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러진 3대 사다리’ 수시·로스쿨·의전원의 이면

개천서? 윗물이 맑아야 용난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어려운 환경서 성공을 일궈낸 사람을 가리켜 개천서 용 났다고 했다. 개천에 살던 많은 이무기들은 여러 종류의 사다리를 타고 올라 용이 되길 꿈꿨다. 하지만 최근 그들이 타고 오를 사다리가 사라지고 있다.
 

▲ 사법고시 폐지 반대 중인 시민단체

2015년 대학생이 뽑은 올해의 신조어 1위는 ‘금수저’였다. 대한민국 홍보연합동아리 ‘생존경쟁’서 대학생 201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였다. 응답자의 31%가 금수저를 올해의 신조어로 꼽았다. 흙수저와 대비되는 개념인 금수저는 부유한 부모 밑에서 자라 사회서 유리한 위치를 선점한 사람이나 계층을 풍자한 단어다.

금·흙수저
수저계급론

부모가 자식을 뒷받침해주는 능력에 따라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 등으로 분류하는 이른바 수저계급론2015년 전후로 한국 사회를 강타했다. 개인의 능력보다 부모의 경제수준이 사회 진출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연구 결과가 속속 등장하고 실제 사례가 터져 나오면서 수저계급론은 2030대 젊은 세대의 자조 섞인 유행어로 자리 잡았다.

실제 서울대 입학이 학생의 잠재력보다 부모의 재력에 의해 더 크게 좌우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2016년 서울대 경제학부 김세직·류근관 교수가 서울대 경제연구소의 경제논집에 발표한 <학생 잠재력인가? 부모 경제력인가?> 논문에 따르면 같은 능력을 가진 학생이라도 부모의 경제력에 따라 서울대 입학 가능성이 8090% 차이가 나는 것으로 드러났다.

연구진은 타고난 잠재력 차이만으로는 소득 차이에 따른 구별 입학률을 설명할 수 없다. 합격률 차이의 8090%는 부모 경제력에 따른 치장으로 설명된다일부 계층, 학교, 지역에 서울대 합격자가 쏠리는 것은 이 같은 결과가 반영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가정 형편이 좋지 않아도 개인의 능력으로 계층 이동이 가능했던 과거에 비해 부모의 경제수준이 자녀의 사회 진출에 미치는 영향력이 커지면서 2030대 젊은 세대의 박탈감은 커지기 시작했다.

특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당시 최순실의 딸 정유라가 이화여대에 입학하는 과정서 나온 특혜 의혹이 사실로 확인되면서 입시비리에 대한 국민들의 반감은 극에 달했다.

교육과 병역 문제는 ‘국민들의 역린’이라는 말이 있을 만큼 민감한 분야로 손꼽힌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장미대선을 거쳐 들어선 문재인정부는 적폐 청산과 함께 공정사회를 지향점으로 내세웠다.

조국 딸 입시비리 의혹 제기
‘교육문제’ 국민 역린 건드려

실제로 2017년 5월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사를 통해 “문재인과 더불어민주당 정부서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라고 선언했다.

지난 1월 신년 기자회견서도 문 대통령은 공정하게 경쟁하는 공정경제를 토대로 혁신성장과 소득주도성장을 통해 성장을 지속시키면서 함께 잘사는 경제를 만드는 것이 정부가 추진하는 사람 중심 경제와 혁신적 포용국가라며 미래의 희망을 만들면서 개천서 용이 나오는 사회를 만들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청와대 초대 민정수석을 지냈고 현재 법무부장관 후보자 타이틀을 달고 있는 조국 전 수석의 딸 논란이 불거지면서 문재인정부가 지향하고 있는 기회 평등, 과정 공정, 결과 정의라는 기치가 흔들리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후보자 청문회를 앞두고 조 전 수석의 딸을 둘러싼 입시비리 의혹이 연이어 불거지고 있다. 조씨의 딸이 한영외고 시절 2주가량의 인턴십 프로그램에 참여했고, 이 과정에 나온 의학논문에 1저자로 이름을 올린 사실이 드러났다.

