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α’ 이춘재의 살인 지도

2019.10.21 10:54:50 호수 1241호

“내가 다 죽였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드디어 이춘재가 입을 열었다. 그가 입을 열 때마다 미제사건의 실마리가 나오고 있다. ‘자신이 했다고 자백한 사건만 14건에 이른다. 우리나라 3대 미제사건으로 꼽혔던 화성연쇄살인사건 말고도 수면 아래 가라앉아 있던 사건들이 떠오르는 중이다. <일요시사>가 이춘재의 살인 행적을 뒤쫓았다.
 

▲ SBS 그것이 알고 싶다가 공개했던 화성연쇄살인사건 몽타주


화성연쇄살인사건은 개구리소년 실종사건’ ‘이형호 유괴사건과 함께 우리나라 3대 미제사건으로 꼽혔다. 지난 1986년부터 1991년까지 경기도 화성 일대서 여성 10명이 살해됐다. 전국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사건이지만 실마리는 좀처럼 잡히지 않았다. 2006410차 사건의 공소시효가 만료되면서 화성연쇄살인사건은 영구 미제사건으로 남는 듯했다.

화성 사건
33년 만에…

연극 <날 보러 와요>, 영화 <살인의 추억> 등 화성연쇄살인사건을 소재로 삼은 작품이 등장했다. SBS 시사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는 수차례에 걸쳐 화성연쇄살인사건에 대해 다뤘다. 사건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식지 않았지만 19914310차 사건 이후 28년간 범인의 윤곽은 오로지 몽타주로만 남은 상태였다.

그러다 지난달 18일 이후로 상황이 급반전됐다. 이날 오후 언론보도를 통해 화성연쇄살인사건 유력 용의자가 특정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동안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통해 쏟아져 나왔던 추측과 유력 용의자에 대한 궁금증이 게시판을 달궜다.

지난달 19일 반기수 경기남부지방경찰청 2부장은 브리핑을 통해 지난 715일 현장 증거 일부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감정 의뢰했다그 결과 현재까지 10건의 사건 중 3건의 현장 증거물서 검출된 DNA와 일치하는 대상자가 있다는 통보를 받고 수사 중에 있다고 발표했다.


경찰이 지난 8월 특정한 유력 용의자는 현재 부산교도소에 복역 중인 56세 이춘재. 이춘재는 19941월 청주시 자택서 처제를 강간, 살해 후 시신을 유기한 혐의로 검거돼 무기징역을 선고받아 복역 중이었다. 화성연쇄살인사건 유력 용의자로 지목된 당시 그는 부산교도소서 20여년 넘게 1급 모범수였던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안겼다.

범행을 부인하던 이춘재는 지난 1일부터 입을 열기 시작했다. 이춘재의 DNA5·7·9차 사건 증거물서 이미 검출된 데 이어 4차 사건 증거물서도 나온 것으로 확인되면서 상황은 급물살을 탔다. 이춘재는 기존 화성연쇄살인사건 9건 외에도 추가로 5건의 살인을 저질렀다고 자백했다. 14건이다. 이뿐만 아니라 살인사건 외에도 성폭행과 성폭행 미수 범행을 30여건 저질렀다고 말했다.

당시 그가 자백한 모든 범행은 군대서 전역한 19861월부터 처제를 성폭행하고 살해한 혐의로 검거된 19941월까지 8년동안 벌어졌다. 범행 장소는 화성과 수원, 청주 등 3곳이다. 다만 이춘재가 털어놓은 모든 범행은 공소시효가 만료돼 처벌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미제사건 속속 수면 위로
“모두 내가 했다” 입 열어

묘한 기류가 형성되기 시작한 것은 모방범죄로 알려졌던 8차 사건을 이춘재가 자신이 했다고 주장하면서다. 8차 사건은 범인이 검거돼 처벌까지 전부 이뤄진 상태기 때문에 이춘재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큰 파장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여중생이 피해자였던 8차 사건서 당시 경찰은 윤모씨를 검거했다.

윤씨는 재판 과정서 경찰의 가혹행위가 있었다고 주장하면서 무죄를 호소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윤씨는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20여년을 복역한 뒤 2009년 가석방으로 출소한 상태다.

DNA 검출로 과학수사의 쾌거라고 고무됐던 경찰의 사기가 순식간에 추락했다. 게다가 윤씨의 검거, 자백 등의 과정서 경찰이 고문을 행했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부정적인 여론이 형성됐다.
 

지난 10일 이춘재가 8차 사건서 범인만 알 수 있는 유의미한 진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기남부지방경찰청 사건 수사본부는 이춘재의 8차 사건 자백이 구체적인지에 대한 취재진의 질문에 자백 진술 안에 의미 있는 부분이 있다진짜 범인이 아니면 알 수 없는 그런 진술을 끌어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춘재가 그림을 그려가며 설명했다고 덧붙였다.

