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풍운아’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파란만장 인생사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9.12.16 10:00:33
  • 호수 124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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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덩어리 좁은 우리는 밖에서 기회 찾아야”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별세했다. 재계 2위 그룹의 총수서 IMF 이후 역대 최대 규모의 부도로 대한민국이 휘청이게 했다. 해외도피 생활과 구속, 수십조의 추징금. 그야말로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았다. 
 

▲ 고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지난 9일 오후 11시50분경 수원 아주대병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3세. 김 전 회장은 2018년 하반기까지도 한국과 베트남을 오가며 글로벌 인재양성 활동을 해오다 지난해 11월 귀국해 12월 말까지 아주대병원서 치료를 받았다.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그러다 올해 하반기에 건강이 악화돼 입원 치료를 받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전 회장은 알츠하이머를 앓았다. 그는 2017년 3월 서울서 열린 ‘대우창업 50주년’ 기념행사를 통해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냈지만 이후 행보는 공개된 적이 없었다.

김 전 회장은 임종 직전 별도의 유언은 남기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대우세계경영연구회 장병주 회장은 빈소서 기자들과 만나 “지난주 토요일(7일)부터 급격히 건강이 나빠지셔서 특별히 남긴 마지막 말씀은 없었다”며 “평소에 우리가 마지막 숙원사업으로 진행하던 해외 청년사업가 양성 사업을 잘 유지·발전시키라는 말씀을 많이 하셨다”고 말했다.

김 전 회장은 알츠하이머 증세가 있긴 했지만, 주변 사람들을 못 알아볼 정도는 아니었다고 장 회장은 전했다. 투병 중에도 주변과 편안하게 대화를 나누곤 했으며 마지막 순간까지 의식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9일 숙환으로 별세한 김 전 회장의 빈소에 각계 인사들의 조문이 이어졌다. 경기도 수원 아주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빈소에는 옛 대우그룹 관계자들과 정·재계 인사들의 발길이 종일 끊이지 않았다. ‘소박하고 조촐한 장례’를 원한다는 고인의 뜻에 따라 유족은 부조금과 조화를 받지 않을 예정이었으나 애도의 뜻을 존중해 조화는 받았다. 

재계에선 신세계그룹 이명희 회장, 정용진 부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장남 김동관 한화큐셀 부사장 등이 차례로 다녀갔다. 삼성전자 윤부근 부회장, 롯데 황각규 부회장,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차 수석부회장 등도 빈소를 찾았다.

정의선 수석부회장은 이날 기자들의 질문에 “안타깝다”고 말한 뒤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대우맨’으로 일했던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은 이날 조문 직후 기자들과 만나 “젊었을 때 일할 기회를 준 사람”이라며 “사업을 하는 데 있어 나의 평생 보스”라고 고인을 회상했다.

‘대우 신화’ 1세대 기업인 별세
각계 조문객 발길 끊이지 않아

빈소에는 이 밖에도 이재정 경기도교육감, 홍사덕 전 국회의원,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 원희룡 제주도지사, 더불어민주당 홍영표 전 원내대표, 더불어민주당 김부겸 의원 등이 조문했다. 홍 전 원내대표는 대우자동차 노조위원장 출신이다. 연예계서도 배우 이병헌, 송승헌 등이 빈소를 찾아 늦은 시간까지 머물렀다. 이병헌은 생전 고인과 부자처럼 가까운 관계를 유지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도 김태구 전 대우자동차 회장, 장병주 전 ㈜대우 사장, 장영수·홍성부 전 대우건설 회장, 강병호·김석환 전 대우자동차 사장 등 여러 대우맨들이 종일 빈소를 지켰다. 조문은 오후 9시30분께 마무리됐으며 이날 총 3000명의 조문객이 빈소를 찾았다. 

김 전 회장의 삶은 대한민국의 고도성장 과정을 집약한 것이나 다름없다. 한 쪽에서는 샐러리맨 신화, 세계경영 전도사라는 ‘빛’이 있다면 다른 한 쪽에는 분식회계, 정경유착 등의 ‘어둠’이 있다. 그의 일대기는 재벌 회장의 개인사로 그치지 않는다. 대우그룹의 부도는 한국 경제 전반에 큰 영향을 끼쳤다.


