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벨트는 국론분열벨트가 아닌 국가비전벨트”

<대한민국 이끄는 유력 정치인 릴레이 인터뷰⑤>심대평 국민중심연합 대표


오는 2012년 대선을 2년여 앞둔 시점에서 <일요시사>는 ‘유력 정치인 릴레이 인터뷰’라는 기획으로 편집국장 대담을 진행한다. 지난 세월 대한민국 정치 발전의 주도적 역할을 담당했고 앞으로도 큰 역할을 담당할 것으로 판단되는 여야 유력 정치인, 정계 원로와의 만남을 통해 차제의 시대정신과 정치 발전 과제 등에 관한 철학과 지혜를 담아낼 예정이다. 그 다섯 번째로 국민중심연합 심대평 대표를 만나봤다.

과학비즈니스벨트는 시대를 여는 벨트 돼야
대한민국 제2의 세종르네상스 열 수 있어

“세종시 주변에는 전국 공공 연구기관의 29%, 대학 연구소의 30%, 기업 연구소의 33%가 집결돼 있다. 세종시는 지난 40년간 30조가 투자된 대덕 특구, 오송 오창 생명과학단지, 천안 아산 디스플레이 산업단지로 연결돼 비즈니스 파급 효과가 크다. 세종시는 입지 최적지다”
과학비즈니스벨트 ‘세종시 사수’를 위해 전방위 활동을 벌이고 있는 국민중심연합 심대평 대표를 지난달 23일 의원회관에서 만나봤다. 대정부 질문을 하루 앞둔 이날, 인터뷰 직전까지 지역구를 돌며 지역 주민의 고견을 담아온 심 대표는 “언제나 국민 중심의 정치를 펼칠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 지난주 대정부 질문에서도 역시 과학비즈니스벨트가 화두던데.
▲ 지난해 세종시 원안 수정 논란 당시 국론 분열과 정부 불신 현상이 대단히 컸기에 대정부 질문에서 세종시 해법을 제시했었다. 세종시 수정안의 경우 법으로 바꿔야 되는 것을 총리가 먼저 말 한 마디 던지고 대통령이 뒷받침하는 모양새를 취했다. 과학벨트도 책임 있는 국가 기관의 결정으로 결론난 사항인데 어느새 다시 지역 간 유치 감정이 격화되고 국론도 분열됐다. 참담하고 안타깝게 생각한다. 이번에도 법으로 하면 된다. 대통령이 이미 충청권에 한다고 공약을 한 상황에서 정부는 정책을 만든 그대로 가만히 놔두면 결국 국회가 법대로 처리한다. 말을 해서 문제를 만든다. 박수받으면서 추진할 수 있는 중요한 일들을 온 동네를 시끄럽게 해 분열을 조장하고 있다.

세종시 ‘과학벨트’ 최적 입지
시간과 돈을 절약할 수 있어

- 과학벨트가 세종시로 가야하는 큰 이유가 있는가.
▲ 이미 과학자와 전문가들, 특히 기초과학연구원과 중이온 가속기를 활용할 과학자들이 최종적으로 세종시로 가야 된다고 선택했다. 정부 기관도 옳다고 거들었다. 결국 세종시로 가야된다고 지난해 1월11일 교육과학기술부가 발표했다. 또한 세종시는 땅이 이미 매입돼 있는 상태다. 과학벨트에 소요되는 땅의 면적은 대략 100만~150만 평이다. 확장 가능성까지도 살펴보면 대략 200만 평 정도 소요되는데 다른 지역으로 가면 땅을 매수하는 데만 2~3년 정도 흐르고 그런 과정에서의 주민 갈등은 불 보듯 뻔하다. 실질적으로 지역 주민들을 달래고 정상적으로 추진하려면 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시간을 떠나 다른 지역은 기존 도시 내 최소 100만 평 가량의 대지 조성이 어렵다. 확장 가능성을 봐도 세종시가 최적이다. 시간을 절약할 수 있고 토지 매입비가 없으니 돈도 절약할 수 있다. 중이온 가속기 100만 평, 기초과학연구원 50만 평 등 당장 사업 시행이 가능한 부지는 한강 이남에 세종시밖에 없다.

