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신문고-억울한 사람들> (37) 물먹은 대리기사들

2016.08.01 11:33:54 호수 0호

“대기업도 별다를 게 없더라”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일요시사>가 연속기획으로 ‘신문고’ 지면을 신설합니다. 매주 억울한 사람들을 찾아, 그들이 하고 싶은 말을 담을 예정입니다. 어느 누구도 좋습니다. <일요시사>는 작은 목소리에도 귀 기울일 겁니다. 서른일곱 번째 이야기의 주인공은 업체간 다툼으로 중간에서 피해를 보고 있는 전국의 대리기사들입니다.

저녁 7시. 누군가에겐 퇴근시간이지만 대리기사에겐 조금 이른 출근시간이다. 대리기사 일로만 생계를 해결하는 전업 기사는 그쯤 출근해 새벽 3∼4시까지 휴대폰을 들고 거리를 누빈다. 전국의 대리기사 수는 15만명 정도로 추산된다. 이들이 하루에 받는 콜은 50만콜, 실어 나르는 사람은 넉넉잡아 100만명쯤이다. 대리기사들은 초 단위로 뜨는 콜을 잡기 위해 길에서도 언제나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다. 대리기사들에게 새벽은 황금시간대다. 
 
손님도 줄었는데…
 
지난달 28일 서울 강남 신논현역 1번 출구에 50여명의 대리기사가 모였다. 이날은 착한대리협동조합과 사단법인 전국대리기사협회가 힘을 합쳐 만든 대리연대가 ‘대리기사 생존권 사수 결의대회’를 연 날이었다. 대리연대는 지난달 21일부터 28일까지 일주일간 새벽 2시 서울 강남 교보타워 사거리에 모여 ‘생존권 사수’를 외쳤다. 
 
지난 5월 카카오가 ‘카카오드라이버’를 내놓으면서 대리운전 업계에 한 차례 지각변동이 예고됐다. ‘카카오택시’로 재미를 본 카카오는 본격적인 수익 창출을 위해 ‘카카오택시 블랙’ 카카오 드라이버 등 O2O(온라인과 오프라인 연결 마케팅) 서비스를 공격적으로 내놨다. 하지만 예상보다 큰 반향은 없는 상황. 특히 카카오가 대리운전 사업에 뛰어들기 전 대리기사들이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던 점을 상기해보면 현재 상황은 ‘속 타는 수준’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전국대리기사협회 김종용 회장은 “대리기사들이 카카오드라이버에 거는 기대가 컸는데 카카오도 기존 업체와 별다를 바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면서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카카오 시장 진출 기대했지만…
기존 업체와 사이서 전전긍긍 
 
대리기사들이 황금시간대인 새벽에 거리로 나온 이유는 프로그램사의 횡포에 맞서기 위해서다. 대리기사들이 꼽는 프로그램사의 갑질은 크게 고율의 수수료, 기사 장사, 배차 제한 등이다. 대리기사들은 수도권을 기준으로 20%의 수수료를 납부한다. 대리운전비가 2만원 나오는 곳까지 이용자를 옮겼다면 그 중 4000원을 수수료로 내는 셈이다. 여기에 보험료, 벌금, 관리비, 셔틀비 등은 별도다.
 
대리기사도 이용자의 차를 몰다가 사고가 날 수 있기 때문에 보험이 필요하다. 하지만 문제는 대리기사들이 매달 내는 돈에서 얼마가 보험료로 책정돼있는지 그간 몰랐다는 사실이다. 심한 경우는 100명의 기사에게 보험료를 받고 50명분만 보험사에 지불한 뒤 ‘기사 돌려막기’ 방식을 취하는 곳도 있었다고 한다. 이는 대리기사 단체들의 투쟁으로 얼마간 해소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그외의 비용은 여전하다. 콜을 받았다가 취소할 경우 500∼1000원의 벌금을 내야한다. 매달 내야하는 프로그램 구입비도 있다. A사의 경우 구성이 비슷한 3개 앱을 운용하고 있다. 물론 앱마다 프로그램 구입비는 따로 받는다. 김 회장은 “예를 들어 하루에 10만원을 번다고 하면, 기사 손에 쥐어지는 건 5만5000원에서 6만원선”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비용은 업체에 소속된 대리기사가 많을수록 늘어난다. 그래서 ‘기사장사’라 부르는 것. 
 
