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김경수’ 친문잠룡 각축전 내막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20.11.16 10:09:38
  • 호수 129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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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낙연 아니고, 이재명도 아니다
‘제3의 인물’ 등장할까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친문 적자’ 김경수 경남도지사가 사실상 대권 레이스에서 탈락했다. 극적인 반전을 기대했던 친문 세력은 김 지사를 대체할 인물을 찾아야 하는 상황에 내몰렸다. 마치 춘추전국시대를 방불케 할 정도로 여러 인물이 대체자로 거론되고 있다. <일요시사>는 계파의 명운이 걸린 친문의 대체자 찾기 프로젝트를 추적했다.
 

▲ 김경수 경남도지사 ⓒ고성준 기자

재판부는 2심에서 김경수 경남도지사에게 실형을 선고했다. 1심과 마찬가지로 징역 2년이다. 김 지사는 법정구속을 면했다. 친문(친 문재인) 일각에서는 김 지사가 대법원에서 최종적으로 무죄를 선고받을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대법 판결 
남았지만…

친문 핵심이자 친문 인사들의 비공개 모임인 ‘부엉이’ 출신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전해철 의원은 김 지사의 2심 선고 후인 지난 7일 “대법원에서 충분히 진실이 가려질 수 있도록 김 지사가 의연하게 대응하리라 믿고, 응원한다”고 밝혔다. 

같은 부엉이 출신인 민주당 황희 의원은 2심 선고 직후인 지난 6일 “(김 지사는)댓글 조작을 드루킹과 공모할 동기도 없고, 그 자체로 선거에 영향도 미치지 못했다”며 “전에 김 지사가 재판 증언을 하는 과정에서 느꼈던 점이지만, 재판부가 정치권 선거문화에 (대한)이해가 부족해도 너무 과하게 부족한 것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김 지사의 대권도전은 현실적으로 힘들어졌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물리적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타임라인상 민주당은 늦어도 내년 9월까지 대선후보를 결정해야 한다. 대법원 판결 일정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지만, 판결까지 대략 6개월에서 1년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강제 규정은 아니어서 언제 결판이 날지 예상할 수 없다. 

경선 일정 등을 고려하면 김 지사가 대법원 판결을 통해 사법족쇄를 풀더라도 대권 도전을 준비하는 시간이 촉박할 수밖에 없다. 김 지사를 기소한 허익범 특별검사는 지난 10일 상고장을 제출했다.

친문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남은 기간 친문 대권주자를 찾지 못한다면, 친문 중심의 정권 재창출은 실패하게 된다. 이는 계파의 명운과도 직결되는 문제다. 당내 주도 세력인 친문이 그 자리를 내려놓을 상황에 직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친문은 민주당 내 최대 계파다. 일각에서는 현재 민주당에 친문이냐 ‘신문(새로 유입된 친문)’이냐만 있을 뿐 비문(비 문재인)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일부 비문 세력이 남아있다고 하더라도, 문재인 대통령의 높은 지지율에 힘을 못 쓰고 있는 현실이다. 

김 2심도 실형, 발등에 불 떨어져
범친문계 SK ‘바이든 모델’ 구상

이 같은 상황에서 만약 친문 중심의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다면, 민주당 내 잠자고 있던 비문 세력이 다시금 활동에 나설 수 있다. ‘친노 패권주의’로 몸살을 앓았던 새정치민주연합 시절로 회귀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김 지사의 대권 레이스 탈락으로 친문의 플랜A는 어그러졌고 이제 플랜B로 전환할 때다. 바로 김 지사의 대체자 찾기다.


현재 가장 주목받는 사람은 정세균 국무총리다. 정 총리는 ‘SK계(정세균계)’라는 자체 계파를 갖고 있지만, 범 친문으로 분류된다. 친문 지지자들이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유력 정치인이다.