- 대전·천안 유치 목소리도 높던데.
▲ 천안 얘기도 나오고 하지만 이미 충청권 3개 시도가 ‘세종시가 최적의 입지’라고 합의하고 결론냈다. 충청권 3개 시도 연구기관의 연구 결과도 이미 나왔다. 대덕 특구의 응용과학에 오송의 생명공학, 세종시의 기초원천 기술을 연계시켜 국가 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곳은 세종시뿐이다.

- 중이온 가속기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
▲ 우리나라 과학 기술은 지금까지 선진국 기술을 모방하거나 차용해 운영해 왔지만 이제는 선도 기술이 아니면 선진국 진입이 힘들다. 지금껏 나노 기술을 가지고 선진국 대열에 진입하려 했는데 나노를 뒷받침하는 것이 포항에 있는 방사광 가속기와 경주의 양성자 가속기다. 방사광 가속기 나노 기술은 10억분의 1 크기의 입자를 분석한다. 하지만 중이온 가속기는 이보다 100만분의 1 크기로 더 정밀하게 분석할 수 있는 기초 연구 기능을 지녔다(총 1000조분의 1미터 측정 가능).
중이온 가속기 설치와 관련, 프랑스는 이미 착공했고 미국은 입지를 선정했다. 빠르게 변화하는 현 시대에서 기술이 1년이 늦어지면 2~3년 정도 기술 후진 효과가 발생한다. 결국 글로벌 경쟁력을 상실하고 의미 없게 될 것이다.

- 과학벨트는 근본적으로 분리돼 유치될 수 없는 것인지.
▲ 과학벨트는 기초과학연구원과 중이온 가속기, 기업의 기술을 매각하고 응용할 수 있는 비즈니스를 함께 묶으려는 것이다. 기초과학연구원은 3000명의 연구원을 고용해 추진하려는 것인데 실제 고용원은 500명 정도이고 나머지 2500여 명은 대덕 연구단지 연구원을 모시는 것으로 알고 있다. 중이온 가속기가 포항에 가 있고, 연구원은 대덕에 있는 식으로 전부 흩어져 있으면 안 된다. 연구원 본연의 연구도 하면서 원천 기술 개발 연구도 겸해야 되는데 옆에 있는 게 아니라면 정상적으로 돌아가겠나. 현재 방사성 가속기 이용률이 실질적으로 50%가 안 된다. 대학 연구소의 연구원들은 방학이 아니면 연구할 시간이 없다. 결국 나머지 10개월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바로 옆에 있으면, 20분 이내에 도달할 수 있으면 가능하다.

- 구제역으로 온 나라가 야단법석인데, 재발 방지가 가능한 것인지.
▲ 구제역 재발 방지라는 말 자체가 허구다. 우리나라 축산 방식으로 재발하지 않게 만들기는 어렵다. 덴마크나 스웨덴 등 북유럽 축산 국가들이 기르는 돼지는 한데 모아 사료를 먹여 키우는 것이 아닌, 충분히 기초 체력을 늘릴 수 있는 운동장을 주고 사료도 자연 사료를 주면서 키우는 방식이다. 우리는 그런 방식으로는 경쟁이 안 되기 때문에 단기간에 많은 생산을 하려 하니 사료를 먹일 수밖에 없다. 공장에서 나오는 사료의 문제점을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재발 방지는 어렵다. 근본적으로 축산업 방식 자체를 재검토해야 한다. 침출수 후유증이 아니라 우리나라 축산 농가가 붕괴되지 않게 하려는 정부의 의지가 필요하다.


- 축산 농가의 붕괴는 국가의 근간을 흔들 수도 있는데.
▲ 그렇다. 보상금 몇 푼 던져주고 알아서 하라는 것은 안 된다. 돼지 농가를 보면 모돈(母豚)을 만드는 데 1년, 모돈 생산에 1년 반이 걸린다. 종돈을 구할 곳이 없다. 과거엔 종돈이 50만원이었는데 지금은 120만원 줘도 못 구한다. 구제역 끝나고 축산 농가가 다시 조업을 하려고 할 때 기반이 없어서 못한다. 기반 자체가 무너졌다. 정부에서 외국 것을 사오라고 할까 걱정이다. 우리가 공급하기 힘든 축산국이 되면 이번에 보듯이 캐나다에서 돼지고기를 수입하는데 관세를 25% 감면해 주니 그 쪽에서 오히려 관세를 올렸다. 그래도 어떻게 할 수 없다. 미국산 소도 3년 이상 된 것은 우리가 안 먹는다 했는데 그런 조건도 없어졌다. 이번 구제역은 농가 붕괴일 뿐 아니라 국민 건강과도 직결됐다. 정부가 이 점도 생각해야 된다. 국익의 붕괴를 초래할 수 있다.


