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하늘에서 그리는 정몽규 회장의 야심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9.11.19 10:52:20
  • 호수 124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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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니 신화 이어 색동날개 펼치나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정몽규 현대산업개발(HDC) 회장의 집념이 빛을 봤다. 정 회장이 통큰 배팅으로 아시아나항공을 거머쥐었다. 안정적인 재무구조와 풍부한 자금력을 확보한 현대산업개발과 M&A 귀재 미래에셋대우가 의기투합한 HDC컨소시엄이 아시아나항공 매각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

“HDC그룹은 아시아나항공 인수로 모빌리티 그룹으로 도약할 것입니다.” 정몽규 HDC그룹 회장이 선친 고 정세영 명예회장의 꿈 실현을 위해 한 걸음 다가갔다. 정 명예회장은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셋째 동생으로 현대자동차와 포니 신화를 일으킨 주인공이다.

“반드시 
 필요했다”

현대산업개발·미래에셋대우 컨소시엄은 지난 12일 아시아나항공 인수 우선협상자로 선정됐다. 업계에선 이번 아시아나항공 인수의 가장 큰 원동력으로 정 회장의 집념을 꼽는다. 정 회장은 “아시아나항공은 HDC그룹의 재도약을 위해선 반드시 필요한 회사”라며 입찰 금액을 높이라고 지시했다. 

인수가격으로 약 2조5000억원을 제시, 1조7000억원을 써낸 애경-스톤브릿지캐피탈 컨소시엄을 압도했다. 이는 재계가 예측했던 입찰가인 1조5000억∼2조원을 크게 뛰어넘는 것으로, 정 회장의 인수 의지를 보여주는 금액이었다.

정 회장은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통해 HDC그룹을 ‘모빌리티 그룹’으로 재도약하겠다고 강조했다. 우선협상자 선정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서 정 회장은 “항공산업이 현대산업개발의 지속가능한 성장에 부합한다는 전략적 판단에 따른 것”이라며 “HDC그룹은 항공산업뿐 아니라 나아가 모빌리티 그룹으로 한걸음 도약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 회장은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직후 아시아나항공의 새로운 브랜드 제작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13년 이상 지켜온 아시아나항공의 ‘날개’ 마크도 교체될 예정이다. 2006년 2월 금호아시아나그룹이 창립 60년을 맞아 ‘윙(날개)’을 형상화한 그룹 통합 CI를 도입하면서 아시아나항공의 브랜드 로고도 통합 CI로 바뀌었다.

아시아나항공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통 큰 베팅’ 경쟁사보다 1조 더 써 

아시아나항공은 2007년부터 통합 CI 소유권을 가진 금호산업과 상표권 계약을 맺고 매년 계약을 갱신해왔다. 상표권 사용료는 월별 연결매출액의 0.2%로, 월 단위로 사용료를 지급했다. 아시아나는 올해 4월에도 금호산업과 상표사용 계약을 체결해 사용기한은 내년 4월30일까지며, 올해 상표사용액은 총 143억6700만원이다.

HDC그룹은 곧바로 새 브랜드 제작에 착수할 계획이다. 현재 HDC그룹은 별도의 이미지 로고 없이 붉은 색의 ‘HDC’ 글자를 그룹 CI로 사용하고 있다. 항공기를 비롯한 모든 물품서 로고 교체가 이뤄져야 하는 만큼 실제 적용은 내년 초는 돼야 가능할 전망이다.

브랜드 이미지는 바뀌지만 ‘아시아나항공’ 사명은 당분간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정 회장은 ”아시아나항공이 그간 좋은 브랜드 가치를 쌓아왔기 때문에 현재까지 아시아나항공의 이름을 바꿀 생각은 없다“며 ”HDC와 양쪽 모두 도움이 될 수 있는 선에서 어떻게 조화를 이룰지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 회장이 이렇게 아시아나항공 인수에 대규모 자금을 동원한 것은, 건설업이라는 한계를 벗어날 수 있는 호기로 보았기 때문이다. 정 회장은 원래 현대자동차에서 핵심 경력을 쌓았다. 1991년 현대자동차 상무에 올랐고 1993년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만 34세였던 1996년엔 현대자동차 회장직을 맡았다. 아버지 고 정 명예회장의 뒤를 이어 현대차의 운전대를 잡을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현대그룹이 분리되는 과정서 현대차 경영권이 정몽구 회장에게 넘어갔다. 정 회장은 현대산업개발을 받게 됐다. 2005년 선친이 타계한 이듬해 선친의 별칭을 딴 ‘포니정 재단’을 만들어 현재까지 운영 중이다. 2000년대 초반까지 정 회장은 대우자동차 인수 후보에 오르내리거나 인터넷 자동차 판매업 진출을 모색하기도 했다. 자동차 산업 진출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모빌리티 그룹
드디어 구축

이후 정 회장은 건설업에 매진해 현대산업개발을 국내 10대 건설사로 성장시키며 기반을 닦았다. 단순 도급사업뿐 아니라 자체개발사업 비중도 늘려 외형보다는 수익성에 주목했다. 동시에 사업 다각화에도 힘썼다. 

HDC아이파크몰을 운영하며 유통업계에 진출했고, 호텔신라와 손잡고 면세업에도 뛰어들었다.

