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위꾼 성지’ 양산 마을에 무슨 일이…

2022.06.07 11:28:58 호수 1378호

밤새 울려 퍼지는 “문죄인 XXX”

[일요시사 정치팀] 정인균 기자 = “문죄인 XXX” “간첩XX 내가 감옥 보낸다” “살인 백신, 너나 맞아라” 등 <일요시사>가 들은 녹음 파일에는 입에 담을 수도 없는 말들이 가득했다. 목이 쉰 목소리로 하염없이 외치는 이들은 한둘이 아니었다. 10개가 넘는 보수단체, 백신 사망자 가족 모임 등으로 이뤄진 평산마을 ‘시위꾼’들은 요즘 경상남도 양산시에서 하루 종일, 일주일 내내 문재인 전 대통령에게 욕설을 쏟아내고 있다. 



평산마을은 본래 조용하디 조용한 동네였다. 평균 주민 연령 70대, 총 주민 100여명뿐인 마을에 큰 소음이라고는 하루에 몇 번 울리는 경운기 소리가 전부였다. 주민 대부분은 농업에 종사하며 소박한 삶을 살고 있었고, 마을 주민간의 사이도 돈독한 동네로 유명했었다고 한다.

소음 폭행

그런 동네에서 평생을 살던 70~90대 주민 10명이 불면증과 스트레스 등의 이유로 지난달 셋째 주 병원을 찾았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낙향한 지난달 10일부터 지속적인 ‘소음 폭행’에 시달린 탓이다.

평산마을 주민 A씨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차마 입에 담기도 힘든 욕설 때문에 집회 내용은 하나도 기억이 안 나고, 욕설만 머리에 맴돈다”며 “손주가 왔었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가 그 욕설을 따라해 경악했다”고 마을 상황을 전했다.

시위꾼들의 성격은 두 가지로 나뉜다. 주축을 이루고 있는 세력은 보수성향을 띤 시민단체다. 양산경찰서에 따르면 지난달 문 전 대통령의 사저 앞에서 시위를 진행하겠다고 신고한 단체가 10개가 넘었다.


모두 다 다른 단체들로, 이들은 시간을 일정하게 배분해 24시간 내내 쉴 새 없이 집회를 진행하고 있다. <일요시사>가 여의도에서 만난 보수단체 소속의 한 회원은 “우리 단체는 문재인 전 대통령이 감옥에 갈 때까지 집회를 이어가기로 결정했다. 이미 11일까지 계속 평산마을에 갈 인력이 확보된 상태”라고 전했다.

문제는 이런 ‘강성’ 시민단체만 6~7개가 된다는 점이다. 문 전 대통령을 격렬히 비판하고 있는 이들은 당분간 시위를 계속 이어나갈 예정이다.

국회 경험이 있는 한 정치평론가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아무래도 문 전 대통령이 지난 정권들을 심판한 대가 아니겠냐”며 “물론 문정부의 입장에선 대선 공약을 이행한 것뿐이겠지만, 그 과정에서 정치적 실향민을 대량으로 양산한 것은 사실”이라고 해석했다.

문 전 대통령 임기 중 검찰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명박 전 대통령의 유죄를 입증해 형 확정을 받아낸 바 있다.

10개 넘는 보수단체 모여 확성기 시위 
하다 하다…신고 막는 전화 시위까지? 

문 전 대통령 임기 말에 박 전 대통령은 사면 받아 석방됐지만, 이 전 대통령은 아직도 형을 살고 있다. 여의도 평론가들은 “이런 상황에서 보수 세력 눈에는 문 전 대통령이 커다란 상처를 준 가해자로 비춰질 수밖에 없다”고 분석한다.

이들이 시위가 끝나는 시점을 “문 전 대통령이 감옥 갈 때까지”라고 잘라 말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는 것이다. 나머지 세력은 백신 부작용으로 명을 달리한 사람들의 가족이다. 지난해부터 전 국민에게 백신 접종을 장려한 문정부는 백신 접종률을 최대한 끌어올리기 위해 한동안 ‘백신패스’ 제도를 도입한 바 있다.

지난달 31일 기준, 대한민국 국민의 백신 접종률은 86%가 넘었다. 세계에서도 손꼽힐 정도의 높은 백신 접종률이었으나, 이 과정에서 많은 이들이 운명을 달리했다.

국민의힘 최춘식 의원실이 분석한 질병관리청 자료에 따르면, 올해 1월9일 까지 ‘백신 접종 사망 사례’로 신고된 건수는 총 1230건이었다. 이 사태를 지켜보고 있는 한 정계 관계자는 “이들이 보수단체의 시위보다 더욱 격렬할 것”이라고 전했다.

가족을 잃은 이유를 개인에게 찾는다면 그 분노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백신 접종 사망자 가족 모임은 보수단체들보다 그 수가 적지만 시위 빈도 수는 보수 단체 못지 않았다.


문 전 대통령 지지자 측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하루 이틀간 이어질 줄 알았던 시위가 몇 주째 이어지자 지지자들은 시위꾼들을 막아달라며 경남도청과 양산시청, 양산경찰서에 지속적으로 민원을 넣고 있다.

보수 진영 “전 정권 심판한 업보”
경찰 “막을 법률적 근거 못 찾아”

경남도청 측은 “요즘엔 잠잠해졌지만 지난달 셋째 주까지 민원이 700여 건이나 몰렸다. 경상남도 홈페이지 ‘도지사에게 바란다’란 코너가 있는데, 그곳에 시위를 막아달라는 내용의 민원이 한동안 올라왔다”며 “도청 업무 소관이 아니어서 한계가 있지만 고민을 다 듣고 있는 중”이라 <일요시사>에 전했다.

양산시청은 도청보다 더 많은 민원에 시달리고 있다. 이들은 전화 민원을 많이 듣고 있고, 시위가 극심해지는 휴일이나 주말에 특히 전화가 많다고 했다.

시청 공보팀은 “시청은 행정업무만 보는데도 시민들의 전화가 끊이지 않고 있다. 아무래도 경찰서보다 시청 직원들과 더 친숙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전했다.

가장 문제가 심각한 건 양산경찰서다. 이들에게는 하루에 수십통, 한 달에는 1000통 가까운 전화가 쏟아지고 있다.

양산경찰서 측은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소음 신고 관련은 예삿일이고 지금은 집회를 좀 막아달라는 항의전화가 빗발치고 있다”며 “그런데 시위는 11일까지 신고돼있고, 이는 앞으로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시위의)종료 기점이 언제인지는 우리도 알 수 없다”고 한숨 섞인 토로를 했다.

그러면서 “이들을 막을 법률적 근거는 아직까지 찾지 못하고 있다. 집시법에 의해 이뤄지고 있어 지금 당장 ‘시끄럽다’ ‘욕설을 한다’는 이유로 시위 자체를 막을 수는 없다. 법률적인 검토를 조금 더 해봐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못 막아


경찰서 측이 밝혔듯, 시위는 계속될 것이고 양산경찰서의 전화는 계속 마비될 것이다. 경찰서 전화 마비는 양산시민들의 치안과 직결되는 문제다. 경찰서 전화가 연결이 안 되면 시민들의 사건 신고접수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격렬한 정치 싸움에 양산 시민들의 위험이 노출되고 있다. 언제나 그랬듯, 정치 싸움에 피해를 보는 쪽은 애꿎은 일반 시민들이다.


<ingyu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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