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방송대 총장 알박기? 교육부 이중잣대 추적

뭐가 그리 급해서 ‘후다닥’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국립대 총장 임명을 두고 교육부의 이중잣대가 도마에 올랐다. 비슷한 논란의 총장 후보자에 대해 서로 다른 판단을 내린 것. 대학-교육부-청와대로 이어지는 국립대 총장 인사시스템이 ‘보이지 않는 손’에 휘둘리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시스템에 대한 신뢰는 공정성과 일관성에서 나온다. 사안에 따라 달라지는 잣대는 불신의 시작이다. 특히 인사 과정에서 기준이 흔들리면 시스템 자체를 믿을 수 없게 된다. 의혹과 논란으로 얼룩진 인사는 그 꼬리표를 평생 떼어낼 수 없다. 

흔들리는
일관성

최근 한국방송통신대학교(이하 방송대) 총장 임명 과정에서 인사시스템과 관련한 논란이 불거졌다. 총장 후보자에 대한 교육부와 청와대의 검증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더 나아가 국립대 총장에 대한 검증 기준이 후보자에 따라 ‘널을 뛴다’는 의혹도 나왔다. 

1972년 3월9일 ‘한국방송통신대학설치령’에 근거해 개교한 방송대는 올해 개교 50주년을 맞았다. 지난해 설치령이 폐지되고 ‘한국방송통신대학교설립및운영에관한법률’에 따라 운영되고 있다. 

방송대는 국립대학이면서 국내로는 최초, 세계 기준으로는 영국 오픈 유니버시티에 이은 두 번째 원격대학이다. 학생 수와 규모 면에서 국내 원격대학 중 가장 인지도가 높다. 50년 동안 80만명이 넘는 동문을 배출했다.


1993년 3월1일 ‘한국방송통신대학’에서 ‘한국방송통신대학교’로 명칭을 변경하면서 학교의 수장이 ‘학장’에서 ‘총장’으로 바뀌었다. 앞서 6명의 학장이 이른바 방통대를 이끌었고, 이후 7명의 총장이 방송대의 선장 역할을 맡았다. 

지난 4일, 방송대 제8대 총장으로 고성환 국어국문학과 교수가 취임했다. 고 신임 총장은 1985년 서울대 국문학과를 졸업한 후 동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서강대 연구교수, 한국어세계화재단 수석연구원으로 활동했다. 

2003년부터 방송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교무부처장, 교양교육원장, 인문과학대학장, 통합인문학연구소장 등 방송대 주요 보직을 두루 거쳤다. 

총장 임명권이 이사장에게 있는 사립대학과 달리 국립대학은 총장 임명 때 교육부와 청와대의 결정이 중요하다. 대학에서 투표를 통해 선출된 1~2순위 총장 후보자를 교육부에서 검증한 후 교육부 인사위원회에서 가부를 정하면 교육부 장관이 대통령에게 임명 제청을 요구하는 방식이다. 최종 임명 여부는 국무회의에서 결정된다.

국립대 총장 검증 논란
겸직·체납 의혹에도 취임

고 신임 총장은 방송대 총장 임용후보자 선거에 기호 2번으로 출마했다. 그는 ‘뉴노멀시대, 대학교육의 새로운 표준’이라는 비전을 바탕으로 ▲사용자 중심의 디지털 학습 환경으로 혁신 ▲교직원 처우 개선 ▲교원의 교육·연구 활동 지원 강화 등 8개 공약을 내세웠다.

지난해 11월24일 방송대 총장추천위원회가 실시한 선거에서 고 신임 총장은 결선투표 끝에 1순위 총장 후보자로 결정됐다.


문제는 고 신임 총장을 둘러싼 의혹들이다. 현재 그는 ▲겸직 위반 ▲세금 체납 ▲재산신고 누락 등의 의혹을 받고 있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교육부는 지난해 10월25일~11월5일 진행한 방송대 종합감사에서 총장 후보자 관련 의혹을 인지했다. 그럼에도 총장 임명이 일사천리로 진행되면서 방송대 안팎에서는 그 배경에 의구심을 드러내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고 신임 총장은 2007년 방송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2004년 5월 설립된 ㈜윌튼메이라는 회사의 이사, 대표이사, 사내이사 등을 지냈다. 윌튼메이는 분양대행업·부동산 컨설팅·부동산 연구 및 기획용역업·부동산 임대업 등을 하는 회사로 2017년 12월 해산됐다. 

