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희생·생존자 금융조회 <일요시사> 단독 보도 이후…

‘네 탓’ 검경 눈치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수사기관이 ‘10·29 이태원 참사’ 희생자 전원과 일부 생존자들의 금융정보를 들여다본 사실이 드러났다. 유가족들에게 구체적인 조회 이유를 설명하지도 않았다. 달랑 통지서 전달이 끝이었다. 논란은 일단락됐으나 검찰과 경찰의 공식 입장도 문제다. 생존자들에 대한 금융정보 조회 문제를 두고 책임을 떠넘기고 있는 형국이다.

검찰과 경찰은 ‘10·29 이태원 참사’ 수사 과정서 희생자 전원에 대한 금융정보 조회 사실을 인정했다. 그러나 일부 생존자들까지 포함한 것은 “우리의 요청이 아니다”는 입장이다. 한 사건을 두고 수사기관 간 공식 입장 차이가 뚜렷한 건 상당히 이례적이다. 검찰과 경찰의 갈등이 표출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올 정도다.

입장 평행선

서울경찰청 강력범죄수사대는 지난 1월, 서울서부지검 이태원 참사 수사팀의 요청으로 일부 희생자 158명과 생존자 292명 등 총 450명의 카드 정보와 거래내역 등을 확인했다. 희생자는 카카오뱅크 금융정보만 조회됐고 생존자는 자신의 명의로 등록된 은행사 금융정보도 조회됐다.

희생자의 금융정보조회통지서는 유가족에게 전달됐고 생존자들은 “보이스피싱을 당한 줄 알았다”고 토로했다. 한 생존자는 “통지서에 ‘수사·조사 목적’이라는 설명 외에는 조회 이유가 적혀 있지 않았다”고 말했다. 서울경찰청 관계자는 “문의가 온 유족분들에게 왜 금융정보가 조회됐는지 충분히 설명했다”며 “적법한 수사였다”고 말했다.

경찰은 유족 측에 이태원 참사 당일 경찰의 지하철 무정차 통과 요청에 응하지 않아 인명피해를 키운 혐의를 받는 서울교통공사 직원들에 대한 ‘혐의 입증’을 위해 조회했다고 전했다. 경찰의 해명에도 유족 측 반발은 가라앉지 않았다.


<일요시사> 보도 후 논란이 지속되자 윤희근 경찰청장이 직접 나섰다. 윤 청장은 지난달 22일, 국회서 열린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가족들께서 그런 아픔을 겪었다는 데 대해 청장으로서 일정 부분 유감스럽고 죄송하다”며 “(금융정보조회) 조회 시 사전에 당사자에게 고지나 양해를 구하는 절차는 없다”고 밝혔다.

이태원 참사 특별수사본부는(이하 특수본) 지난해에도 희생자 전원의 카드 사용기록을 들여다보려 했다. 특수본은 당시 두 차례 희생자 158명의 교통카드와 신용카드 결제기록을 확보하기 위한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했다. 검찰은 카드 기록이 참사와 직접 관련성이 없고 ‘발급 카드 전체’라는 범위가 포괄적이라며 영장을 반려했다.

특수본, 지난해 희생자 전원 영장 청구 두 차례 기각
'윗선 수사’ 두 달째 미동 없어 서울청 수차례 압색

이태원 참사에 대한 특수본 수사와 검찰의 보완수사는 차이점이 있다. 생존자 약 300명이 금융정보 조회 대상에 포함된 것이 핵심이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특수본은 지난해 수사 초부터 생존자가 아닌 희생자에 대한 금융정보 영장 발부에 초점을 맞췄다.

서울경찰청의 한 간부는 “경찰은 생존자에 대한 금융정보 조회를 주도하지 않았다. 서부지검 보완수사 과정서 검찰이 지휘한 게 전부고 생존자 292명 산정기준도 검찰이 정했다”고 말했다. 실제 윤 청장도 “(생존자 292명 포함은)검찰의 보완수사 요구로 이뤄진 것”이라고 밝혔다.

