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 VS 재력’ 검찰-삼성 파워게임 막전막후

서초동에 역풍이 불고 있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검찰이 청구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영장이 기각됐다. 검찰은 4년 동안 3번에 걸쳐 이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결과는 1대 1 무승부. 검찰과 삼성은 이번 영장 기각을 두고 각각 손익계산에 분주한 모습이다. 
 

▲ 이재용 삼성그룹 부회장 ⓒ고성준 기자

지난 4일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형사부(이복현 부장검사)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최지성 옛 삼성 미래전략실장, 김종중 옛 미전실 전략팀장 등 3명에게 자본시장법상 시세조종·부정거래, 주식회사외부감사법 위반 등의 혐의를 적용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기각 사유에
해석 엇갈려

이 부회장 등 3명은 2015년 5월 이사회의 합병 결의 이후 호재성 정보를 집중적으로 띄워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주가를 동시에 부양하는 등 합병 전후 두 회사 주가를 조작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같은 해 연말 삼성바이오로직스의 4조5000억원대 회계사기 혐의 역시 모회사 제일모직의 가치를 부풀려 이 부회장에게 유리하게 진행된 합병을 사후적으로 정당화하기 위한 목적이었다고 의심한다. 

법원은 3명에 대해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원정숙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지난 8일 이들의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하고 9일 오전 2시경 “불구속재판의 원칙에 반해 피의자들을 구속할 필요성 및 상당성에 관해서는 소명이 부족하다”고 밝혔다. 


원 부장판사는 “기본적 사실관계는 소명됐고 검찰은 그간의 수사를 통해 이미 상당 정도의 증거를 확보한 것으로 보인다”며 “이 사건의 중요성에 비춰 피의자들의 책임 유무 및 그 정도는 재판 과정서 충분한 공방과 심리를 거쳐 결정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된다”고 덧붙였다. 

이 부회장의 구속영장 기각 소식이 전해지자 검찰과 변호인단은 각각 입장을 내놨다. 서울중앙지검은 구속영장 기각 직후 “본 사안의 중대성, 지금까지 확보된 증거자료 등에 비춰 법원의 기각 결정을 아쉽게 받아들인다”는 입장을 냈다. 그러면서도 “영장재판 결과와 무관하게 법과 원칙에 따라 향후 수사에 만전을 기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부회장 측 변호인단은 “기본적 사실 관계 외에 피의자들의 책임 유무 등 범죄혐의가 소명되지 않았고 구속 필요성도 없다는 취지”라며 “향후 검찰 수사 심의 절차서 엄정한 심의를 거쳐 수사 계속과 기소 여부가 결정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법원과 삼성에 한 방 먹은 검찰
영장청구 기각·수사심의위 소집

삼성은 총수 구속이라는 최악의 사태는 피했다는 입장이다. 회사 경영 차원서 이 부회장이 불구속 상태로 진실을 가릴 수 있게 돼 다행으로 여기는 분위기다. 

검찰과 삼성은 검찰 수사심의위원회 소집 여부를 두고 지난 11일 또 한 번 부딪혔다. 앞서 이 부회장은 기소 타당성을 판단해 달라며 지난 2일 검찰 수사심의위원회 소집을 신청했다. 외부 전문가들에게 기소·불기소 여부를 심의해 판단을 내려달라는 취지다. 이 제도는 지난 2018년 초 검찰서 도입했다.

대검 산하의 검찰 수사심의위는 수사의 계속 여부, 기소 또는 불기소 여부, 구속영장 청구 및 재청구 여부를 판단하고, 기소 또는 불기소된 사건의 적정성·적법성 등을 평가한다. 수사심의위의 결정은 권고적 효력만 갖기 때문에 검찰이 반드시 따를 필요는 없지만, 검찰은 제도 시행 이후 지금까지 열린 8차례 수사심의위 권고를 모두 따랐다.  
 

▲ 윤석열 검찰총장

검찰 수사심의위는 운영 지침에 따라 우선 검찰 시민위원회를 열어 소집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서울중앙지검은 이 부회장 등의 수사심의위 소집 신청에 따라 ‘부의심의위원회’를 개최했다. 수사심위의가 개최되려면 신청서를 접수한 서울중앙지검이 먼저 무작위 추첨을 통해 선정한 15명의 검찰시민위원으로 부의심의위를 구성해야 한다. 부의심의위는 이 부회장 등 사건을 수사심의위에 올릴지 여부를 결정하는 첫 관문이라고 보면 된다.

