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감철만 되면…’ 의원실 악성 민원 백태

“우리집 TV 좀 고쳐주세요”

[일요시사 정치팀] 설상미 기자 = 의원실로 걸려오는 악성 민원전화로 보좌진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막무가내식 민원부터 인격 모독적인 욕설, 성희롱까지 민원 종류도 다양하다. 최근 국회는 전화 받는 직원에게 폭언 등을 하지 말아달라는 취지의 음성안내 서비스와 통화 녹음 기능을 도입했다. <일요시사>는 악성 민원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보좌진의 고충을 담았다.
 

▲ 국회의사당 전경 ⓒ고성준 기자

“전화기 녹음 기능을 달아줘야 되는 것 아니냐. 전화받자마자 욕하고 배를 쑤셔버리겠다느니, 부모님을 어쩌겠다느니 하는 인간들이 일주일에 두세 명은 있다.”

지난해 11월, 인증 후 익명으로 글을 게시할 수 있는 국회 보좌진의 커뮤니티인 ‘여의도 옆 대나무숲’ 페이스북에 올라온 제보다. 제보자는 친문(친 문재인) 성향 단체인 파란장미 시민행동(이하 파란장미)에게 ‘좌표 찍힌’ 의원실에 근무하면서 악성 민원에 시달린 것으로 보인다.

몸살

당시 파란장미는 패스트트랙에 오른 공수처 설치 법안 찬성 서약운동을 벌였다. 공수처안에 반대한 의원실들은 수십 통이 넘는 전화 폭탄을 견디면서, 업무에 크게 지장을 받아야 했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국회 내 악성 민원들의 종류와 이유는 가지각색이었다.


다짜고짜 의원을 바꿔달라는 막무가내식 민원, 개인적인 하소연, 정치불신으로 인한 분노감 표출 등등이다. 이 정도는 그나마 낫다. 더 나아가 인격 모독적 발언, 성희롱, 성차별적 발언 등은 보좌진의 업무에 지장을 주고도 남아 보였다.

지난 국회, 여의도 옆 대나무숲에 올라온 제보 중에도 이 같은 사례는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1 ‘오늘도 전화 연결원이 된 하루~^^! 아침부터 기분 더럽게 남자 신음소리로 시작하네요. 일주일째 우리 의원실을 비롯해 다른 의원실도 돌아가며 신음소리를 내고 있다고.’ (2017년 6월)

#2 ‘최근 두 달, 끊임없는 악성 민원전화 때문에 너무 힘듭니다. 욕설과 소속 정당 비난은 이제 아무렇지도 않아요. 여자는 못 믿겠으니 남자로 바꾸라, 아가씨는 몇 살이냐, 횡설수설하는 소리도 이제 담담하게 받습니다. 야근하는데 술에 취한 채 전화해 택시를 보내달라 하지를 않나, 심지어 전화해서 하악거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자꾸 혐오감이 자라고, 자존감이 낮아집니다. 상담이라도 받고 싶어요.’(2019년 10월)

막무가내식 전화 급증
심한 욕설에 성희롱까지

21대 국회 역시 과거 국회와 별반 다르지 않다. 특히 정기국회의 ‘꽃’인 국정감사가 시작되면서 국민들의 눈길이 여의도로 더 쏠리는 분위기다. 다소 차이가 있지만, 국감 시즌에는 족히 100통 이상의 전화가 의원실로 걸려온다.

피감기관들의 업무 전화부터 기자들의 취재 전화까지 다양하지만 이 가운데 의원실 업무와 관련 없는 악성 민원전화도 적지 않다.


비서 A씨는 “민원인 중 본인의 아파트 집값이 옆 아파트보다 오르지 못했다는 이유로 공인중개사를 악덕중개사라고 하는 분이 있었다. 이 분이 의원실에 전화해 조사를 나서달라고 한 적 있다”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또 다른 비서 B씨는 “본인의 집 스카이라이프가 자꾸 망가지는데, 스카이라이프가 전화를 안 받는다며 민원을 넣었다. 나이가 많으신 것 같았는데, 그걸로 의원실 보좌진이 고생을 좀 했다”고 토로했다.