김 지사 2심 선고 이후 정 총리는 정치적 보폭을 넓히고 있다. ‘식사정치’가 이를 방증한다. 지난 9일 정 총리는 삼청동 총리공관으로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여야 의원들을 초청해 만찬을 가졌다.

정치권은 정 총리의 잇따른 영남 방문을 예의 주시했다. 대권의 승패를 판가름 지을 수 있을 정도로 유권자가 많은 영남 지역을 방문한 일도 그렇지만, 방문 당시 정 총리 입에서 나온 발언이 예사롭지 않았기 때문이다. 
 

▲ 정세균 국무총리 ⓒ문병희 기자

지난 7일 경북 포항을 방문한 정 총리는 자신을 ‘포항의 사위’라 칭했다. 발언만 놓고 보면 마치 선거 유세를 방불케 한다. 2012년 민주통합당 대선후보 경선에 출마했던 정 총리는 대구를 찾았을 당시 “나는 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 중 유일한 TK(대구·경북)의 사위”라고 밝힌 바 있다.

정 총리는 지난달 30일, 경북 안동을 찾아 회의와 특강, 지역 포럼 등의 일정을 소화했다. 앞서 지난달 16일에는 부산을 찾아 “부산·울산·경남 800만 시도민들의 간절한 여망이 외면받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부산·울산·경남이 염원하는 가덕신공항 건설에 힘을 실어주는 발언이다.

정 총리는 지난 11일에도 부산을 방문해 민심을 청취했다.

플랜B 전환
SK 급부상

정 총리의 PK(부산·경남) 방문은 정치적으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호남 출신인 정 총리가 대권을 잡기 위해서는 영남 표심이 반드시 필요하다. DJ(김대중 전 대통령)식 전략이다. DJ는 제15대 대선을 앞두고 충청의 맹주인 자유민주연합 김종필(JP) 총재와 DJP연합을 결성, 대권을 쥐는 데 성공했다.

이 같은 지역연합의 힘은 이후 대선에서도 증명됐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 대통령의 당선은 민주당의 전통적 지지 세력인 호남의 힘과 PK 출신이라는 점이 만난 결과다. ‘포스트 DJ’ 후보 중 한 명인 정 총리의 영남 방문이 주목받는 이유다. 

메시지도 선명해졌다. 최근 정 총리는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 사이의 갈등을 지적했다. 추 장관은 점잖았으면 좋겠고, 윤 총장은 자숙했으면 좋겠다는 취지의 발언이었다. 앞서 정 총리는 두 사람 사이의 갈등에 대해 “불필요한 논란이 계속된다면 총리로서 역할을 마다하지 않겠다”고 경고 메시지를 내놓기도 했다.

정치권은 정 총리의 대권 도전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지난 10일 광주KBS 특별대담에 출연한 정 총리는 사회자가 “내년 3월에 어떤 말을 할 시간이 다가올 것으로 보는가”라고 질문하자 “그때 보시죠”라고 답했다. 내년 초 대선 도전을 선언할 가능성을 열어둔 발언으로 읽힌다.

여권에서는 이 시기 총리 교체를 포함한 큰 폭의 개각이 이뤄질 것이라 관측한다. 정 총리는 지난 10일 세종 총리공관에서 진행한 취임 300일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개각은 두 차례로 나눠 진행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어서 개각 시점은 연말·연초보다 빠르게 진행될 가능성을 언급했다.


SK계는 정 총리와 보폭을 맞추고 있다. SK계 의원들이 주축인 ‘광화문포럼’이 최근 조찬모임을 갖고 활동을 재개했다. 포럼의 회장은 민주당 김영주 의원이, 운영위원장과 간사는 각각 이원욱·안호영 의원이 맡고 있다.
 

▲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

정 총리는 ‘바이든 모델’을 구상하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 정 총리는 미국 대선을 언급하며 조 바이든 당선인이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통합과 실용의 시대정신’ 덕분이라고 분석했다. 

