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지경세태> ‘현지녀 초이스’ 필리핀 황제투어 천태만상

‘10대 바바에’ 끼고 2박3일 섹스관광

[일요시사 사회팀] 김종민 기자 = 2013년 12월, 남성만 가입할 수 있는 인터넷 여행 카페를 차려놓고 필리핀 원정 성매매를 알선해온 일당과 성매수 남성 37명이 무더기로 적발되는 사건이 있었다. 성매매 관광을 다녀온 회원들은 후기를 올려 공유했고, 개중에는 40차례 넘게 원정 성매매를 갔다온 남성도 있었다. 경찰은 수사를 확대했고, 인터넷 여행 카페 등을 통해 필리핀 성매매를 알선하는 여행사는 줄어드는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더 깊은 음지로 숨어들었을 뿐이다. <일요시사>가 그 속을 낱낱이 파헤쳐 봤다.

'○○센터' '△△넷' '●톡' 'XXX69' 국내·외를 막론하고 '밤 문화'를 즐기는 한국 남성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대표적 유흥 커뮤니티 사이트다. 해당 사이트는 경찰청과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등 당국의 집중 감시를 받고 있어 한 달에도 몇 번씩 접속이 차단되고 있다. 그럼에도 각 사이트는 차단된 즉시 다른 도메인 주소를 구입해 다시 문을 여는 방법으로 남성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차단-주소 변경-차단-주소 변경'을 반복하는 것이다.

다시 고개드는
원정 성매매

사이트에는 각종 유흥정보를 포함, '야동' '야사' 등이 공유되고 국내 성매매 혹은 유사 성행위 업소 홍보와 함께 업소를 이용한 남성들의 '후기'가 소개되고 있다. 업소의 위치와 전화번호, 업소 여성들의 프로필, 가격, 수위까지 한 방에 모든 정보를 알 수 있다.

사이트에 소개되는 업소나 후기 대부분은 국내 업소다. 강남권이 가장 많고, 강남을 제외한 서울 지역, 인천·수원·평택·안양 등 경기도 주요 지역, 부산·창원·광주 등 지방 지역이 그 뒤를 잇고 있다.

그런데 업소 홍보란과 후기란에서 20개 중 1개 꼴로 올라오는 특이한 게시물이 있다. 해외 원정 성매매, 그 중 필리핀 원정 성매매에 대한 정보와 후기들이다. 필리핀 원정 성매매는 비교적 적은 비용으로 확실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고 해서 이른바 '황제관광'으로 불린다.

'황제관광'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2000년대 초반부터 최근까지 필리핀 현지 성매매에 대한 언론 보도가 끊임없이 이어져 왔다. 2004년 9월23일 성매매특별법이 시행된 이후 중국이나 필리핀을 비롯한 동남아 국가에서 이뤄지는 기업의 '해외 원정 성접대'가 늘기 시작했고 2005년 5월에는 9명의 한국 관광객이 베트남 유흥업소 여종업원들과의 성매매 혐의로 체포된 뒤 강제출국 되기도 했다.

이후에도 한국 남성들의 원정 성매매로 한국의 이미지는 급속도로 추락했다. 한국인 관광객 전체가 성매매를 위해 동남아를 찾는 다는 불미스러운 시각이 퍼졌고 '청소년을 위한 내일여성센터'에서는 '동남아 성매매 보고서'를 내놓기도 했다.

2006년부터는 기존 관광 코스에 성매매 코스를 끼워 넣은 여행 상품이 나오기 시작했고 이때부터 '황제관광'이라는 이름으로 동남아를 찾는 한국 남성들이 급증하면서 알선자와 성매수 남이 검거되는 일도 빈번해졌다.

최근에는 지난해 12월, 인터넷을 통해 필리핀 원정 성매매를 알선해 온 일당과 성매수 남성 37명이 무더기로 입건된 사건이 있었다.
 

경찰이 원정 성매매 적발에 대한 의지를 불태우고 있지만 해외 성매매를 알선하는 인터넷 카페는 사라지지 않고 있다. 다만 예전보다는 쉽게 찾아볼 수 없게 됐다. 더 깊은 음지로 숨어들었다는 얘기다.

'황제관광'은 어떤 방법으로 이뤄지는 걸까? <일요시사>가 필리핀 현지에서 '황제관광'을 알선하는 인터넷 카페에 직접 가입해 상담을 받아 봤다.

