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친문의 ‘시한부 동거’ 내막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20.09.07 10:22:28
  • 호수 128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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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릴 수도…품을 수도…동상이몽 끝은?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이변은 없었다.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가 압도적인 득표로 당선됐다. ‘어대낙’(어차피 대표는 이낙연)은 현실이 됐다. 정치권 일각에선 친문(친 문재인)의 지지를 이 대표 낙승의 주요 요인으로 지목한다. 친문의 지지는 대권까지 노리는 이 대표에게 필수적이다. 그러나 이낙연-친문의 관계가 ‘시한부’라는 의견도 적지 않다. 이유는 무엇일까. 
 

▲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낙연 대표는 자신이 여권의 가장 유력한 대권주자 중 한 명이란 것을 증명해냈다.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서 진행된 민주당 제4차 정기전국대의원대회서 이 대표는 60.77%의 총 득표율을 기록했다. 당 대표 자리를 두고 맞붙었던 같은 당 김부겸 전 의원(21.37%), 박주민 의원(17.85%)을 압도했다.

권리당원
힘 받아

세부적으로 보면 이 대표는 45%의 비율이 반영된 전국대의원 투표서 57.20%를 얻었다. 40%가 반영된 권리당원 투표에선 63.73%, 10% 반영의 국민 여론조사와 5%의 일반 당원 여론조사에서는 각각 64.02%, 62.80%를 득표했다. 득표율 중 어느 것 하나 과반 밑으로 떨어지지 않았다.

여기서 눈여겨볼 점은 전국대의원과 권리당원의 득표율이다. 이들은 민주당의 핵심 지지 세력인 친문이다. 이 대표가 친문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반면 김 전 의원은 전국대의원으로부터 29.29%, 권리당원 14.76%를 얻었으며, 박 의원은 전국대의원 13.51%, 권리당원 21.51%를 기록하는 데 그쳤다.

특히 권리당원의 표심은 당대표 선거를 넘어 최고위원 선거의 당락을 가를 정도로 영향력을 행사했다. 권리당원 득표율서 1∼5위를 기록한 최고위원 후보 모두가 당선됐다. 권리당원은 정기적으로 당비를 내는 열성 당원을 뜻한다. 


이 때문에 통상 권리당원들은 뚜렷한 정치적 색깔을 지닌 후보를 선호하는 경향을 보인다. 민주당 권리당원의 수는 80만명이다. 당에 대한 충성심이 강한 이들 권리당원은 당내 주류세력을 결정할 정도로 막강한 힘을 자랑한다.

이번 8·29전당대회(이하 전대)는 ‘친문 구애’의 경연장이었다. 당 대표 및 최고위원 후보들의 입은 당 내부를 혁신하겠다는 자성의 목소리보다는 외부를 저격하는 데 주로 사용됐다. 일례로 코로나19 재확산의 단초가 된 광화문 집회와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 이하 통합당)의 연계성을 부각시키는 발언들이 쏟아졌다.

이 대표는 광화문 집회가 있은 지 이틀 후인 지난달 17일 “광화문 집회를 대하는 태도, 전광훈 목사의 이름 자체를 언급하지 않고 있는 점을 보면 (통합당의 좌클릭이) 진짜인가 의심스럽기도 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달 26일 KBS라디오 ‘김경래의 최강시사’와의 인터뷰에선 정부여당이 공포를 조장한다는 통합당의 주장을 겨냥해 “오히려 그것을 비호하는 듯한 것이 공포스러운 것 아니냐”고 일갈했다.

이변 없었다…압도적 1위
당 요직에 친문 논공행상?

후보자들의 ‘윤석열 검찰총장 때리기’는 이번 전대 일정 내내 이뤄졌다. 이 대표는 “잊을만 하면 직분의 경계를 넘나든다. 그런 일 좀 없었으면 좋겠다”고 경고했고, 김 전 의원은 “윤 총장은 임명권자인 문재인 대통령에게 누가 되지 않도록 행동이나 말을 조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당시 최고위원 후보였던 민주당 이원욱 의원은 ‘개가 주인을 무는 꼴’이라는 표현을 써가며 윤 총장을 저격했다. 권력을 탐하는 윤 총장을 끌어내리고 검찰 개혁을 완수해야 한다는 메시지도 전했다.


지난달 9일에는 “문재인정부의 순항과 성공을 위해 전체주의, 독재와 같은 비난을 일삼는 윤 총장 같은 사람들은 뽑혀 나가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마찬가지로 최고위원 후보였던 노웅래 의원 역시 “(윤 총장은)본연의 업무를 사실상 포기했다”며 “저런 정치검찰에 대해선 확실한 철퇴를 가해야 한다. 우물쭈물해선 안 된다”고 강조한 바 있다. 김종민·한병도 당시 최고위원 후보 등 이른바 친문 인사들도 윤 총장을 비판하는 데 열을 올렸다.
 