지난 15일 정례 브리핑서 경찰은 화성연쇄살인사건 8차 사건을 포함해 이춘재가 총 14건의 살인을 저지른 것으로 잠정 결론 내렸다. 화성연쇄살인사건 10건 모두와 추가로 자백한 4건 등이다.

경찰은 이춘재가 자백한 사건 14건에 대한 임의성, 신빙성이 높고 당시 현장 상황과 상당히 부합한다고 판단한다고 발표했다. 이중에는 30여년 전 9세 초등학생의 실종사건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이춘재를 화성연쇄살인사건의 피의자로 정식 입건한 상태다. 화성연쇄살인사건은 이미 공소시효가 모두 끝나 이춘재에 대한 입건이 처벌로 이어질 수는 없지만 향후 신상을 공개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렸다.

모방범죄도
“내가 했다”

특정강력범죄의처벌에관한특례법에 따르면 범행수단이 잔인하고 중대한 피해가 발생한 특정강력 범죄사건이나 피의자가 그 죄를 범했다고 믿을 만한 충분한 증거가 있을 때, 또 국민의 알 권리 보장이나 피의자의 재범방지 및 범죄예방 등 공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피의자의 신상을 공개할 수 있다.

화성연쇄살인사건 10= 시작은 1986년까지 33년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5년동안 화성시 태안과 정남, 팔탄, 동탄 등 태안읍사무소 반경 34개 읍·면에서 1371세 여성 10명이 강간·살해됐다.

스타킹이나 양말 등 피해자의 옷가지를 이용해 교살하거나 손으로 목을 졸라 살해하는 방식을 썼다. 버스정류장서 귀가하는 피해자 집 사이로 연결된 논밭이나 오솔길 등에 숨어 있다가 덮친 후 범행했다.

1차 사건은 1986915일에 태안읍 안녕리 목초지서 일어났다. 피해자는 71세 이모씨. 딸의 집에서 자고 나와 집으로 돌아가다가 살해됐다. 919일 발견 당시 하의가 벗겨진 상태였으며 손으로 목이 졸려 사망했다.

25세 박모씨가 두 번째 피해자였다. 1차 사건 이후 한 달 뒤인 1020일 태안읍 진안리 농수로서 시신으로 발견됐다. 박씨는 맞선을 보고 집에 돌아가던 중 버스를 타러 가다 변을 당했다. 1차 사건 때와 마찬가지로 손으로 목이 졸렸다. 발견 당시 나체 상태였다.

198612월에는 2건이 사흘 간격으로 일어났다. 귀가 중이던 주부 권모(24)씨가 집 앞에서 피살됐다. 발견 당시 스타킹으로 양손이 결박된 상태였다. 스타킹으로 목이 졸려 숨졌다. 같은 달 14일에는 맞선을 보고 집에 돌아가던 중인 이모(21)씨가 살해됐다. 두 손이 묶였고 교살됐다. 정남면 관항리 농수로서 발견됐다.

해를 넘겨 19871월 여고생 홍모양이 살해된 채 발견됐다. 역시 두 손을 결박했고 양말로 재갈을 물렸다. 태안읍 황계리 논바닥서 발견됐다. 52일에는 태안읍 진안리 야산서 6차 사건이 일어났다. 29세 주부 박모씨가 남편을 마중 나갔다가 불귀의 객이 됐다. 시신 발견 당시 솔가지로 은닉된 상태였다.


5년간 10건
공포 도가니

팔탄면 가재리 농수로서 54세 주부 안모씨의 시신이 발견됐다. 19889월 일어난 7차 사건이다. 버스서 내려 귀가하던 중 범인의 덫에 걸렸다. 발견 당시 안씨는 블라우스로 양손이 결박된 채였다.

논란의 8차 사건은 피해자의 집에서 일어났다. 1988916일 태안읍 진안리의 한 집에서 여중생 박모(13)양이 잠을 자다가 피살됐다. 현장에 남아있던 모발을 증거로 198972525세 윤씨가 범인으로 검거됐다. 이춘재가 이 사건을 자신의 소행이라고 주장하기 전까지 모방범죄로 분류됐다.
 

▲ 화성연쇄살인사건을 다룬 영화 살인의 추억

9차 사건은 199011월에 일어났다. 태안읍 병점5리 야산서 김모(13)양이 스타킹으로 결박된 상태서 시신으로 발견됐다. 피해자는 귀가 중이었다. 시신은 발견 당시 훼손된 상태였던 만큼 더 충격을 안겼다. 화성연쇄살인사건의 마지막 사건은 동탄면 반송리 야산서 일어났다. 69세의 피해자 권모씨는 버스서 내려 귀가 도중에 살해됐다. 발견 당시 하의가 벗겨진 상태였다.

