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보는 대장동 특검 관전 포인트

‘해도 문제 안 해도 문제’ 제2의 BBK 되나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전쟁은 끝났지만 전투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인수위원회 단계부터 여야 간 신경전이 대단하다. 대선이 역대 최소 득표 차로 마무리된 점이 전투 국면을 더욱 치열하게 만드는 모양새다. 특히 ‘대장동 특검’을 둘러싼 여야 간 대결이 빅 이벤트로 떠올랐다. 

선거기간 동안 서로 잡아먹을 듯이 싸웠다 할지라도 결과가 나온 이후엔 잠잠해지게 마련이다. 모래폭풍이 지나간 자리에 모래만 남듯, 선거가 끝나면 승자와 패자라는 결과만 남는 경우가 많았다. 난무했던 고소·고발도 대부분 취하되곤 했다.

선거 후폭풍
여진 남았다

여러 모로 역대급 기록을 남긴 3‧9대선은 선거 이후 모습마저 다른 양상을 띠는 듯하다. 선거기간 내내 이슈로 작용했던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로비 의혹 사건(이하 대장동 사건)이 승패가 가려진 이후에도 힘겨루기 대상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대장동 사건은 성남시가 대장동 인근을 개발하는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특정 업체에 특혜를 줬다는 의혹에서 시작됐다. 이때 등장한 업체가 ‘성남의뜰’ ‘화천대유’ ‘천화동인’ 등이다. 각각 대장동 개발사업을 위한 시행사, 자산관리회사, 화천대유의 자회사다.

당시 성남시장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상임고문이었다. 


대장동 개발사업은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대장동 210번지 일원에 5903세대의 공동주택 등을 신축하기 위한 92만㎡(약 28만평)의 택지를 개발하는 사업과 이에 연계해 구 시가지에 위치한 수정구 신흥동의 구 제1공단 5만6000㎡(약 1만7000평) 부지를 공원화하는 사업이 결합된 1조5000억원 규모의 민관공동 도시개발사업이다.

민관공동개발 방식으로 진행된 대장동 개발사업에서 성남시는 5503억원에 달하는 수익을 환수했다. 문제는 민간사업자들이 챙긴 수천억원 수준의 개발이익이다. 대장동 개발사업에 참여한 민간사업자들은 출자금의 수천배에 달하는 배당이익을 챙겼다.

천문학적인 돈이 민간으로 흘러갔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관련 업체들에 대한 특혜 의혹이 나왔다.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시기에 처음 불거진 대장동 사건은 선거기간 내내 최대 이슈였다. 민주당은 대장동 사건을 ‘국민의힘 게이트’로, 국민의힘은 ‘이재명 게이트’로 규정짓고 맹공을 퍼부었다. 대장동 사건의 몸통을 두고 TV토론회에서 후보 간 입씨름을 벌였다.

진실규명 큰 뜻은 같지만
수사 방식·범위 전부 달라

‘정영학 녹취록’ ‘김만배 녹취록’ 등 선거 마지막 날까지 장외전도 치열했다.

서울중앙지검은 대장동 사건 전담수사팀(팀장 김태훈 4차장 검사)을 꾸려 수사에 돌입했다.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이하 성남도개공) 기획본부장·김만배 화천대유 대주주·남욱 변호사(구속)·정영학 회계사·정민용 변호사 등 이른바 대장동 5인방은 재판에 넘겨졌다.


이 과정에서 유한기 성남도개공 개발사업본부장, 김문기 개발사업1처장이 극단적 선택으로 세상을 떠났다.

대장동 개발업자들로부터 50억원을 받거나 받기로 했다는 ‘50억 클럽’에 대한 조사도 이뤄졌다. 국민의힘 박수영 의원은 지난해 10월, 50억 클럽에 곽상도 전 의원, 박영수 전 특검, 권순일 전 대법관, 김수남 전 검찰총장, 최재경 전 민정수석 등이 포함됐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 가운데 현재 곽 전 의원만 기소된 상태다.

