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리안츠생명, 5년 연속 보험왕 수십억대 사기사건 전말

2011.03.01 09:30:00 호수 0호

보험왕은 사기왕? “고객 돈을 내 돈 같이!”

보험왕은 모든 설계사들의 선망의 대상이다. 일단 ‘왕좌’에만 오르면 두둑한 상금과 수억원에 달하는 연봉을 받을 수 있다. 회사 내에서는 최고의 대우를 받게 된다. 해외 여행 등의 특전은 부록이다. 그러다 보니 보험왕이 되기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일부 설계사들의 경우 온갖 편법과 불법을 동원하기도 한다. 고객 돈을 내 돈처럼 주무르는 못된 보험왕들의 사기 행각 실태를 조명해봤다.

‘5연속 보험왕’이라 믿었는데 알고 보니 사기왕
교보생명, 거액의 선수당 위해 가짜 계약 체결도


지난 22일 서울 여의도 알리안츠생명 본사 앞에 40여명의 상인들이 몰려들었다. 이들은 5년 연속 보험왕 이모씨를 찾아내라며 4시간 넘게 항의했다. 이 과정에서 사무실에 들어가려던 상인과 이를 막으려는 회사 직원들 사이에 격한 몸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60여 명 상인들에
60억원 뜯어내



상인들이 이처럼 극단적인 행동에 나선 것은 이씨가 거액의 투자금을 모집한 뒤 잠적을 했기 때문이다. 상인들에 따르면 이씨는 “5년 연속 보험왕을 탄 나를 회사 사장도 특별하게 여긴다. 내가 자체적으로 20억원 가량의 투자팀도 운용한다”며 보험 가입을 권유했다. 고수익을 보장한다며 투자금을 모으기도 했다.

이씨는 투자금을 받아 자신의 기존 고객들에게 이익금조로 나눠주는 ‘돌려막기’를 하며 고객들을 안심시켰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던 지난 1월, 이씨는 돌연 종적을 감췄다. 이로 인해 60여 명의 상인들이 60억원 정도 피해를 입은 것으로 추정됐다. 상인들은 현재 “알리안츠생명에서 5번이나 ‘보험왕’을 한 점을 믿고 투자했다”며 회사 측에 보상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성실한 태도와 철저한 고객 관리로 신뢰를 얻은 이씨는 수십억원의 보험 상품을 팔아치우면서 알리안츠생명에서 5년 연속 보험왕에 선정된 바 있다. 이에 따라 알리안츠생명은 자체 내부 감사에 착수, 민원을 제기한 고객 개개인의 피해 규모 파악에 나섰다.

챙긴 돈으로
돌려막기 삼매경

알리안츠생명 측 관계자는 “보험 계약을 맺은 뒤 보험료 수금 과정에서 발생한 횡령 부분에 대해서는 지난주부터 자체 감사를 벌이고 있다”며 “횡령 액수는 수천만원대로 파악된다”고 밝혔다. 일단 알리안츠생명은 불완전 판매에 대한 조치를 충분히 취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하지만 개인 간 금전 거래는 회사와 별개 문제라는 입장이다.

알리안츠생명 측 관계자는 “현재 민원을 제기한 고객 개개인과 만나 피해 규모와 진위 파악을 하고 있다”며 “보험 계약과 관련해 고객분이 피해를 입는 일은 없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이씨가 개인적으로 투자금을 모집한 부분에 대해서는 회사로선 피해 규모를 확인할 수 없다”며 “최대한 고객에게 피해가 가지 않게 하겠지만 개인 간 채무 관계는 보상해 주기 어렵다”고 전했다.


한편, 알리안츠생명 감사실은 경찰에 이씨를 횡령 혐의로 고발했으며 피해자 중 일부도 사기 혐의로 이씨에 대한 고소장을 접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보험왕의 사기가 이번이 처음이 아니란 점이다. 지난 2009년 7월, 동양생명에서도 이와 비슷한 사건이 발생했다. 고객들의 돈으로 ‘돌려막기’를 하던 보험왕 출신 설계사 김모씨가 사기 혐의로 검찰에 구속된 것.

김씨는 “1억원을 넣으면 2년 후에 1억2000만원으로 되돌려 주겠다”며 출시조차 되지 않은 상품을 고객들에게 권유, 가짜 서류에 서명을 받아냈다. 고객들은 김씨에게 일말의 의심도 품지 않았다. 김씨가 수십억의 매출을 올려 ‘연도 대상’을 받는 등 이른바 ‘잘나가는’ 설계사였기 때문이다. 실제 그의 성공 스토리는 언론을 통해 여러 차례 소개되기도 했다.

