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 온상’ 미성년 랜덤채팅 실태

  • 구동환 기자 9dong@ilyosisa.co.kr
  • 등록 2020.09.14 11:01:55
  • 호수 128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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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출 소녀 노리는 검은 유혹

[일요시사 취재2팀] 구동환 기자 = 온라인은 익명성이 주는 자유로움이 존재한다. 자신의 모습을 감춘 채 랜덤채팅에 접속하는 청소년들이 늘고 있는 가운데 이런 점을 악용해 범죄를 일으키고 있다. 청소년들이 위험에 빠지기 쉬운 ‘랜덤채팅’의 실태를 파헤쳐봤다.
 

미성년자 범죄의 온상이었던 랜덤채팅 앱이 ‘청소년 유해 매체물’로 고시됐다. 지난 10일 여성가족부(이하 여가부)는 불특정 이용자 간 온라인 대화 서비스를 제공하는 랜덤채팅 앱에 대한 제재를 3개월간의 유예 기간을 둔 후 오는 12월11일부터 본격적으로 시행한다고 밝혔다.

익명 보장
철통 보안

랜덤채팅 앱은 별도의 인증절차 없이 간단한 정보만 입력하면 가입할 수 있다. 앱 접속자들끼리 무작위로 일대 일 대화가 가능하므로 나이에 제한을 받지 않는다. 여가부는 실명이나 휴대전화 번호에 대한 인증 기능이 없거나 대화 저장, 신고 기능 등 안전한 대화를 유도하기 위한 기술적 조치가 없는 앱들은 유예 기간 동안 개선 조치를 마련하도록 했다.                               

유해표시 의무를 위반하면 2년 이하 징역이나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성인인증 절차를 마련하지 않으면 최고 징역 3년 또는 3000만원의 벌금을 물 수 있다.

윤효식 여가부 청소년 가족정책실장은 “이번 랜덤채팅 앱의 청소년 유해 매체물 결정을 통해 청소년들이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는 대화서비스 환경이 조성되길 기대한다”며 “랜덤채팅 앱뿐만 아니라 청소년에게 유해한 매체 환경에 대한 지속적인 점검(모니터링)을 통해 아동·청소년에 대한 성 착취 행위 등 불법행위가 근절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랜덤채팅 앱은 가출청소년이 많이 사용한다. 집에서 나온 이들은 익명이라는 가면을 쓴 채 임의 누군가와 대화를 하는 것 자체가 흥미로운 일이다. 이 앱은 청소년들에게 있어 가정불화, 친구 관계, 연인 관계, 개인적인 고민 등 말하지 못하는 부분을 소통할 수 있는 메신저 기능을 갖고 있다. 

이 점을 이용해 청소년들을 노리는 성인이 많은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하 형정원)이 지난해 랜덤채팅 앱에서 이뤄진 2230명의 대화를 분석한 결과, 상대가 미성년 이어도 대가를 제공하고 성적인 만남을 요구하는 등 성적인 목적으로 대화를 하는 경우가 76.8%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화 상대방이 미성년임을 인지한 뒤에도 대화를 지속하는 비율도 61.9%에 달했다.

여가부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2019년 성매매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형정원에 의뢰해 3년 주기로 실시하는 이번 조사에선 온라인서 청소년에 대한 성착취 위험을 파악하기 위해 처음으로 랜덤채팅 앱의 대화 패턴과 성매매를 조장하는 내용을 담은 유튜브 영상을 심층 분석했다.

2012년 무작위 채팅 우후죽순 생겨
성적인 목적으로 대화 76% 웃돌아

‘2019년 성매매 실태조사’ 중 ‘랜덤채팅 앱 현황 분석’ 결과 여성가족부,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지난해 5월부터 11월까지 실시한 이번 조사 결과를 보면, 399개 랜덤채팅 앱 가운데 77.7%가 만 18살 이상 ‘성인’ 등급으로 설정돼있으면서도 실제로 본인 인증을 요구하는 비율은 26.3%에 불과했다.

연구자가 13·16·19·23살 여성으로 가장해 랜덤채팅 앱에 접속한 뒤 조사 대상자 2230명과의 대화를 수집·분석했는데, 대상자의 10명 중 9명이 30대 이하로 나타났으며 이들 중 21.4%는 미성년자에게 대가를 제공하는 성적인 만남을 요구했다.


