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파주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김학천씨(47). 농촌에선 이른바 ‘어린 세대’에 속하는 그는 40대의 나이다. 어려서부터 아버지에게 농사를 배웠고 이제까지 해왔던 것도 농사일이었다. 자신도 젊었을 때는 도시로 나갈 꿈을 꿔봤지만 아버지가 해오던 농업을 포기할 수 없어서 결국 ‘가업’을 이어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이제 그의 선택은 스스로를 용납할 수 없을 정도로 만들어 버렸다. 한때 자부심은 사라진 지 이미 오래고 이제는 빚과 한숨만 남았을 뿐이라는 것이다.
- 처음 농사를 질 때의 마음가짐은 어땠나.
▲ 내 스스로가 변변한 대학을 못 나온 것도 있었지만 항상 어릴 때부터 아버님에게서 ‘농사일이 근본’이란 이야기를 많이 듣곤 했다. 다른 건 없어도 살지만 ‘쌀’없이는 못산다는 게 아버님이 늘 하시던 말씀이었다. 지금보다 더 젊었을 때는 농사일에 대한 자부심도 적지 않았다.
- 어떤 식으로 농사를 지어왔는가.
▲ 특용작물에도 손을 대보고 영농조합을 결성하기도 하고, 비교적 젊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함께 공부도 하면서 새로운 농촌을 일으켜보려고 무척이나 애를 썼다.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도 농직거래도 시도해봤다. 여하튼 할 수 있는 건 거의 대부분 해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현재의 결과는 어떤가.
▲ 지난 15년간의 결론은 ‘이대로라면 농민들은 전부 다 죽는다’는 것이다. 정부에서 아무리 보조금을 지원해주고 혜택을 준다고 해도 근본적인 토양이 좋지 않은 것이다. 농사도 마찬가지다. 토양이 좋지 않으면 아무리 정성을 기울인다고 해도 결국에는 한계가 있다. 정부에서 거시적인 차원에서 장기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데 그런 부분이 전혀 없다. 결국 눈앞의 문제만 해결하려고 하니 또 다른 부작용이 생기고 문제점이 자꾸만 발생하는 것이다.
- 큰 아드님이 ‘가업’을 잇겠다고 한다면.
▲ 대학을 다니다가 군에 입대해 있는데 내가 힘들어하는 것을 봐왔으니 본인이 하려고도 하지 않겠지만 나 역시 절대로 물려줄 생각이 없다. 내 평생 힘들어 했으면 됐지, 행여 그런 말을 꺼낸다면 때려서라도 말릴 생각이다. 내가 해보니 ‘농사 농’에는 ‘망할 망’자가 따라다닌다. 지금도 아마 논 수만 평을 가지고 제대로 해보고 싶은 생각은 있고 그렇게 하면 괜찮을 것 같다는 전망은 있지만 논농사를 제외하고는 밭농사니 뭐니는 중국산 때문이라도 안 될 것 같다. ‘망할 망’자 든 건 나 하나면 족하지 않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