정 총리는 “미국 국민들은 분열이나 불안정, 대결과 반목을 물리치고 치유와 통합, 실용과 포용의 길을 제시한 바이든 당선인을 차기 대통령으로 선택했고 그게 시대정신”이라며 “바이든 당선인은 품격 있는 정치인이고, 안정감도 있고 경륜이 풍부하고 또 포용의 정치를 펼칠 수 있는 분”이라고 평가했다.

정 총리는 평소 통합·실용의 리더십을 강조해왔다. 총리로 취임할 때도 ‘통합 총리’를 강조했다. 이는 정 총리가 분석한 바이든의 시대정신과 일치한다.

6선 의원이자 국회의장 출신인 정 총리는 6선 상원의원이자 부통령으로서 상원의장을 겸한 바이든 당선인과 많은 부분에서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이에 바이든을 언급하며 자신의 대권 의지를 드러낸 것 아니냐는 분석이 정치권에서 나온다.

대권 주자들 
춘추전국시대


민주당 김두관 의원 역시 친문의 선택을 받을 후보군으로 분류된다. 경남 남해 출신인 김 의원은 경남 양산을의 현역 국회의원이다. 경남 양산은 문 대통령의 사저가 있는 지역이다. 김 지사의 실형으로 대체자를 찾아야 하는 부산 친문의 선택이 김 의원 쪽으로 향할 수 있는 이유다.

정치권은 김 의원의 대권 의지가 정 총리 못지 않다고 본다. 김 의원은 지난 2012년 대선 출마를 선언하며 경남도지사직을 중도사퇴한 바 있다. 20대 국회에서 경기 김포갑 의원이었던 김 의원이 21대 총선을 앞두고 경남으로 귀향한 일을 두고 정치권 일각에서는 대선 출마를 염두에 둔 선택이 아니었냐는 시각이 존재한다.

김 의원은 ‘김해신공항 백지화’ 등 지역 현안에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임종석 대통령비서실 외교안보특별보좌관 역시 정치적 보폭을 넓히고 있다. 최근 전국을 돌며 기초자치단체장 등 지역의 주요 인사들과 업무 협약식을 맺고 있다. 임 특보가 이사장을 맡고 있는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이하 경문협)’의 남북 도시 교류 사업을 추진하기 위함이다. 이 같은 행보는 내년까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 ▲ 김두관 더불어민주당 의원 ⓒ고성준 기자

임 특보는 친문 지지자들 사이에서 인지도가 높다. 문재인정부 초대 대통령 비서실장을 역임했다. 초대 국무총리를 지낸 민주당 이낙연 대표와 마찬가지로 임 특보 역시 친문 지지자들 사이에서 ‘개국공신’으로 통한다. 임 특보가 김 지사와 돈독한 사이라는 점도 친문의 주목을 받는 이유 중 하나다. 

임 특보는 박원순계에서 친문으로의 변신에 성공했다. 앞서 정치권은 박원순 서울시장 재임 시절 정무부시장을 맡았던 이력 등을 근거로 임 특보를 박원순계로 평가했다. 그러나 2016년 말 민주당 대선 경선 당시 문재인 당시 경선 후보의 비서실장으로 캠프에 합류, 대선 승리를 이끌었다.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전국적 인지도와 친문 호감도를 모두 갖춘 몇 안 되는 인사 중 한 명이다. 복수의 친문 커뮤니티에서는 유 이사장의 대권 도전을 염원하는 목소리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경쟁력도 갖췄다. 유 이사장은 경북 경주 출신으로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 대통령처럼 유 이사장 역시 민주당 진영이 선호하는 영남계 진보인사다. 영남을 정치적 뿌리로 둔 보수 진영으로부터 ‘어용 지식인’이라는 공격을 받고 있지만, 대중적 인지도로 이를 상쇄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민주당 내부에 존재한다.

