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톱스타를 만나다> 한예리 “<미나리> 아름다운 사람들의 아름다운 이야기”

2021.03.02 10:15:36 호수 1312호

[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배우 한예리가 연기하는 배역 대부분은 현실 가까이에 놓여있다. 상상으로 꾸며진 캐릭터보다는 실제로 있을 법한 이미지의 역할이 한예리를 찾았다. 남한으로 도망치는 북한 여인,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미국의 시골로 떠난 이방인 등 낯선 느낌의 캐릭터들도 한예리가 연기하면 실제 존재하는 인물인 듯 느껴진다. 어떤 연기에도 일상이 묻어나는 듯 자연스러움이 강점인 배우다. 신작 <미나리>에서도 그의 장기가 발현된다. 

▲ 배우 한예리 ⓒ판씨네마

20대에 결혼하고 남편을 따라 미국에 왔다. 10년 넘게 잘살아보려고 아등바등했지만, 남은 건 빚뿐이다. 각박한 현실의 굴레를 참지 못한 남편은 큰 농장을 가꾸겠다고 결정한다. 심장병이 있는 아들을 뒤로하고 시골의 이동식 집을 구입한다. 언제 토네이도에 휩쓸릴지 모르는 집처럼 커다란 불안감이 온몸을 감싼다. 

현실의 굴레

농장주가 되겠다는 남편 제이콥(스티븐 연 분)의 꿈이 내 꿈이 돼버렸다. 그의 꿈을 충분히 지지하지만, 더는 버티기가 힘든 지경에 이른다.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엄마(윤여정 분)가 보는 앞에서도 남편과 다툼이 잦아진다. 

자신의 신념을 밀어붙이는 남편이 밉기도 하지만, 가족을 먹여 살리겠다고 팔을 들어 올리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일을 하고 돌아오는 남편이 짠하기도 하다. 노력은 하는데 상황은 점점 악화된다. 그러다 보니 불평불만이 늘어난다.

남편과 헤어지고 싶은 건 아닌데, 불만을 듣다 못한 남편은 “그렇게 힘들면 아이들과 떠나라”고 한다. 


정이삭 감독의 신작 영화 <미나리>에서 한예리가 맡은 모니카가 처한 상황이다. 각박한 현실을 살다 보면 어느 가족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상황이다. 남편은 남편대로, 아내는 아내대로 이해받길 원한다. 부부간에 한 치도 양보하지 않다 결국 감정이 폭발하기에 이른다.

<미나리> 대본을 읽고 한예리의 가슴을 찌르는 질문은 “모니카는 왜 제이콥을 사랑할까?”였다. 최근 비대면 인터뷰를 통해 만난 한예리는 이 질문을 가슴에 안은 채 끊임없이 고민하며 촬영에 임했다고 했다. 

“모니카를 연기할 때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제이콥을 어떤 점에서 사랑하는 건지’와 ‘왜 함께 있는 건지’, 그리고 ‘모니카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였어요. 촬영하면서 모니카가 정말 강한 여성이라고 느꼈어요. 모니카는 가족의 안위와 미래를 걱정하면서 가정사를 이끌거든요.”

다툼과 화해를 이어가던 두 부부는 모든 상황이 잘 풀리는 후반부에 큰 싸움에 이른다. 자신의 꿈이 가족보다 더 소중해 보이는 남편의 태도가 못마땅한 모니카와 어찌 됐든 가족을 위해 헌신한 부분을 인정해주지 않는 아내에 대한 설움이 있는 제이콥이 충돌한다. 

제이콥에게 마음이 기울면서도, 한편으로 모니카가 이해된다. 관객에 따라 반대의 느낌을 받기도 한다. 한예리는 이 장면에서 모니카가 가장 잘 드러난다고 생각했단다.

“영화 모든 과정 나에겐 선물이었다”
“윤여정처럼 멋진 배우가 되고 싶다” 

“모니카는 제이콥에게 헤어지자고 하지 않아요. 힘들다는 것이 헤어지자는 게 아니라 견딜 수 없을 만큼 벼랑 끝에 몰렸으니 붙잡아달라는 의미예요. 비록 그 말이 통하지는 않지만요. 그래도 이 가족이 해체되지 않을 수 있었던 힘은 모니카에게서 나왔다고 생각해요. 모니카가 가진 가족에 대한 사랑이 그만큼 크다고 여겨요. 그 사랑을 담담하게 표현하려고 했어요.”

영화의 주요 인물은 모니카와 제이콥을 중심으로 모니카의 엄마인 순자, 아들(앨런 김), 딸(노엘 조)이 전부다. 조연들이 더 있기는 하나, 영화의 대부분이 이들의 이야기다. 등장인물 모두 다 장점과 단점이 뚜렷하다. 누구 하나 나쁜 사람이 없다. 다들 선하고 올바르게 살아가려고 한다. 다만 서로 간 인식의 차이로 인해 부딪힐 뿐이다. 

“‘선댄스 영화제’에서 처음 봤는데, 제가 출연한 영화지만 ‘정말 아름다운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영화에서의 모든 과정이 누구나가 느낄 법한 자신의 이야기예요. 그리고 그 누구도 악한 인물이 없어요. 제 생각을 얘기할 뿐이에요. 악행도 없어요. 한국적으로 신파라고 할만한 부분도 담담하게 표현해요.”
 

▲ 한예리 스틸컷 ⓒ판씨네마

누구나가 공감할 포인트가 있는 이야기 속에서 과장 없이 담백하게 연출한 이 영화는 미국 전역의 시상식을 휩쓸고 있다. 각종 비평가 협회의 호평 속에서 작품상과 각본상, 배우상을 모두 섭렵하고 있다. 특히 윤여정은 여우조연상 26관왕에 이른다. 


한예리 역시 <미나리>를 통해 골드리스트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차지했다. 

“사실 처음에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르고 그다음에 상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의 첫 주연상이기도 했고요. <미나리>로 제가 받은 첫 상이기도 해요. ‘굉장히 뜻깊은 일들이 <미나리>로 하여금 생기는구나’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오스카에 가까워지고 있는데, 뭐라도 받으면 정말 좋겠어요. <미나리>는 저희한테 선물 같은 시간인데, 대미를 장식하는 큰 선물이 왔으면 해요.”

한예리는 대선배 윤여정과의 작업이 특별한 시간이었다고 한다. 두 사람은 모녀 관계로 나온다. 두 사람이 영화 초반부에 보이는 애정은 인상이 깊다. 한예리는 윤여정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고 한다. 

향기 나는 배우

“한 번은 선생님께서 ‘여기서 우리를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 정신 차려라’라고 하시는 거예요. 저는 사실 겁이 많았거든요. 그런데 선생님은 정말 당당하고 멋있게 연기를 하시더라고요. 캐릭터를 분석하는 자세, 배우 고유의 색깔에 대해 배웠어요. 또 인간 윤여정을 가까이서 볼 수 있었던 게 정말 큰 감사함이에요. 언제나 유머러스하시거든요. 긍정적이시고요. 저 역시 선생님처럼 나이를 먹어서도 향기를 잃지 않는 배우가 되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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