김 전 회장은 1936년 대구서 6남매 중 4남으로 태어났다. 6·25 전쟁으로 아버지가 납북되자 15세에 홀어머니 아래서 소년 가장으로 가족들의 생계를 도맡았다. 휴전 후 상경해 경기중학교와 경기고등학교에 진학하고 1956년 연세대학교 경제학과에 입학해 학창 생활을 보냈다.
 

대학교를 졸업한 뒤 친척이 운영하는 무역회사서 바이어로 근무하다가 1967년 독립해 당시 자본금 500만원으로 대우실업을 차렸다. 창업 초기에는 과거 자신이 바이어 일을 하던 동남아시아의 의류 원단 및 자재 공급 관련 사업을 주로 하는 중소기업이었지만, 유창한 영어 실력을 갖춘 그는 제2금융권으로부터 돈을 빌린 뒤부터 사업을 확장해나갔다.

대우실업은 1968년 수출 성과로 대통령 표창을 받으며 급성장 가도를 달렸다. 1969년 한국 기업 최초로 해외 지사(호주 시드니)를 세웠다. 

‘세계 경영’ 
수출 주도

1975년 한국의 종합상사 시대를 연 이후 김 전 회장이 이끈 대우는 국내 중소기업의 수출 창구가 됐다. 1973년에는 영진토건을 인수해 대우개발로 간판을 바꿔 달고 무역부문인 대우실업과 합쳐 그룹의 모기업격인 대우를 출범시켰다. 이어 1976년에는 옥포조선소를 대우중공업으로 만들었고, 1974년 인수한 대우전자와 1983년 대한전선 가전사업부를 합쳐 대우전자를 그룹의 주축으로 성장시켰다.

대우그룹은 또 에콰도르(1976년)에 이어 수단(1977년), 리비아(1978년) 등 아프리카 시장 진출을 통해 해외사업의 터를 닦았다.

김 전 회장의 거침없는 확장 경영의 결과 창업 10년 만에 쟁쟁한 기업들을 제치고 현대그룹, 삼성그룹, 럭키그룹에 이은 4대 재벌의 반열에 올랐다. 창업 후 수출만으로 회사를 초고속으로 성장시켜 ‘대우신화’라는 신조어와 함께 샐러리맨들의 우상으로 떠올랐다. 

해외영업서 남다른 수완을 발휘한 김 전 회장은 박정희정권서 가장 두드러진 기업인으로 주목받았다. 박 전 대통령이 김 전 회장의 부친이 대구사범 은사라는 것을 알게 된 이후 절친한 사이가 된 것으로 재계에선 전해진다. 하지만 하나회 소속 장교들과 가까이 지냈다는 이유로 1973년 육군보안사령부에 끌려가 조사를 받기도 했다. 경기고등학교 동기생 이종찬이 중앙정보부에 근무한 덕에 큰 화를 면했다. 

바둑 3급 공인의 기력을 보유한 김 전 회장은 1983년 한국기원 2대 총재로 취임하기도 했다. 1987년부터 1993년까지 대한축구협회 회장직도 맡았다. 1989년에 자서전인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를 썼다. 이 책은 펴내 6개월 만에 100만부를 돌파하며 최단기 밀리언셀러 기네스 기록을 달성하기도 했다. 

특히 1990년대 동유럽의 몰락을 계기로 폴란드와 헝가리, 루마니아, 우즈베키스탄 등지서 자동차공장 등을 인수하거나 설립하며 세계 경영을 본격화했다. 이에 따라 대우그룹은 부도 전까지 396개 현지법인을 포함해 해외 네트워크가 모두 589곳에 달했다. 해외고용 인력은 15만2000명을 기록하기도 했는데 당시 고인은 연간 해외 체류기간이 280일을 넘기는 것으로 유명했다.

1992년 제14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대선 출마설이 돌았지만 “새한국당이 대통령 후보로 추대하는 영입교섭이 들어와도 응하지 않을 것”이라며 대통령 선거 불출마를 선언했다. 1993년 대우그룹은 세계 경영을 선포했다. 1996년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사건에 연루돼 곤혹을 치렀지만, 1998년 대우그룹을 재계 2위로 성장시켰다.

