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러진 3대 사다리’ 수시·로스쿨·의전원의 이면

개천서? 윗물이 맑아야 용난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어려운 환경서 성공을 일궈낸 사람을 가리켜 개천서 용 났다고 했다. 개천에 살던 많은 이무기들은 여러 종류의 사다리를 타고 올라 용이 되길 꿈꿨다. 하지만 최근 그들이 타고 오를 사다리가 사라지고 있다.
 

▲ 사법고시 폐지 반대 중인 시민단체

2015년 대학생이 뽑은 올해의 신조어 1위는 ‘금수저’였다. 대한민국 홍보연합동아리 ‘생존경쟁’서 대학생 201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였다. 응답자의 31%가 금수저를 올해의 신조어로 꼽았다. 흙수저와 대비되는 개념인 금수저는 부유한 부모 밑에서 자라 사회서 유리한 위치를 선점한 사람이나 계층을 풍자한 단어다.

금·흙수저
수저계급론

부모가 자식을 뒷받침해주는 능력에 따라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 등으로 분류하는 이른바 수저계급론2015년 전후로 한국 사회를 강타했다. 개인의 능력보다 부모의 경제수준이 사회 진출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연구 결과가 속속 등장하고 실제 사례가 터져 나오면서 수저계급론은 2030대 젊은 세대의 자조 섞인 유행어로 자리 잡았다.

실제 서울대 입학이 학생의 잠재력보다 부모의 재력에 의해 더 크게 좌우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2016년 서울대 경제학부 김세직·류근관 교수가 서울대 경제연구소의 경제논집에 발표한 <학생 잠재력인가? 부모 경제력인가?> 논문에 따르면 같은 능력을 가진 학생이라도 부모의 경제력에 따라 서울대 입학 가능성이 8090% 차이가 나는 것으로 드러났다.

연구진은 타고난 잠재력 차이만으로는 소득 차이에 따른 구별 입학률을 설명할 수 없다. 합격률 차이의 8090%는 부모 경제력에 따른 치장으로 설명된다일부 계층, 학교, 지역에 서울대 합격자가 쏠리는 것은 이 같은 결과가 반영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가정 형편이 좋지 않아도 개인의 능력으로 계층 이동이 가능했던 과거에 비해 부모의 경제수준이 자녀의 사회 진출에 미치는 영향력이 커지면서 2030대 젊은 세대의 박탈감은 커지기 시작했다.

특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당시 최순실의 딸 정유라가 이화여대에 입학하는 과정서 나온 특혜 의혹이 사실로 확인되면서 입시비리에 대한 국민들의 반감은 극에 달했다.

교육과 병역 문제는 ‘국민들의 역린’이라는 말이 있을 만큼 민감한 분야로 손꼽힌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장미대선을 거쳐 들어선 문재인정부는 적폐 청산과 함께 공정사회를 지향점으로 내세웠다.

조국 딸 입시비리 의혹 제기
‘교육문제’ 국민 역린 건드려

실제로 2017년 5월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사를 통해 “문재인과 더불어민주당 정부서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라고 선언했다.

지난 1월 신년 기자회견서도 문 대통령은 공정하게 경쟁하는 공정경제를 토대로 혁신성장과 소득주도성장을 통해 성장을 지속시키면서 함께 잘사는 경제를 만드는 것이 정부가 추진하는 사람 중심 경제와 혁신적 포용국가라며 미래의 희망을 만들면서 개천서 용이 나오는 사회를 만들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청와대 초대 민정수석을 지냈고 현재 법무부장관 후보자 타이틀을 달고 있는 조국 전 수석의 딸 논란이 불거지면서 문재인정부가 지향하고 있는 기회 평등, 과정 공정, 결과 정의라는 기치가 흔들리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후보자 청문회를 앞두고 조 전 수석의 딸을 둘러싼 입시비리 의혹이 연이어 불거지고 있다. 조씨의 딸이 한영외고 시절 2주가량의 인턴십 프로그램에 참여했고, 이 과정에 나온 의학논문에 1저자로 이름을 올린 사실이 드러났다.

또 고려대 입학 전형 과정서 제출한 자기소개서에 단국대 의과학연구소서 인턴십 성과로 내 이름이 논문에 오르게 됐다는 내용이 명시된 것으로 확인되면서 부정입학 의혹이 제기됐다.