카톡 실시간 답변…예약까지 일사천리
여성 얼굴 사진 공개…이용후기 공유

기자는 지난달 30일 국내 한 유흥 커뮤니티 사이트인 '○○센터'의 지방 유흥업소 소개 게시판에서 '필리핀 애인대행/아내대행 특급투어'라는 게시글을 찾을 수 있었다. 게시글을 클릭하고 들어가니 업체에 대한 자세한 소개가 등장했다. '○○걸'이라는 이름의 이 업체는 '필리핀 애인대행/아내대행 투어 전문 업체'라고 소개가 되어 있었고, 업체 사이트 주소가 적혀 있었다.

'술집 여성(KTV)이 아닌 필리핀 일반인(대학생, 직장인) 여성들이 24시간 회원님들께 밀착해 애인처럼, 아내처럼 편안하고, 때론 섹시하게 곁에서 보좌해주는 시스템'이라는 콘셉이었다.

여행 패키지는 '호텔+애인' '풀빌라+애인' '골프+애인' '카지노+애인' '게스트하우스+아내' '그룹 파티' 등 총 6개로 구성되어 있었다. 일정은 '공항픽업→숙소이동→마사지→애인/아내 만남→자유시간'이라고 간략하게 소개됐다. 비용에 대한 부분도 "동종업계 수준 보다 저렴하다. 현지 물가에 100% 준해 정산된다"는 짧은 정보뿐이었다. 대신 연락을 위한 카카오톡 아이디와 인터넷 전화번호가 명시되어 있었다. 더 자세한 정보를 알아보기 위해 해당 카카오톡으로 연락을 취했다.

먼저 나와 있는 아이디가 해당 업체 실제 아이디인지 확인하기 위해 "'○○걸' 카톡이 맞느냐"고 물었다. 정확히 1시간 뒤 상대는 "맞다. 아이디를 알려달라"는 답변을 보내왔다. "기자가 카톡 아이디냐. 사이트 아이디냐"고 묻자 상대는 "○○걸 아이디"라는 답장을 보냈다.

알려준 사이트에 가입을 하고 아이디를 알려 주고 10여분이 지나자 "등업(회원등급상승)이 됐다"는 메시지가 도착했다.

사이트 공지사항을 살펴봤다. 기본적인 시스템은 이렇다. 첫 번째는 '선택방법'이다. 성매매를 원하는 남성은 사이트 운영진이 보내 준 현지 여성들의 사진을 보고 여러 여성을 선택한다. 남성들이 원하는 스타일을 말하면 운영진들은 남성들이 고른 여성들 중 남성 취향과 가장 비슷한 여성을 골라 준다. 남성은 그를 종합해 원하는 여성을 선택한다.
 

두 번째는 '시간'이다. 3박4일을 기준으로 첫날은 12시간, 둘째 날부터는 24시간이 적용된다. 보통 첫날 저녁에 여성을 만나 마지막 날 오전이나 정오쯤 헤어진다고 한다. 일반 업소처럼 시간이 정해진 것은 아니고 상황에 따라 시간은 조정이 가능하다.

마지막은 '콘셉'이다. 여행기간 동안 친구처럼, 애인처럼, 마누라처럼 대하면서 회원들은 하고 싶은 대로 어떤 활동이든 부담 없이 하면 된다고 소개하고 있다. 자신이 없다고 하면 운영진들이 나서서 최고의 만족을 선사한다고 한다.

비용은 얼마가 들지 궁금해졌다. 사이트에는 '회원님들이 원하는 패키지 종류와 일정을 알려주시면 그에 따른 상세한 견적을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견적 문의는 사이트 견적문의를 클릭해 주시거나 카톡을 통해 연락주시면 신속하고 상세하게 답변드리도록 하겠습니다'라는 공지글이 띄워져 있었다.

패키지 중 하나를 선택해 카톡으로 견적을 문의해 봤다. 답변은 신속하고 정확했다.

일단 "2500페소 저가호텔부터 8000페소 5성까지 다양하다"며 호텔 급수를 선택하라고 했다. 5000페소(한화 11만원) 상당의 4성을 선택하자 "액티비티는 어떤 걸로 생각하고 있느냐"는 질문이 이어졌다. '잘 모르겠다고'하자 잠발레스 호핑을 권했다. 잠발레스는 필리핀 마닐라 북·서쪽에 있는 해안지역으로 호핑은 방카(양 옆에 날개가 달린 배)를 타고 주변 섬 일주 관광과 낚시, 스노쿨링 등을 즐기는 관광이다.

24시간 애인대행
47만원이면 'OK'

그가 권한 잠발레스 호핑의 가격은 1인당 3000페소, 한화 6만5000원 상당이다. 식사와 술을 무제한으로 즐길 수 있다는 설명도 덧붙여졌다.

