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기 단상> 출마와 출우

  • 김삼기 시인·칼럼니스트
2022.07.18 08:31:07 호수 0호

섬김과 희생정신

내달 28일 치러지는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 차기 지도부 선거에 나가는 9명의 당 대표 및 14명의 최고위원 예비후보들이 지난 6월 말부터 후보등록 마감을 하루 앞둔 어제(17일)까지 매일 매일 각각 출사표를 던지며 출마를 선언했다.



이번 8·28 전당대회 당 대표 출마 여부에 기장 큰 이슈가 됐던 이재명 상임고문도 후보등록 첫날이었던 지난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서 기자회견을 열고 당 대표 출마를 선언했다.

최근 20여일 동안 민주당은 온통 출사표와 출마 관련 뉴스로 도배됐다는 생각밖에 안 든다. 지난 3·9 대통령선거에서도 경선 후보까지 합쳐 40여명의 후보가 출마했고, 6·1지방선거에서도 7616명의 후보가 출마한 바 있다.

그러니까 우리나라 국민은 최근 7개월 동안 무려 7700여명의 후보가 나랏일을 하겠다고 출사표를 던지고 출마를 선언하는 모습을 목도해야만 했다.

원래 ‘출마(出馬)’는 “전쟁터에 나가기 위해 말을 마구간에서 끌어내다”는 의미를, 출사표(出師表)는 장수가 전쟁터로 출정하기에 앞서 ‘군대를 일으켜 임금에게 올리는 글’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선거에 나가는 것도 “적을 향해 죽음을 각오하고 전쟁터에 나간다”는 의미로 해석돼 출마에 앞서 자신의 각오와 정치적 포부를 밝힐 때는 “출사표를 던진다”고 말하고, 선거 입후보 결심을 밝힐 때는 “출마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선거에 출마하는 모든 후보는 선거기간 내내 상대 후보가 지역의 선·후배나 같은 당의 동료임에도 불구하고 죽기 살기로 피 터지게 싸움을 한다.

말은 인간이 타고 다닐 수 있는 가축으로, 산업혁명 이전까지 육상 교통수단으로 말보다 빠른 운송 수단이 없을 정도로 빠르고, 지능도 아주 높고 기억력이 매우 뛰어나기 때문에, 나랏일을 하기 위해 선거에 나가는 행위를 “출마한다”고 하는 표현에는 박수를 칠 일이다.

그런데 전쟁터에 나갈 때 필요한 말의 특성을 인용해 선거에 나가는 행위를 “출마한다”고 하는 표현은 시대착오적인 표현이 아닐 수 없다.

사실 말은 잘 달리다가도 자신의 체격보다 작은 짐승이나 장애물과 부딪칠 때조차 차거나 밟고 지나가지 못하고, 자신의 그림자를 보고도 겁을 먹기 때문에, 그림자를 보지 못하게 섀도우 롤(shadow roll)을 채워줘야 하는 겁쟁이다.

경제력이 나라의 존폐를 좌지우지하는 21세기에는 “전쟁터에 나가기 위해 말을 마구간에서 끌어내다”는 의미의 출마가 선거에 나가는 것과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특히, 말이 빠르고 영리하지만 겁이 많은 걸 생각하면, 더더욱 선거에 나가는 후보를 “출마한다”고 표현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현대사회가 경제력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는 점을 감안해 “선거에 나간다”는 의미를 “전쟁하러 나간다”는 의미보다 “일하러 나간다”는 의미로 표현해야 더 잘 어울리지 않을까?

고대소설이나 고대사를 보면, 말(馬)과 소(牛)는 사람에게 길들여진 대표적인 가축으로, 특히 말은 빠르기 때문에 군사적인 가치를, 소는 힘이 좋아 농업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말은 마패에서도 알 수 있듯이 권위를 상징하고, 소는 열심히 일하고 죽어서는 주인에게 몸(고기)까지 제공하는 가축으로 섬김과 희생을 상징한다.

빠르고 영리한 말에 비해 소는 느리고 우둔하지만 “소가 나간다”는 의미는 바로 “섬김과 희생정신으로 일하러 나간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지난 3·9 대선과 6·1 지선에 출마한 수천명의 후보가 피 터지게 싸워서 이긴 싸움 잘 하는 싸움꾼 후보가 지금 우리 국민을 섬기고 있는 지도자라는 게 왠지 찝찝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이 섬김과 희생정신으로 국민을 위해 일하러 나가는 출우(出牛)를 하지 않고, 권위를 가지고 전쟁하러 나가는 출마(出馬)를 했기 때문이다. *출우(出牛) : 일터에 나가기 위해 소를 외양간에서 끌어내다.

이번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선출된 지도부는 3·9 대선과 6·1 지선 패배 이후의 당 수습과 개혁, 그리고 2년 후 있을 22대 총선의 지휘까지 중대한 일을 맡게 된다.

이렇게 민주당 차원에서 중차대한 일을 하겠다고 전당대회에 나가는 후보라면 출마(出馬) 선언 대신 출우(出牛) 선언을 했어야 했다. 그래야 민주당을 살리고 국회를 살리고 나라를 살릴 수 있는 것이다.

소는 한 번 화가 나면 아무도 못 말려 맹수인 호랑이도 무서워 할 정도로 강하고 우직하다. 이런 소를 데리고 일하러 나가겠다는 후보를 민주당 지도부로 뽑아야 당의 미래가 밝고, 국민으로부터 사랑받는 민주당이 될 것이다.

민주당은 오는 29일, 예비경선(컷오프)을 통해 당 대표 후보 3명과 최고위원 후보 8명으로 압축하고, 내달 28일 전당대회에서 대표 1명과 최고위원 5명을 최종 선출한다.

“공천권을 잡기 위해 마구간에서 말을 데리고 나오는 싸움꾼이 뽑힐 것인가?” 아니면 “당원과 국민을 섬기기 위해 외양간에서 소를 데리고 나오는 일꾼이 뽑힐 것인가?” 벌써부터 민주당 8·28 전당대회 결과가 궁금해진다.

오늘(18일)이 후보등록 마지막 날인데, 지금이라도 “출마(出馬)한다”는 말을 접고, “출우(出牛)한다”고 말하는 후보가 나오기를 기대해본다.


※ 이 기고는 <일요시사>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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