국립대 교수는 공무원 신분이기 때문에 겸직을 위해서는 기관장 승인이 필요하다. 국가공무원법 제64조(영리 업무 및 겸직 금지) 제1항은 ‘공무원은 공무 외에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업무에 종사하지 못하며 소속 기관장의 허가 없이 다른 직무를 겸할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

선거 과정서
의혹 드러나

국가공무원 복무규정 제25조(영리업무 금지)에도 ▲공무원이 상업, 공업, 금융업 또는 그 밖의 영리적인 업무를 스스로 경영해 영리를 추구함이 뚜렷한 업무 ▲공무원이 상업, 공업, 금융업 또는 그 밖에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사기업체의 이사, 감사 업무를 진행하는 무한책임사원, 지배인‧발기인 또는 그 밖의 임원이 되는 것을 막고 있다.

방송대 전임교원 임용계약서 5조(을의 의무) 역시 ”을은 교육공무원으로서 제 법령과 본교의 제 규정을 성실히 준수하고 최선을 다해 맡은 바 임무를 수행하며 이를 위해 모든 역량과 기술을 최대한 발휘한다‘는 부분이 존재한다.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고 신임 총장은 윌튼메이 설립부터 해산에 이르기까지 약 13년(2004~2017년) 동안 교무부처장(2010년 9월~2016년 9월), 국어국문과장(2017년 1월~2018년 12월) 등의 보직을 맡았다. 고 신임 총장이 기관장의 승인 없이 최소 10년 이상 겸직한 사실은 총장 후보자 선거가 있기 전까지 알려지지 않았다고 한다.

더 큰 문제는 당시 윌튼메이의 회사 사정이다. 고 신임 총장이 깊숙이 관여해온 윌튼메이는 서울시 고액·상습 체납자 명단에도 이름을 올릴 정도로 자금 상황이 좋지 않았던 걸로 추정된다. 

2016년 10월17일 기준 서울시가 공개한 ‘기공개 고액‧상습체납자 명단(법인)’에는 고 신임 총장이 윌튼메이의 대표자로 올라있다. 윌튼메이는 2013년 7월에 서울시가 부과한 지방소득세 등 38건 총 4200만원의 세금을 체납했다.  

앞서 2014년에는 저축은행 대출 문제로 윌튼메이와 고 신임 총장 앞으로 5억원가량의 채무가 발생했다. <일요시사>가 단독으로 입수한 판결문에 따르면 ○○○○저축은행의 파산관재인 예금보험공사는 윌튼메이와 고 신임 총장을 상대로 대여금 소송을 제기했다. 

공주교대 27개월째 총장 공석
정부에 밉보이면 임명 안 된다?


윌튼메이는 2006년 12월 ○○○○저축은행과 연 이자율 13%, 지연배상금률 연 25%로 45억원에 대한 여신거래약정을 체결했다. 만료일은 6개월 뒤인 2007년 6월로 정했다. 이 과정에서 고 신임 총장이 윌튼메이 채무에 대한 연대보증을 섰다.

이후 2012년 3월 ○○○○저축은행이 파산하면서 예금보험공사가 파산관재인으로 선임됐다. 

당시 재판부는 윌튼메이와 고 신임 총장이 예금보험공사에 5억500만원을 지급해야 한다고 선고했다. 여기에 2013년 11월12일부터 채무를 모두 변제하는 날까지 연 25%의 이자를 지급하라는 판결도 내렸다.

고 신임 총장의 항소는 ‘화해권고 결정’으로 마무리됐다. 고 신임 총장은 해당 채무를 최소 2018년까지 변제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2018년 예금보험공사가 고 신임 총장을 상대로 ‘채권압류 및 추심명령’을 진행할 당시 채무액은 10억원 이상으로 불어난 상태였다. 대여금 소송에서 지급하라고 선고한 5억500만원에 이자가 5억1000만원가량 붙었던 것.

방송대 관계자에 따르면 이 시기부터 고 신임 총장의 급여가 압류되기 시작했다. 방송대가 국립대학이다 보니 고 신임 총장의 채무에 있어 ‘대한민국’이 제3채무자로 지정됐기 때문. 다시 말하면 방송대는 최소 2018년부터 고 신임 총장의 채무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뜻이다.


방송대 관계자에 따르면 압류는 지난해 12월에 이르러서야 해제됐다. 고 신임 총장이 1순위 총장 후보자로 선출된 이후다.