‘포스트 노무현’ 탄생?
70년생 젊은 피 ‘꿈틀’

문제는 대권 의지가 결여돼있다는 점이다. 유 이사장은 거듭된 ‘정계 복귀설’을 일축하고 있다. 

민주당의 젊은 피도 김 지사의 대체자로 주목받고 있다. 민주당 박용진 의원이 대표주자다. 그는 차기 대선 출마 여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며 “새로운 패러다임을 구축하는 데 역할을 할 수 있다면 그런 기여를 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1971년생인 박 의원은 올해 만 49세로 ‘세대교체론’의 선두주자 역할을 할 수 있다. 양강구도를 구축한 1952년생 민주당 이낙연 대표(만 67세)와 1964년생 이재명 경기도지사(만 55세)보다 젊다. 여기에 박 의원의 개혁적 성향이 맞물려 차기 대선을 앞두고 세대교체론이 큰 반향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박 의원은 86세대의 한계를 지적하며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86세대는 자기 기회를 다 소진했다고 본다” 등의 발언이 대표적이다.

지난 12일 연세대 강연에서는 “지금 대한민국 정치는 생물학적으로 매우 올드하다”며 “국회 평균 연령이 55세다. 세대교체를 통해 젊은 세대들이 더욱 과감하게 들어서고, 대한민국의 시대교체를 선언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고 밝혔다. 
 

▲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고성준 기자

박 의원은 사립유치원 회계 부정 의혹을 처음으로 제기하는 등 의정활동에서도 뚜렷한 성과를 보이며 능력을 입증했다. 다만 ‘조금박해(조응천·금태섭·박용진·김해영)’의 일원으로 분류되는 등 친문 지지자들 사이에서 호불호가 갈린다는 점이 약점으로 지적된다.

박 의원은 추미애 법무부 장관 아들의 군복무 특혜 의혹 등에 소신 발언을 내놓으며 친문 지지자들의 공격을 받기도 했다.

70년대생 중 친문의 주목을 받는 이가 또 있다. 바로 민주당 박주민 의원이다. 박용진 의원이 대권 의지를 드러냈다면, 박 의원은 내년 4월에 치러지는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이 점쳐진다. 이에 박 의원은 차기보다는 차차기 대권주자로 언급된다.

박용진·박주민 의원은 정치적 자산에서 차이를 보인다. 중도개혁 성향인 박용진 의원이 외연확장에 강점을 보인다면, ‘세월호 변호사’인 박주민 의원은 열성 친문 지지자들로부터 큰 호감을 얻는 등 내부결속에 강점이 있다. 

장단점 뚜렷
누가 낙점?

정치권은 김 지사의 실형으로 당분간 ‘이낙연-이재명’의 양강 구도가 유지될 것이라 전망한다. 그러나 제3의 인물이 나온다면 양강 구도는 언제든 흔들릴 수 있다. 특히 양강 구도가 오래 지속될수록 유권자들 사이에서는 새로운 얼굴을 원하는 목소리가 높아질 수 있다. 일종의 ‘피로감’이다. 이낙연 대표, 이재명 경기도지사 모두 친문 적자가 아니라는 점도 제3의 인물이 등장할 가능성을 정치권에서 높게 보는 이유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옵티머스-이낙연 두 번째 의혹

옵티머스 측이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의 서울 지역 사무실에 1000만원 상당의 가구와 집기를 제공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조선일보>는 검찰이 최근 옵티머스 로비스트로 활동한 김모씨로부터 ‘김재현 옵티머스 대표의 지시를 전달받고 이 대표의 서울 사무실에 소파 등 1000만원 상당의 가구, 집기를 제공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확보해 수사 중이라고 보도했다.

이 대표 측은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을 밝히며 즉각 반박했다.

옵티머스 복합기 사건 이후 전수조사를 펼친 결과 사무실에 어떠한 지원도 받은 사실이 없다는 것.