논문 실적을 고려대 입학 당시 활용했는지 여부, 조씨가 제1저자로 이름을 올릴 정도로 논문에 기여를 했는지 여부, 당시 조씨의 소속 문제까지 총체적인 의혹이 나오면서 조 전 수석의 명쾌한 해명을 바라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와 관련해 조 전 수석 인사청문회 준비단은 조씨가 논문의 1저자라는 내용은 (자소서에)적지 않았다고 해명한 바 있다.

공정사회
외쳤지만…

조씨가 대학 입시를 위해 준비한 스펙은 화려한 수준이다. 1저자로 이름을 올려 문제된 논문부터 물리학회 수상, 국제 조류학회 참가 등 광범위한 부분서 다양한 경험을 했다.

대다수의 보통 학생들이 만들기 어려운 스펙이기에 부모의 도움이 있었을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 일각에선 올해 큰 인기를 누렸던 JTBC 드라마 <스카이캐슬>의 현실판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 ▲▲ JTBC 드라마 <스카이캐슬><br>

<스카이캐슬>은 스카이캐슬에 살고 있는 상류층 학부모들이 자녀를 일류대 의대를 보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입시 코디네이터라는 생소한 직업이 등장해 화제를 모았다. 입시 코디네이터가 일류대 의대 진학을 위한 맞춤형 스펙을 만들기 위해 시험지 유출, 협박 등의 범법 행위도 서슴지 않는 장면이 전파를 타면서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종배 공정사회를 위한 국민모임(이하 공정사회 국민모임) 대표는 조 전 수석은 위법성이 없다고 계속 주장하고 있지만 꼼수를 이용한 것은 사실이라고 조 전 수석과 관련된 논란에 대해 언급했다.

이어 조국 전 수석 딸 논란은 시스템의 문제서 접근해야 한다조 전 수석 딸만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사법시험 폐지가 결정된 후 사법시험 존치를 위한 고시생모임을 만든 이 대표는 수시 축소 및 폐지를 원하는 학부모, 시민단체 등과 연대해 공정사회 국민모임을 결성했다. 공정사회 국민모임은 현행 수시 제도를 비롯해 법학전문대학원(이하 로스쿨), 의학전문대학원(이하 의전원) 등을 현대판 음서제로 보고, 개선 혹은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수시와 관련된 비리는 끊이지 않고 있다. 수시의 핵심은 학생부종합전형(이하 학종)이다. 학종은 학교 시험으로 결정되는 내신과 동아리·봉사·교내 수상경력·진로 활동 등 비교과 부분, 자기소개서와 교사추천서 등을 통해 학생을 다각도로 평가하자는 취지서 도입됐다. 학종으로 대학 진학이 결정되는 비율이 높아지면서 학생들 간의 경쟁이 치열해졌다.


폐해 드러나도
오히려 늘어나

드라마 <스카이캐슬>서 처럼 입시 코디네이터가 등장했고, 자기소개서를 쓰고 첨삭해주는 업체가 우후죽순처럼 늘었다. 교내 수상경력을 성적이 우수한 학생 위주로 밀어주거나 교사가 학생의 백일장 작품을 써주는 등의 문제들이 불거졌다. 대학교수들이 친한 교수의 자녀들을 논문 저자로 등재하는 등 논문 품앗이의혹이 나왔다.

급기야 광주에선 학부모가 돈을 주고 시험지 유출을 사주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숙명여고서도 아버지 교무부장이 쌍둥이 딸에게 시험지를 유출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학교가 발칵 뒤집혔다.
 

▲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

숙명여고 사태를 정점으로 현행 입시제도에 대한 불만이 폭주했다. 학생 개인의 능력보다 외부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영역이 넓어지면서 수시를 줄이고 정시를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교육부 업무보고서 내신이나 학생부 같은 경우 도대체 그것이 어떻게 평가되는지를 제대로 모른다대학 수시도 워낙 전형 방법이 다양하다 보니 많은 부모들 입장에선 깜깜이라 공정성을 믿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많은 반칙·특권과 비리 부정이 행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상대적으로 그러지 못한 국민들, 학부모들이 피해를 입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공정성 논란이 계속되고 있지만 대입전형서 수시모집 비율은 2019학년 76.2%, 2020학년 77.3%, 2021학년 77% 80%에 육박하고 있다. 여기에 2021학년도 대입 전형유형별 모집 비중을 살펴보면 여러 부작용이 나오고 있는 학종 비율은 24.8%에 달한다. 지난해 공론화위서 학종에 대한 신뢰가 떨어졌다는 여론이 많았지만 오히려 전년도보다 0.3포인트 늘었다.

