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의 보이지 않는 권력 ‘부녀회’ <파헤치기>

2009.01.06 09:17:47 호수 0호

무소불위 권력 “넘보면 다쳐!”

아파트 부녀회를 둘러싼 문제들이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그동안 각종 수익사업과 이에 대한 불투명한 회계 처리 등으로 주민들 간의 고소고발이 끊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아파트 값에 대한 담합의혹으로 부녀회가 또다시 ‘악의 축’으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주민들 간의 화합과 봉사를 위한 명분으로 결성된 자율 조직인 부녀회가 어느덧 막강한 권력기관이 되고 있다는 얘기다. 실질적으로 아파트 주민들의 의사결정 기구는 ‘입주자 대표회의’가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아줌마 특유의 ‘치맛바람’이 가세된 부녀회는 때로 무소불위의 힘을 발휘하기도 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이에 대해 비판적인 주민들과 입주자 대표회의 간의 언쟁과 ‘뒷담화’도 끊이질 않고 있다. 부녀회의 문제들을 들춰봤다.

지난 2008년 9월. 서울중앙지법 민사50부는 서울 강남구 압구정 신현대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가 부녀회를 상대로 낸 업무 방해금지 가처분 신청을 일부 받아들였다. 당시 고소장에는 부녀회에서 상인들에게 수익금을 받고 단지 내에서 장사를 하도록 허락했다는 것.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아파트 단지의 시설인 주차장, 도로 등을 상인들에게 알뜰시장, 세차장 등의 용도로 임대하고 그 수입금을 징수하는 행위와 재활용품 판매대금을 수령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결국 재판부는 아파트 관리 규약에 따라 아파트 시설 관리와 관련된 수입금은 입주자대표회의가 직접 처리해야 한다고 해석했던 것이다.



‘치맛바람’ 암투
복마전 방불

부녀회는 그동안 이 같은 방식으로 매달 450만원의 수입을 올리고 있었으며 이를 ‘임의로’ 사용하고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 사건은 아파트 내의 주민단체 간의 갈등이 법정싸움으로까지 번진 가장 대표적인 일이었다. 그후 부녀회는 해산됐다.
하지만 이런 문제는 비단 압구정 신현대 아파트의 문제 뿐만은 아니다. 서울에 산재해 있는 엄청난 숫자의 아파트 단지에서는 크든 작든 이와 비슷한 문제가 있거나 혹은 아직 불거지지는 않았지만 잠재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또 다른 아파트 단지들에서는 폭행, 명예훼손, 업무 방해 등 10여 건이 넘는 소송이 진행되는 곳도 있을 정도다.

한마디로 부녀회를 둘러싼 일련의 사건들은 ‘복마전’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2008년만 해도 부녀회와 관련된 소송 건수는 200여 건에 육박할 정도. 그만큼 많은 부녀회들이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사실 그간 부녀회는 아파트 단지 내에서 ‘보이지 않는 권력’으로 힘을 써온 것이 사실이다. 아파트와 관련된 각종 수익 사업에 대해 문어발처럼 관여하고 있었고 여기에 입주자 대표회의를 배제한 채 독자적인 행위를 해온 것이 사실이다.

사실 부녀회의 수입을 내는 가장 큰 ‘사업처(?)’는 다름 아닌 단지 내 알뜰시장이었다. 특히 일부 상인들은 아예 애초부터 부녀회와 결탁을 한 후 입찰에 들어가기도 한다. 미리 입찰 금액을 언질 받고 이에 맞게 공개 입찰에 들어가게 되는 것. 이에 대한 별도의 ‘커미션’은 두말할 필요 없이 당연한 것이다.
이들 상인은 심지어 ‘소나타 차 한 대 뽑아주는 것은 문제도 아니다’라고 할 정도다. 그만큼 상인들의 입장에서는 큰 수익이 나는 곳이 단지 내 아파트 알뜰 시장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구조 속에선 말 그대로 ‘알뜰’ 시장이 될 수 없다. 커미션이라는 뒷돈이 들어가게 되면 자연히 상품들의 단가가 오르게 되고 그에 대한 부담은 고스란히 주민들의 몫이다.

수익금 2억원 발생했는데
영수처리는 5000만원?

심지어는 지역의 백화점이나 마트 등에도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시도를 하기도 한다고 한다. 수백만원 대의 협찬을 요구하는 것은 물론이고 이를 거부했을 경우에는 ‘그럼 우리 아파트는 그쪽을 이용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등의 우회적인 협박도 일삼는다는 것이다.
일부 부녀회의 악행은 이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각 아파트에 설치된 게시판에 상호와 전화번호를 넣는 광고를 싣는 대가로 소소하게는 수십만원까지 요구하면서 수익금을 챙기는 사례도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물론 이런 비용들이 관리비를 줄이는 것에 사용되거나 혹은 공동의 편익을 위해 사용된다면 더할 수 없이 좋겠지만 실질적으로 이렇게 투명하게 처리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 큰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일례로 경기도의 한 800세대 부녀회의 경우 한 해에만 들어오는 돈이 수천만원 대. 4년 동안 2억원에 가까운 돈이 수입으로 들어왔다.
하지만 막상 회계 감사를 해보았더니 이중 5000만원 정도에 대해서만 영수증이 있을 뿐 나머지에 대해선 아무런 근거자료가 남아있지 않았다는 것. 상황이 이러한데도 부녀회 측에서는 ‘털어서 먼지 안 나는 데가 어딨냐’라는 일방적인 말로만 대응하고 있는 상황이다.
심지어는 부녀회의 비용으로 단지 내 노인들에게 ‘무료 여행’을 시켜준다고는 하지만 실질적으로 제약회사와 짠 후 제약회사 견학 등을 코스에 넣어 노인들의 돈을 털어내는 경우까지 있다는 것.