앞서 옵티머스 관련 업체인 트러스트올이 이 대표의 사무실에 있는 복합기 사용요금 76만원을 대납해줬다는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당시 이 대표 측은 “복합기는 참모진이 지인을 통해 빌려온 것으로, 그 지인이 트러스트올과 연관이 있다는 것도 보도를 통해 알게 됐다”고 해명했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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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페이스북에 사과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도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를 숙였다. 사과는 짧았지만,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비난은 길었다. 사과 의견을 통해 확인되는 국면 전환 노림수는 ‘한동훈을 제외한 빅텐트’인 걸까? 국민의힘 공보실은 지난 2일 오후 10시54분 출입기자들에게 지난 3일 지도부 일정을 공지했다. 공보실에 따르면, 지도부의 일정은 ‘통상 일정’이었다.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의미다. 지난 3일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1주년이었다. 통상의 의미는? 지도부의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것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공개 사과 및 기자회견 일정이 없었단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다. 장 대표는 지난 3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 의견을 밝혔다. 장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었다”는 등 “정당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소지가 있는 주장부터 제시했다.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대해서도 “한국 정치의 연속된 비극을 낳았고, 국민과 당원들께 실망과 혼란을 드렸다”는 등 ‘탄핵 반대’ 의견을 유지했다. 장 대표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잘못은 하나로 뭉쳐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는 부분이었다. 자신에 대해서도 “당 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강조했다. “장 대표가 사과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은 같은 날 오전 4시50분경 이정재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확실시됐다. 장 대표는 페이스북 게시글에서도 “추 의원 구속영장 기각은 어둠의 1년이 지나고 두터운 장막이 걷히고, 새로운 희망의 길이 열리는 신호탄”이라면서 대정부 투쟁에 의미를 부여했다. 장 대표는 “이재명정권의 대한민국 해체 시도를 국민과 함께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사과 불가는 지난달 28일 대구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장외집회에서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다. 당시 그는 “비상계엄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우리가 흩어지고 분열한 결과, 이재명정권이 탄생했단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연설 대부분을 채웠다. 5일 간격으로 같은 얘기를 반복한 것이었다. 당시 장 대표가 주장한 민주당에 대한 비난의 핵심 내용은 ▲의회 폭거·국정 방해 ▲무모한 적폐 몰이에 따른 공무원 사찰 위협 ▲폭거로 인한 민생 파탄·국가 시스템 붕괴 ▲내란 몰이 등이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국민의힘의 비상계엄 관련 사과는 ▲송언석 원내대표 ▲유상범·김은혜 원내부대표 ▲최수진·최은석 원내대변인 등 원내 지도부 차원에서 나왔다. 송 원내대표 등은 지난 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께 큰 충격을 드린 비상계엄 발생을 막지 못한 데 대해 국민의힘 국회의원 모두는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군인·공직자·의료인·자영업자 등 비상계엄 선포 피해자들에게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하지만 이후의 메시지는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 등 장 대표의 주장과 크게 차이가 없는 내용이었다. 송 원내대표는 “국민의힘 의원들은 패배의 아픔을 딛고 분열과 혼란의 과거를 넘어서 다시 거듭나겠다”며 “소수당이지만 처절하게 다수 여당과 정권에 맞서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이전까지 국민의힘에서 장 대표에게 공개적으로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정치인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용태·김재섭·권영진·엄태영·이성권·조은희 의원 등이었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에서 진행된 장외집회 중 “국민의힘은 불법 계엄을 방치했으니,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일부 지지자들의 강한 항의를 받았다. 김재섭 의원은 지난달 28일 YTN 라디오 <더 인터뷰>에 출연해 “당 지도부의 사과가 없으면 제 나름의 사과를 해야 할 것 같다”며 “같이 메시지를 낼 국민의힘 의원들이 약 20명은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곧 “연판장을 돌리거나 기자회견을 할 수도 있다”는 압박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었다. 오 시장도 같은 날 채널A <김진의 돌직구 쇼>에 출연해 “중도층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라도 당 차원의 사과가 필요하다”며 “공당이라면 반성문을 쓰는 게 도리”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들은 당과 무관하게 대국민 사과를 했다. 