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신문고-억울한 사람들> (50)어렵게 사는 공익제보자 이상돈

2017.03.14 08:58:08 호수 1105호

“세상 바꾸려다…삶이 박살났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일요시사>가 연속기획으로 ‘신문고’ 지면을 신설합니다. 매주 억울한 사람들을 찾아 그들이 하고 싶은 말을 담을 예정입니다. 어떤 이야기이든, 어느 누구든 좋습니다. <일요시사>는 작은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이겠습니다. 오십 번째는 ‘공익제보자’ 이상돈 전 명지전문대학 기계과 겸임교수의 이야기입니다.



지난해 7월 처음 불거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우리 사회 거의 모든 분야를 온통 뒤흔들었다. 사안이 이만큼 커진 데는 끊임없이 흘러나온 정보가 한몫을 했다. 그 중에서도 고영태 전 더블루K 이사, 노승일 전 K스포츠재단 부장 등 내부고발자의 목소리가 큰 영향을 끼쳤다.

이들은 내부 정보를 언론, 검찰 등 외부로 알리는 데 모든 것을 걸었다. 그 이유가 개인을 위해서든 공익을 위해서든 그들 덕분에 우리 국민들은 어쩌면 평생가도 몰랐을 일을 실시간으로 전달받고 있다.

그들에게 관심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내부고발자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부정적 어감의 내부고발자를 공익제보자로 바꿔 부르자는 주장도 있다. 공익제보자를 보호하고 포상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낯설지 않다. 그러나 아무리 인식 수준이 개선됐어도 공익제보자를 보는 시선은 여전히 차갑다.

공익을 위해 편안한 삶을 뒤로한 채 내부 상황을 고발한 이들의 생활은 팍팍하기 그지없다. 학교 내 학사부정 의혹을 제기한 이상돈 전 명지전문대학 기계과 겸임교수도 예외는 아니다.


이 전 교수는 2014년 공개채용 방식으로 명지전문대학 기계과 겸임교수가 됐다. 학교와 마찰을 빚고 있던 한 교수를 도와주다가 대학 내부에 여러 가지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수업을 진행할 수 없을 정도로 엉망이던 기자재 상태는 ‘빙산의 일각’이었다.

이 전 교수는 학생들에게 수업 진행 방식에 대해 의견을 구했고, 이를 모아 학교 측에 전달했지만 변화는 크지 않았다. 이 전 교수는 “이런 일이 발생하면 결국 피해를 보는 건 학생”이라며 “제자들에게 미안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더 큰 사달은 근로장학생 한 명이 한 교수의 기말고사 시험 문제를 대리 출제했다는 의혹을 알게 됐을 때 일어났다. 학생에게 직접 상황을 들은 이 전 교수는 학교 측에 해명을 요구하고 언론 제보, 경찰 고발 등 공론화를 위해 힘썼다. 돌아온 건 2017학년도 1학기 강의 배제와 계약 해지 통보였다.

학교 측은 이 전 교수에게 사직서를 제출하라고 요구했지만 응하지 않자 재임용 기간에 계약을 연장하지 않는 방식으로 관계를 정리했다. 문제는 기말고사 대리 출제 의혹에 휩싸인 교수는 아무런 징계도 받지 않고 여전히 수업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전 교수는 “학사부정 의혹이 불거졌으면 이를 개선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하는데, 학교는 공익제보자인 나를 핍박하는 데만 혈안이 돼있다”며 “그러는 사이 정작 중요한 문제는 놓쳐버렸다”고 한탄했다.

학교 내 학사부정 의혹 제기
내부고발했다가 혹독한 대가

이 전 교수는 2009년 이와 비슷한 일을 이미 겪은 바 있다. 재단법인 인천테크노파크서 근무하던 중 4200여건의 허위 시험성적서, 90억원 상당의 국가장비 엉터리 관리, 연구용역 입찰 비리, 채용 인사 비리 등 총 59건의 비리 의혹을 공익제보한 적이 있다.

인천테크노파크는 산업통상자원부 및 인천광역시 산하 출연기관이다. 현재는 인천정보산업진흥원, 인천경제통상진흥원과 함께 인천경제산업정보테크노파크로 통합됐다.
 