의원실서 발의한 법안에 대해 노골적인 불만을 표출하는 악성 민원도 있다.

물론 민심은 천심이다. 국회의원은 하나의 헌법기관으로, 국민의 뜻을 대변할 의무가 있다. 하지만 자신과 대척점에 있는 법안이라는 이유만으로 제기된 일방적이고 폭력적인 목소리는 보좌진에게 큰 상처를 남기기 마련이다.
 

▲ 악성 민원 공문

지난 6월 정의당 장혜영 의원실은 찬반 논쟁이 뜨거웠던 차별금지법안을 발의하면서, 한 달간 빗발치는 테러를 감당해야 했다.

장 의원실서 근무했던 장태린 비서가 <한겨레21>에 기고한 글에 따르면, 한 민원인은 장 비서에게 “당신 엄마랑도 성관계하지 그래.” “보좌관 바꿔, 남자로. 어린 여자랑 통화하려니까 말이 안 통하네, XX.” 등 모욕적인 언사를 가감없이 내뱉었다.

장 비서는 “녹음 기능이 없는 의원실 전화기가 원망스러웠다”며 “전화벨 소리가 울리거나, 새로운 전자우편이 왔다는 알림이 뜨면 심장이 뛰었다”고 했다.

등잔 밑이 어두운 여의도
이제야 음성안내·녹음 도입

비서 C씨는 “왜 기업을 못살게 구냐며 욕을 듣기도 한다. 그렇지만 민원은 감사한 마음으로 듣는다. 다만 무턱대고 전화와 욕설을 하는 분들도 계신다”며 씁쓸한 내색을 감추지 못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비서 D씨는 “우리도 콜센터 상담원들처럼 통화 연결 전에 ‘제가 세상서 가장 사랑하는 우리 딸이 상담해드립니다’ 같은 멘트가 나왔으면 좋겠다”는 우스갯소리를 전하기도 했다.

국회는 최근 전화 받는 직원에게 폭언 등을 하지 말아달라는 취지의 음성안내 서비스와 통화 녹음 기능을 도입했다. 다만 현재 통화 녹음은 한 의원실 당 90분만 가능하며, 시간을 다 채울 경우 추가 녹음이 되지 않는다. 필요 없는 녹음 내용은 의원실서 수시로 삭제해야 하는 불편함도 감수해야 한다.

비서 E씨는 “사실 지금까지 많은 보좌진이 악성 민원 때문에 크게 고통받았다. 또 민원전화를 기록할만한 방법이 없었다”며 “좋은 일”이라고 호평했다.


반면 비서 F씨는 통화 녹음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F씨는 “(녹음 기능이) 도입돼서 다행이지만, 계속 확인하고 지워야 한다. 잘 쓰일지 모르겠다”고 우려했다. 그는“민원인이 욕설을 한다고 해서 고소와 같은 공격적인 방식보다는 방어적 수단으로 사용하게 될 것 같다. 이 걸로는 충분하진 않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전했다.

악성 민원으로 인한 갖은 수모에도 보좌진은 민원인들에게 강력하게 대응하기가 어렵다. 민원인들 중 지역 유권자들이 대다수 포진돼있고, 공무원들은 국민의 ‘공복’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콜센터?