또 고려대 입학 전형 과정서 제출한 자기소개서에 단국대 의과학연구소서 인턴십 성과로 내 이름이 논문에 오르게 됐다는 내용이 명시된 것으로 확인되면서 부정입학 의혹이 제기됐다.

논문 실적을 고려대 입학 당시 활용했는지 여부, 조씨가 제1저자로 이름을 올릴 정도로 논문에 기여를 했는지 여부, 당시 조씨의 소속 문제까지 총체적인 의혹이 나오면서 조 전 수석의 명쾌한 해명을 바라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와 관련해 조 전 수석 인사청문회 준비단은 조씨가 논문의 1저자라는 내용은 (자소서에)적지 않았다고 해명한 바 있다.

공정사회
외쳤지만…

조씨가 대학 입시를 위해 준비한 스펙은 화려한 수준이다. 1저자로 이름을 올려 문제된 논문부터 물리학회 수상, 국제 조류학회 참가 등 광범위한 부분서 다양한 경험을 했다.

대다수의 보통 학생들이 만들기 어려운 스펙이기에 부모의 도움이 있었을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 일각에선 올해 큰 인기를 누렸던 JTBC 드라마 <스카이캐슬>의 현실판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 ▲▲ JTBC 드라마 <스카이캐슬><br>

<스카이캐슬>은 스카이캐슬에 살고 있는 상류층 학부모들이 자녀를 일류대 의대를 보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입시 코디네이터라는 생소한 직업이 등장해 화제를 모았다. 입시 코디네이터가 일류대 의대 진학을 위한 맞춤형 스펙을 만들기 위해 시험지 유출, 협박 등의 범법 행위도 서슴지 않는 장면이 전파를 타면서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종배 공정사회를 위한 국민모임(이하 공정사회 국민모임) 대표는 조 전 수석은 위법성이 없다고 계속 주장하고 있지만 꼼수를 이용한 것은 사실이라고 조 전 수석과 관련된 논란에 대해 언급했다.

이어 조국 전 수석 딸 논란은 시스템의 문제서 접근해야 한다조 전 수석 딸만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사법시험 폐지가 결정된 후 사법시험 존치를 위한 고시생모임을 만든 이 대표는 수시 축소 및 폐지를 원하는 학부모, 시민단체 등과 연대해 공정사회 국민모임을 결성했다. 공정사회 국민모임은 현행 수시 제도를 비롯해 법학전문대학원(이하 로스쿨), 의학전문대학원(이하 의전원) 등을 현대판 음서제로 보고, 개선 혹은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수시와 관련된 비리는 끊이지 않고 있다. 수시의 핵심은 학생부종합전형(이하 학종)이다. 학종은 학교 시험으로 결정되는 내신과 동아리·봉사·교내 수상경력·진로 활동 등 비교과 부분, 자기소개서와 교사추천서 등을 통해 학생을 다각도로 평가하자는 취지서 도입됐다. 학종으로 대학 진학이 결정되는 비율이 높아지면서 학생들 간의 경쟁이 치열해졌다.


폐해 드러나도
오히려 늘어나

드라마 <스카이캐슬>서 처럼 입시 코디네이터가 등장했고, 자기소개서를 쓰고 첨삭해주는 업체가 우후죽순처럼 늘었다. 교내 수상경력을 성적이 우수한 학생 위주로 밀어주거나 교사가 학생의 백일장 작품을 써주는 등의 문제들이 불거졌다. 대학교수들이 친한 교수의 자녀들을 논문 저자로 등재하는 등 논문 품앗이의혹이 나왔다.

급기야 광주에선 학부모가 돈을 주고 시험지 유출을 사주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숙명여고서도 아버지 교무부장이 쌍둥이 딸에게 시험지를 유출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학교가 발칵 뒤집혔다.
 