31세 창업
97년 해체


대우그룹은 해체 직전까지 41개 계열사와 600여개의 해외법인·지사망을 갖고 있었다. 임직원 수는 국내 10만명, 해외 25만명에 달했다. 자산 총액은 76조7000억원, 매출은 91조원(1998년)이었다. 그야말로 ‘대우 제국’에 가까웠다.

그러나 1997년 11월 닥친 외환위기(IMF)는 세계 경영 신화의 몰락을 불러왔다. 김대중정부 경제관료들과의 갈등과 마찰을 빚으면서 붕괴가 빨라졌다. 특히 1998년 3월 전경련 회장을 맡은 김 전 회장은 수출론을 집중 부각했지만, 관료들과 갈등은 여전했고 오히려 개혁의 대상으로 내몰리는 상황을 맞았다.

1997년 IMF로 한국경제가 큰 타격을 받았다. 그로 인한 여파로 부채비율이 400% 이상이었던 대우그룹은 쌍용을 인수하는 등 확장정책을 이어나갔다. 1998년 당시 그룹 구조조정의 최우선 핵심사안으로 꼽혔던 대우차-제너럴모터스(GM) 합작 추진이 흔들렸고, 금융당국의 기업어음 발행한도 제한 조치에 이어 회사채 발행제한 조치까지 내려져 급격한 유동성 위기에 빠졌다. 일본계 증권사의 ‘대우그룹의 비상벨이 울리고 있다’는 보고서가 나온 것을 계기로 상황은 급격히 나빠졌다.
 

대우그룹은 1999년 말까지 41개 계열사를 4개 업종, 10개 회사로 줄인다는 내용의 구조조정 방안을 내놨지만, 1999년 8월 모든 계열사가 워크아웃 대상이 되면서 그룹은 끝내 해체됐다.

대우의 차입금은 1997년말 29조원서 1998년말 44조원으로 15조원이 늘었다. IMF 외환위기 직후 고금리 상황서 차입금 증가는 치명적이었다. 1998년에 대우가 내는 이자비용은 6조원에 달했다. 여기에 분식회계 사실까지 드러나면서 대우그룹이 무너진 것이다. 대우로 인한 전체 손실액은 31조원에 이르렀고, 이를 메우기 위해 사실상 세금인 21조원의 공적자금이 투입됐다.

재계 2위 대기업서 IMF 원흉으로
장기 해외도피…추징금 23조 남아


김 전 회장의 오랜 해외생활이 시작된 것도 그 때부터다. 그는 1999년 10월 중국 산둥성의 옌타이 자동차부품공장 준공식에 참석한 뒤 국내로 돌아오지 않았다. 2005년 국내로 돌아온 뒤, 분식회계를 주도한 혐의로 2006년 징역 8년 6개월과 벌금 1000만원, 추징금 17조9000원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2008년 1월 특별사면됐다.

2010년 이후 김 전 회장은 해외서 후진 양성에 주력했다. 글로벌 청년사업가 양성사업(Global Young Business Manager·GYBM)이 그것이다. 이 사업은 한국 대학 졸업생을 선발해 동남아 현지서 무료로 취업 교육을 제공하는 프로그램이다. 

베트남·미얀마·인도네시아·태국 등 동남아시아 4개국서 1000여명의 청년사업가를 배출했다. 김 전 회장은 “청년들이 밖에 나가서 기회를 찾아야 한다”며 “운명적으로 땅이 좁은 우리나라에게는 꼭 필요한 일”이라고 GYBM 사업을 시작한 이유를 설명했다. 

김 전 회장이 별세하면서 추징금 환수는 사실상 어려워졌다. 다만 법원이 지난 2005년 당시 대우그룹 임원들에 대해 추징금 23조원을 연대 부과하면서 미납금 자체가 소멸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까지 집행된 금액은 약 892억원에 불과하며, 집행률 0.498% 수준이다. 김 전 회장의 추징금이 환수되지 못한 이유는 본인 명의 재산이 없었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가족의 재산이라도 본인 명의가 아닌 이상 추징이 불가능하다.