성적인 내용을 담은 채팅(12.3%)을 하거나 음란 사진과 영상을 공유(7%)하는 경우도 있었다.

랜덤채팅 앱은 2012년 초부터 성행하기 시작했다. 랜덤채팅 앱 1세대로는 앱은 ‘심톡’ ‘살랑살랑 돛단배’ ‘부엉이 쪽지’ ‘두근두근 우체통’ ‘하이데어’ ‘1km’ 등 수십여 개다. 이들 앱은 그 나름의 방식으로 이용자를 연결하는 일종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다.
 

▲ ⓒpixabay

다만 기존에 알던 사람들을 연결하는 것이 아니라 무작위로 상대를 연결하거나, 주변에 가까이 있는 사람을 소개하는 등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방식이 다를 뿐이다. 또 나이와 성별 정도만 입력하면 대부분 사용할 수 있었다.

처음엔 모르는 사람끼리 대화를 나누고, 만나서 새로운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등 긍정적인 기능을 했다. 하지만 이용자 중 일부가 익명성을 악용해 이들 앱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채팅 앱에는 본인 확인 절차가 없어 음란성 메시지나 노골적으로 성관계 상대를 찾는 메시지를 거리낌 없이 보낼 수 있다.

상대방이 음란 이용자를 신고하더라도 이용제한 외에 취할 수 있는 조치가 없다. 그런데 신고된 이용자가 앱을 삭제하면 기록도 지워지기 때문에 앱을 재설치할 경우 이용제한도 의미가 없어진다.

채팅 앱이 이렇게 변질되면서 불건전한 의도를 가진 사람만 이용자로 남는 상황이 됐다. 현재 각종 스마트폰 채팅 앱은 사실상 음란정보의 창구나 잠자리 대상을 찾는 도구로 전락했다.

취지는
좋았으나…

안드로이드 기반의 심톡 등 일부 앱은 성관계 대상을 찾는 사람으로 넘쳐난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서 심톡을 검색하면 연관 검색어로 ‘심톡 여자’ ‘심톡 홈런’(성관계 성공을 의미하는 은어), ‘심톡 조건’ 같은 말이 뜰 정도다. 친구에게 성매매를 시키다 구속된 오양 등이 이용한 것도 심톡이다.

스마트폰 채팅 앱을 통한 만남은 상당한 위험성을 내포한다. 전화번호 외에는 상대방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상대방이 범죄 의도를 가지고 대포폰을 이용한다면 유일한 정보인 전화번호마저 의미가 없어진다. 

오프라인으로 만나서도 신상을 속이게 된다면 서로에 대한 정보가 없기 때문에 범죄 노출의 우려가 있다. 피해자들은 가해자에 대한 정보가 하나도 없기 때문에 곤란한 상황에 빠질 수도 있다.

채팅으로 성인끼리 만나거나 성관계를 맺는 것을 문제 삼을 수는 없지만, 스마트폰 채팅으로 남성을 만난 여성이 잠재적인 범죄 피해자가 될 수 있는 부분은 우려된다. 인터넷 남성 커뮤니티나 유흥정보 사이트에는 스마트폰 채팅으로 여성을 만난 경험담이 ‘어플 작업녀 후기’ ‘어플 홈런기’라는 글도 심심찮게 올라오고 있다. 

글을 올리는 남성은 여성을 만난 과정과 채팅 내용, 성관계 내용까지 자랑스럽게 올린다. 심지어 자신의 글이 사실임을 증명하려고 상대 여성의 나체를 몰래 촬영해 인증사진으로 올리는 경우도 있다. 채팅으로 남성을 만난 여성은 자신도 모르게 나체사진이 찍히고, 그것이 인터넷에 떠돌아 피해자가 된다.
 

▲ ⓒpixabay

랜덤채팅 앱을 규제해야 한다는 문제 제기는 스마트폰 보급 초기부터 꾸준히 있었다. 2012년 당시 새누리당 이노근 의원이 대표 발의한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개정안에선 온라인 서비스 제공자에게 본인 인증 조처를 하도록 하고, 청소년 성매매 암시·유발 정보를 발견했을 때 삭제 또는 전송 중지하는 의무를 규정했다. 