배차 제한 문제도 있다. 대리운전 일을 하기 위해서는 프로그램을 반드시 구입해야 한다. 대리기사가 프로그램을 구입하는 순간 사번이 부여되는데, 이는 족쇄나 마찬가지다. 프로그램사에 불만을 드러내거나 항의를 할 경우엔 배차가 제한될 수 있다. 프로그램사에서 기사를 골라 콜 뜨는 속도를 조절할 수 있기 때문이다. 콜이 뜨면 1∼2초 간격으로 사라지는 상황에서 3∼4초 정도 늦게 뜨도록 조절하는 방식은 업체 마음에 안 드는 기사에게 불이익을 주겠다는 의도가 깔려있다.
 
일례로 김 회장은 현재 A사의 프로그램을 몇 년째 못 쓰고 있다. 업계 점유율이 70%에 달하는 업체의 프로그램을 사용할 수 없으니 수입은 그만큼 쪼그라든다. 구조상 기사가 프로그램 사에 철저한 '을'이 될 수밖에 없다.
 
기존 업체의 갑질을 수년 간 당해온 대리기사들은 카카오가 시장에 진입하면 대리운전 업계가 재편될 것으로 봤다. 그렇기에 카카오의 업계 진출을 반겼던 것이다. 
 
카카오드라이버는 기존 방식과 달리 앱을 이용해 대리기사를 호출한다. 이용자가 출발지와 목적지를 찍으면 출발지 근처의 대리기사가 잡는 방식이다. 기사를 부르는 방식의 차이일 뿐 큰 그림은 비슷하다. 카카오드라이버와 기존 업체간의 가장 큰 차이점은 요금이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대리운전비는 시간, 계절, 요일, 날씨에 따라 유동적이다. 예를 들어 평소 1만원에 갔던 곳을 비가 오는 날에는 1만5000원에 가는 식이다. 비가 오는 날에는 대리기사들도 집에서 쉬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만큼 대리 비용이 올라간다. 하지만 카카오드라이버는 요금이 고정돼있다. 
 
카카오드라이버는 처음엔 1만5000원을 기본요금으로 하고 시간과 거리에 따라 요금이 올라가는 방식을 채택해 시장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변수를 고려하지 않은 방식은 대리기사와 이용자 사이의 최적 가격대를 찾지 못하고 배회했다. 업계 관계자는 “카카오가 대리운전 업계에 진출하면 골목 상권을 다 잡아먹을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다”면서 “하지만 그것은 기우에 불과하다. 카카오가 매일 담당하는 콜 수는 대세에 영향을 미치는 수준은 절대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카카오의 수수료 방식도 대리기사들에게는 매력적이지 않다. 카카오는 보험료를 포함해 20%를 수수료로 뗀다. 보험료가 수수료에 포함돼 있고, 프로그램비가 없기에 기사들에게 큰 이득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김 회장은 “카카오가 대리운전 업체에 뛰어들었다고 해서 시장의 크기가 커지는 게 아니”라면서 “원래 있던 파이를 이제는 네 업체가 갈라먹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대부분의 기사들은 이미 보험료를 내고 있다. 카카오가 보험료를 포함해 수수료를 뗀다고 해서 기사들의 보험료 부담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이런 상황이니 카카오의 시장 안착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 카카오는 기본요금 조절, 요금제 차등 적용 등으로 변화를 꾀하고 있지만 점유율을 높이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게 업계의 시선이다.
 
카카오의 등장으로 시장 개선을 바랐던 대리기사 입장에서는 실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여기에 기존 업체가 카카오를 사용하는 기사들에게 불이익을 주기 시작하면서 기사들의 입지는 더욱 좁아지고 있다. 
 
기존 업체, 특히 A사는 기사를 0∼4등급으로 나누는 기사 등급제를 이용해 카카오드라이버를 사용하는 기사는 3∼4등급으로 분류한다고 알려졌다. 3∼4등급을 받은 대리기사들은 콜을 늦게 받도록 조치하는 등 불이익을 줬다고 한다. 그러면서 카카오 드라이버에서 탈퇴한다는 확약서를 쓰도록 강요한다는 것이다. 확약서를 쓰면 등급을 올려 다시 정상적으로 프로그램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게 관계자의 말이다. 
 

굶어 죽게 생겼다
 
김 회장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금 상황을 보고 기존 업체가 카카오에 텃세를 부린다고 생각할 것”이라면서 “하지만 카카오도 무능력하기는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김 회장은 “카카오는 단순 주개업자라는 무책임한 자체에서 벗어나 실질적인 대책을 내놔야 한다”고 강조했다. 
 
카카오와 기존 업체간의 알력 다툼으로 기사들은 더욱 독점적으로 변하는 업계 상황에 눈물을 흘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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