검찰 시민위원회가 추첨을 통해 선정한 15명의 부의심의위원들은 교사와 전직 공무원, 택시기사, 자영업자 등 일반 시민들로 구성됐다. 심의위원들은 부의심의위에서 검찰과 변호인단 측의 의견서를 받아보고 이 부회장 등에 대한 검찰 수사심의위 소집이 필요한지 여부를 논의했다. 

각각의 의견서 분량은 A4용지 30쪽 이내로 정해져 있다. 글자 크기는 12포인트 이상, 줄 간격은 200 등 규격화된 양식이 존재한다. 부의심의위에서는 별도로 의견을 진술하는 절차가 없기 때문에 양측의 의견서가 심의위원들을 설득할 유일한 자료다. 부의심의위원들은 이 부회장 등 3명의 신청인과 검찰이 준비한 약 120쪽 분량의 의견서를 검토했다.

부의심의위
삼성 손들어

서울중앙지검 검찰 시민위원회는 부의심의위서 이 부회장 사건을 검찰 수사심의위에 넘기는 안건을 부의심의위원 15명 가운데 과반수 찬성으로 가결했다고 밝혔다. 부의심의위는 지난 11일 오후 2시부터 오후 5시40분까지 3시간40분 동안 서울중앙지검 소회의실서 진행됐다.  

부의심의위원들은 사건의 중대성과 국민적 관심 등에 비춰볼 때 기소의 타당성에 대해 수사심의위를 통해 충분히 소명할 시간을 부여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국민의 알 권리와 인권 보호의 필요성, 사안의 중대성 등을 고려할 때 수사심의위 소집이 필요하다는 삼성 측 의견을 수용한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이미 장기간의 수사로 충분한 증거를 확보해 기소가 불가피하기 때문에 수사심의위 소집이 필요하지 않다는 의견을 제시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관련 규정에 따르면 사건 관계인의 수사심의위 소집 요청을 부의심의위가 받아들이면 수사심의위의 권고 사항을 따르는 것과는 별개로 반드시 소집해야 한다. 

부의심의위의 결정에 삼성은 일단 안도와 기대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삼성 측 변호인단은 이날 입장문을 내고 “국민들의 뜻을 수사 절차에 반영할 필요가 있다는 부의심의위 결정에 감사드린다”며 “앞으로 열릴 검찰 수사심의위 변론 준비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검찰은 부담스러운 결과를 받게 됐다. 만약 수사심의위 결과 불기소 권고가 나왔는데도 불구하고 기소할 경우 비판 여론이 확산될 수 있다. 검찰이 개혁 차원서 스스로 만든 제도의 권고사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비판에 직면할 가능성이 있는 것.
 

반대로 검찰이 이번 사건과 관련해 장기간 수사를 진행했고 이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한 이상 기소를 피하긴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이 부회장의 검찰 수사심의위 소집 요청,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 부의심의위 등 검찰과 삼성의 격돌이 계속되고 있다. 특히 지난 4년 동안 3차례에 걸쳐 이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데 관여했던 윤석열 검찰총장, 이복현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형사부장과의 인연에 관심이 쏠린다. 이 부장검사는 윤 총장 라인의 ‘막내’로 알려져 있는 특수통이다.

이 부장검사는 2016년 말 박근혜-최순실 국정 농단을 수사한 박영수 특별검사팀에 파견됐다. 서울대 경제학과 출신으로 금융수사 관련 전문성을 갖고 있던 그는 특검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등 삼성 지배구조 변화와 관련해 불법적 요소가 있는지를 집중적으로 파고들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특수통 막내
삼성 잡을까

그는 지난해 8월 서울중앙지검 특수4부 부장검사로 부임해 특수2부 부부장검사 때 진행하던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사건을 본격적으로 수사하기 시작했다. 그 뒤 특수부가 줄어들며 경제범죄형사부로 명칭이 바뀌었지만 이 부장검사와 수사팀은 그대로 남아 지금까지 삼성바이오 수사를 이어오고 있다. 4년 전 국정 농단 사태 때부터 지금까지 악연이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2017년 1월 특검은 이 부회장에게 뇌물공여,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국회에서의증언·감정에관한법률 위반(위증) 등 혐의를 적용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하지만 조의연 당시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특검이 청구한 영장을 기각했다. 