최근에는 한솔그룹의 오크밸리(현 HDC리조트)를 인수하면서 사업 범위를 확장했다. 여기서 쌓은 넉넉한 자산으로 아시아나항공을 손에 넣게 됐다. HDC는 2018년 말 현재 현금성 자산을 1조3500억원 보유했다. 지난해 영업이익률은 11.4%로, 대형 건설사 중 최고 수준이다.

정 회장에게 아시아나항공 인수는 비건설업종에서 틀이 갖춰진 회사를 사들일 수 있다는 점에서 결정적인 기회였다. 아시아나항공은 대한항공에 이은 항공업 2위로, 지난해 7조1800억원의 매출을 거둬 280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항공산업에 진출할 경우 대한항공이 항공기 부품 제조업과 해운, 물류업체까지 거느리는 것처럼 연관 산업의 진출이 용이해진다. 현대산업개발이 건설업을 기반으로 유통이나 레저 업종에 진출하는 것보다 훨씬 더 다양한 업종에 진출할 수 있고, 그만큼 성과를 낼 확률도 높아진다.

범 현대가 
지원 사격

HDC그룹은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하면서 재계 순위도 껑충 뛰었다. 2018년 현재 33위서 18위 정도로 올라가게 된다. 2018년 현재 계열사 총자산(10조600억원)에다가 아시아나항공의 자산 8조1900억원을 더하면 18조8000억원가량이 되는데, 이는 17위 LS(22조600억원)와 18위 대림(18조원) 사이가 된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집계하는 대기업집단 순위는 계열사 자산을 별도재무제표 기준으로 합산한 것이기 때문에 재무제표 상의 아시아나항공 자산 규모와 차이가 있다. 하지만 계열사 별도 합산의 경우 자산이 늘어날 가능성이 높고, 자잘한 계열사 자산을 합쳐도 LS를 자산순위서 제칠 가능성은 낮다.

일각에선 현대산업개발이 대규모 투자로 인한 부담이 커질 것이라는 우려도 상당하다. 현재 현대산업개발 회사채 신용등급은 A+다. 반면 아시아나항공은 BBB-에 그치고 있다. 투자은행(IB)업계에선 아시아나항공의 재무구조가 열악하고, 자산과 부채 덩치가 크기 때문에 현대산업개발의 신용등급이 한 단계 하향 조정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정 회장은 그러나 ‘승자의 저주’는 없을 것이라고 자신한다. 현대산업개발은 입찰 과정서 5조원 이상의 자금 증빙을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수금융(인수합병용 대출)을 받을 필요가 없으며 기존 현금 및 현금성 자산과 회사채 발행 등을 통해 자금을 충분히 댈 수 있다고 과시한 것이라는 풀이다.


범 현대가의 지원사격도 예정돼있다. 재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정 회장은 인수전 초기부터 오너 일가 모임 때 조언을 구하고, 인수전 막판에는 범 현대가 여러 그룹서 아시아나항공의 여객 및 물류서비스를 적극적으로 이용하겠다는 의향서(LOI)를 받아 매각 측에 제출했다.

재계순위 33위→18위 도약 기회
‘포니정’ DNA로…선친 숙원 풀어

정 회장은 1962년 1월14일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과 박영자씨의 1남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정몽준 전 한나라당 대표가 사촌이다. 이외 정몽진 KCC 회장,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등과 사촌관계다.

부인 김나영씨와 슬하에 준선씨와 원선씨, 운선씨 등 3남을 뒀다. 부인은 김성두 전 대한화재보험 사장의 딸로 연세대 수학과를 나왔다. 정 회장의 장남인 준선씨는 영국 옥스포드 대학서 박사과정을 마친 인공지능 (AI) 분야 전문가로 알려져 있다. 

정 회장은 고려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대학원서 정치학 석사학위를 받은 후 현대자동차에 대리로 입사해 현대자동차 회장에 올랐다. 그러나 현대자동차 경영권이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으로 넘어가면서 아버지 정세영 회장과 함께 현대자동차를 떠나 현대산업개발로 옮겼고 회장을 맡았다. 

자동차를 만들던 사람이 건설을 잘 할 수 있겠느냐는 주변의 우려를 씻어내고 현대산업개발을 시공능력 평가서 최고 4위까지 오르는 종합건설사로 키웠다. 건설업계 최초로 건축물의 디자인을 중시하는 디자인경영을 도입했다.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위치한 ‘파크 하얏트 서울’과 용산에 있는 패션전문 백화점 ‘현대 아이파크몰’이 그의 작품이다.


이번에도 
승자의 저주?

정 회장은 축구광이기도 하다.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유학시절 축구의 매력에 흠뻑 빠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대자동차 부사장으로 울산 현대 사택에 살았던 시절 이웃이었던 차범근 전 울산현대 축구단 감독과 인연을 시작으로 축구계에 발을 들였다. K리그 한국프로축구연맹 전 총재, 현 대한축구협회 회장, 국제축구연맹(FIFA) 평의원, 동아시아 축구 연맹 회장, 아시아 축구 연맹(AFC) 부회장 겸 심판위원장, 부산 아이파크구단주다. 프로축구단 전북 현대 모터스, 울산 현대 호랑이의 구단주이기도 했다. 덕분에 K리그서 3개팀의 구단주를 역임한 유일한 인물에 이름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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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