그러나 인터넷기업협회는 랜덤채팅이 아동·청소년 성매매 등의 범죄 통로로 이용되는 것은 본래 서비스 제공의 목적이 아닌 악용 사례 중 하나로써 서비스 자체가 불법을 의도하는 것이 아니라는 입장이었다.

실시간 대화 형식의 서비스 전체서 음란정보가 유통되는 것이 명확한 상황이 아님에도 ‘가능성’만으로 규제하는 것은 과잉 금지 원칙에 위배된다는 측면으로, 이 같은 반대에 부딪쳐 랜덤채팅의 규제를 위해 제안된 아청법 일부개정안은 모두 폐기됐다. 

속고 
속이고

이 때문인지 랜덤채팅으로 인한 미성년자 성범죄는 해가 가도 줄어들지 않았다. 이런 채팅앱이 각종 범죄의 통로가 됐다.

최근 전모가 드러난 전주 살해 사건 용의자 최신종씨는 지인 외에도 부산에 거주하는 생면부지 여성을 살해했는데, 랜덤채팅을 통해 부산 여성을 전주까지 유인한 것으로 확인됐다. 성착취물 제작·유포가 드러나며 공분을 산 N번방 가해자들도 랜덤채팅을 통해 피해자들을 유인하기도 했다. 랜덤채팅을 통해 황당한 범죄가 발생하기도 했다. 


지난해 8월 남성 A씨는 자신을 여성으로 속이며 “당하고 싶다. 만나서 상황극을 할 남성을 찾는다”는 취지의 글을 올린 후 연락해온 남성 B씨에게 아무 원룸 주소를 알려줬다. 이후 B씨는 해당 원룸을 찾아가 애먼 여성을 상대로 범죄를 저질렀다.

지난해 7월에는 광주서 20대 2명이 알고 지내던 미성년자 3명을 채팅 앱을 통해 성매매하도록 하다가 적발됐다. 미성년자 스스로 돈을 벌기 위해 채팅앱에 접속하는 경우도 있다. 채팅앱에 접속해 여성이라고 표기만 하면 “용돈을 주겠다”는 등 성매매 암시 글이 1분 만에도 수십 개의 쪽지가 온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국내서 유통되는 랜덤채팅 앱은 대략 300∼400개로 파악된다. 현재 상당수의 랜덤 채팅 앱은 특별한 아이디를 만들 필요도 없이 간단하게 회원 가입이 가능하다. 주민등록번호와 연락처 등 개인정보를 입력하지 않아도 된다.

회원가입 이후에는 상대방의 어떠한 인적사항도 확인되지 않으며 무작위 채팅이 이뤄진다. 최근의 앱들은 GPS를 이용해 서로 간의 거리를 알려주고 쪽지를 주고받으면서 대화 당사자끼리의 만남을 성사시키기 때문에 제3자의 개입이 없다. 또 한쪽서 일방적으로 대화를 차단하면 그동안의 모든 대화가 삭제되기 때문에 흔적도 남지 않는다.

이 같은 점 때문에 성매매의 온상이 되고 있다. 

가상의 신분으로 가입이 가능한 탓에 야한 사진과 영상, 성매매 제안들이 자유롭게 오가고 있다. 특히 일부 앱은 미성년자의 가입을 차단하는 기능이 없어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한 성매매에도 이용될 소지가 크다.

N번방·성매매 등 범죄 수단 활용
신고당해도 재설치하면 의미 없어

한 청소년 상담사는 “가출청소년의 경우 숙식을 해결하기 위해 성매매에 빠지게 될 가능성이 크다”며 “이 같은 랜덤채팅 앱을 이용해서 나이를 속이거나 조건이 맞는 상대를 찾아내 성매매를 하면 막을 방법이 없다”고 지적했다.

현행법상 미성년자 성매매는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법률 제14236호)에 의거, 처벌받게 된다. 또 법 제13조에 따르면 아동·청소년의 성을 사는 행위는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이상 5000만원이하의 벌금형에 처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제15조에서는 알선 영업행위 등에 따라 아동·청소년의 성을 사는 행위의 장소를 제공하는 행위를 업으로 하는 자, 정보통신망서 알선 정보를 제공하는 행위를 업으로 하는 자는 7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스마트폰 채팅 앱을 통해 이뤄지고 있는 성매매 행위에 적용할 수 있는 조항들이다.