오 시장은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 소속 중진 정치인이자, 서울시민의 일상을 책임지는 시장으로서 그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그날의 충격과 실망을 기억하는 모든 국민께 거듭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지난 3일 국회에서 “비상계엄 선포 당시 집권여당의 일원으로서 비상계엄을 미리 막지 못하고 국민께 커다란 고통과 혼란을 드린 점에 대해 거듭 국민 앞에 고개 숙여 사죄드린다”면서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존중 ▲윤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단절 ▲국민의힘 체질 개선·재창당 수준의 혁신 등을 약속했다. 이어지는 각자 플레이 장 대표에게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후 자체적으로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한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대체로 수도권에 기반을 둔 소장파다. 이들 중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면 가장 큰 손해를 볼 정치인으로는 오 시장과 김재섭·김용태 의원이 거론된다. 오 시장은 높은 개인 인기를 바탕으로 민주당의 서울시장 탈환 공세에 맞서고 있다. 김재섭 의원의 지역구 서울 도봉갑은 원래 민주당 텃밭이었다. 김 의원은 지난해 총선 당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1094표 앞서 어렵게 이겼다. 지난해 12월7일 국민의힘의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집단 이탈에 동참했을 때도 지역구에서 규탄 집회가 개최되는 등 홍역을 치렀다. 김용태 의원도 경기 가평·포천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박윤국 한국도자재단 이사장에 2774표 앞서 어렵게 금배지를 다는 데 성공했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강경 보수화가 진행된다”는 지적이 각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 우려는 장 대표가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자유통일당 ▲우리공화당 ▲자유민주당 ▲자유와혁신 등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깊어졌다.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지금은 연대를 논의할 때가 아니”라면서 선을 그었다. 최근 국민의힘에선 “한동훈 전 대표를 축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만한 밑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다. 국민의힘 여상원 윤리위원장은 지난달 17일 사의를 표명했다. 여 위원장은 “당에서 ‘물러나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며 “굳이 능욕당하면서 자리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돼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답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윤리위원회가 ‘계파 갈등 조장’을 이유로 윤리위에 넘겨진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 주의 조치만 내린 것 때문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국민의힘 우재준 청년 최고위원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원하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고 윤리위원장을 사퇴시키는 게 정당한 일이냐”며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드는 민주당과 뭐가 다르냐”고 정면 비판했다. 이어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28일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한 조사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당원 게시판 의혹은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올라온 윤 전 대통령 부부 비방글 작성에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밝혀 당원에게 알릴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던 바 있다. 윤 전 대통령 부부는 정치적으로 몰락해 서울구치소에 갇혔고,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국민의힘이 당원 게시판 의혹을 밝혀낸 후 거둘 수 있는 실익으로는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친한(친 한동훈)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거론된다. 구 친윤(친 윤석열)계가 거둘 수 있는 이익이다.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보수 성향 유권자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명확하게 나뉜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갈등하면서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던 이력이 있다. 이 때문에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일색이 되는 걸 막는 방파제·상징”이란 분석이 오랫동안 있어왔다. 친한계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의원 중 상당수는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소장파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리위원장 쫓아낸 이유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선 “윤 전 대통령이 정치에서 폭력을 동원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몰랐던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정치의 본질은 대화·토론·협상이다. 영국 하원에선 20세기 초까지 의원이 총칼을 이용해 결투·난투를 했다. 