앞서 대법원은 김 전 회장이 해외도피 중이던 2005년 5월 강병호 대우 전 사장 등 임원 7명에게 추징금 23조358억원을 선고했다. 김 전 회장은 이들과 공범으로 묶여있어 추징금을 연대해 부담하도록 돼있다.

한편 김 전 회장은 지방세 35억1000만원, 양도소득세 등 국세 368억7300만원도 체납한 바 있다. 자신의 차명주식 공매대금을 세금 납부에 먼저 써야 한다며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를 상대로 소송을 내기도 했다. 추징금과 달리 세금에는 연체료가 붙는다는 이유였으나 대법원은 2017년 캠코에 승소 판결을 내렸다.

슬픈 대우맨
“평생 보스”

분식회계로 발행한 수천억원대 회사채에 대한 지급보증으로 보증회사에 손해를 끼친 혐의를 받는 김 전 회장이 배상해야 할 손해배상액 260억원도 갚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법원은 지난 7월 서울보증보험 주식회사(SGI서울보증)가 김 전 회장 등 계열사 대표·임원들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서 “피고들은 원고에게 260억여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승소 판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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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두 달’ 쿠팡발 관세 음모론

‘벌써 두 달’ 쿠팡발 관세 음모론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쿠팡 사태의 ‘나비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나비의 날갯짓이 지구 반대편에 태풍을 일으킨다는 뜻처럼 개인정보 유출 사태가 외교전으로까지 번지는 모양새다. 더불어 쿠팡의 ‘믿는 구석’도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우리나라 정치권을 넘어 미국 정가마저 반응하고 있는 쿠팡 사태를 <일요시사>가 조명했다. 지난해 11월 말 온라인 이커머스 업체 쿠팡에서 고객의 개인정보가 3000만건 이상 유출됐다. 지난해 4월 SKT 개인정보 유출 사태 규모를 웃도는 수치였다. 지난달 28일로 쿠팡 사태는 두 달째를 맞았다. 그동안 정치권은 물론 대통령까지 쿠팡 사태를 언급했다. 미국 기업 방패 삼아 하지만 쿠팡의 태도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한결같다. ‘뻔뻔함’을 앞세워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쿠팡 사태는 지난해 11월29일 쿠팡 고객에게 발송된 문자로 시작됐다. 문자에는 이름, 전화번호, 이메일 주소, 배송 주소록, 주문 정보 등 개인정보가 ‘노출’됐다는 내용이 담겼다. 쿠팡 측은 결제 정보와 로그인 관련 정보는 괜찮다고 했다. 주말 사이에 문자를 받은 고객들은 패닉 상태에 빠졌다. 앞서 상반기 SK텔레콤 개인정보 유출 사태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그보다 더 큰 규모의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무엇보다 쿠팡 사태는 해킹 등 외부의 공격이 아니라 내부 직원의 소행이라는 의혹이 번지면서 충격을 더했다. 사태가 쿠팡 시스템 문제로 번질 가능성이 제기된 것이다. 정부는 쿠팡 사태 발생 직후 민관합동조사단을 구성하고 수사에 착수했다. 이후 경찰은 쿠팡 본사 현장을 압수 수색하는 등 수사에 박차를 가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는 청문회를 진행했다. 정부는 쿠팡 유출 대응 범부처 TF를 구성해 압박 수위를 높였다. 국세청도 가세해 전방위 특별세무조사에 착수했다. 이재명 대통령도 말을 보탰다. 이 대통령은 쿠팡 사태가 일어난 지 사흘 만에 열린 국무회의에서 “쿠팡 때문에 우리 국민이 걱정이 많다”며 “사고 원인을 조속하게 규명하고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관계 부처는 해외 사례를 참고해 과징금을 강화하고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를 현실화하는 등의 대책에 나서달라”고 지시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역대 정부 최초로 생중계된 기관별 업무보고에서도 쿠팡에 대한 질책을 이어갔다. 당시 이 대통령은 “‘무슨 팡’인가 하는 곳에서 규정을 어기지 않았나. 그 사람들은 처벌이 전혀 두렵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쿠팡에 대한 처벌 의지를 재차 강조했다. 