공익제보 이후 이 전 교수의 삶은 급속도로 망가지기 시작했다. 약혼녀와 파혼한 것도 그 시기였다. 이 전 교수의 약혼녀는 “문제를 제기하는 건 좋은데, 왜 그게 당신이어야 하느냐”고 했다. “다른 사람들은 아무 불만 없이 잘 다니고 있는데 왜 너만 나서서 난리냐”는 말도 숱하게 들었다.

그래도 이 전 교수는 정년과 높은 연봉이 보장되는 직장을 뒤로하고 기관과 전쟁을 시작했다. 결과는 참담했다. 그는 “2009년 11월부터 2010년 5월까지 6개월 동안 해고-복직-보직해임 및 대기-임금 삭감-재해고-형사고소 등 당할 수 있는 건 다 당했다”며 “정말 힘든 시기였다”고 고백했다.


이 전 교수는 정부 기관과 부딪쳐 삶이 박살 난 경험이 있음에도 또다시 학교와 전쟁을 시작한 셈이다.

그는 “우리 사회에는 많은 공익제보자들이 있다. 그 당시에는 아무것도 변한 게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지금 되짚어보면 더디지만 조금이나마 앞으로 나아갔다는 것을 알 수 있다”며 “나도 그에 일조하고 싶다”고 담담히 말했다.

또 부패방지법, 공익신고자 보호법, 청탁금지법 등이 제정된 이유도 공익제보자들이 하나씩 이뤄낸 성과라고 평가했다. 실제 공익신고 적용 대상법률이 180개에서 279개로 대폭 확대되는 등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어렵게 내부에서 터져 나온 한마디가 세상을 바꾸는 경우는 많지만 대신 개인의 삶은 혹독한 대가를 치른다. 대부분 공익제보자의 삶이 그렇다. 1992년 군 내부의 부재자투표 비리를 폭로한 이지문 중위는 이등병으로 파면돼 전역했다. 그의 고발로 일부를 제외한 모든 장병들이 병영 밖에서 부재자 투표하는 것을 원칙으로 선거법이 개정됐다.

대학 측은 계약 해지로 응수
2009년에도 공익제보로 고초

2005년 교사들이 청각장애 학생들을 성폭행한 사건, 일명 도가니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장애아동에 대한 성폭력 범죄 처벌이 강화됐다. 세상을 경악케 한 이 사건을 고발한 교사 전응섭씨는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다.

중앙대 박흥식 교수가 1990년부터 15년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공익제보자 108명 중 70명이 직장서 잘렸고, 전체의 59%가 자살 충동을 겪었다. 소송 등을 통해 복직해도 동료들에게 싸늘한 시선을 받기 일쑤다. 왕따를 당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이 전 교수는 “공익제보자들을 보면 안타깝다. 워낙 혹독하게 당한 분들이 많아 남의 일 같지 않다”며 공감했다. 그는 학생운동을 하다 수감생활을 겪고 사면된 후 지금까지 살아온 이야기를 하면서 “세상은 자고 일어난 다음 날 바뀌는 게 아니다”며 “이후 또 다른 공익제보자가 나왔을 때 그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나아진 사회를 전해주고 싶다”고 덧붙였다.

그는 지난해 12월부터 국민권익위원회 청렴연수원 전문 강사로 활동하면서 공직자등을 대상으로 공익신고 및 부패신고, 청탁금지법, 공직자 행동강령 등을 강의 중이다. 이 전 교수는 명지전문대학과 오랜 싸움을 준비 중이다.


해고·핍박 부지기수

그는 “청년들은 나라의 미래를 이끌어갈 주역이다. 그들의 시간은 개인의 시간이면서 동시에 사회의 시간이며 공공재”라며 “학교는 그들을 위해 노력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주장했다.

“내 삶의 궤적은 학생운동을 할 때부터 지금까지 변하지 않았습니다. 공직자나 학교의 주인은 기관장이나 이사장이 아니라 국민과 학생이라는 신념으로 살아가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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