이런 사실을 안 주민들은 부녀회의 ‘눈 가리고 아웅’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법적으로 보면 부녀회는 엄밀하게 자생적인 집단에 불과하다. 어떤 법적 근거를 가지고 조직된 단체가 절대로 아니라는 얘기다.
따라서 공식적이고 법률적인 근거를 가지고 있는 단체인 입주자 대표회의의 승인과 감독을 받아 예산을 집행하고 또한 이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물론 이는 아파트 부녀회칙에도 정확하게 명시되어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주민들 간의 불신 불화
 ‘끝이 없네’


부녀회 회칙을 보면 ‘부녀회가 입주자대표회의 허가 없이 재활용품업자와 계약하거나 수익금을 입주자 대표회의의 허가 없이 부당하게 사용할 경우 입주자 대표회의 동 대표 과반수 찬성으로 부녀회는 해산된다’고 명기되어 있다.

또 ‘재활용품매각수익사업 이외의 사업 즉 광고게시판 스폰서 수익금, 광고 수익금, 주차 수익금, 알뜰시장 등의 간이 점포를 이용한 수익금 등의 사업을 입주자 대표회의의 허가 없이 계약을 체결하거나 수익금을 불법으로 수령했을 경우에 입주자 대표회의 동 대표 과반수 찬성으로 부녀회는 해산된다’고 적혀있다.
아울러 “부녀회는 현금출납부등 필요한 장부를 비치해 회계 사실을 명확하게 기록, 유지 및 보관해야 한다. 입주자대표회의가 요구하는 때에는 부녀회가 보관하고 있는 회계장부를 입주자 대표회의에 인계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문제는 회칙이 이렇게 그럴 듯하게 되어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뿐만 아니라 아파트 가격 담합 부분에서도 마찬가지의 일이 벌어지고 있다.

2008년 한해 부녀회 관련 소송 건수 200여건 육박
단지내 알뜰시장 운영 최대 사업처, 커미션 요구 다반사
수익금 생기는 곳이면 어김없이 ‘부녀회 악행’ 만연
부동산 가격 담합 예사…부녀회 처벌 근거 미약해


부녀회에서는 아파트를 ‘평당 얼마 이하에는 절대로 팔지 말라’며 게시판이나 안내방송, 부녀회 모임을 통해 공지하는 데 열성을 올리고 심지어 부동산을 찾아가 특정 가격 이하로는 절대로 팔 수 없다고 엄포를 놓는 등의 행위를 마다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특히 부동산의 경우 이런 아파트의 매매를 통해 수익을 벌어들이는 입장에선 이들의 말을 함부로 무시할 수 없는 처지에 놓여있다고 할 수 있다.
실제 부녀회의 이런 담합으로 인해 경기도 일부 지역의 아파트 가격이 상승하는 일도 발생했고 최근 경기 불황으로 아파트 가격이 점차 내려가고 있는 조짐을 보이자 또다시 부녀회의 ‘활동’이 재개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문제는 이런 부녀회의 활동을 딱히 처벌할 수 있는 명확한 법적 근거가 미약하다는 점이다. 일단은 증거확보에서부터 결코 쉽지 않다. 아파트값의 담합 사례를 구체적으로 특정하기가 힘들고 설사 이를 했다고 하더라도 증거를 확보하기가 어렵다는 점. 증거를 확보했다고 하더라도 위법성을 증명하는 것도 문제라고 할 수 있다.
현재 한 지역 내에서라도 아파트 단지는 여러 개가 있기 때문에 소비자들로선 다른 아파트를 선택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 따라서 담합의 효과가 발휘되지 못하고 결국에 소비자들은 담합의 피해를 보는 것이 아니란 얘기다.
물론 이론적으로는 맞는 말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실제 이런 담합이 아파트 가격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큰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악질 행위 만연에
주민들 ‘분노’ 표출

경기도 부천의 한 아파트 주민은 아파트 관련 게시판을 통해 “사실 부녀회 하면 생각나는 게 아파트 가격담합, 단지 내 실업계고등학교 유치반대, 장애인 시설유치 반대 등 아주 악질적 인간 말종적인 짓들밖에는 없다. 그런데 돈까지 받아서 챙기다니. 영수증을 비치해도 진위를 따져야 하는데 아예 없다면, 그냥 저네들 호주머니 돈처럼 흥청망청 쓴 거네”란 글을 남기기도 했다. 
또 다른 한 가정주부는 “저희 아파트 단지에서는 시장이 먼 관계로 매주 한 번씩 외부에서 상인들이 들어와서 장터를 엽니다. 노인 분들처럼 걷기가 불편하신 분들이 잘 이용하고 있죠. 그런데 상인들한테 이야기를 들어보니 자리세 명목으로 부녀회가 상인들로 부터 한 달에 약 100여만 원을 챙겨가는 것 같더군요”라고 지적했다.

그녀는 또 “그런데 부녀회를 입주자 대표회의 같은 공식적인 주민단체로 볼 수 있는 겁니까? 입대의가 돈을 뜯는 것도 문제라고 보는데, 더군다나 부녀회가 뜯어가는 것은 조폭들이 뜯어가는 것과 마찬가지인 불법이라고 봅니다만, 어떤 게 맞습니까?”라고 반문했다.
사실 2008년 9월 압구정 신현대 아파트 사건으로 인해 일단 부녀회의 불법적인 활동에 법적인 제재가 가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이 하나의 사건으로 거의 모든 부녀회가 자신들의 활동을 멈추리라고 예단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도 이런 부녀회와 관련된 아파트 주민들 간의 알력과 불신, 불화는 계속해서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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