호핑을 투어에 넣겠다는 답을 보내자 이번에는 온천 관광 코스에 대한 소개가 이어졌다. 그는 필리핀 대표관광지 푸닝 온천 사진 7장을 보낸 뒤 1인당 3500페소라고 말했다. 호핑만 선택한다고 하자 그는 "점심시간이라 점심을 먹고 나서 견적을 내서 견적서를 송부하겠다"고 말했다.

기다리는 동안 '에스코트걸'이라는 이름의 현지 성매매 여성 프로필을 살펴봤다. '○○걸'에 등록되어 있는 에스코트걸은 모두 69명. 69명 모두 사이트 프로필 란에 얼굴사진이 공개되어 있었다. 딱 봐도 어린나이. 개중에는 미성년자로 생각되는 외모의 여성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이름이나 나이, 직업 등 개인적인 정보는 적혀 있지 않았다.

또 다른 필리핀 '황제관광' 알선 카페인 'XXX 필리핀 에스코트 서비스'라는 곳을 들어가 봤다. 이곳에서는 가입을 하고 가입인사를 작성하고 아무 글에서 댓글을 달면 등업이 이뤄졌고 패키지에 따른 비용 또한 비교적 쉽게 확인이 가능했다. 패키지는 월 한정 패키지를 제외하고 모두 6개. '3박4일 골프+가이드걸 패키지' '헌드레드 아일랜드 패키지' '루존 비치 패키지' '순수 밤문화 패키지' '2박3일 직장인 전용 패키지' 등이다.

이중 '2박3일 직장인 전용 패키지'를 클릭해 봤다. 비용은 2인기준 1인당 59만원, 3인 기준 1인당 55만원, 4인 기준 1인당 49만원이었다. 비용에는 풀빌라 2박, 조식, 에코 2박, 한국인가이드, 전용차량, 공항 무료픽업이 포함됐고 항공료와 식대(중·석식)는 불포함됐다.

'1인당 200만원' 비싼 게 아니다?
음지로 숨은 성매매 알선 사이트

다른 패키지인 '3박4일 골프+가이드걸 패키지'의 경우 54홀 그린피, 캐디피, 카드피, 전용차량, 전용가이드, 호텔, 에코걸 3박이 포함되어 1인당 107만원. 이 패키지 역시 중·석식과 팁, 기타 용돈은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이 사이트 역시 성매매 여성들의 모습이 확인됐다. 소개된 여성은 90여명. '○○걸'과 달리 여성의 성격까지 소개되고 있었다.

약 1시간 뒤 '○○걸' 운영자로부터 견적서가 완성됐다는 메시지와 함께 '견적_XXX회원님(호텔)(2014년 10월30일 작성)'이라는 엑셀문서가 하나 도착했다. 2인 기준으로 작성된 견적서에는 4성급 호텔 3박, 호핑, 가이드, 차량 비용과 에코(성매매 여성이 24시간 동안 에스코트하는 비용) 등이 자세하게 적혀있었다. 총 견적은 13만6000페소. 한화로는 314만9760원으로 1인당 157만4880원이었다. 에코 비용만 141만5000원에 달했다.

이후 예약 진행 방법에 대해 물어봤다. '○○걸' 운영진은 "사이트 상 아가씨들의 얼굴사진을 보고 몇 명을 골라주면 전신사진 등 더 자세하게 나온 사진을 보내주겠다"며 "유흥업소처럼 여러 명을 세워놓고 선택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막상 만났을 때 마음에 들지 않으면 현지에서 체인지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다만 여성들이 업소에 소속되어 있는 여성이 아니라 대학생, 직장인, 프리랜서 모델 등 저마다의 직업을 가지고 있어서 시간이 맞는 여성들만 가능하다"고 말했다.

견적서에 따르면 1인당 3박4일 '황제관광' 비용은 약 150만원. 호텔 등급과 액티비티 이용 여부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그를 감안한다고 하더라도 130만∼170만원 사이다. 여기에 항공료 약 50만원과 기타 제반 비용을 포함하면 200만원이 넘는다. 만만치 않은 금액, 실제로 필리핀 원정 성매매를 떠나는 남성들이 많지 않을 것이라는 의심이 들었다. 하지만 몇몇 사이트 후기게시판을 살펴본 결과 쓸데없는 의심임을 깨달았다.