부모 경제수준에 수저색 달라져
정부 평등·공정·정의 가치 무색

문제는 수시서 그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일각서 현대판 음서제로 불리는 로스쿨과 의전원도 다양한 부작용이 제기되면서 논란의 중심에 서있다.

로스쿨은 법조인 양성을 위한 3년 과정의 전문 법과대학원으로 2009년 노무현정부 시절 도입됐다. 로스쿨 도입 전까지는 사법고시를 통과해야만 판사, 검사, 변호사 등 법조인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고시 낭인의 양산, 배타적인 기수 문화 등의 지적이 계속 제기되면서 사시 폐지 움직임이 일었고 2017년을 끝으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법조인이 될 수 있는 관문이 로스쿨로 일원화됐다.

로스쿨은 도입 당시부터 높은 학비, 불분명한 입학 구조 등의 부작용이 제기된 바 있다. 특히 입학 과정서의 불공정 논란은 로스쿨이 도입된 지 1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현대판 음서제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는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된다.
 

최근에는 변시 낭인(변호사 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 오탈자(5회 제한에 걸려 변호사 시험 기회를 잃은 로스쿨 졸업생)의 증가가 사회적 논란으로 떠올랐다.

의전원은 조 전 수석의 딸 논란으로 현대판 음서제라는 비판이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다. 조씨가 부산대 의전원을 입학하는 과정서 따른 전형을 보면 정량평가보다는 면접 등 정성평가가 당락에 미친 영향이 크다.

조 전 수석은 조씨가 의학교육입문검사(MEET) 점수 없이 입학했다는 의혹에 대해 적법한 절차를 거쳤고 MEET 성적을 제출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조씨의 입학 전형과정서 MEET 점수의 반영도는 0점이었다. 당락과는 무관했던 셈이다.

기득권 전유물
바뀔 수 있나

자유한국당 홍준표 전 대표는 지난 22일 자신의 SNS정유라에 대한 분노가 조국 딸에 대한 분노로 번지는 것을 보면서 좌불안석인 여야 정치인, 한국사회 소위 지도자 하는 사람들도 참 많을 것이라며 기득권 집착에는 여야가 없고, 청부, 졸부가 따로 놀지 않는다. 모두가 한마음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국민들이 분노해야 할 곳은 조국 사건에 대한 1회성 분노가 아닌 변칙 입학, 변칙 출세해 변칙 사회를 만드는 한국 사회 전반의 제도개혁 요구에 대한 분노이고 혁신이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jsjang@ilyosisa.co.kr>

 

▲ 공정사회를 위한 국민모임 이종배 대표

<기사 속 기사> 공정사회를 위한 국민모임 이종배 대표 인터뷰
현대판 음서제 바꾸기 쉽지 않다

이종배 공정사회를 위한 국민모임 대표는 앞서 사법고시 폐지를 반대하면서 거리로 나섰다. 사시가 폐지된 후에는 대학 입시전형인 학생부종합전형(학종)에 비판적인 학부모들과 연대했다.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과 학종이 기득권을 위한 현대판 음서제라는데 의견을 같이 했기 때문이다. 이하 이 대표와의 일문일답

-조국 전 수석 딸 논란이 시끄럽다

조국 딸 논란의 본질은 기득권이나 특권층이 수시제도의 허점을 악용해 즉 꼼수를 사용해 자기 자식을 특권층으로 만드는 세습을 자행했다는 점이다. 조국이 특히 더 논란이 되는 것은 딸을 명문대로 진학시킨 이후 의전원까지 보냈기 때문이다. 학부모들의 분노가 크다.

-수시와 로스쿨, 의전원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수시제도와 로스쿨, 의전원은 현대판 음서제라는 점에서 결이 같다. 과정이 불투명하다 보니 기득권이나 특권층이 유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 재력과 정보력으로 당락이 좌우될 수 있기 때문에 가지지 못한 사람들은 화가 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변화는 요원하다.

3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분노는 하지만 행동할 동력은 없다. 대입제도가 변화한다고 해서 당장 혜택을 보거나 피해를 보는 학부모는 많지 않다. 이해관계가 얽힌 사람이 많지 않다는 뜻이다. 이들은 조국 논란에 대해 화는 낼지언정 근본적인 시스템을 바꾸자고 나서진 않는다.

두 번째로는 언론서 조국 논란에 대해 비판을 하면서도 본질을 보도하진 않는다. 조국과 관련된 사안만 열심히 보도할 뿐 어떤 문제로 인해 지금 사태까지 왔는지에 대한 보도가 없는 것이 안타깝다.

