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공명지조’ 2019 정치판

단 한 번도…협치는 없었다

[일요시사 정치팀] 설상미 기자 = 올해의 사자성어로 ‘공명지조(共命之鳥)’가 선정됐다. 상대방을 죽이면 결국 함께 죽는다는 뜻으로 극한 대립 끝에는 모두가 공멸하게 된다는 의미다. 2019년은 어떤 해보다 계층·이념·세대의 대립이 선명했던 해다. 많은 이들에게 생채기를 남겼던 한 해의 사건들을 <일요시사>가 톺아봤다.
 

<교수신문>은 한 해의 사회상을 담은 올해의 사자성어로 ‘공명지조(共命之鳥)’를 선정했다. 정치권이 양극으로 나뉘어 싸우는 것도 모자라 국민들까지 분열돼버린 우리나라의 현주소를 지적한 것이다.

민주주의의 정당정치의 탄생은 유권자들의 분열에 기반한다. 다만 분열에 그쳐서는 안 된다. 이해관계의 갈등을 조정하기 위한 통합과 협치가 필요하다. 정치인이 갈등을 봉합하지 못하면 민심은 요동치고 다름에 대한 혐오만 확산될 뿐이다.

조국 정국
세대 갈등

문재인정부가 출범한 지 2년이 지났다. 촛불정국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된 후 문정부가 출범하면서 ‘촛불 세력’으로 정치권은 채워졌다. 하나둘씩 제자리를 찾아가는 듯 했으나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좌파정권’ ‘광주일고 정권’과 같은 용어로 이념몰이, 지역감정 등을 조장하는 정치가 일상이 됐다.

2019년에 국민들이 분열된 발화지는 크게 ▲패스트트랙 지정 법안 ▲지소미아 파기 ▲조국 정국으로 나뉜다. 최근에는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검찰 개혁안과 선거제 개정안을 둘러싸고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정치권과 민심이 갈라졌다. 또 공정과 평등을 내세우는 진보세력의 대표주자였던 조국 전 법무부장관 자녀의 입시비리 의혹은 ‘586세대’(50대, 80년대 학번, 60년대생)와 2030청년들의 세대간 갈등으로 확산되기도 했다.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은 최근 극우 세력인 태극기 부대를 등에 업고 강경한 대여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16일 여의도 국회 본청 앞은 극우 세력인 우리공화당 지지자들의 침탈로 아비규환이 됐다. 당초 한국당은 이날 국회 본청 로텐더홀서 ‘공수처(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선거법, 2대 악법 날치기 저지’ 규탄대회를 열 계획이었다.

태극기부대는 국회 앞에서 북과 꽹과리를 치며 “좌파 독재 막아내자”며 연일 구호를 외쳐댔다. 국회 사무처는 오전 10시쯤부터 국회 출입구를 봉쇄했지만 집회 참가자들을 경내로 들어오게 해달라는 한국당의 항의로 인해 이들의 경내 진입을 허용했다.

태극기와 성조기를 든 집회 참가자들이 국회 앞마당에 쏟아지면서 본청 계단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이들은 “날치기 공수처법 사법장악 저지하자” “날치기 선거법 좌파 의회 막아내자” 등의 구호를 외치며 온갖 불법행위를 자행했다.

극우세력 등에 업고 대립 부추기는 꼴
지소미아 파기, 친·반일 프레임 전쟁

정의당은 규탄대회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입었다. 선거제 개정안의 통과를 촉구하며 농성 중이던 정의당 당직자들은 집회 참가자들에 둘러싸여 폭행을 당하거나 “빨갱이 X” 과 같은 인격 모독적인 발언들을 들어야 했다.

정의당 박예휘 부대표는 “무방비 상태였던 40분 동안 당원들과 당직자들이 무차별적인 폭언과 폭력에 노출됐다”며 “정의당 배너를 무너트리고 물건을 탈취하고 머리와 얼굴에 침을 뱉고 던지고 상스러운 욕설을 서슴지 않았다. 경찰들이 에워싼 이후에도 장장 8시간 동안 경찰분들 다리 사이, 얼굴 사이로 얼굴을 내밀고서 입에 담지 못할 욕설들을 계속 퍼부었다”고 말했다.
 