국회가 최근 실시한 고객응대 보호조치 음성안내는 감정노동자보호법(산업안전보건법 제26조의2 고객의 폭언등으로 인한 건강장해 예방 조치 규정)에 따른 것이다. 이 법안에 따르면 욕설을 비롯한 폭언은 모욕죄로 처벌받을 수 있다. 입법부인 ‘국회’서 지난 2018년에 통과돼 같은 해 10월부터 적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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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우리에게 추석은 차례를 지내거나 귀향을 하는 것이 익숙한 명절이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명절을 보내는 방식이 크게 달라졌다. 특히 차례를 지내는 비중은 줄어들고 MZ세대를 중심으로 긴 연휴를 활용한 여행, 단기 아르바이트, 자기계발 등을 하는 것이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 여론 조사 결과에 따르면 추석에 차례를 지내겠다고 응답한 비율은 40%대 초반에 그쳤다. 절반 이상은 차례를 지내지 않겠다고 답한 것이다.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당연하게 여겨지던 차례와 제사가 더 이상 필수가 아니게 된 셈이다. 알바 우선 통계청 조사에서도 명절 의례를 간소화하거나 아예 하지 않는 가정이 해마다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차례를 지내는 대신 긴 연휴를 여행으로 보내려는 수요가 뚜렷하게 증가했다. 한국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여행 중개 플랫폼 스카이스캐너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약 77%가 이번 추석 연휴에 여행 계획을 세웠다고 응답했다. 특히 해외여행 비중이 크게 늘었다. 10년 전 대비 명절 여행에 긍정적인 인식이 37%에서 70%로 2배 가까이 상승했다. 검색 데이터에 따르면, 추석 연휴 기간 인기 여행지는 일본(43.1%)이 1위였고, 이어 베트남(13.2%), 중국(9.6%), 태국(7.5%), 대만(6.2%) 순이었다. 도시별로는 일본 후쿠오카(20.2%)가 가장 높은 검색 비율을 기록했으며, 오사카(18.3%), 도쿄(15.4%), 방콕(8.9%), 타이베이(8.0%)가 뒤를 이었다. 여행을 가지 않고 명절 연휴를 일터에서 보내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긴 연휴를 활용해 “돈을 벌겠다”는 사람들이 늘면서 단기 아르바이트 수요도 급증했다. 당근마켓과 같은 알바 커뮤니티와 플랫폼에는 “추석 알바 구합니다”라는 글이 다수 올라왔다. 한 20대 청년은 “쉬는 날이 길어 잠깐이라도 일을 하려 한다”고 밝혔고, 한 대학생은 “여행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선물세트 포장 알바에 지원했다”고 말했다. 특히 명절 기간에는 업무강도가 높아 평균 시급의 1.5배를 지급하는 경우가 많다. 평상시에 근무할 때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많은 청년들이 명절 시즌 알바를 노리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 맞춰 구인·구직 플랫폼들은 ‘추석 알바 채용관’을 운영하며 수요를 모으고 있다. 백화점과 대형 마트, 도·소매점과 전통시장에서 단기 인력을 모집하고, 선물용 고기·과일 세트 포장, 택배 상·하차, 진열·판매 등의 일자리가 집중적으로 생겨났다. 절반 이상 “안 지내요” 77%가 여행 계획 세워 지난해 추석 구인 구직 사이트 알바천국 조사에서는 응답자 중 절반 이상(53.9%)이 단기 용돈 벌이를 위해, 22.2%는 고물가로 인한 지출 부담 때문에, 18.2%는 여행 경비나 등록금 등 목돈 마련을 위해 명절 알바를 계획했다고 답했다. 이는 명절을 단순히 휴식 시간으로 보내지 않고, 생계와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집에 머무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자기계발하며 추석 나기’가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혼자 추석을 보내는 일명 ‘혼추족’ 중에는 독서나 온라인 강의, 어학 공부, 자격증 준비 등에 연휴를 투자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스터디 카페와 도서관을 찾는 이용객이 증가했다는 조사도 나왔다. 