마지막으로 수시나 로스쿨, 의전원 제도는 기득권들에게 유리한 제도다. 조국만 날리면 될 뿐 제도까지 바꿀 생각은 없을 것이다. 이미 한국 사회에 뿌리 내리기 시작한 현대판 음서제의 흐름은 정말 바꾸기 쉽지 않다.

-정말 바꿀 방법은 없나

현재 교육제도는 누더기에 가깝다. 바꾸려면 위에서부터 한 번에 바꿔야 한다. 특정 정당이나 의식과 신념이 있는 정치 지도자의 결단이 필요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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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머드급 국방정보본부 ‘5공 보안사’ 오버랩, 왜?

매머드급 국방정보본부 ‘5공 보안사’ 오버랩, 왜?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군 정보기관 개혁안의 윤곽이 잡히고 있다. 기한은 2027년까지다. 방첩사 해체 및 정보사 인간정보부대를 국방정보본부 직속으로 둔다는 게 골자다. 군 안팎에서는 우려가 쏟아진다. 국방정보본부에 여러 권한이 쏠리면 과거 ‘전두환 보안사’처럼 통제가 힘들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 조직에 여러 권한이 집중되면 장단점이 확실하다. 관리하기 쉽지만 수장의 역량이 부족하면 컨트롤하기 어렵다. 군 정보기관은 더욱 그렇다. 인간정보 부대(HUMINT·휴민트)의 경우 전문가가 극소수다. 특히 전문가 대다수가 12·3 내란에 연루돼 개혁에 동참할 수 없는 형국이다. 2027년까지 조직 개편 우리 군에는 각종 정보와 첩보 수집을 담당하는 군 정보기관이 존재한다. 대북 업무만을 담당하는 국군정보사령부, 777사령부와 국내 간첩 및 군사보안에 초점을 둔 국군방첩사령부로 나뉜다. 정보사와 777은 국방정보본부가 총괄 지휘한다. 정보기관 특성상 자세한 조직 현황은 공개되지 않는다. 그간 군 정보기관은 역할을 나눠 견제와 균형을 잡아왔다. 이들 기관은 12·3 내란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다. 정치인 체포조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투입 등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과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은 각각 위험한 일을 계획하고 일부 실행했다. 이재명정부가 들어서면서 안규백 국방부 장관은 군 정보기관에 대한 대대적인 조직 개편을 약속했다. 방첩사 장성 7명은 모두 직무에서 배제됐고, 현재 참모장 대리 겸 사령관 직무대행은 육군사관학교가 아닌 학사장교 출신의 편무삼 육군 준장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지난달 29일에는 직무정지·분리 파견됐던 임삼묵 2처장(공군 준장) 등 장군 4명이 각 군으로 원대 복귀했다. 나머지 3명은 정성우 방첩사 1처장, 국방부 방첩부대장, 육군본부 방첩부대장 등이다. 방첩 업무는 방첩사에 두고 수사 기능은 국방부 조사본부로, 보안 기능은 국방정보본부 및 각 군으로 이관하는 방안 등이 확정됐다. 이는 정치 개입·민간 사찰로 누적된 군에 대한 불신을 불식하고 정보기관을 본연의 임무로 복귀시킨다는 취지지만, 대공·방첩 기능 약화로 안보 공백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도 거세다. 방첩은 말 그대로 간첩 활동을 막는 걸 일컫는다. 방첩 자체가 정보·보안 수집과 수사를 통해 이뤄진다. 실제로 정보·보안 업무를 이관받는 국방정보본부의 경우 예하 정보사의 블랙 요원 명단 유출 등 기밀 유출 사고를 막지 못했다. 국회는 7년간 외부감사가 없었던 정보사에 대해 올해부터 방첩사가 들여다보도록 했다. 수사권도 문제다. 군사경찰 최상위 조직인 국방부 조사본부도 내란 당시 정치인 체포조 편성·운영 등의 혐의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한 조직에 보안·신원조사·첩보 수집 통째로 해체 수순 방첩사 군 인사 통제는 누가 하나 명확한 규정 없이 광범위한 범죄 정보 수집 활동을 벌여오면서 수사 전문성을 의심받아 온 조사본부에 국가보안법·군사기밀보호법 위반죄, 내란·외환·반란·이적죄 등 10대 안보 관련 수사권을 넘기면 컨트롤하기 어려운 권력기관이 될 수도 있다. 