그러나 랜덤채팅 대화 내용은 사용자가 지우는 순간 대부분 삭제되기 때문에 경찰이나 관계당국서 단속이 쉽지 않다. 또 가입 전 이용자들의 정보를 저장해두지 않는 앱의 특성상 사고가 발생해도 수사가 어렵다고 경찰 관계자들은 전했다. 

이런 문제점이 지속되자 송봉규 한세대학교 산업보안학과 교수가 조건 만남, 온라인 그루밍, 아동 성 착취, 아동 성적 학대, 디지털 성범죄 대상이 되는 ‘아동·청소년 대상 랜덤채팅’에 관한 책을 지난 5월 출간했다.

송 교수는 “성매매는 범죄이고, 성매매알선은 범죄행위로 금전적 이득을 취하는 불법 사업”이라며 이뤄지고 있는 구조에 대해 다뤘다. 송 교수는 구매자와 판매자, 성매매 알선업자와 업소 운영자를 중심으로 변화하는 성매매 구조를 분석했다.

성매매라는 불법 사업은 인터넷,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등 사이버 공간(기술)으로 간판없는 공간(무점포)으로 이동하는 형태로 진화해 사업비용과 단속의 위험성은 낮아지고 수익은 안정적으로 확대되고 있다고 설명한다.

즉, 사이버공간이라는 기술을 바탕으로 현실 공간에 성매매업소가 없거나 간판이 없는 공간으로 단시간에 이동하거나 오피스텔처럼 일시적으로 운영이 가능한 형태의 성매매인 조건 만남, 다양한 마사지업, 오피, 보도방 등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300∼400개
간단한 개설

또 다른 합법적 사업과 동일하게 불법적 사업인 성매매알선도 사이버 공간이 현실 공간을 지배하게 됐다고 분석했다. 송 교수의 분석대로 이 같은 불법적 사업영역은 10대 조직폭력배와 가출청소년뿐만 아니라 일반 청소년에게도 불법 기회를 줬고 인터넷 채팅 웹사이트를 시작으로 랜덤채팅 앱을 통한 아동·청소년 조건만남은 이미 사회적 문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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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발 검찰과의 전쟁 막전막후