국회 내에 있던 의원들이 다치는 사고도 발생했다. 집회 참가자들이 욕을 하고 밀치는 과정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설훈 의원의 안경이 날아갔다. 민주당 홍영표 의원도 시위대가 폭언을 퍼붓는 가운데 경찰의 경호를 받으며 이동해야 했다. 정의당 이정미 의원은 SNS를 통해 ‘본청서 회의를 마치고 나오는데 여러 명의 사람들이 제게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욕을 하며 달려왔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현재 민주당과 정의당은 한국당 지도부와 폭력을 행사한 집회 지지자들에 대해 고발조치한 상태다. 민주당 홍익표 의원은 “국회 역사상 이런 일은 없었다”며 "폭력이 자유로 둔갑하고, 폭력배들의 집회가 정당행사로 포장되고, 집단폭력이 당원집회로 용인되는 상황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불법 폭력집회를 주최·선동하고, 집회 참가자의 폭력을 수수방관한 황교안 대표, 폭력에 동원된 무리들이 국회에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도록 도우라고 의원들에게 지시한 심재철 원내대표, 극우 보수단체들을 동원해 폭력사태를 유도, 방조한 우리공화당 조원진 대표 등을 공모·공동정범 혐의 등으로 영등포경찰서에 고발 조치하겠다”고 밝혔다.

뜯어 말려도
모자랄 판에…

보수매체로 불리는 언론사마저 이들에게 등을 돌렸다. <조선일보>는 ‘시위대 수천명 난입, 국회 온종일 아수라장’이란 제목으로, <중앙일보>는 ‘문희상 잡으러 가자, 한국당 지지자에 국회 정문 뚫렸다’는 극우 지지자들을 비판했다.

현행법상 국회에서는 집회 및 시위를 할 수 없다. 다만 지금까지 국회의원이 참여하는 정당 행사나 정당 주최 행사는 의정활동 보장 차원서 국회 사무처가 관행적으로 묵인해왔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국회 내 벌어진 사상 초유의 폭력집회라는 역사적 오명이 남겼다.

한일갈등도 국민을 분열시키는 매개가 됐다. 문정부는 지난 8월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지소미아) 파기를 전격 발표했다. 아베정부가 지난해 대법원의 일제강점기 징용 배상 판결에 대한 보복성을 띈 한국의 화이트리스트(수출심사 우대국) 제외 방침을 발표한 후 문정부의 초강경 반격이었다.

지소미아 파기 발표 전후로 정치권에선 파기 찬반을 두고 친일·반일 프레임 전쟁이 계속됐다. 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은 지소미아 파기 반대를 주장했다. 여당과 정부를 지지하는 국민들은 집회를 열어 ‘친일매국정당 한국당 해체하라’는 피켓을 들고 집회를 열었다.
 

▲ 서울 광화문광장서 조국 전 장관 퇴진 요구를 주장하며 집회 갖는 보수단체 회원들

정치권서도 지엽적인 공방에 매몰되는 모습을 보였다. 대표적으로 민주당 이해찬 대표의 ‘사케 논란’이 있다. 보수 야당은 이 대표가 일식당서 일본 술을 마셨다며 공격에 나섰고, 민주당은 사케가 아닌 국내산 청주인 '백화수복'이라고 반박했다.

당시 한국당 나경원 전 원내대표는 “우리 당에 감히 매국이라고 했고, 국민을 친일과 반일로 나누며 반일 감정을 부추겼던 이 대표가 일식당으로 달려가 사케를 마셨다고 한다”며 “국민은 가급적 일본산 맥주조차 찾지 않고 있는 이 와중에 헛웃음이 나온다”고 했다.

정치권 내부서조차 지금 한가롭게 ‘사케냐 청주냐’를 놓고 싸울 때가 아니라는 비판이 나왔다.

대립·분열…
언제까지?

민주당의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의 보고서가 밝혀지면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일본 수출규제로 불거진 한일 갈등이 내년 총선서 민주당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민주연구원은 민주국익이 달린 사안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했다는 여론의 몰매를 피하지 못했다.


‘노재팬 운동’(일본 제품에 대한 불매 운동)도 크게 일었다. 친일과 매국이라는 이분법적 논리로 일본 제품에 대한 소비자의 선택권을 부정해선 안 된다는 불매운동 반대의 목소리도 계속 제기됐다. 노재팬 운동이 계속됨에 따라 결국 애꿎은 국내 기업과 소상공인들이 피해를 보는 결과가 나타났다. 최근 경기도시장상권진흥원은 제1호 사업으로 노재팬 간접 피해 소상공인 지원에 나선 상태다.