▲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

숙명여고 사태를 정점으로 현행 입시제도에 대한 불만이 폭주했다. 학생 개인의 능력보다 외부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영역이 넓어지면서 수시를 줄이고 정시를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교육부 업무보고서 내신이나 학생부 같은 경우 도대체 그것이 어떻게 평가되는지를 제대로 모른다대학 수시도 워낙 전형 방법이 다양하다 보니 많은 부모들 입장에선 깜깜이라 공정성을 믿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많은 반칙·특권과 비리 부정이 행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상대적으로 그러지 못한 국민들, 학부모들이 피해를 입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공정성 논란이 계속되고 있지만 대입전형서 수시모집 비율은 2019학년 76.2%, 2020학년 77.3%, 2021학년 77% 80%에 육박하고 있다. 여기에 2021학년도 대입 전형유형별 모집 비중을 살펴보면 여러 부작용이 나오고 있는 학종 비율은 24.8%에 달한다. 지난해 공론화위서 학종에 대한 신뢰가 떨어졌다는 여론이 많았지만 오히려 전년도보다 0.3포인트 늘었다.

부모 경제수준에 수저색 달라져
정부 평등·공정·정의 가치 무색

문제는 수시서 그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일각서 현대판 음서제로 불리는 로스쿨과 의전원도 다양한 부작용이 제기되면서 논란의 중심에 서있다.

로스쿨은 법조인 양성을 위한 3년 과정의 전문 법과대학원으로 2009년 노무현정부 시절 도입됐다. 로스쿨 도입 전까지는 사법고시를 통과해야만 판사, 검사, 변호사 등 법조인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고시 낭인의 양산, 배타적인 기수 문화 등의 지적이 계속 제기되면서 사시 폐지 움직임이 일었고 2017년을 끝으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법조인이 될 수 있는 관문이 로스쿨로 일원화됐다.

로스쿨은 도입 당시부터 높은 학비, 불분명한 입학 구조 등의 부작용이 제기된 바 있다. 특히 입학 과정서의 불공정 논란은 로스쿨이 도입된 지 1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현대판 음서제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는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된다.
 

최근에는 변시 낭인(변호사 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 오탈자(5회 제한에 걸려 변호사 시험 기회를 잃은 로스쿨 졸업생)의 증가가 사회적 논란으로 떠올랐다.

의전원은 조 전 수석의 딸 논란으로 현대판 음서제라는 비판이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다. 조씨가 부산대 의전원을 입학하는 과정서 따른 전형을 보면 정량평가보다는 면접 등 정성평가가 당락에 미친 영향이 크다.

조 전 수석은 조씨가 의학교육입문검사(MEET) 점수 없이 입학했다는 의혹에 대해 적법한 절차를 거쳤고 MEET 성적을 제출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조씨의 입학 전형과정서 MEET 점수의 반영도는 0점이었다. 당락과는 무관했던 셈이다.

기득권 전유물
바뀔 수 있나

자유한국당 홍준표 전 대표는 지난 22일 자신의 SNS정유라에 대한 분노가 조국 딸에 대한 분노로 번지는 것을 보면서 좌불안석인 여야 정치인, 한국사회 소위 지도자 하는 사람들도 참 많을 것이라며 기득권 집착에는 여야가 없고, 청부, 졸부가 따로 놀지 않는다. 모두가 한마음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국민들이 분노해야 할 곳은 조국 사건에 대한 1회성 분노가 아닌 변칙 입학, 변칙 출세해 변칙 사회를 만드는 한국 사회 전반의 제도개혁 요구에 대한 분노이고 혁신이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jsjang@ilyosisa.co.kr>

 

▲ 공정사회를 위한 국민모임 이종배 대표

<기사 속 기사> 공정사회를 위한 국민모임 이종배 대표 인터뷰
현대판 음서제 바꾸기 쉽지 않다

이종배 공정사회를 위한 국민모임 대표는 앞서 사법고시 폐지를 반대하면서 거리로 나섰다. 사시가 폐지된 후에는 대학 입시전형인 학생부종합전형(학종)에 비판적인 학부모들과 연대했다.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과 학종이 기득권을 위한 현대판 음서제라는데 의견을 같이 했기 때문이다. 이하 이 대표와의 일문일답

-조국 전 수석 딸 논란이 시끄럽다

조국 딸 논란의 본질은 기득권이나 특권층이 수시제도의 허점을 악용해 즉 꼼수를 사용해 자기 자식을 특권층으로 만드는 세습을 자행했다는 점이다. 조국이 특히 더 논란이 되는 것은 딸을 명문대로 진학시킨 이후 의전원까지 보냈기 때문이다. 학부모들의 분노가 크다.