이 과정에서 고 신임 총장은 방송대 인문대학장(2020년 1월~2021년 9월) 보직을 맡았지만 채무사실 등 재산과 관련된 신고를 하지 않았다. 공직자윤리법 제3조에 따르면 교육공무원 중 총장과 부총장, 대학원장, 학장 등은 재산등록 의무자로 분류된다. 

2018년부터
급여 압류

이 같은 논란에도 교육부는 고 신임 총장에 대한 임명 제청을 청와대에 요구했고, 청와대 역시 최종 승인했다. 교육부 국립대학정책과 관계자는 “국립대 총장 임명은 교육부 인사위원회에서 가부를 결정한다. 인사위원회에서 오간 내용이나 구성 등에 대해서는 확인해줄 수 없다”고 답변했다.

또 방송대 종합감사 과정에서 고 신임 총장 관련 의혹을 인지했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감사 내용에 대해서는 감사관실에 문의하라며 말을 아꼈다. 방송대 종합감사를 진행한 감사 관계자는 “감사 중인 사안에 대해서는 어떤 내용도 말할 수 없다”면서 “대학의 이의신청기간 등을 거쳐 6~7월쯤 돼야 최종 감사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설명했다.

방송대 관계자들은 “고 신임총장은 국가공무원법, 즉 실정법을 위반했다. 교육부가 종합감사 과정에서 이 부분을 인지했음에도 미온적으로 대처하면서 인사시스템에 대한 신뢰를 망가뜨렸다”며 “또 문재인정부는 고위공직 후보자 임명 과정에서 세금 탈루를 7대 비리에 포함시켰다. 그럼에도 고 신임 총장에 대한 최종 승인이 이뤄진 점이 의아하다”고 지적했다. 

실제 문정부는 ‘7대 비리 관련 고위공직 후보자 인사검증 기준’에서 세금 탈루가 드러날 경우 임용을 원천 배제한다고 밝힌 바 있다. 고 신임 총장은 세금 탈루와 관련해 ▲본인 또는 배우자가 국세기본법 및 지방세기본법에 따라 고액‧상습 체납자로 명단이 공개된 경우에 해당된다는 주장이다.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 되고

방송대 총장 관련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고 신임 총장 임명과 동시에 여전히 진통을 겪고 있는 공주교대 총장 임명 사건이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오고 있기 때문이다. 방송대와 마찬가지로 국립대학인 공주교대는 현재 2년3개월째 총장이 공석이다.

교육부가 1순위 총장 후보자 이명주 공주교대 교수에 대해 임용 제청을 거부한 것.

공주교대는 2019년 9월24일 직선제로 총장 선거를 실시했다. 이때 공주교대 출신 이 교수가 구성원의 지지를 받아 1순위 총장 후보자로 결정됐다. 하지만 2020년 2월 교육부가 이 교수에 대한 임용 제청을 거부하면서 상황이 틀어졌다.

이 교수는 즉시 소송을 제기했고 교육부로부터 임용 제청 거부 사유를 받았다.

이 교수가 받은 거부 사유는 ▲2004~2008년 대전교육감 출마 과정에서 받은 벌금형 ▲주정차 위반, 과속 등 과태료 지연 납부로 인한 압류 ▲대학에서 받은 경고·주의 등의 행정처분 등이다. 

한 교육계 관계자는 “사안만 놓고 보면 공주교대 총장 후보자 관련 논란이 방송대에 비해 경미해 보인다. 비슷한 논란이라면 두 총장 후보자에 대한 임명 결과가 같았어야 한다. 하지만 공주교대는 총장이 공석이고, 방송대는 무리 없이 총장을 앉혔다”며 “교육부의 잣대를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국립대 총장 임명 과정에서 청와대의 입김이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목소리도 제기된다. 공주교대 사건 당시 교육부의 임명 제청 거부가 이 교수의 ‘정치 성향’ 때문이라는 의혹이 나온 바 있다. 이 교수가 박근혜정부 시절 ‘좌편향 검정교과서’를 비판한 점이 현 정부의 미움을 샀다는 주장이다. 

교육부 감사
미리 알았다?

방송대는 앞서 2014년 9월 이후 무려 40개월 동안 총장이 공석이었던 ‘흑역사’가 있다. 2018년 2월 류수노 총장이 취임하기까지 지리한 법정 공방을 벌였다. 하지만 고 신임 총장의 경우 문재인 대통령 임기를 불과 한 달 남긴 상황에서 발 빠르게 이뤄졌다. 방송대 관계자들은 “이것이야말로 ‘알박기’가 아니냐고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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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