여당발 검찰과의 전쟁 막전막후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검찰의 대장동 항소 포기 후폭풍이 거세다. 더불어민주당과 검찰의 시각이 크게 엇갈리면서 서로를 향해 날을 겨누는 형국이다. 검찰청은 내년 9월 폐지될 시한부 운명이지만, 더불어민주당은 ‘검찰개혁’을 필두로 이참에 검찰의 뿌리를 뽑겠다는 방침이다. 국민의힘을 등에 업고 버티기에 나선 검찰의 반발 또한 만만치 않아 당분간 양측 간의 힘겨루기가 이어질 전망이다. 지난 7일 서울중앙지검이 대장동 사건에 대한 항소 시한을 넘기면서 논란에 불이 붙었다. 서울중앙지검이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을 비롯해 ▲남욱 변호사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 ▲정민용 변호사 ▲정영학 회계사 등 대장동 일당에 대한 1심 판결에 항소하지 않은 것이다. 꺾이거나 되치거나 검찰이 항소를 포기하면서 ‘불이익변경 금지 원칙’에 따라 피고인에게 더 무거운 형을 선고할 수 없게 됐다. 대장동 개발 비리로 발생한 범죄수익의 국고 환수 규모가 축소될 것이란 해석에도 힘이 실린다. 화살은 곧바로 이재명 대통령에게로 향했다. 이 대통령은 대장동 사건에서 이해충돌방지법 위반 혐의 등을 받는데, 이미 대장동 민간업자 재판에서 무죄가 나온 만큼 항소 포기로 인해 추가로 다툴 여지를 차단했다는 게 국민의힘의 설명이다. 여기에 대통령실이 항소 포기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이재명 면죄부’라고도 주장했다. 국민의힘 곽규택 대변인은 “대통령실 민정수석실 비서관 4명 중 3명, 법무부 장관 정책보좌관, 법제처장, 국정원 기조실장까지 모두 이 대통령의 변호인 출신”이라며 “이 대통령과 사법연수원 동기인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대장동 사건 주요 피고인 정진상, 김용, 이화영 등을 특별 면회하면서 ‘검찰은 증거가 없다’는 발언으로 회유를 시도한 인물”이라고 주장했다. 보수 성향인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 모임’ 역시 “국가의 유례없는 사법 정의 포기 사태는 이재명정부의 책임”이라며 “공소 사실의 핵심에 무죄 선고가 난 사건에 검찰이 항소를 포기한 전례를 찾기 어렵다. 대통령의 어깨가 한결 가벼워진 것은 부인하지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정부 출범 이후 대검찰청 차장검사로 승진한 노만석 검찰총장을 겨냥해서는 책임론이 불거졌다. 법조계에 따르면 항소 시한을 앞두고 서울중앙지검은 대장동 일동에 대해 일부 무죄가 선고되는 등 다툼의 여지가 있는 1심 판결에 대해 “관행대로 항소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지만, 이를 전해 들은 대검 수뇌부가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에 노 대행은 지난 9일 “대장동 사건은 일선 검찰청의 보고를 받고 통상의 중요 사건의 경우처럼 법무부의 의견도 참고한 후 해당 판결의 취지 및 내용, 항소 기준, 사건의 경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며 “검찰총장 대행인 저의 책임하에 서울중앙지검장과의 협의를 거쳐 숙고 끝에 내린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 역시 대장동 일동에 대해 검찰의 구형량보다 높은 형량이 선고된 만큼 항소 포기가 ‘적절한 판단’이었다는 점을 강조하며 “항소 포기 지시는 없었다”고 일축했다. 화약고에 불붙인 ‘항소 포기’ 후폭풍 이재명·노만석·정성호 몽땅 도마 위로 정 장관은 지난 12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 회의에 출석해 ‘(이진수) 법무부 차관에게 대장동 사건 관련으로 어떤 지시를 했느냐’는 국민의힘 배준영 의원의 질문에 “노 검찰총장 직무대행에게 지휘권을 행사할 수도 있으니 항소를 알아서 포기하라는 지시를 한 적이 없다”고 답했다. 이어 정 장관은 총 3번 정도 대장동 사건에 관해 이야기했다고 언급하며 “(두 번째인) 11월6일 목요일에는 국회에서 예결위 종합질의가 있어 국회에 왔는데, 예결위 끝나고 대검에서 항소할 필요성이 있다고 한 의견을 들었다”며 “당시 ‘중형이 선고됐는데 신중한 판단을 해야 하지 않는가’란 정도의 이야기만 하고 돌아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다음 날인 11월7일에도 마찬가지”라며 “저녁에 예결위가 잠시 휴정돼 검찰에서 항소할 것 같다는 구두 보고를 식사 중에 받았고, 그날 저녁 예결위가 끝난 후 최종적으로 항고하지 않았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부연했다. ‘신중하게 판단하라’는 대목을 놓고 국민의힘은 “신중한 검토(판단)가 곧 항소 포기인지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며 법무부가 사실상 외압을 행사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는 “신중하게 판단하라는 이 8글자에 모든 것이 함축적으로 들어가 있다”며 “법무부 장관이 개인적인 견해임을 전제로 하며 검찰에 지시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대장동 사건 수사·공판팀을 이끌었던 일선 검사를 중심으로 반발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다. 