개인정보 유출 사태 이후 전방위서 압박했는데도… 그러면서 “야간 노동자의 건강권 이야기가 사실 쿠팡 때문 아니냐. 너무 가혹하고 심야 노동 때문에 많이 죽는 것 아니냐. 금지시키자는 주장도 있다”며 “새로운 노동 형태이기 때문에 새로운 규제 기법이 필요한 것 같다”고 했다. 개인정보 유출 사태뿐만 아니라 쿠팡 자체를 정조준한 것이다. 문제는 이 정도의 전방위적 공격에도 쿠팡의 태도는 그대로였다는 점이다. 정부와 논의되지 않은 자체 조사 결과를 기습적으로 발표한 것도 모자라 실제 개인정보 유출 규모는 3000여건에 불과하다는 주장을 내세웠다. 쿠팡의 ‘셀프 조사’ 결과에 경찰 등이 반박했지만 쿠팡은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쿠팡의 주장대로면 피해 규모는 1만분의 1로 줄어든다. 쿠팡 창업자인 김범석 의장의 대국민 사과도 사태 발생 한 달 만에야 나왔다. 김 의장은 개인정보 유출 사태에 고개를 숙이면서도 자체 조사 결과를 인용했다. 하지만 국회 6개 상임위원회가 진행한 청문회에는 출석하지 않아 사과의 진정성이 바랬다. 실제 김 의장뿐만 아니라 김유석 쿠팡 부사장 등도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했다. 쿠팡에서 제시한 보상안은 부정적인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쿠팡은 1인당 5만원 상당의 쿠폰을 지급하는 등 총 3370만명의 고객에게 1조6850억원 규모의 보상안을 마련했다고 대대적으로 발표했다. 하지만 현금 배상이 아니라 쿠팡, 쿠팡이츠(배달), 쿠팡트래블(여행), 쿠팡알럭스(명품) 등에서 사용할 수 있는 쿠폰으로 쪼개놓은 것도 모자라 소비를 유도하는 방식의 지급이라 비판이 빗발쳤다. 대통령도 나섰는데 심지어 사용 조건도 까다롭게 설정해 놨다. 쿠폰 사용 기간을 지급일로부터 3개월로 제한하고 도서, 주류, 상품권 등은 구매할 수 없으며, 쿠팡이츠에서 사용할 때는 최소 주문 금액 이상일 때만 사용할 수 있다는 식이었다. 보상안에 대해서는 시민단체까지 나서서 비판했지만 쿠팡은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상황이 이 정도까지 되다 보니 쿠팡의 ‘뻣뻣한’ 태도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대체 쿠팡의 ‘믿는 구석’이 뭐냐는 지적도 제기됐다. 쿠팡이 그동안 정치권 인사를 영입한 게 도움이 되는 게 아니냐는 주장이 언급됐다. 쿠팡은 정부 부처 출신을 많이 데려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 정치권 인사와 쿠팡 관계자가 식사했던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되기도 했다. 현재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탈당한 김병기 전 원내대표는 쿠팡 대표와 고가의 식사를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 과정에서 쿠팡으로 이직한 전직 보좌관 관련 인사에 개입했다는 의혹도 있다. 자신의 비리 의혹을 폭로한 전직 보좌관에 대해 인사 불이익을 요구했다는 내용이다. 쿠팡이 독점적 지위를 무기로 뻔뻔하게 굴고 있다는 의견도 있다. 현재 쿠팡은 온라인 이커머스 시장에서 독보적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비판에도 전국에 지어놓은 물류센터가 배송 거점 역할을 하는 중이고 ‘로켓배송’이라 이름 붙인 새벽배송은 배달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자리 잡았다. 월 구독료 7890원의 ‘로켓와우’ 서비스는 2024년 말 기준으로 1500만명 이상 가입한 것으로 추정된다. 로켓와우에 가입하면 무료 배송, 무료 반품은 물론 쿠팡에서 론칭한 OTT ‘쿠팡플레이’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개인정보 유출 사태 이후 회원 탈퇴 등으로 이용자가 감소 중이지만, 여전히 후발 주자와는 격차가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타격 없이 흘러가나 실제 사건 발생 직후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은 개인정보 유출 사태가 쿠팡에 미칠 손실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독점적 지위’를 언급했다. 쿠팡이 우리나라 이커머스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워낙 크기에 개인정보가 유출됐어도 이용자는 계속 사용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그러다 최근 또 하나의 의견이 더해졌다. 