-수시와 로스쿨, 의전원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수시제도와 로스쿨, 의전원은 현대판 음서제라는 점에서 결이 같다. 과정이 불투명하다 보니 기득권이나 특권층이 유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 재력과 정보력으로 당락이 좌우될 수 있기 때문에 가지지 못한 사람들은 화가 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변화는 요원하다.

3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분노는 하지만 행동할 동력은 없다. 대입제도가 변화한다고 해서 당장 혜택을 보거나 피해를 보는 학부모는 많지 않다. 이해관계가 얽힌 사람이 많지 않다는 뜻이다. 이들은 조국 논란에 대해 화는 낼지언정 근본적인 시스템을 바꾸자고 나서진 않는다.

두 번째로는 언론서 조국 논란에 대해 비판을 하면서도 본질을 보도하진 않는다. 조국과 관련된 사안만 열심히 보도할 뿐 어떤 문제로 인해 지금 사태까지 왔는지에 대한 보도가 없는 것이 안타깝다.

마지막으로 수시나 로스쿨, 의전원 제도는 기득권들에게 유리한 제도다. 조국만 날리면 될 뿐 제도까지 바꿀 생각은 없을 것이다. 이미 한국 사회에 뿌리 내리기 시작한 현대판 음서제의 흐름은 정말 바꾸기 쉽지 않다.

-정말 바꿀 방법은 없나

현재 교육제도는 누더기에 가깝다. 바꾸려면 위에서부터 한 번에 바꿔야 한다. 특정 정당이나 의식과 신념이 있는 정치 지도자의 결단이 필요하다. <>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이재명의 100일 결정적 장면들