그렇다면 경찰이 거짓말을 하는 걸까? 서부지검 관계자는 “1월 말 경찰에 보완수사를 요청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경찰이 1월27일 영장을 신청하고 3일 뒤 법원에 청구해준 것이다. 생존자에 대한 금융정보 영장도 그때 이뤄졌다. 검찰은 직접 영장을 청구한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익명을 요구한 서울청 관계자는 “생존자들에 대한 금융정보 조회가 포함된 건 검찰이 보완수사 과정서 필요하다고 판단했기에 영장을 통해 집행된 것”이라며 “보완수사 요청 과정에 그 요구가 없었겠느냐”고 되물었다.


이 관계자는 “경찰이 생존자 금융정보 조회를 주도해 신청한 영장을 받아 법원에 발부받아줬다는 말은 겉으로 보기에만 맞는 말”이라고 비판했다.

경찰 안팎에서는 수사 과정상 불거진 문제를 검찰이 자신들에게 떠넘겼다는 불만이 적지 않다. 단순한 아우성이 아닌 수사기관 간 갈등이 표출된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윤석열정부가 들어선 이후 두 기관 간 갈등은 꾸준히 이어졌지만 한 사건을 두고 입장이 평행선을 달리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경 “생존자 포함은 검 요청…우리가 주도 안 했다”
검 “영장 법원에 청구해준 것 뿐 직접 청구 아니다”

검찰이 이태원 참사 ‘윗선’보다는 ‘서울청 수사’에 몰두하고 있는 점도 경찰들의 불만이 고조된 원인으로 꼽힌다. 앞서 서부지검이 지난 1월18일과 26일 김광호 서울경찰청장 집무실과 112상황실 등을 두 차례 압수수색한 데 이어 두 달 만에 서울경찰청을 다시 압수수색했다.

검찰은 특수본서 송치된 이태원 파출소 순찰팀장의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 등과 관련한 압수수색 영장이라고 설명했다. 순찰팀장은 이태원 참사 당일 112 신고 처리를 허위로 입력하고 변경한 혐의 등을 받고 있다. 검찰은 또 김 청장의 이태원 참사 예견 가능성, 회피 가능성을 입증하기 위해 김 청장의 지시 내용 등을 상세하게 들여다보고 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과 오세훈 서울시장에 대한 수사는 미동조차 보이지 않고 있다. 이 장관은 재난 주무부처의 수장으로서, 오 시장은 서울시정 책임자로서 참사 직후 거취 압박을 받았다. 그러나 특수본의 무혐의 처분 이후 이 장관과 오 시장 선으로 수사가 확대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것이 현재까지의 중론이다.

서부지검은 우선 김 청장을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로 기소하는 쪽으로 무게를 두고 있지만 쟁점이 많은 만큼 조사도 길어지고 있다. 김 청장의 혐의가 입증되려면 김 청장이 조금만 신경을 썼으면 구체적으로 사고를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고(예견 가능성), 참사의 결과를 막을 수 있었다(회피 가능성)고 볼 수 있어야 한다.

검찰은 김 청장 주재로 열린 지난해 10월17일과 24일, 핼러윈데이 사전대책 화상회의도 정밀하게 재구성했다. 두 회의서 김 청장은 각각 “올해는 3년 만의 거리두기 해제니 이태원, 홍대, 강남 관할서는 촘촘한 사전 대책을 마련하라” “마포·용산·강남 등 3개 경찰서는 특별히 핼러윈 대비를 하라”고 지시했다. 검찰이 김 청장이 참사가 일어날 줄 예견할 수 있었다고 볼만한 대목이다.

파열음 지속

다만 공방은 있을 수 있다. 이임재 전 용산서장 등의 공소장에는, 김 청장이 이 전 서장으로부터 참사 전날 ‘신속 대응’ 참사 당일 오전 ‘신고처리 공백 없음’ 취지의 보고를 받았다고 적혀 있다. 현장 지휘관이 사고 직전 ‘특이사항 없음’을 두 차례 보고한 셈이다. 예견 가능성 면에서 김 청장에게 유리할 수 있는 정황이다.


<hounder@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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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