특히 방첩사 기능 폐지로 군에 대한 통제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방첩사는 국방부 장관 직할부대로서 각 부대의 부조리 조사 및 감찰, 지휘관의 특이 동향 점검, 대령급 이상 인사 검증 등을 통해 군을 견제해 왔다. 국방부는 올해 1단계로 내란 극복·미래 국방 설계를 위한 민·관·군 합동특별위원회 내 군 방첩·보안 재설계 분과위원회(분과위원장 홍현익 전 국립외교원장)를 구성해 조직·기능 재설계 등 합리적 개편 방안을 도출할 예정이다. 내년엔 2단계로 방첩사 개편을 위한 법령·규칙 개정, 시설 재배치, 예산 조정 등 후속 조치 사항을 이행하고 개편을 완료할 방침이다. 또 국방정보본부장의 합참정보본부장 겸직을 해제하고 정보사령부에서 휴민트 부대를 분리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국방정보본부령 일부 개정안을 지난달 27일 입법 예고했다. 국방부는 “정보사령부를 포함한 국방정보 조직 전반의 지휘·부대 구조를 최적화해 임무·기능 수행에 전문성과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해서”라며 개정 이유를 밝혔다. 개정안은 국방정보본부의 업무와 관련해 ‘합동참모본부 등의 예산 편성 및 조정(1조 2항 7호)’을 삭제함으로써 합참과의 직접적 업무 연결을 차단했다. 반면 군사보안 외에 암호정책(동항 8호)과 군사 관련 지리공간정보 외에 국방기상정보(동항 제11호), 군사정보 외에 군사보안(동항 12호)을 추가했다. 군사보안 업무가 신설된 것은 국군방첩사령부 개편에 대비한 사전 조치로 풀이된다. 어디까지? 초월적 권한 개정안은 국방정보본부장의 직무와 관련해 ‘군사정보·전략정보 업무에 관해 합동참모의장 보좌’(3조 2항)를 삭제해 합참정보본부장 겸직을 해제했다. 개정안은 정보본부 예하부대 중 정보사령부 업무와 관련해 기존의 ‘군사 관련 영상·지리 공간·인간·기술·계측·기호 등의 정보’ 등(4조 2항 1호) 규정 중 ‘영상’과 ‘인간’을 삭제했다. 대신 동항 4호에 ‘군사 관련 인간정보 수집·지원 및 훈련에 관한 사항을 관장하기 위한 인간정보 부대’ 규정을 신설했다. 이른바 블랙 요원이나 특임대(HID) 같은 인간정보 부대를 정보사에서 분리해 정보본부 예하에 재배치했다. 이에 따라 정보본부 예하에는 기존 정보사와 777사령부(신호정보 담당) 외에 인간정보 부대가 추가된다. 방첩사는 지난 8월 조직 와해를 막기 위해 전담팀을 꾸렸다. 정치권에 따르면 방첩사는 같은 달부터 ‘부대개혁 TF’라는 전담팀을 꾸리고 간부들에게 비공개 지침을 하달했다. ‘글로벌 안보 위협’을 이유로 들어 “주변 고위급 지인 등 인맥을 통해 부대 존치 논리나 순기능 역할에 대해 전파해 협조나 지원을 이끌어내라”는 내용이다. 국정기획위원회의 방첩사 폐지 방침을 두고 “국방부·대통령실·국회 측도 방첩 역량 약화에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는 주장도 담겼다. 한 군 관계자는 “지금 방첩사가 내부 갈등이 심하다. 개혁해야 하는 것에 동의는 하는데 방첩사 폐지로 방첩 기능이 약화되는 걸 우려하는 사람들이 많다. 반면 부대가 없어져도 기능 자체가 이관되기에 문제될 게 없다고 지적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대북 정보망 복구가 중요 정보사에서도 최근 개혁에 반대하는 움직임이 포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에 따르면 경기도 판교에 위치한 정보사 100여단 소속 일부 인원들이 지난달 21일 오전 안양에 위치한 정보사령부 건물로 출동했다. 사령부에서 인간정보 부대 관련 업무를 담당·지원하는 관련 부서들의 사무용품, 책상, 의자, 서류 등을 포장해 100여단으로 가져오기 위해서다. 사무용품 등의 이전은 당일 낮 12시께 중단됐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박선원 의원이 문제를 제기하자 이전 중단 지시가 내려간 것이다. 이후 100여단 소속 인원들은 부대로 복귀했다. 