이재명의 100일 결정적 장면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체감상 1년은 된 것 같다.” 어느 덧 이재명정부가 출범 100일째를 맞았다. 이재명 대통령에겐 숨 가쁜 3개월이었다. 12·3 비상계엄 선포, 탄핵 정국, 조기 대선 등 대형 정치 이슈는 지나갔다. 이제 본격적으로 국정 운영의 청사진을 실현해야 하는 시기다. 지지율은 이미 요동치고 있다. 어떤 이슈가 이정부를 뒤흔들었던 걸까? 지난 6월3일 21대 대통령선거가 열렸다. 지난해 12월3일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지 6개월 만에 대선이 치러졌다. ‘어대명(어차피 대통령은 이재명)’이라는 말이 대선 전부터 파다했고 실제로 이변은 없었다. 재수 끝에 대통령에 당선된 이재명 대통령은 역대 최다 득표수를 기록했다. 다만, 과반 득표율에는 미치지 못했다. 무정부 상태 산적한 이슈 이번 대선은 대통령 탄핵으로 치러진 보궐선거여서 인수위원회 기간 없이 바로 임기가 시작됐다. 이 대통령 앞에는 비상계엄 사태 수습, 민생 회복, 국민 통합 등 국내 문제는 물론 미국발 통상 전쟁 등 국외 문제까지 이슈가 산적한 상태였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무정부’나 다름없는 상태로 6개월 동안 이어진 국정 공백을 메워야 했다. 이 대통령은 당선이 확정된 후 소감 연설에서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회복하고 민주공화정 공동체 안에서 국민이 주권자로 존중받고 협력하면서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만드는 것, 반드시 그 사명을 지키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란 극복 ▲민생 회복 ▲국민 안전 ▲한반도 평화 ▲국민 통합 등을 언급했다. 실제 이 대통령은 국회의 과반 의석을 등에 업고 ‘윤석열정부 지우기’에 드라이브를 걸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이재명 정부 1호 법안으로 ‘내란 특검법’ ‘김건희 여사 특검법’ ‘채 해병 특검법’ 등을 통과시켰다. 김건희 특검법, 채 해병 특검법 등은 윤정부에서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로 번번이 폐기됐던 법안이다. 이 대통령은 취임 엿새 만인 6월10일 국무회의에서 3대 특검법을 의결했다. 그는 국무회의 이후 SNS를 통해 “이재명 정부 1호 법안인 3대 특검법은 내란 심판과 헌정 질서 회복을 열망하는 국민의 뜻을 받들기 위한 결정”이라고 밝혔다. 특검은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를 구속 기소하는 등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침체된 내수를 회복하기 위한 소비쿠폰도 지급했다. 비상계엄과 탄핵 정국을 거치면서 사회 분위기가 흉흉해졌고 이는 곧 경기 부진으로 이어졌다. 정치 상황이 좋지 않다 보니 사람들이 소비를 줄이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연말 연초 대목 장사를 망친 자영업자는 폐업을 걱정해야 할 지경에 몰렸다. 민생 회복 소비쿠폰 지급은 이 대통령이 대선후보 때부터 내세운 공약이다. 지난 7월21일부터 전 국민을 상대로 1차 소비쿠폰이 지급됐다. 기본 15만원에 인구 감소 지역 등에 일정 금액을 더했다. 2차 소비쿠폰은 상위 10%를 제외한 국민 90%가 오는 22일부터 신청할 수 있다. 13조원의 재정이 투입됐다. 윤정부 때부터 이어진 의료계와 정부의 갈등은 이재명정부 들어서도 쉽게 출구 전략을 찾지 못하는 모양새다. 무엇보다 의대생 수업 복귀에 대한 이정부의 행보에 민주당 지지자 사이에서도 불만이 제기됐다. 의료 정상화를 이유로 조건 없이 의대생 복귀를 추진하는 모습에 공정과 원칙이 깨졌다며 실망감을 표출한 것이다. 두 번의 도전 끝에 당선 내란 종식, 민생 첫 손에 의정 갈등은 윤정부 시기인 지난해 2월 의대 정원을 2000명 늘리겠다는 보건복지부의 발표로 시작됐다. 이 과정에서 전공의는 집단 사직하며 병원을 떠났고 의대생은 집단 휴학을 강행했다. 응급실 뺑뺑이 사건 등 의료 공백이 가시화되고 의료 붕괴까지 우려되다가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핵심 이슈에서 멀어졌다. 새 정부의 현안으로 넘어간 것이다. 이 대통령이 정은경 전 질병관리청장을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하면서 의정 갈등 해소에 대한 기대가 커졌다. 정 장관 지명 이후 의료계에서 일제히 환영 입장을 내놨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대생 복귀와 관련해 특혜 논란이 나왔고 국민 여론은 최악으로 치달았다. 의료계와 국민 여론의 괴리가 큰 상황이라 해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산재와의 전쟁’은 임기 초 이정부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는 모양새다. 이 대통령은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SPC 공장을 현장 방문하는가 하면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반복 공시로 주가 폭락’ 등 수위 높은 발언으로 건설업계를 겨냥했다. 이 대통령이 산업재해 근절을 외치자 건설업계가 납작 엎드렸다. 