화성연쇄살인사건은 10차에 이르기까지 범행의 수법과 대담성이 점차 진화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서 수년간 범행을 했음에도 꼬리를 잡히지 않은 점이 강력범죄에 대한 이춘재의 심리적 저항을 낮추고 대담성을 키워준 결과를 낳은 것으로 보인다그러다 남의 집에 들어가거나 친족인 처제를 살해하는 등 더욱더 과감한 수법을 벌이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추가 범행 4= 화성연쇄살인 외에 경찰이 밝힌 이춘재의 범행은 수원 여고생 살인사건, 화성 초등학생 실종사건, 청주 여고생 살인사건, 청주 주부 살인사건 등 4건이다. 미제로 남아있던 이 사건들은 전부 화성연쇄살인사건 기간 내 일어났다. 당시 포클레인 기사로 일했던 이춘재는 1991년 전후로 화성과 청주 공사 현장을 오가며 일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초등생 실종사건도 관여 의혹
공소시효 다 끝나 처벌 어려워

수원 여고생 살인사건은 실종사건으로 시작됐다. 19871224일 여고생이 어머니와 다투고 외출했다가 10일 뒤인 198814일 시신으로 발견됐다. 속옷으로 재갈이 물리고 손이 결박된 상태였다. 화성연쇄살인사건서 드러난 이춘재의 범행 수법과 유사하다. 범인 특유의 범행 인증, 즉 시그니처라고 한다. 이 때문에 당시에도 화성연쇄살인사건과의 연관성이 제기된 바 있다.

9세 초등학생이 피해자인 사건에도 이춘재가 관여한 것으로 드러났다. 화성 초등생 실종사건은 198977일 화성군 태안읍서 수업을 마치고 귀가하던 초등생 김모양이 학교 수업을 마치고 귀가하던 중 실종된 사건이다. 같은 해 12월 김양이 실종 당시 입고 나갔던 치마와 책가방이 화성군 태안읍 병점5리서 발견됐다.

화성연쇄살인사건 9차 사건 현장과 불과 30m 떨어진 지점으로 현재까지 시신이 발견되지 않고 있다.

청주 여고생 살인사건은 1991127일 일어났다. 방적공장 직원이었던 17세 박모양이 청주시 복대동 택지조성 공사장 콘크리트관 속에서 발견됐다. 속옷으로 입이 틀어 막히고 양손이 뒤로 묶인 상태서 목 졸려 숨져 있었다. 역시 화성연쇄살인사건 피해자들과 비슷한 모습이다.

이춘재는 19913월 청주시 남주동서 발생한 주부 살인사건도 자신이 했다고 털어놓은 상태다. 29세의 피해자는 양손이 테이프에 묶여 있었고, 가슴이 흉기에 여러 차례 찔린 상태로 발견됐다. 당시 경찰은 범인이 단독주택에 침입해 피해자의 손을 묶고 목을 졸라 숨지게 한 것으로 보고 수사를 진행했지만 용의자를 특정하지 못했다.

▲ 이춘재와 용의자 몽타주

경찰은 화성연쇄살인사건을 비롯한 이춘재가 자백한 살인사건의 증거물에 대한 국과수의 DNA 분석과 과거 수사자료 등을 토대로 그의 혐의를 밝힌다는 방침이다. 특히 추가로 자백한 4건의 사건에 대해서는 기록이 일부만 남아 있는 상태라 지속적인 수사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춘재는 1994년 가출한 아내에 대한 증오심으로 처제를 잔혹하게 강간·살해한 혐의로 검거되기 전까지 범행을 저질렀다. 현재 14건의 살인사건, 30여건의 강간 및 강간미수 범행을 저질렀다고 자백한 상태다.

또 다른
미제사건도?

경찰은 이춘재가 자백한 40여건이 넘는 범행이 모두 성범죄와 연관된 만큼 범행 동기로 성도착증 가능성을 수사할 계획이라고 밝힌 상태다. 성도착증은 심리성적 장애의 하나로 성적 흥분을 경험하기 위해 이상 행동을 하는 것을 말한다. 가학증, 피학증, 소아기호증 등 30가지 이상의 유형이 있다.

이수정 교수는 YTN과의 인터뷰서 이춘재의 성집착은 점진적으로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 여성이 동등한 인격체가 아닌 성적 노리개, 성폭력 대상 정도로 생각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이어 잔혹한 살인 등 반복적인 범행은 자신의 성도착적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행위인 것 같다고 덧붙였다.

 

<jsjaj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8차 사건 범인 재심 준비 '20년 억울한 옥살이?'

이춘재의 살인 행각과는 별개로 8차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돼 20여년 동안 옥살이했던 윤씨의 행보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윤씨는 경찰의 고문과 가혹행위로 허위자백을 했다고 억울함을 호소하면서 재심을 준비하고 있다.

재심 전문’ 박준영 변호사 돕기로

특히 삼례 나라슈퍼 강도치사 사건(1999)과 익산 약촌오거리 살인사건(2000)의 재심을 맡아 무죄로 이끌었던 박준영 변호사가 윤씨의 재심을 맡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관심을 모으고 있다.

박 변호사는 지난 15일, 경찰에 다시 수사기록에 대한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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