▲ 당기 흔들어보이는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

당내에선 지나친 친문 구애에 우려를 표하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민주당 조응천 의원은 지난달 17일, 당 대표 및 최고위원 후보들에 대해 “‘관심’이 없고 ‘논쟁’이 없고 ‘비전’도 없다”며 “몇몇 주류 성향의 유투브, 팟캐스트에는 못 나가서 안달들이고, 이름만 가려 놓으면 누구 주장인지 구분할 수도 없는 초록동색의 주장들만 넘쳐나고 있다”고 밝혔다.

결과적으로 친문 구애는 성공적이었다. 이 대표는 권리당원의 힘을 등에 업고 176석 공룡여당의 대표로 선출됐다. 선출직 최고위원 5개 자리는 김종민·노웅래·신동근·양향자 의원과 염태영 수원시장에게 돌아갔다. 권리당원 득표율이 가장 높았던 5명이다.

계파색이 옅은 노 의원을 제외하면 모두 친문 인사로 분류된다. 신 의원은 전대 기간 동안 여당의 공격수를 자처했다. 민주당을 비판하는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나 야당 의원들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또 문 대통령과의 인연을 강조하며 검찰 개혁 등 권력기관 개혁 추진에 적극적인 목소리를 냈다.

당청 관계
이상무!?

양 의원은 핵심 친문 중 한 명인 최재성 청와대 정무수석이 의원이던 시절 영입한 인사다. 최 수석과 개인적으로도 자주 소통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향후 당청 소통의 핵심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기대된다. 양 의원은 자신의 소명이 문정부의 핵심 과제인 한국판 뉴딜정책의 성공이라고 밝힌 바 있다.

김 의원과 기초지방자치단체장으로서 민주당 지도부에 최초로 입성한 염 시장 또한 민주당 내 대표적인 친문 인사로 꼽힌다.

이 대표를 필두로 새롭게 구성된 지도부는 이해찬 전 대표 체제보다 친문색이 더욱 강해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들은 임기 후반기로 접어든 문정부의 성공적 마무리와 정권 재창출을 위해 한 목소리를 낼 전망이다.

이 대표는 당선 이후 친문 인사들을 요직에 앉혔다. 친문 핵심인 박광온 의원을 당 사무총장에, 노무현정부 청와대 행사기획 비서관과 문정부 청와대 민정비서관을 거친 김영배 의원을 정무실장에 인선했다. 또 부산 친문 핵심인 재선의 최인호 의원을 수석대변인으로 발탁했다.

이 대표와 친문의 동거가 시작된 것이다. 당내 지지기반이 약하다는 점과 호남 출신이라는 지역적 한계는 이 대표의 약점으로 꼽힌다. 이 대표는 친문과의 동거를 통해 당내 지지기반이 약하다는 하나의 약점을 상쇄해야만 대권에 보다 가까워진다.


정치권에선 이 대표가 향후에도 핵심 친문으로 편입되기는 힘들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과거 열린우리당 사태 때문이다. 지난 2003년 11월 친노는 민주당을 구태의연한 정치세력으로 규정하며 한나라당 개혁파들을 규합, 열린우리당을 창당했다. 그러자 동교동계가 중심인 민주당은 한나라당, 자유민주연합과 연합해 노무현 당시 대통령의 탄핵을 주도했다.

결국 탄핵은 이뤄지지 않았지만, 후로도 앙금은 계속됐다. 20대 총선을 앞둔 2016년 3월 동교동계는 안철수 전 의원을 중심으로 한 국민의당에 대거 합류했다. 이는 호남 세력이 민주당을 떠나는 결과를 불러왔고, 친노가 주류가 된 민주당은 20대 총선에서 호남 참패를 맞았다. 동교동계의 정치적 뿌리는 호남이다.

이 대표는 동교동계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DJ)과의 인연으로 정치에 입문했다. ‘이낙연계’의 면면을 보면 이 대표의 열성 지지층이 동교동계와 전남에 포진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대표의 측근인 민주당 설훈 의원은 동교동계 막내 격이며, 이개호 의원은 전남 담양·함평·영광·장성서만 3선을 했다.

지역적 한계
뛰어넘나?

친문과의 동거는 호남 출신이라는 이 대표의 지역적 한계 역시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는 수단이다. 역대 호남 출신 대통령은 DJ가 유일하다. 이후 4번의 대선이 치러졌지만, 호남 출신 대통령은 탄생하지 않았다. 대권주자마저도 가뭄이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과 대결해 패배한 민생당 정동영 전 의원이 DJ 이후 유일한 호남 출신 대권주자였다.

‘호남 후보 필패론’은 정치권의 오랜 공식이다. 호남의 인구는 영남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현실적으로 호남 표심만으로는 대권을 잡을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DJ 역시 충청의 맹주인 자유민주연합 김종필 총재와 DJP연합을 결성한 후에야 대권을 쥘 수 있었다. 호남 출신 대권주자에게는 ‘플러스 알파’가 필요하다는 사실이 역사적으로 검증된 것이다. 이 대표에게 플러스 알파는 친문이다.
 