쿠팡이 미국을 믿고 우리나라 상황을 등한시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쿠팡은 우리나라에서 매출 대부분을 올리고 있지만 미국 주식시장에 상장한 미국 기업이다. 쿠팡의 대처가 주가에 미칠 영향만을 고려한 행보였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사태 규모를 축소한 자체 조사 결과가 주가 방어용이었다는 뜻이다. 이 같은 의견은 최근 미국의 행보로 힘을 받는 모양새다. 지난달 26일(현지시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한국산 제품에 대한 상호 관세를 15%에서 25%로 인상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우리나라 국회가 미국과의 관세 협정에 대해 승인을 하지 않고 있는 점을 배경으로 언급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SNS 트루스소셜에 “무역 협정은 미국에 매우 중요하다. 우리는 합의된 거래에 따라 신속하게 관세를 낮췄고 당연히 우리의 무역 파트너들도 같은 조치를 취하길 기대한다”며 “이재명 대통령과 지난해 7월30일 양국 모두에 훌륭한 협정을 체결했으며 지난해 10월29일 한국을 방문했을 때 그 조건을 다시 확인했다. 그런데 왜 한국 국회는 이를 승인하지 않고 있나”라고 적었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미국 외신은 JD 밴스 미국 부통령이 최근 김민석 국무총리와 만난 자리에서 한국 정부가 미국 기업들에 불이익 조치를 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는 내용을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인상을 기습적으로 발표하기 전에 오간 대화라는 점에서 쿠팡 사태가 영향을 미쳤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뻔뻔한 태도 일관하더니 ‘믿는 구석’ 있었나 의심 <WSJ>는 관계자 발언 등을 인용해 “밴스 부통령이 지난주 워싱턴 D.C.에서 김 총리와 만나 쿠팡을 포함한 미국 기술 기업들에 불이익을 주는 조치를 하지 말 것을 경고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이 대화는 양국 간 무역 긴장이 정점에 이르기 불과 며칠 전에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쿠팡의 미국 투자사들은 개인정보 유출 사태에 대한 우리나라의 대응이 일반적인 규제 집행 수준을 넘어섰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부 대응이 주가 하락 등 손실을 야기했다는 것이다. 여기에 지난해 말 국회를 통과한 정보통신망법 개정안(허위조작 정보 근절법)과 입법을 추진하고 있는 온라인 플랫폼 규제에 대해서도 트럼프정부와 의회 일부에서는 검열이자 미국 기업 차별이라는 비판을 냈다. 우리나라와 미국이 체결한 대미 투자 관련 양해각서(MOU)에 “한국이 미국에 3500억달러를 투자하기로 한 내용, 미국 기술 기업에 대한 차별 금지 약속이 담겨있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인상 발표는 이에 대한 압박으로 해석된다. 정부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표에 관계자를 급파하는 등 대응에 나섰다. 그러면서 이번 조치는 쿠팡이나 온라인 플랫폼법 등과는 관계가 없다고 선을 그었다. 조현 외교부 장관은 지난달 28일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메시지가 나온 뒤 저희가 미국 국무부와 접촉한 바로는 쿠팡이나 온라인 플랫폼법과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것으로 그렇게 결론 내리고 있다”고 말했다. 당분간 안갯속 조 장관은 “구체적이고 합리적으로 추정되는 어떤 특별한 이유를 특정키가 어렵다”며 “그런 이유에서 트럼프 대통령도 추가 메시지를 낸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 인상 발표 하루 뒤인 지난달 27일 “한국과 함께 해결책을 마련할 것”이라면서 협상 여지를 남겼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부 장관은 “한국 국회가 무역 합의를 통과시키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이 승인하기 전까지는 한국과의 무역 합의는 없는 것”이라고 한 언론 인터뷰에서 말했다. 또 한 번 우리나라가 관세를 둘러싼 불확실성의 늪에 빠진 셈이다. 동시에 쿠팡 사태도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에 놓였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