조 판사는 “뇌물 범죄의 요건이 되는 대가관계와 부정한 청탁 등에 대한 현재까지의 소명 정도, 각종 지원 경위에 관한 구체적 사실관계와 그 법률적 평가를 둘러싼 다툼의 여지, 관련자 조사를 포함해 현재까지 이뤄진 수사 내용과 진행 경과 등에 비춰 볼 때, 현 단계서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기각 사유를 밝혔다. 

법원의 영장 기각으로 한 차례 고배를 마신 특검팀은 보강수사 끝에 이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재청구했다. 1차 청구 때와 비교해 재산국외도피와 범죄수익은닉 혐의를 추가했다.

당시 한정석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판사는 “새롭게 구성된 범죄혐의 사실과 수집된 증거자료 등을 종합할 때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이 인정된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이 부회장은 2017년 2월17일 삼성그룹 사상 실제 구속된 첫 그룹 총수로 기록됐다. 
 


이후 1심서 징역 5년형을 받고 복역하던 이 부회장은 항소심서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고 2018년 2월5일 석방됐다. 구속된 지 353일만이었다. 항소심 재판부는 이 부회장이 뇌물을 주긴 했지만 겁박당한 피해자로 봤다. 국정 농단의 주범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이라는 판단이다. 

삼성 한숨 돌렸지만
파기환송심 어떻게?

하지만 지난해 8월 대법원은 박 전 대통령과 최순실, 이 부회장이 관련된 국정 농단 사건을 다시 심리하라며 파기환송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박 전 대통령에게 징역 25년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파기환송 하급심으로 돌려보냈다. 또 이 부회장에게 징역 2년6월 집행유예 4년을 선고하고, 최씨에게 징역 20년을 선고한 원심 판결도 파기환송했다. 

대법원은 2심서 말 구입료가 아닌 말 사용료 부분만 뇌물로 인정한 것을 말 3마리(34억원)에 대해 뇌물이라고 판단했다. 또 2심서 뇌물로 인정되지 않았던 동계스포츠영재센터 지원금 16억원도 뇌물로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삼성에 경영 승계 작업이라는 포괄적 현안이 존재하는 만큼 대가관계가 인정된다고 본 것이다. 

지난 11일 대법원 2부(주심 안철상 대법관)는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의 혐의로 기소된 최순실의 재상고심서 징역 18년에 벌금 200억원, 추징금 63억3676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이로써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에 대한 판결이 확정돼 사실상 국정 농단 사태의 실체가 확인된 상황서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에 대한 판단만 남겨놓게 됐다. 

최씨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나온 이후 특검과 대검은 이 부회장을 언급했다.

특검은 선고 직후 입장문을 통해 “판결을 존중한다. 3년7개월이라는 장기간 수사와 재판을 통해 국정 농단의 실체적 진실이 규명되고 처벌이 확정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며 “파기환송심이 진행 중인 이 부회장 등 뇌물공여자에 대한 공소유지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대검도 “국정 농단의 핵심 사안에 대해 기업인의 승계 작업과 관련된 뇌물수수 등 중대한 불법이 있었다는 사실이 최종 확정된 점에 큰 의미가 있다”며 “앞으로 진행될 관련 사건들도 책임자들의 죄에 상응하는 형을 선고받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부회장의 파기환송심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풀이된다. 

최순실 선고
다음은 이재용

이 부회장은 지난달 6일 경영권 승계와 노조 문제 등에 대해 대국민사과를 했다. 하지만 이 부회장의 사과가 국정 농단 사태 파기환송심서 실형이 아닌 집행유예를 받기 위한 노림수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 삼성 준법감시위원회가 권고하고 이를 받아들인 일련의 흐름이 파기환송심 재판부가 법정서 요구한 내용과 들어맞기 때문이다. 이 부회장의 파기환송심을 맡은 서울고법 형사 1부는 지난해 10∼12월 공판서 내부 준법감시제도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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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