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사냥’ 나선 윤석열 검찰총장 노림수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9.09.02 10:24:18
  • 호수 1234호
  • 댓글 0개

여의도서 서초동으로 칼자루 넘어갔다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또 다시 검찰이 정치권의 목줄을 쥐었다. 검찰이 전격적으로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속전속결로 진행되는 검찰 수사를 보는 여·야의 속내는 복잡하다. 정치권에선 내년 총선 주도권이 여의도서 서초동으로 옮겨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 윤석열 검찰총장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를 둘러싼 딸 입시 부정과 가족 사모펀드, 웅동학원 사금고화 등 각종 의혹에 대해 검찰이 전방위적인 압수수색에 들어갔다.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부장 고형곤)는 지난달 27일과 29일에 걸쳐 고려대 생명과학대학, 서울대 환경대학원, 부산대 의학전문대학원, 오거돈 부산시장 시장실 등 30여곳을 압수수색했다. 

속전속결
친인척 출금

법조계와 정치권에선 이번 검찰의 속전속결 수사가 매우 이례적이라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실제로 국회 인사청문회 제도가 도입된 2000년 이후 공직 후보자가 청문회 전에 검찰의 강제 수사를 받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게다가 다른 부처도 아닌, 법무부장관 후보자다. 임명된다면 검찰에 대한 수사지휘권을 갖는 이를 상대로 검찰이 칼을 빼든 전례가 없다.

또 조 후보자를 고발한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 등 시민단체의 고발장이 접수된 지 일주일 만에 검찰 수사가 이뤄진 부분도 예상치 못한 일이다. 

검찰은 공적 사안이 크기 때문에 빠른 수사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검찰 관계자는 “이 사건은 국민적 관심이 큰 공적 사안으로서, 객관적 자료를 통해 사실관계를 규명할 필요가 크다”며 “만약 자료 확보가 늦어질 경우 객관적 사실관계를 확인하기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 조치”라고 했다.


검찰이 조 후보자를 향해 사실상 칼을 빼들었다. 검찰은 조 후보자 사건들을 서울중앙지검은 형사1부에 배당했으나, 특수2부로 재배당했다.

재산 의혹과 관련된 수상한 자금 흐름, 딸 조씨를 둘러싼 입시 부정, 장학금 특혜 등의 의혹을 규명하기 위해선 특수부가 적합하다고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또 검찰은 조 후보자의 부인과 딸에 대해 출국 금지 명령을 내렸다. 동생, 처남 등도 출국금지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조국 후보자 수사 착수 ‘액션? 리얼?’
법무부 수장 청문회 앞두고 압수수색 최초

검찰이 전격적으로 조 후보자를 수사하면서 정치권의 속내는 여야 가릴 것 없이 복잡해진 모양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이번 검찰 수사에 상당히 정치 공학적인 노림수가 숨어있다. 조 후보자 문제로 여당이 코너에 몰렸지만 야당도 웃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라며 “이번 검찰 수사는 내년 총선을 앞두고 여의도에 큰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말했다. 

먼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코너에 몰렸다. 한국당 공격에 검찰 변수까지 떠안은 상황이다. 민주당은 이번 검찰 수사에 대해 강하게 반발했다.
 

▲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

민주당 수석대변인 홍익표 의원은 “조 후보자의 인사청문회를 앞둔 시점에 압수수색이 진행된 것에 유감을 표하며 이로 인해 청문회의 정상적 진행에 장애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점에 우려를 표한다”며 “이번 압수수색이 검찰개혁을 방해하려는 정치적 의도가 아니길 바란다. 검찰은 청문회 결과를 보고 검증과정서 해소되지 않은 의혹이 있다면 그에 대한 조사를 통해 진실을 밝혀주기를 바란다”고 촉구했다.


민주당은 조 후보자 청문회와 관련해 한국당의 가족 증인 신청을 거부하는 정도로 대응해왔다. 하지만 예상하지 못했던 검찰의 등장으로 한국당에선 전선이 크게 확대되는 형국이다. 한국당에선 조 후보자를 피의자로 규정해 민주당과 청와대에 사퇴를 촉구하고 있다. 

정권실세 잡나?
궁지 몰린 여

정치권에선 조 후보자의 임명 여부와 검찰 수사 결과가 민주당의 내년 총선 승패를 좌우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조 후보자가 법무부장관에 낙마하거나 의혹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조기 레임덕, 내년 총선 패배 등 최악의 시나리오를 맞게 될 수도 있다. 

민심도 상당히 악화됐다. 조 후보자 사태 이후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율이 3주째 하락세를 나타내며 40%대 중반에 머물렀다.

여론조사 기관 리얼미터에 따르면 부정 평가(50.8%)가 긍정 평가(45.7%)보다 5.1%포인트 우세했다. 지난달 29일 조 후보자 장관 임명 여론조사서도 반대한다는 응답이 절반을 넘어섰다. 리얼미터에 따르면 전국 성인 502명을 대상으로 조 후보자 법무부장관 임명에 대해 ‘반대’ 응답이 54.5%로 나타났다. 