산재 사고가 발생하면 사용주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내용의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고도 일터에서 근로자가 죽는 사례가 거듭 일어나자 대통령이 직접 칼을 빼든 것이다. 연이어 산재 사고가 발생한 포스코이앤씨는 대표이사가 바뀌었고 DL건설은 임직원 전원이 사의를 표명했다. 일각에서는 이정부가 지나치게 기업을 ‘잡도리’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코스피 5000’을 외치며 주가 부양을 공언한 것과 실제 행보는 정반대라는 의견이다. 지금까지의 주가 상승은 이정부에 대한 기대감에서 비롯됐다면 앞으로의 상승분은 실물 경제에서 끌어 올려야 하는데 이를 이끌 기업을 너무 옥죄는 게 아니냐는 주장이 나온다. 경제 정책의 방향도 엇박자를 내고 있다는 의견이 꾸준히 제기된다. 지난달 1일 코스피 지수가 126.03포인트(3.88%)나 하락했다. 주가 3200선이 깨졌고 하락률은 미국발 상호 관세 부과로 충격을 받았던 지난 4월7일(-5.57%) 이후 4개월 만에 가장 컸다. 이른바 ‘검은 금요일’의 배경은 전날 이재명 정부가 발표한 세제 개편안이라는 게 중론이었다. 침체된 경기 소비쿠폰으로 이정부는 주식 양도소득세 과세 대상인 대주주 기준을 50억원에서 10억원으로 낮추고 최고 35% 배당소득 분리과세 도입 등을 담은 세제 개편안을 공개했다. 금융투자소득세 도입 조건부로 인하된 증권거래세율도 현재의 0.15%에서 2023년 수준인 0.2%로 환원됐다. 또 법인세 세율을 모든 과세표준 구간에 걸쳐 1%포인트씩 일괄 인상한다고 발표했다. ‘검은 금요일’의 후폭풍은 상당했다. 무엇보다 국내 주식시장에 대한 투자 심리가 위축됐다는 게 문제였다. 주가가 폭락한 지난달 1일 이후 열흘 사이에 거래 대금이 20%가량 줄었다. 이른바 ‘국장’에서 빠져나간 개인 투자자들이 ‘미장(미국 주식시장)’으로 몰려가면서 나스닥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가뜩이나 관세 협상으로 전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 증시 부양책에 대한 의구심이 커졌다는 방증이었다. 일명 ‘노란봉투법’으로 불리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제2·3조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점도 우려를 더하고 있다. 지난달 2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노란봉투법은 하청 노동자에게 원청과의 교섭권을 부여하고 파업 노동자에 대한 기업의 손해배상청구를 제한하는 내용이 골자다. 법안이 통과되면 기업 활동이 위축될 것이라는 예상이 끊이지 않았다. 법안이 통과되기 전부터 한국경영자총연합회 등 경영계를 대표하는 경제단체는 물론 주한미국상공회의소(암참) 등이 노란봉투법에 반대 의사를 드러냈다. 법안이 통과되면 기업이 규제가 덜한 외국으로 나갈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경제단체 등은 법안이 통과되더라도 시행을 유예해 달라고까지 했지만 그대로 진행됐다. 대통령실은 법안 통과 이후 상황을 주시하는 모습이다. 이 대통령은 노란봉투법 통과 이후 “노란봉투법의 진정한 목적은 노사의 상호 존중과 협력 촉진”이라며 “노동계도 상생의 정신을 발휘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책임 있는 경제 주체로서 국민 경제 발전에 힘을 모아주시기를 노동계에 각별히 당부드린다”고 강조했다. 광복절을 앞두고는 사면 문제가 불거졌다. 취임한 지 2개월 밖에 되지 않았고 전임 정부에서 임기 초 정치인 사면을 한 적이 없던 터라 이정부 역시 같은 길을 갈 것이라는 의견이 우세했다. 사면 대상으로 거론되던 조국혁신당 조국 전 대표가 자녀 입시 비리 혐의 등으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수감된 지 8개월 밖에 안된 점도 ‘사면 불가론’에 힘을 더했다. 주가 부양 공약 반대되는 정책 지난해 12월12일 대법원은 자녀 입시 비리와 청와대 감찰 무마 등의 혐의로 기소된 조 전 대표에게 징역 2년에 추징금 600만원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조 전 대표는 나흘 뒤인 12월16일 서울구치소에 수감됐다. 만기 출소일은 내년 12월15일이었다. 조 전 대표가 이끌던 조국혁신당은 당시 대선에서 후보를 내지 않고 이 대통령을 지지했다. 조 전 대표의 사면 관련 언급이 나올 때마다 ‘대선 청구서’라는 말이 따라붙은 것도 이 때문이다. 이후 종교계, 시민단체, 정치권 일부에서 조 전 대표를 사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조 전 대표가 검찰의 횡포에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 있다는 주장도 일부 진영에서 제기됐다. 특히 문재인 전 대통령이 대통령실 등이 조 전 대표의 사면을 직접 요구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면서 정국의 핵으로 떠올랐다. 조 전 대표는 문재인정부 시절 민정수석, 법무부 장관 등 요직을 맡은 바 있다. 문 전 대통령은 조 전 대표에게 ‘마음의 빚이 있다’고 언급하는 등 각별히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통령은 빗발치는 사면 요구에 고심을 거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정치권 등에서 조 전 대표를 사면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과 달리 여론이 좋지 않았기 때문. 