미래에셋생명,  보험왕 두 명 연이어 검찰에 소환
보험왕 선발 제도가 과열 경쟁 유발하기 때문?

이 ‘유령 상품’에서 나온 돈은 월 수백만원 규모의 15년짜리 장기 보험 여러 개에 나뉘어 투입됐다. 2년이 지나 돌려주기로 약속한 돈은 수당으로 대체했다. 하지만 결국 ‘돌려막기’는 한계에 부딪혔고, 김씨의 사기 행각은 들통나고 말았다.

교보생명에서 벌어진 ‘먹튀’도 보험왕 사기건이 도마에 오를 때마다 빠지지 않고 회자되는 사건이다. 사건의 주인공 김모씨는 지난 2009년 4월 외국계 생보사에서 교보생명으로 스카우트됐다. 김씨가 7월까지 올린 매출은 무려 2억원. 4개월 동안 받은 수당만 7억원이 넘었다. 웬만한 지점의 한 해 매출과 맞먹는 규모다. 연말 보험왕도 노려볼 만했다.

그러던 7월, 돌발 사태가 발생했다. 김씨의 고객들이 일제히 보험료를 연체하기 시작한 것. 시선은 자연스레 김씨에 쏠렸다. 하지만 김씨는 이미 모습을 감춘 뒤였다. 회사는 부랴부랴 자체 조사에 착수했고, 김씨가 그동안 수억원에 이르는 고객들의 보험금을 대신 납부해 온 사실을 발견했다. 거액의 선수당을 받기 위해 가짜 계약을 체결한 것이었다. 이렇게 받은 수당은 다시 추가 계약을 위해 사용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앞서 지난 2009년 3월에는 LIG손해보험의 보험왕 출신 설계사 안모씨가 고객 동의서를 위조해 명의를 변경한 다음 보험을 해약하고 보험금을 빼낸 사건이 발생했다. 뿐만 아니라 해당 설계사는 투자금 명목으로 개인적으로 고객에게 돈을 빌리고, 보험사에서 고객 이름으로 수천만원을 대출받는 등의 방식으로 총 24억원을 횡령했다. 이렇게 챙긴 돈으로 안씨는 보험금을 납부하지 못하는 고객들을 대신해 돈을 납부해 주거나, 자신이 직접 보험 상품을 가입하는 등 실적을 높여갔다. 안씨 역시 ‘돌려막기’가 길어지면서 꼬리를 잡히고 말았다.

미래에셋생명은 자사 보험왕 출신 설계사 두 명이 연이어 검찰에 소환되어 조사를 받는 수모를 겪었다. 우선 정모씨는 몇 년간 회사에서 주는 상을 휩쓸다시피 했으며 ‘연도 대상’도 여러 차례 수상하는 등 설계사로서 승승장구했다.

설계사들 도덕성
검증 필요성 제기

하지만 이 같은 업적은 회사의 감시를 피해 올린 허위 매출에 불과했다. 그는 고객에게 “계열 증권사 고위층과 연결되어 있다” “투자에서 발생한 수익만으로도 보험료를 납부할 수 있다”는 등의 말로 고객들을 현혹했다. 이를 통해 받은 수억원은 자신의 실적을 올리는 데 사용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2008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보험왕 출신 오모씨가 사기 혐의로 금감원 조사를 받은 것. 특히 오씨는 입사한 지 채 1년이 지나지 않아 ‘연도 대상’을 차지하는 등 눈부신 성과를 냈다. 이 같은 성과 이면에는 거액의 선수당을 노린 오씨의 음모가 있었다. 고객과 미리 짜고 보험에 가입, 제출 서류까지 완벽하게 꾸며낸 것. 미래에셋생명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는 설명이다.


그렇다면 이처럼 보험왕들의 사기 행각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뭘까. 이에 대해 한 업계 관계자는 “‘보험왕 선발 제도’가 과열 경쟁 등 부작용을 유발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계속 우수한 실적을 유지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결국 실적 유지를 위해 고객 돈에 흑심을 품게 된다는 설명이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설계사들의 도덕성 검증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이에 한 업계 관계자는 “설계사 개인의 도덕성까지 일일이 조사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항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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