김영석 대검찰청 감찰1과 검사는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를 통해 “검찰 역사상 일부 무죄가 선고되고 엄청난 금액의 추징이 선고되지 않은 사건에서 항소 포기를 한 전례가 있었나”라며 이번 결정으로 대장동 일당 등 민간업자에게 수천억원 상당의 범죄수익이 돌아간 점을 꼬집었다. 대장동 사건의 수사·공판팀을 이끌었던 강백신 대구고검 검사도 “항소 포기로 남욱·정영학을 상대로는 범죄수익을 단 한 푼도 환수할 수 없게 됐고, 김만배를 상대로는 당초 예상 금액의 1/10에 불과한 금액만 추징 선고가 이뤄졌음에도 이를 묵과할 수밖에 없게 됐다”고 지적했다. 기막힌 타이밍 검찰 안팎에서 책임론이 확산하자 결국 노 대행은 항소 포기 논란이 불거진 지 닷새 만에 사의를 표명했다. 그러자 일선 검사들은 ‘검찰총장 권한대행께 추가 설명을 요청드린다’는 제목의 글을 통해 항소 포기 과정에 대한 상세 설명을 요구하는 입장문을 냈다. 해당 입장문은 박재억 수원지검장을 비롯해 ▲박현준 서울북부지검장 ▲박영빈 인천지검장 ▲박현철 광주지검장▲임승철 서울서부지검장 ▲김창진 부산지검장 등 검사장 18명 명의로 작성됐다. 이들은 “서울중앙지검장은 명백히 항소 의견이었지만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항소 포기 지시를 존중해 최종적으로 공판팀에 항소 포기를 지시했다”며 “검찰총장 권한대행을 상대로 항소 의견을 관철하지 못하고 책임지고 사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면 검찰총장 권한대행이 어제 배포한 입장문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의 항소 의견을 보고받고 법무부의 의견도 참고한 뒤 해당 판결의 취지 및 내용, 항소 기준, 사건의 경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며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책임 하에 서울중앙지검장과 협의를 거쳐 숙고 끝에 항소 포기를 지시했다는 것”이라고 짚었다. ▲하담미 수원지검 안양지청장 ▲최행관 부산지검 동부지청장 ▲신동원 대구지검 서부지청장 등 8개 대형 지청을 이끄는 지청장들도 집단 성명을 냈다. 이들은 “이번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 지시는 그 결정에 이른 경위가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면 검찰이 지켜야 할 가치, 검찰의 존재 이유에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상처를 남기게 될 것”이라며 “그간 중앙지검장과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입장문, 법무부 장관의 설명만으로는 항소를 포기한 구체적 경위가 설명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법적·행정적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 정치 검사들의 반란을 분쇄하겠다”며 검찰의 집단 반발을 ‘항명’이라고 규정하고 이에 대한 징계를 예고했다. 현재 일반 공무원은 6단계 징계 처분(파면·해임·강등·정직·감봉·견책)이 가능하지만, 검사는 파면에 해당하는 징계 규정이 없다. 검사에 대한 징계는 검사징계법에 따라 이뤄지는데, 이를 ‘검사 특혜법’이라고 지적하며 폐지하겠다는 설명이다.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는 “정치 검사들의 반란에 철저하게 책임을 묻겠다”며 사실상 검찰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김 원내대표는 “정 법무부 장관께 강력히 요청한다. 항명 검사장 전원을 즉시 보직 해임하고 이들이 의원면직하지 못하게 징계 절차를 바로 개시하라”며 “항명에 가담한 지청장과 일반 검사들도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이후 김 원내대표가 검사징계법 폐지 법률안·검찰청법 개정안을 각각 국회에 제출하면서 사실상 검찰 징계는 당론으로 추진될 전망이다. 항소 포기 논란 이후 박재억 수원지검장에 이어 송강 광주고검장이 연달아 사의를 표명했지만 민주당은 “사표를 수리하지 말고 징계 절차를 밟아야 한다”며 퇴로를 막았다. 항명? 투쟁? 법무부 내부에서 집단행동에 나선 일부 검사장을 대상으로 평검사 보직이동을 하거나 국가공무원법 위반 등으로 형사 처벌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지면서 또 다른 문제가 불거졌다. 검찰 측에서는 “보복용 강등”이라는 거센 반발이 나오지만 법무부는 “검사장은 직급이 아닌 보직”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강등·징계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검사장의 집단행동을 비판하며 징계의 타당성을 주장했지만, 일선 검사들은 항소 포기 판단 경위에 대해 추가 설명을 요청한 것이 어떻게 항명이냐며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상황이다. 그동안 민주당 의원들이 앞다퉈 일선 검사장을 향해 “빨리 나가라”고 윽박지르던 것과 달리 최근 지도부는 숨 고르기에 돌입한 모양새다. 