물리적 폭력이 아닌 ‘언어폭력’ 선에서 공방을 이어가는 정치 문화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정착됐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전 세계에 줬던 충격은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했다고 믿었던 대한민국에서 군을 동원해 정적을 제거하려던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는 사과 메시지를 먼저 짧게 발표하면서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은 길게 이어가는 형식의 사과 의견을 밝혔다. 사과엔 ▲직접적인 반성 ▲분명한 잘못 인정 ▲재발 방지 약속 ▲보상 약속 등 4개의 원칙이 제기됐는데 “상대방 비판에 더 중점을 둔 사과는 역설적으로 ‘반성을 하는 게 맞느냐’는 비판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당시 대국민 사과를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후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 전 대통령은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국민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후속 조치 중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미흡했고, 우려를 덜어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을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라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당시 크게 불거졌던 각종 우려를 ‘괴담’으로 규정지었다. 이 때문에 촛불 시위 세력이 제시한 재협상 시한과 맞물린 시점에서 사과가 나온 점을 감안할 때 국면 전환을 위한 명분 쌓기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각종 의혹이 광범위하게 제기돼 근거 자료들까지 제시되는 시점에서 “취임 후 일정 기간 일부 자료들에 대해 최순실씨의 의견을 들은 적은 있지만, 청와대 보좌 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의 해명은 신뢰를 잃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두 전직 대통령의 사과처럼 자신의 주장을 뒤에 배치한 후 더 큰 비중을 부여하는 형식을 유지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이런 사과 형식은 국면 전환·지지층 결집 목적을 가진 이들이 활용한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고대 로마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있었던 마르쿠스 브루투스·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연설이 꼽힌다. 카이사르 살해를 주동한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에 대한 내 사랑은 카이사르를 사랑하는 다른 분보다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단언한다”고 선언한 후 “로마를 더 사랑해서 카이사르를 죽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라를 위해 눈물을 머금고 가장 사랑하는 친구를 죽였다”고 강조했다.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 암살에 가담한 사람들은 모두 존경할 만한 분들”이라고 선언한 후 카이사르를 찬양하면서 그의 유언장을 공개했다. 유언의 핵심 내용은 “내 재산을 로마 시민에게 기증한다”는 것이었다. 또 카이사르가 살해당할 당시 입었던 칼자국과 피로 얼룩진 옷도 공개했다. 흥분한 로마 시민은 암살자들의 집을 습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토니우스·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정국을 장악했다. 불리한 내용을 먼저 짧게 거론한 후 유리한 내용을 장황하게 거론하는 형식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즐겨 이용된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가 짧은 사과 의견을 밝힌 후 이재명정부·민주당을 비중 있게 비판한 것도 강경 보수 세력에겐 강한 인상을 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장 대표는 비상계엄의 원인을 ‘의회 폭거’라고 규정했다. 이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카이사르가 된다. 비상계엄 해제에 찬성해 사실상 윤 전 대통령 몰락에 가담한 한 전 대표와 친한계는 브루투스 일당이 되는 구도가 그려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강경 보수 세력은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해 어떤 의견을 제시할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공나형 전남대 학술연구교수는 지난 2022년 발표한 논문 <대통령의 공적 사과 담화에서 드러나는 ‘개입’ 양상>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1993년 쌀 시장 개방을 수용하면서 밝힌 대국민 사과와 박 전 대통령의 최순실 게이트 관련 대국민 사과를 분석했다. 공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선의로 행한 행위가 어쩔 수 없는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고 강조하면서 결과의 부정성에 관여하는 자신의 의도의 비중을 제거했다”고 분석했다. 박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자기 고백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만, 그 고백의 원인이 되는 행위에 대해선 소극적”이라고 분석했다. 12월3일 조용히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어쩔 수 없었다”는 항변과 상대방 비판을 내용으로 채웠다. 그러면서 민주당 심판·보수 재건·대여 투쟁을 강조했다. 결국 두 사람의 답은 ‘한 전 대표를 제외한 빅텐트’ 방침 재확인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의 12월3일은 이렇게 조용히 지나갔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