50억 클럽은 물론 ‘윗선’에 대한 수사가 공회전을 거듭하면서 검찰은 대선기간 내내 화두에 올랐다. 유력 대선후보가 연루된 사건이라 검찰이 눈치 보기를 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검찰 수사 대신 대장동 사건만을 위한 특검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국민의힘을 중심으로 제기됐다. 

민주당은 대선 막바지에 이르러 특검 논의에 뛰어들었다. 문제는 국민의힘과 민주당이 바라는 특검이 전혀 다르다는 점이다. 수사 범위, 수사 주체 등에 있어서 극과 극의 주장을 펼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특검은 대통령이 임명한다는 점에서 여야 간 줄다리기는 점차 팽팽해지는 모양새다. 

서로 유리
방향 고집

대장동 사건의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민주당과 국민의힘 모두 뜻을 같이하고 있다. 하지만 대장동 사건을 바라보는 두 당의 시각은 천차만별이다. 양측은 이미 대선 때 ‘이재명 게이트’ ‘윤석열 게이트’로 대장동 사건에 대한 입장 차를 확인한 바 있다.

그렇다 보니 밝히고자 하는 진실의 방향성에서도 차이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가장 눈에 띄는 쟁점은 수사 주체와 수사 범위다. 민주당은 지난 3일 대선을 앞두고 ‘대장동 개발 비리 사건 및 이와 관련한 불법 대출·부실수사·특혜 제공 등의 의혹 규명을 위한 특검 수사요구안’을 당론으로 발의했다. 2011년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부산저축은행 대출 브로커를 봐줬다는 의혹을 특검에서 수사하자는 것이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9월23일 김기현 원내대표가 소속 의원 106명과 함께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통령선거 예비후보의 대장동 개발 관련 특혜 제공 및 연루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국민의힘은 ▲대장동 개발사업과 연관된 특혜제공 등 불법행위 ▲성남시‧성남도시개발공사·특수목적법인 시행사 등과 관련된 공무상 비밀누설 등 불법행위 ▲성남시를 포함한 관계기관의 전 현직 임직원 및 자본투자자 등 사건 관계인의 직권남용·횡령·배임 혐의 ▲수사 과정에서 인지된 관련 사건 등을 특검법에 수사 대상으로 명시했다.

민주당과 국민의힘은 특검 형식을 두고도 이견을 보이고 있다. 민주당은 기존 상설특검 제도를 활용하자는 입장이다. 상설특검으로 진행하게 되면 특검 후보로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2명씩 추천한 4명에, 당연직인 법무부 차관·법원행정처 차장·대한변협 회장 등 7명이 추천된다.


이 추천위에서 2명을 추천하면 문재인 대통령이 1명을 임명하게 되는 구조다. 

반면 국민의힘은 별도의 일반 특검을 요구하고 있다. 이 경우 특검 후보는 대한변협이 4명을 추천하면 여야가 2명으로 압축하고 대통령이 최종 임명하는 방식이다. 정치권에서는 양당이 유불리를 계산해 조금이라도 자신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특검 방식을 밀어붙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3월 처리”
“꼼수 안 돼”

민주당이 이달 중에 국회에서 특검법을 처리할 경우 특검 후보 지명은 문 대통령이 하게 된다. 특검을 해야 한다면 새 정부 출범 전에 진행하는 게 좀 더 유리한 국면으로 끌고 갈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국민의힘이 주장하는 일반 특검 방식이 민주당에 불리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종엽 대한변협 회장이 검사 출신이라 검찰총장 출신인 윤 당선인에 편향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

또 일반 특검으로 진행될 경우 특검 후보 지명은 윤 당선인이 할 가능성이 높다.


수사 기간도 다르다. 상설특검은 60일 수사에 30일 연장할 수 있고, 국민의힘이 제출한 특검법은 70일간 수사하고 30일 더 연장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양측이 내놓은 특검법은 대장동 사건의 진실규명이라는 큰 틀에서의 대의만 같을 뿐 하나부터 열까지 다른 입장을 보이고 있어 처리까지는 진통이 예상된다. 