대학생들이 촛불을 들고 일어났으며, 국민청원서도 조 후보자 임명 반대 청원이 빗발치고 있다. 무엇보다 조 후보자 사태가 문재인정부에 대한 배신감으로 이어지고 있다. 민주당 의원들은 지역구서 민심을 접하며 내년 총선을 걱정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한국당은 조 후보자 사태로 간만에 웃고 있긴 하지만 마냥 기뻐할 상황은 아니다. 

한국당은 이번 검찰 수사를 고리로 조 후보자의 자진 사퇴 문 대통령의 지명철회를 압박하며 파상공세를 퍼부었다. 한국당은 특히 조 후보자를 ‘피의자’ ‘검찰 수사 대상자’로 표현하며 부적격 인사임을 주장하고 있다.

한국당 김현아 원내대변인은 “과거 조국 교수도 검찰 수사대상인 장관에게 ‘직을 버리라’고 하지 않았느냐”며 “자진사퇴와 문 대통령의 지명철회가 꼬인 정국을 푸는 유일한 해법”이라고 밝혔다. 

웃고 있는 야 
그럴 때가…

한국당 소속 의원들 역시 패스트트랙 검찰 수사를 앞두고 있다. 그동안 ‘야당 탄압’이라고 주장했지만, 이번 주 조 후보자의 수사로 이 주장에 힘을 잃었다.

지난 4월 국회 개혁법안 등의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처리 과정서 의사진행 방해·폭력 사태 등으로 국회선진화법 위반 혐의로 수사대상에 오른 한국당 의원은 총 58명이다. 당시 한국당을 비롯해 더불어민주당, 정의당, 바른미래당 등 여·야를 막론하고 대대적인 고소·고발전으로 이어졌다.


지금까지 패스트트랙 수사로 경찰에 출석한 의원은 총 17명이지만, 한국당 의원들은 단 한 명도 출석하지 않았다. 현재 한국당 의원들은 패스트트랙 수사와 관련해 경찰의 출석 요구에도 소환에 불응하고 있다. 경찰은 지금까지 한국당 엄용수, 여상규, 정갑윤, 이양수 의원 등 4명에게 3차례에 걸쳐 출석 요구서를 보냈지만 불응했다. 
 

▲ 검찰이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에 대한 의혹과 관련해 오거돈 부산시장 집무실을 압수수색하고 있다.

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는 “이 모든 사태의 근본적 원인을 제공한 집권세력부터 수사하지 않는다면 표적소환에 응할 수 없다”며 “경찰은 타깃 줄 소환으로 야당 의원을 겁박해오고 있다”고 수사 불응 방침을 정했다. 

하지만 검찰이 이번 정권의 최고 실세인 조 후보자에 대한 전격적인 수사에 착수하면서 패스트트랙 수사가 ‘야당 탄압’이라는 한국당 주장의 명분은 보기 좋게 사라졌다. 경찰이 한국당 의원들의 소환 불응에도 의원 불체포 특권과 야당 탄압 등을 의식해 현실적으로 손쓸 방법이 없는 데 반해, 검찰은 강도 높은 수사를 할 것으로 예상된다.

여야 모두 물린 상황  
내년 총선 좌지우지?

홍준표 전 한국당 대표는 “(조 후보자 수사가)야당이 환호작약할 일은 아니다. 그 다음은 패스트트랙 수사”라며 “그때 가서 야당이 정치탄압이라고 주장할 명분이 있느냐”고 말했다. 

패스트트랙 수사는 총선뿐만 아니라 향후 한국당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검찰 수사에 따라 의원들의 정치적인 입지가 심각하게 흔들릴 수 있다. 이 때문에 경찰 소환 조사에도 불응한 것으로 보인다. 


국회선진화법 위반은 처벌 수위가 높다. 국회서 회의를 방해할 목적으로 회의장 또는 그 부근서 폭력행위를 하거나 의원의 회의장 출입 등을 방해하면, 5년 이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진다. 

회의를 방해하는 과정서 사람을 다치게 하거나 단체로 위력을 보인 경우 7년 이하 징역이나 2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는 규정도 있다. 더구나 국회 회의 방해죄로 500만원 이상의 벌금형을 선고받으면 5년간, 집행유예 이상을 선고받으면 10년간 피선거권이 제한된다. 수사 결과에 따라 피선거권까지 박탈될 수 있다.

한국당 58명 
도마에 올라

정치 무대는 여의도지만 내년 총선을 앞두고서는 서초동을 주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정치평론가로 활동 중이기도 한 변호사는 “현재까지 명분과 실리는 모두 검찰에게 있다. 내년 총선 역시 검찰의 칼자루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말했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