일부 출판사나 문화 기획사에서는 명절 연휴에 맞춰 북콘서트 같은 행사를 열기도 했다. 명절이 휴식 기간만이 아닌 스스로를 계발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 같은 양상은 가족 모임에도 영향을 받았다. MZ세대는 가족·친척 모임을 스트레스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한 청년은 “친척들과 모이면 취업·결혼 얘기 등으로 잔소리를 들어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느니 차라리 그 시간에 자기계발을 하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말했다. 과거처럼 친척 모임에 시간을 할애하기보다, 필요한 경우에만 가족을 만나고 나머지 시간에는 개인활동에 집중하는 방식이다. 연휴를 도심에서 보내는 ‘혼추족’을 겨냥해 유통·외식업계도 다양한 이벤트를 내놓고 있다. 수도권 맛집 가이드, 추석맞이 전시·공연, 집콕형 OTT·게임 프로모션 등이 대표적이다. 편의점과 HMR(가정 간편식) 업체는 명절 한정 도시락·한상 차림 제품을 늘리고, 명절 기간 반값·카드 제휴 할인 등 단기 판촉을 강화하고 있다. 추석 선물 시장도 과거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예전에는 굴비·한우·고급 과일 세트 등 전통 품목이 중심이었지만, 최근에는 실속형·소포장 선물세트가 늘었다. 대표적으로 대형마트에서는 고급 커피·차 세트, 수제 디저트처럼 가볍게 주고받을 수 있는 소포장 구성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일과 자기계발이 더 유익해” 명절 스트레스 가족 모임 불참 온라인몰에서는 올리브 오일, 참기름, 견과류, 꿀 등 건강 지향 소품목 세트가 매출 상위에 오르기도 했다. 실속형·소포장 선물을 찾는 배경에는 고물가 부담과 1~2인 가구 증가가 있다. 소비자들은 예전처럼 고가 선물을 준비하기보다, 실용적이고 보관이 편리한 상품을 선택하는 경향을 보인다. 또 명절을 함께 보내는 가족 규모가 줄면서 필요한 양만큼만 담긴 선물세트가 ‘부담 없는 선택’으로 자리 잡았다. 가격 대비 효용을 중시하는 MZ세대 소비자층도 이 같은 흐름을 이끌고 있다. 모바일 선물하기 판매는 전년 추석 대비 두 배 이상 늘었고, 온라인몰도 같은 기간 선물세트 매출이 2배 가까이 증가했다. 편의점 앱을 통한 선물세트 매출은 연중 대비 100% 이상 신장세가 관측됐고, 패션·라이프스타일 플랫폼의 선물하기 거래액도 두 자릿수 증가를 이어가고 있다. 마켓컬리는 추석 기간 한시 선물하기 서비스를 운영하며 홍삼·화장품 등 선물 품목을 확장했다. 명절 식문화 자체도 간편화 된 흐름이 뚜렷하다. 1인 가구 1012만명, 2인 가구 600만명으로 소규모 가구가 크게 늘어난 가운데, 대형마트의 간편 차례상 매출은 최근 3년 연속 증가했다. 편의점의 냉장·냉동 HMR 매출은 두 자릿수 증가했고, 명절 한정 도시락은 1인 가구 밀집 상권에서 판매 비중이 높았다. 이번 추석에도 이런 흐름에 맞춰 대형 마트는 간편 차례상·냉동 밀키트 대형 할인전을, 편의점 4사는 명절 도시락 출시와 제휴 할인행사를 연달아 내놓고 있다. 밀키트와 같은 간편식의 수요가 증가한 데에는 물가 상승이 영향을 미쳤다. 소비자 설문에선 추석 전체 지출 예산이 평균 71만2000원으로 전년 대비 26%가량 늘었다는 응답이 나왔다. 지출 중에는 부모 용돈·선물 비중이 절반을 웃돌았고, 차례상 비용·내식 비용도 적지 않았다. 품목별로 과일·수산물·햅쌀·송편 등의 차례상 음식 가격 부담이 커지면서, 수입 축산물 고려 비율도 늘었다. 이 때문에 “차례상 형식을 간소화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선택의 시대 추석을 준비하는 한 30대 가정주부는 “지금은 시대가 많이 바뀌어서 차례를 안 지내거나 설에 한 번만 지내는 집이 많다. 고물가 시대에 음식을 다 준비하는 것은 부담되는 것 같다. 그런 형식적인 것은 간소화하더라도 차례를 지내는 행위에 의미가 있으니 상관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