실제 양측은 특검법 국회 처리를 두고 공방전을 벌이고 있다. 민주당 윤호중 비상대책위원장은 3월 국회에서 민주당이 발의한 대장동 특검법을 처리할 뜻을 내비쳤다. 국민의힘 김기현 원내대표는 “도둑이 도둑 잡는 수사관을 선정하는 꼼수는 더 이상 안 통한다”며 “가짜 특검으로 말장난하면서 어물쩍 넘어가려 하지 말길 바란다”고 팽팽히 맞섰다. 

일각에서는 어떤 특검법이 통과되든 제대로 된 수사가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한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당선인 시절 진행됐던 ‘BBK 특검’처럼 정치적 셈법에 따라 흐지부지될 수도 있다는 것.

문재인정부 들어 이 전 대통령이 구속되면서 당시 BBK 특검이 ‘면죄부’를 줬다는 비판이 제기됐지만 책임진 인사는 아무도 없었다.

2008년 면죄부 특검
13년 뒤 180도 반전

이 전 대통령은 2007년 대선 과정에서 투자자문회사 BBK 주가조작 사건에 연루됐다는 의혹을 받았다. 검찰은 BBK 실소유주 의혹을 받고 있던 이 전 대통령에게 ‘무혐의’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검찰 수사에 대한 불신이 컸고, 대선 사흘 전 ‘광운대 동영상’이 공개되면서 이 전 대통령은 특검을 수용하기에 이른다.

2000년 10월 광운대 특강에서 이 전 대통령이 자신이 BBK라는 투자자문회사를 설립했다고 말하는 내용이 담긴 동영상이다. 동영상 공개 다음날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 주가조작 등 범죄 혐의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검법’ 이른바 ‘이명박 특검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이후 이 전 대통령이 17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헌정 사상 처음으로 대통령 당선인을 수사하는 특검이 출범했다.

당시 정호영 특검은 노무현 전 대통령에 의해 임명돼 이 전 대통령(당시 당선인)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그리고 45일 만에 도곡동 땅과 다스 차명 소유 의혹, 주가조작 의혹 등을 전부 무혐의 처분했다. 이 전 대통령은 취임을 나흘 앞두고 나온 특검 수사 결과 덕분에 홀가분하게 대통령 업무에 돌입했다. 

그로부터 13년 뒤인 2020년 10월 대법원은 ‘다스는 이 전 대통령의 소유’라고 판결했다. 이 전 대통령은 1992~2007년 다스를 실소유하면서 비자금 약 339억원을 조성하고 삼성에 BBK 투자금 회수 관련 다스 소송비 67억7000여만원을 대납하게 한 혐의 등으로 2018년 4월 구속 기소됐는데, 대법원에서 확정 판결이 난 것이다.

이 전 대통령은 대법원 판결로 징역 17년형을 선고받고 현재 복역 중이다. 

처리까지
산 넘어 산

결국 대장동 특검이 발의되기 위해선 정치적 고려, 이벤트 등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분석이 나온다. 민주당은 국회 다수 의석을 차지하고는 있지만 대선에서 진 상황이라 단독처리를 하기엔 부담스럽고, 국민의힘은 민주당과 합의 없인 아예 처리 자체가 불가능하다. 또 6월 지방선거가 코앞에 다가온 터라 여야 모두 강하게 밀어붙이긴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jsj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칼자루 쥔 박범계 “대장동 특검 찬성”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대장동 사건 특검 도입에 찬성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박 장관은 지난 23일 정부과천청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대장동 수사의 결론이 국민을 설득하지 못한다면 새로운 논쟁으로 지속되고, 그것은 검찰의 중립성과 공정성 측면에서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수사지휘권 폐지는 안 돼”

이어 “새 정부가 출범하는데 언제까지 이 부분에 대한 논쟁을 계속할 것인지에 대한 어려운 문제가 있다”며 “정치권에서 바라보는 각도는 다르지만 대동소이하게 얘기되고 있는 개별특검이나 상설특검도 검토해볼만하다”고 주장했다. 

한편 박 장관은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공약 중 하나인 ‘수사지휘권 폐지’와 관련해서는 “아직 필요하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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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