국민의힘이 계속해서 이정부와 대장동을 엮어 공격하는가 하면, 이 대통령의 UAE(아랍에미리트) 순방 성과가 묻힐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톤 조절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김병기 원내대표는 이 대통령이 순방을 떠난 17일부터 이틀간 공개 석상에서 검사 항명, 징계 등 관련 현안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 등 일부 최고위원이 내란전담재판부 도입을 주장했으나 당은 “지도부 차원의 의견은 아니”라며 거리를 뒀다. 정 법무부 장관 역시 지난 18일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검사장 징계 검토 관련 질문에 “어떤 것이 좋은 방법인지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건 국민을 위해 법무부나 검찰이 안정되는 것”이라며 신중한 자세를 택했다. 낮은 볼륨을 유지하는 지도부와 달리 의원 개개인의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다. 민주당 김현정 원내대변인은 한 라디오를 통해 정 법무부 장관의 ‘검찰조직 안정’ 발언에 대한 질문에 “아무 일 없었던 듯이 넘어가는 것이 조직의 안정을 위해서 도움이 되는 방법은 아니”라고 답했다. 이어 “정 법무부 장관은 법무부와 검찰 전체를 총괄하는 수장이기 때문에 고민이 있으신 것 같다”면서도 “다만 중요한 것은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현재 민주당이 내세우는 원칙은 항명 검사에 대한 징계로, 그 원칙을 지키는 것이 국민 여론이라는 발언으로 해석된다. 몰아붙이던 지도부 잠시 숨 고르기 이제는 각개전투…검사들도 ‘부글’ 민주당이 다수 석을 차지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에서는 ‘집단 항명 검사장 18인’ 전원을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항소 포기 결정에 반발하는 검사장 18명을 겨냥해 “헌정 질서의 근본인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과 검찰조직의 지휘 감독체계를 정면으로 무너뜨린 사건”이라고 비판하며 법적 조치에 나선 것이다. 지난 19일 법사위 여당 간사인 김용민 의원은 조국혁신당·무소속 의원과 함께 기자회견을 통해 이같이 밝히며 “검찰의 집단 항명은 정치적 집단행동으로 헌정 질서를 훼손하는 중대 범죄”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들의 행동은 단순한 의견 개진이 아니었으며 법이 명백히 금지한 공무의 집단행위, 즉 집단적 항명”이라고 규정했다. 이어 “피고발인 18명은 모두 각 검찰청을 대표하는 검사장급 고위 공무원으로서 정치적 중립성이 누구보다 강하게 요구되는 위치에 있다”며 “그런데 이들은 서로 합의해 공동성명을 작성하고 이를 동시에 내부망과 언론에 공개했다. 이는 다수가 결집해 실력으로 주장을 관철하려는 집단적 압력 행위”라고 말했다. 민주당의 압박이 거세지자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의 임기가 끝난 뒤 검사들이 반격에 나설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권력이 교체됨에 따라 검사의 태도 역시 손바닥 뒤집듯 바뀌고, 만일 보수 세력에게 정권이 넘어갈 경우 검사의 날이 다시 이 대통령을 향할 것이란 점에서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내년 10월 해체 예정인 검찰청이지만 막강한 권력을 지니던 시절의 관행을 버리지 못한다면 이들을 중심으로 정치 검찰의 모습을 한 또 다른 집단이 탄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대통령실은 “검사 인사권은 법무부에 있다”며 이번 사안에 직접 개입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논란의 중심으로부터 최대한 거리를 유지하며 대통령실이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았다는 점을 부각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 민주당 관계자 역시 “‘대통령실 외압’은 궁지에 몰린 국민의힘의 프레임”이라며 “만약 5년 뒤에 검찰이 반기를 들면 그때는 (이 대통령의 거취를) 국민 여론에 맡기면 된다. 지난 몇 년간 수십번의 압수수색과 조사가 이뤄졌고, 그 결과를 전부 국민이 지켜봤다”고 설명했다. 피바람 과도기 이 모든 과정을 놓고 최요한 정치 평론가는 “과도기”라고 설명했다. 최 평론가는 <일요시사>를 통해 “검찰이 하나의 권력으로 등장해 민주주의를 유린했다. 그 대상을 개혁하는 일은 굉장히 어려운 문제고, 이정부는 그걸 시스템으로 헤쳐나가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어 “개혁은 혁명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혁명은 싹을 자르면 되지만 그건 민주주의가 아니”라며 “검사 징계, 검찰개혁을 놓고 같은 진보라 하더라도 결이 다르지 않나. 다양한 논의와 의견을 두들겨 맞춰서 하나의 안을 만드는 게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개혁안은 보수도 일정 정도 동의를 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시스템 개혁이라는 건 단칼에 두부처럼 잘리는 게 아닐뿐더러 이정부가 끝날 때까지 (개혁을) 시도하는, 많은 시간이 걸리는 일일 수도 있다”고 부연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