문 세력의 도움도 받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일요시사>가 취재 중 접한 친문 의원들은 박 의원에 대한 공개적인 지지나 적극적인 선거운동을 전개하고 있지 않았다. 친명 세력을 몰아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친문이 박 의원을 돕는 그림이 자연스러웠으나 이 세력 역시도 박 의원을 고립무원에 빠뜨리고 있는 것이다.

민주당 내 몇몇 인사들이 그가 너무 극단적 사상을 갖고 있다고 의심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박 의원의 출신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박 의원은 민주당 입당 전,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에 몸담고 있었다. 제16대 총선에서 그는 민주노동당 후보로 선거에 뛰어들었으며 8년 뒤인 18대 총선에서는 진보신당 후보로 뛰었다. 2013년에는 민혁당 사건(2003년)으로 구속된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에 대한 석방 운동 사진이 정계에 퍼져 그의 사상에 대한 의심이 한 층 더 짙어진 바 있다.

사면초가


<일요시사>가 만난 한 민주당 관계자는 “당 대표 선거에서 2위를 달리고 있는 후보가 이 정도로 외로운 적은 없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지금 박 의원은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자력으로 선거운동을 진행 중이다. 그의 편이 되어줄 사람은 이제 당 밖에 있는 국민들뿐이다.


<ingyu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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