- 1차 산업의 붕괴는 3차 산업으로 붕괴로 이어질 수 있지 않은가.
▲ 축산은 유일하게 농가에서 단기간 내에 현금화할 수 있는 농업 생산품이다. 채소도 있긴 하지만 금액 면에서 비교가 안 된다. 농촌 경제를 완전 붕괴시킬 소지가 다분하다. 이미 관련 산업도 붕괴됐다. 농가에 농약을 공급했던 농약 소매상은 이미 몇 달째 조업을 못하고 있다. 사료 중간 도매상도 완전히 붕괴됐다. 족발·순대국 파는 사람들도 영향 받았다. 결국 1차 산업의 붕괴는 3차 산업까지 붕괴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 중요한 포인트다.

합당 문제 ‘간단하지만 어려워’
정책 중심 정당 되면 언제든 가능

- 원 소속이었던 자유선진당 이회창 대표와는 교류가 있으신지.
▲ 행사장에서 가끔 마주치면 인사나 나눌 뿐 따로 만나 식사나 교류를 한 적은 없다. 이 대표와의 관계에 대해 개인적인 관계를 이야기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당시 나는 선진당 대표였지만 총재와 대표 사이에서 함께하기 쉽지 않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 선진당과의 합당설이 심심찮게 제기되던데.
▲ 나는 직접적으로 그 얘기를 거의 못 들었다. 내가 선진당을 탈당한 이유는 딱 한 가지다. 선진당이 변하지 않으면 충청권 지지 기반을 상실할 뿐만 아니라 정당 존립 자체가 불투명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당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1인 중심의 정당 운영을 바꿔야 된다고 봤다. 정책은 어디 가고 때마다 임기응변 식으로 당이 운영됐다. 원칙과 정책이 당을 뒷받침 하는 구조로 가야 된다. 그게 바뀌면 언제든지 돌아갈 수 있다. 그때 탈당 선언한 내용을 봐도 그렇다. 하지만 지금 선진당이 그런 변화를 시도하고 있나? 나는 간단하다. 국회의원 1명이기 때문에 간단하다. 선진당의 변화가 없는데 합당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 인구 500만 충청인의 단결이 타 지역에 비해 잘 안 되고 있다는 지적도 있는데.
▲ 내가 일관되게 하는 얘기가 있는데, 나는 큰 욕심 있는 정치인이 아니다. 대전 충남에서 JP 이후 충청 정치 세력을 하나로 가져가야 된다는 생각에 정치를 시작했다. 그 뒤 훌륭한 후배들을 잘 이끌어 결집된 충청 정치 세력에 대한 희망을 품었다. 다음을 어떻게 잘 키워갈 것이냐는 쪽에서 내 역할이 있을 것으로 본다. 그것이 바로 아직 내가 정치에서 손을 놓지 못하는 이유다. 후배들이 꿈을 펼칠 수 있는 장을 만들어줘야 되는데 선진당에서는 그게 힘든 분위기라 탈당했다. 다양한 후배들에 의한 충청권 정치 세력화를 위해 내가 더 노력해야 된다는 생각이다. 시대가 많이 변했다. 1인 중심 정치가 지속되기는 쉽지 않다. 3김 이후 종결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 JP(김종필 전 국무총리)는 자주 뵙는지.
▲ 충청도는 신의와 예절을 중요시 여긴다. 쉽게 얘기하면 효(孝)가 모든 것의 근본이라고 본다. 그런 측면에서 인간관계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의정 활동을 하는 가운데 시간을 따로 내 찾아 뵙기도 하고 간혹 연락도 드린다. 아직도 나는 JP만 한 정치력과 식견을 가진 정치 지도자를 본 적이 없다. (JP에게) 좋은 말씀 많이 듣는다.

국민은 대통령과 정부 말 믿지 못하는 실정
‘대통령 공약’ ‘정부 발표 정책’ 약속 지켜야

- 충청인의 이념적 성향이 보수인지 진보인지 아리송한데.
▲ 지금은 보수 대 진보라는 2분법적 구분을 지을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보수가 진보도 되고, 진보가 보수도 된다. 정책의 선택 측면에서 보수적인가 진보적인가로 평가한다. 우리 당이 직접적으로 추구하는 ‘국민 중심’의 정치는 보수냐 진보냐와 상관없다고 본다.