다만, 중단 지시 전 옮겨진 인간정보 부대 관련 부서의 서류와 물품들은 100여단에 남아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국방부는 군 정보기관 개혁 조치의 일환으로 지난달 13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내년 1월1일부터 인간정보부대를 정보사에서 분리해 국방정보본부 예하 부대로 전속하겠다”고 보고했다. 이 과정에서 정보사가 100여단을 움직여 인간정보 부대가 국방정보본부 소속으로 개편되기 석 달 전, 국방부와 정보사 지휘부에 보고도 없이 사령부 건물을 방문한 것이다. 정보사령관 직무대리는 지난달 26일 “상급부대에서 (인간정보부대 개편 내용을 담은) 법적 근거를 마련할 때까지 불필요한 오해의 소지가 없도록 사령부가 추진한 사항을 잠정 중단하라”는 취지의 공문을 하달했다. 지난 9월18일 정보사 100여단 부대 강당에서는 국방정보본부 산하 인간정보 부대 개편을 위한 내부 설명회가 열리기도 했다. 당시 100여단장은 해당 간담회를 주재하며 부대원들에게 “간담회에서 나눈 이야기나 부대의 사정이 외부로 유출되지 않도록 하라”며 입단속을 강조했다. 앞으로 국방정보본부가 갖게 되는 권한은 막대하다. 현행 구조에서 국방정보본부장은 정보사·777, 합참 정보부를 총괄한다. 여기에 더해 정보사의 휴민트 기능을 직접 통제하고 보안·신원조사를 추가하면, 누구도 견제하기 힘든 조직이 탄생한다. “대북공작 휴민트가 장관 직속? 전례 없어” “조직 수장 역량에 따라 괴물 집단 될 수도” 민주당 내부에서도 반발이 만만치 않다. 민주당 한 중진 의원은 “휴민트 임무 특성상 비밀·독립성이 가장 중요하다. 이걸 국방정보본부장 예하로 두겠다는 건 관리하기 쉽다는 장점도 있지만 윤석열과 같은 인간에게 넘어간다면 굉장히 위험한 조직이 될 수 있다.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기관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다른 군 전문가도 “전문성이 없는 민간 부처가 공작 임무를 직접 운영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정보사 휴민트 조직은 국정원과 긴밀한 협력을 통해 공작을 기획한다. 국정원이 예산도 관리해 관리·감독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며 “이번 개혁안이 완전히 확정된 건 아니지만 휴민트를 국방정보본부 예하로 두는 건 도박”이라고 비판했다. 박 의원도 지난달 13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휴민트 부대의 본질은 숨기고 또 숨겨야 하는 특수공작 조직”이라면서 “전 세계 어느 나라도 국방 장관 직속으로 인간정보 공작부대를 두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같은 당 부승찬 의원 역시 “전시 연합사령관 지시를 받는 부대도 아니고, 평시 합참 지휘체계에도 없는 부대”라면서 “작전 지휘체계나 통제체계에 들어가 있지 않은 부대인데, 이를 국방정보본부에 넣는 건 불가능하다”고 언급했다. 이 같은 지적에도 국방부는 국방정보본부령 일부개정령안을 입법 예고했다. 기존 국정감사 업무보고에선 정보부대 개편을 2026년 내 마무리하겠다고 했었는데, 이번 개정령안은 내년 1월1일 시행으로 못 박았다. 이에 민주당 황명선 의원은 종합감사에서 인간정보부대의 국방정보본부 편입에 우려를 표했다. 황 의원은 “장관도 동의하지 않는 이런 개정안을 누가 냈느냐”고 따져 물었다. 이에 안 장관은 “글자 그대로 입법 예고이니 의원들께서 의견을 주시면 최적화하겠다”고 진화에 나섰다. 그러나 국방정보본부와 국방부 기획조정실(조직관리담당관)은 다른 분위기다. 한 국방부 관계자는 “장관과 국방정보본부 간 소통이 잘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 같다. 정보 계통 군인들은 오히려 현 입법안을 두고 안도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개혁 반대 움직임도 황 의원이 민·관·군 합동 특별자문위원회의 ‘방첩·보안 재설계 분과’가 합리적인 안을 만들어낼 때까지 입법 예고를 보류해달라고 하자 안 장관도 “알겠다”고 답했다. 안 장관은 “휴민트 조직이 중요하기 때문에 이 부대에 대해서는 가급적 말을 절약해주는 것이 휴민트 부대를 살리는 길이고 부대 가치를 존중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