▲ 발언하는 이재명 경기도지사

친문과의 동거는 양날의 검이다. 이 대표의 약점을 상쇄할 수도 있지만, 중도 외연 확장에 장애가 될 수도 있다.

정치권은 이 대표가 당정청 ‘원팀’ 기조를 유지하며 당내 친문 세력을 아우를 것이라는 분석에 무게를 싣는다. 문정부 초대 국무총리 출신인 이 대표의 대권주자 선호도는 문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도와 운명을 함께한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가 지난달 30일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와의 대담서 “이 대표는 친문에 얹혀갈 것이다. 문재인 시즌 2정도로 전망이 밝지 않다”며 “차기 주자들도 당분간 저쪽(친문)의 눈도장을 받아야 한다. 강성 친문에게 예쁨 받을 소리만 하는데 대안이 없다”고 내다봤다.

문정부는 강한 개혁 드라이브를 걸었다. 부동산 대책과 검찰개혁이 대표적이다. 이 대표는 전대 기간 동안 이들 정부 정책에 전적으로 힘을 실어줬다. 

정부의 8·4 부동산 대책 시행 이후 부동산 시장의 동향에 대해 “안정화의 길로 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는 8·4 부동산 대책이 효과를 보고 있다는 노영민 대통령비서실장과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의 앞선 평가와 일치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일부 민주당 친문 의원들이 윤 총장을 압박하는 과정에서도 이 대표는 “(윤 총장은) 잊을 만하면 직분의 경계를 넘나든다”며 그들에게 힘을 실어줬다.

외연 확장 걸림돌
김경수 돌아온다면?

반면 친문은 이 대표를 전략적으로 선택했다는 분석이 정치권의 중론이다. 마땅한 친문 대권주자가 없는 상황에서 대중에게 가장 인기 있는 이 대표를 이번 전대에서 밀어줬다는 분석이다.

친문 대권주자가 보이지 않는다. 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군으로는 이낙연·이재명·김경수·정세균·김부겸 등이 꼽힌다.

친문 적통이라고 불릴 만한 후보는 김경수 경남도지사가 유일하다. 문 대통령이 당선됐던 지난 2017년 대선에서 김 지사는 인수위원회 역할을 할 국정기획자문위원(기획분과)으로 임명됐다. 당시 김 지사가 몸담았던 기획분과는 해당 위원회서 정책 총괄을 맡는 등 중추적인 자리였다.

그가 차기 대권에 주자로 나설지는 미지수다. 드루킹 사건으로 불리는 ‘댓글 조작 사건’을 공모한 혐의로 기소돼 2심 재판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허익범 특별검사팀은 2심 선고를 앞두고 김 지사에게 징역 총 6년의 실형을 구형했다. 

특검은 “원심 공판서 피고인(김 지사)이 2017년 대통령 선거와 2018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불법적 여론조사 행위에 관여하고 선거 공정성을 해친 과정이 명확하게 드러났으며, 국민의 정치적 결정을 왜곡하는 중대한 위법 행위가 발견됐다”고 주장했다. 2심 선고는 오는 11월6일에 이뤄진다.
 

▲ 김경수 경남도지사

재판 결과에 따라 김 지사의 정치적 미래가 결정될 예정이다. 앞서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사법족쇄’를 풀어냈다. 대법원은 이 지사의 허위사실 공표 혐의에 대해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 판결을 내렸다.

이 지사는 이 대표와 대권주자 선호도 1위를 다투고 있다.

여론조사업체 ‘리얼미터’가 <오마이뉴스>의 의뢰로 지난달 24∼28일 실시하고 지난 1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 대표는 24.6%를 기록하며 1위를, 이 지사는 23.3%로 2위를 차지했다. 두 후보의 격차는 1.3%포인트로 오차 범위 내였다. 지난달 조사에 비해 이 대표는 1%포인트 하락, 이 지사는 3.7%포인트 오른 결과다(자세한 조사 결과는 리얼미터나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사법 족쇄
푼다면…

막상막하의 양강구도다. 여기에 더해 김 지사 역시 사법 족쇄를 풀어낸다면, 민주당 대권구도는 삼각구도로 재정립될 공산이 크다. 2심 선고 전임에도 부산 지역 친문을 중심으로 ‘김경수 대권 플랜’이 거론된다. 친문의 선택이 이낙연·이재명·김경수 중 누구에게 돌아갈지 관심이 모아진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이낙연 세 번째 코로나 검사, 왜?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가 세 번째 코로나19 진단검사를 받았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 예방 시 같이 있었던 이종배 정책위의장의 비서가 코로나19 확진판정을 받으면서 격리조치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이 같은 소식이 전해지자 곧바로 집으로 돌아갔다.

앞서 이 대표는 지난 2월 코로나19 확진자와 동선이 겹치거나 간접 접촉한 것으로 드러나 검사를 받았다.

8·29전당대회를 앞두고는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 확진자와 밀접접촉자로 분류돼 2주간 자가격리를 했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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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