- 최근 개헌도 정치권의 큰 화두 중 하나인데.
▲ 개헌 논의엔 주로 권력 구조 개편 얘기가 나온다. 권력 구조 개편도 중요하지만 사실 헌법 내용 중 먼 미래를 내다보고 바꿔야 될 부분이 조금 있다고 생각한다. 세계적으로 보면 헌법 내에 국회의원 수를 한정해 놓은 나라도 많지 않다. 과거 정치적 이해 관계로 늘렸다 줄였다 해서 그런 것 같다. 고쳐야 될 부분이 있다는 면에서, 국가 경영이 달라져야 된다는 면에서는 많은 국민들과 전문가들이 인식을 같이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이 개헌 타이밍은 아니라고 본다. 한가하게 개헌 논의 할 때가 아니다. 서민 경제도 많이 어려워지고 구제역 등 국가적 난제를 해결해야 될 시점에서 개헌 논의는 힘들다. 심지어 개헌에 대한 의구심도 많지 않은가.


- 임시국회에서 대통령께서 개헌을 발의할 것이라는 일각의 소문도 있던데.
▲ 대통령 임기가 2년 남았기 때문에 2년이라는 기간으로 보면 임기 내 개헌이 가능하다고 판단할 수 있다. 하지만 국민도 그렇게 판단하느냐는 또 다른 문제다. 개헌을 들고 나온다고 해서 국가적으로 어려운 난국이 수습될 것인지에 대해 우려하는 국민들이 많다.

- 현 정부의 국정 운영을 평가하신다면.
▲ 정부가 잘하고 있는 부분도 있고 못하는 부분도 있다. 외교와 경제를 잘하고 있다고 판단하는 것 같지만, 서민 생활과 직결된 경제 정책에 대해서는 불만이 많다고 들었다. 현 정부의 본질적 문제는 국민의 신뢰·통합·안정을 먼저 생각하는 국정 운영을 못한다는 점이다. 또한 말과 행동이 달라지는 부분에서 국민들은 많은 우려를 한다. 국정 운영의 원칙과 철학이 없다. 국민들이 ‘당신이 하는 일을 믿습니다’ ‘적극적으로 지지합니라’라고 얘기하는 신뢰가 있지 않고서는 성공적인 대통령직 수행이 어렵다.

MB정부, 지금 개헌 타이밍 아냐
국정 운영의 원칙과 철학 없어

- 도지사 시절 기억에 남은 에피소드는.
▲ 내가 도지사 하면서 대전시를 분리시켰다. 대전시가 전국 체전에서 15개 시도 중 14등을 했다. 하지만 대전시는 2000년에 전국 16개 시도 중 1등으로 올라섰다. 1970년 이후 지난 40여 년 동안 서울 경기를 제외하고 다른 지역에서 1등을 한 곳이 없다. 또한 충남 도민 1인 소득은 전국 2위다. 울산 다음이다. 다들 서울이나 경기도나 경상도가 높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충청도가 낙후됐다고 생각하는 것은 옛날 사람들 얘기다. 통계를 보고 얘기해야 한다. 충청도에 삼성전자 및 각 산업 단지 벨트를 만들어 추진했기 때문에 그 기반이 어느 곳보다 더 확고하다. 1995년도에 수출 실적이 30~40억 달러 규모였다. 그때  내가 선거 공약으로 앞으로 10년 이내 500억 달러의 실적을 올리겠다고 약속했다. 나 때에는 못 했지만 결국 작년에 충남 수출 실적이 500억 달러를 넘어섰다. 행정 책임자가 의지를 갖고 하면 결국 지역 발전을 실천할 수 있다. 대한민국도 대통령이 목표와 비전을 가지고 국민과 함께 가면 된다.

- 심 대표께서 생각하시는 공정사회란 어떤 모습인지.
▲ 공정사회는 서민들이 생각하기에 ‘내가 정부로부터 공정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법과 경제 등 사회 모든 분야에서 ‘정부가 나를 차별하지 않고 무시하지 않고, 내가 받을 수 있는 충분한 권리를 보장해 주는 것’을 국민들은 원한다. 입으로만 떠든다고 되는 게 아니다. 국민이 생각하는 바를 하나씩 실천하다 보면 자연히 공정사회가 이뤄진다.

정리=백대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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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