올해 민심이 가장 크게 갈렸던 발화점은 단연 ‘조국 정국’이었다. 조 전 장관의 후보자 지명부터 사퇴까지 66일간 정치권은 ‘조국 공방’으로 완전 마비된 상태였다.

지난 8월 대표적인 친문인사인 조 전 장관은 검찰 개혁을 성공적으로 완수할 ‘다크호스’로 부상했다. 하지만 조 전 장관 가족의 사모펀드 투자 및 자녀 입시비리 의혹이 계속해 제기되면서 검찰은 그에 대한 강도 높은 수사를 이어갔다. 검찰과 정부여당의 대립이 날로 극심해지면서 국민들도 서초동과 광화문 둘로 갈려졌다. 서초동에서는 ‘내가 조국이다’ ‘윤석열 퇴진’ ‘검찰 개혁’을, 광화문에서는 ‘문재인 퇴진’과 ‘조국 구속’을 외쳤다.

조 장관은 “되돌릴 수 없는 검찰 개혁을 완수하겠다”며 정면 돌파 의지를 밝혔지만 법무부장관 취임 35일 만에 낙마했다. 조국 정국은 여당과 문정부의 지지도 하락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각종 비위 의혹으로 인해 조 전 장관의 임명을 반대하는 응답이 절반을 넘는 여론 결과가 계속해 나타났지만 여당과 문정부는 이에 대응하지 않았다.

“같이 죽자” 공멸로 가나
이분법에 매몰된 여의도

한국당은 이 기회를 틈타 두 달간 광화문서 장외집회를 이어가며 세를 불렸다. 특히 조 전 장관 자녀의 입시비리 의혹은 청년층의 지지를 얻을 수 있는 절호의 찬스였다. 한국당은 ‘공정’을 앞세워 외연 확대에 힘을 쏟았다. 동시에 민주당은 ‘서초동 집회’를 발판 삼아 검찰 개혁을 전면에 앞세워 조국 정국 돌파에 나섰다.


총선을 앞두고 여야가 보수와 진보 양측으로 쪼개지면서 갈등을 해결하기보다는 지지층 결집에 몰두해 찬반 대립을 부추긴다는 지적이 계속됐다. 하지만 정치권에선 조 전 장관의 자진 사퇴까지 이를 이용하거나 묵인했다. 결국 정부여당과 검찰 및 야당의 대립구도가 심화되면서 민심이 사분오열돼고 국론이 갈래갈래 찢기는 결과를 초래하게 됐다.
 

▲ 패스트트랙으로 대치 중인 여야 ⓒ사진공동취재단

특히 조국 정국은 수면 아래에 가라앉아 있던 ‘세대갈등’을 끌어올렸다. 조국 정국서 제기된 세대 담론은 586 세대로 지칭된 특정 세대에 집중됐다. 조 전 장관은 진보진영의 대표주자다. 도덕적 구설과 논란에 휩싸인 그를 주도적으로 옹호한 것도 청년층이 아닌 대부분 같은 세대에 속한 사람들이었다. 2016년의 촛불 집회 때와 달리 서초동 집회에선 청년보다 중장년층이 압도적으로 눈에 띈 점이 이를 방증한다.

학생운동을 직간접으로 경험하며 민주화운동을 했던 586세대는 조 전 장관에 대한 검찰 수사와 언론의 무차별적 공격을 민주화 성과에 대한 부정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을 보였다. 반면 2030세대가 조국 정국서 실감한 것은 불평등과 계급적 박탈감이었다. 586세대와 청년층의 세대별 감수성이 확연히 드러나면서 해결되지 않은 간극이 드러난 셈이다.

제도적 민주화가 정립된 시기에 청년기를 보낸 이들로선 ‘개혁’이라는 추상적 의제보다 본인들이 처한 사회경제적 불평등에 우선적으로 관심을 기울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국민 바라는
통합 정치는?

올해의 사자성어로 공명지조를 추천한 영남대 철학과 최재목 교수는 “한국의 현재 상황이 공명조와 비슷한 것 같다. 모두가 상대방을 이기고 자기만 살려고 하지만, 어느 한쪽이 사라지면 함께 죽게 되는 것을 모르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우리 사회는 대단히 심각한 이념의 분열증세를 겪고 있다. 양극단의 진영을 토대로 다들 이분법적 원리주의자, 맹목적 이념 기계가 돼가고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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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