아이디 글쓴**은 '○○걸' 이용후기에 '카지노+애인 후기'라는 글을 올렸다. 해당 글에서 이 남성은 "첫째날 도착해서 짐을 푼 뒤 미리 점 찍어둔 에코걸과의 미팅 후 에코걸과 함께 카지노로 향했습니다. 따고 잃기를 반복하다 보니 벌써 자정, 에코걸과 호텔로가 딩가딩가 놀다가 에코걸과 맥주 한잔 후 침대로 직행, 취기가 올라서 그런지 몰라도 서비스가 죽여주더군요. 긴가민가 했는데, 진짜 거기가 빠지는 줄 알았습니다. 자금 와서 생각해도 짜릿합니다. 다음 날에는 카지노에 들렸다가 에코걸과 해산물로 맥주 한잔, 근처 쇼핑몰에서 즐거운 데이트를 하고 호텔로 돌아와 샤워 후 에코걸과 침대에서 뒹굴뒹굴 대다가 한판하고 쉬었다가 또 하고. 마지막 날 정말 헤어지기 싫더라구요. 아무튼 잊지 못할 추억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소감을 밝혔다.

"헤어지기 싫었다"
100% 만족의 이유

아이디 파트**도 "2014년 5월 남자 둘이 필리핀 세부로 ○○걸을 통해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첫날에는 짐만 풀고 이튿날 에코걸을 만나 식사를 하고 호텔로 돌아와 좋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부비부비도 하고 스킨십도 하고 섹스도 하고. 너무 좋아서 올해 다시 가려고 예약을 또 잡아놨습니다"라는 후기를 남겼다.

'황제관광'을 다녀왔거나 갈 예정인 남성들은 "결코 비싼 금액이 아니다"라고 입을 모은다. 내년 1월 3박4일 일정으로 다시 한번 '황제관광'을 갈 예정이라는 남성 A씨는 그 이유를 국내 성매매 비용과 비교하면 쉽게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A씨는 "한국에서 속칭 '풀사롱'이라는 곳을 가면 1인당 35만원에서 많게는 50만원까지 깨진다. 그것도 아가씨와 길어 봤자 반나절 같이 있을 뿐이다. 술을 추가하고 밴드도 부르면 100만원도 나온다. 그런데 필리핀은 다르다. 200만원 정도면 3박4일동안 아가씨를 끌어 안고 지낼 수 있다"고 전했다.

 

<kj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섹스관광’ 단속 어렵나?

필리핀 ‘섹스관광’은 명백한 불법이다. 필리핀도 한국처럼 성매매가 불법인 나라다. 처벌은 한국보다 엄격하다. 인신매매방지법 적용을 받기 때문에 적발 시 중형에 처해진다.

필리핀에서 처벌을 받았다 하더라도 한국에서 성매매 특별법으로 다시 한 번 처벌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필리핀 ‘황제관광’은 단속의 사각지대에 있다. 호텔이나 게스트하우스, 풀빌라 등 사생활이 보호되는 곳에서 성매매가 이뤄지며 아예 단속을 피해 사람이 없는 섬으로 이동해 성매매가 이뤄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원정 성매매 근절을 위해서는 한국 성매수자들이 스스로 위험성을 깨닫는 게 중요하다. 성매수 남성들이 법적 처분 외에 직접 받을 수 있는 대표적인 피해는 성병이다. 필리핀은 최근 에이즈 바이러스(HIV) 감염자가 급증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필리핀에서 한달동안 358명의 에이즈 바이러스 감염자가 발생했고 2012년 대비 22% 증가한 수치로 파악됐다.

지난해 12월 ‘황제관광’으로 적발된 37명 중 10명은 성병에 걸려 돌아왔다. ‘요도염’이나 ‘헤르페스’ ‘임질’ ‘매독’ 등이다. 간접 피해는 한국으로 돌아온 남성들과 성관계를 가진 여성들이 볼 수 있다. 성병은 바이러스 질환으로 전염의 우려가 있다. 헤르페스의 경우 피부에 포진이 생기고 발열, 근육통, 피로감 증상이 동반되기도 한다.

임산부라면 태아가 출산 과정에서 단순포진 바이러스에 감염 될 수 있다. 임질의 경우 자궁내막염, 난관염, 골반감염으로 진행할 수 있고 불임이 되거나 자궁외 임신이 발생할 수 있다. 드물게 패혈증이 초래되고 관절염, 뇌수막염, 심내막염을 일으킬 수 있다.

성병을 피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환자와의 성적인 접촉을 피하는 것이다. 콘돔을 끼면 괜찮다는 의견이 나올 수 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성관계시 콘돔으로 가려지는 부분은 남성 성기의 일부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여성 성기와 접촉되는 부분이 콘돔을 낀 부분만이 아니기에 다른 부분을 통한 감염이 충분히 가능하다. 100% 안전할 수는 없다는 얘기다. <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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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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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