특히 민주당 지지층 내에서도 조 전 대표의 사면을 달갑지 않게 여기는 목소리가 나왔다.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된 입시 비리 혐의 등이 민주당 지지층이 중요하게 여기는 공정과 상식의 가치에 반한다는 것이다. 지지율이 떨어지는 등 민심 이반이 예상된다는 주장이 나왔지만 이 대통령은 장고 끝에 조 전 대표의 사면을 결정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11일 조 전 대표를 비롯해 윤미향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 은수미 전 성남시장, 이용구 전 법무부 차관 등 정치인과 고위공직자 27명을 포함해 총 83만6678명에 대한 대규모 특별사면을 단행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분열과 반목의 정치를 끝내고 국민 대화합 차원에서 이뤄지는 광복절 특사’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광복절 사면은 이 대통령의 지지율을 뒤흔들었다. 사면 논의가 시작됐을 때부터 하락세를 보이기 시작한 지지율은 발표 이후 눈에 띄게 꺾였다. 조 전 대표가 사면 이후 ‘광폭 행보’를 보이며 노출도가 높아진 것도 한몫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세제 개편안·사면으로 지지율 흔들 한일·한미 정상회담은 긍정적 평가 조 전 대표는 이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에 대해 ‘(사면이 끼친 영향은) N분의 1 정도’라고 발언한 부분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조 전 대표는 수감 한 달여 만에 정국의 핵으로 떠올랐다. 여권 내에서도 조 전 대표의 행보를 불편해하는 기류가 감지되며 야권에서는 이정부를 공격하는 소재가 된 모양새다. 특히 조 전 대표를 비롯한 조국혁신당에서 우리의 길을 가겠다는 ‘마이웨이’ 행보를 공언하면서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계 개편이 일어나는 게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 대통령의 임기 5년간 외교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정상회담도 잇따라 열렸다. 이 대통령이 취임하기 전부터 전 세계를 뒤흔들고 있던 ‘트럼프발 통상 전쟁’의 대응 방향이 윤곽을 드러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당선 직후부터 ‘관세’를 무기로 전 세계에 싸움을 걸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한미 FTA’로 쌀 등 일부 품목을 제외하고 관세가 ‘0’이었기에 타격이 불가피했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은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국방비 증액 등을 언급했다. 시장을 개방하고 미국에 이른바 ‘동맹 비용’을 내라는 요구였다. 실무진이 진행한 관세 협상은 그 시발점이었고 정상회담은 미국발 청구서의 윤곽이 드러난 자리였다. 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정상회담은 표면상으로는 성공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각국 정상을 불러놓고 면전에서 망신주기 하는 등 어디로 튈지 모르는 방식의 트럼프 대통령과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한 점 등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일각에서는 정작 중요한 사안은 하나도 논의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앞서 조선업 협력, 원전 문제를 비롯해 자동차 등 주력 산업에 붙는 관세까지 불확실성을 해소하지 못했다는 주장이다. 일반적으로 실무진이 틀을 만들고 정상회담에서 결정되는 방식의 외교 관행이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먹히지 않았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공동성명이나 합의문 등은 나오지 않았다. 이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 앞서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도 만났다. 이 대통령은 일본 방문 전 과거 한일 간 위안부 합의와 징용 배상 문제와 관련해 “국가 간 약속은 존중돼야 한다”며 기존 합의를 유지하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당시 한일 정상회담에서는 미국발 관세 관련 논의도 이뤄졌다. 당분간 민생 집중 취임 후 첫 외교 시험대를 넘은 이 대통령은 당분간 민생을 살피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당분간 국민의 어려움을 살피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기 위해 민생과 경제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이규연 대통령실 홍보소통수석은 “몇 주간 정상회담에 몰두했기 때문에 국내, 특히 민생·경제성장과 관련된 부분을 앞으로 주력해서 챙기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