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신문고-억울한 사람들> ⑭고 이용현씨 유가족

2015.09.24 14:18:30 호수 0호

“대형병원 믿었다가 낭패”

[일요시사 경제팀] 양동주 기자 = <일요시사>가 연속기획으로 ‘신문고’ 지면을 신설합니다. 매주 억울한 사람들을 찾아, 그들이 하고 싶은 말을 담을 예정입니다. 어느 누구도 좋습니다. <일요시사>는 작은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일 겁니다. 열네 번째 이야기는 하늘로 떠나보낸 이용현씨를 대신해 세브란스병원과 싸우고 있는 유가족입니다.  

 
 


핏줄로 이어진 연결고리는 그 무엇보다 질긴 법이기에 부모님을 먼저 떠나보내는 슬픔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 그나마 편히 눈을 감는 마지막 모습을 지켜볼 수 있다면 다행이다. 설령 임종을 지키지 못하더라도 아쉬움에 파묻힐 필요는 없다. 정확한 사인마저 밝히지 못한 채 이별이 맞이하는 경우에 비하면 이마저도 배부른 소리처럼 들릴지 모른다.  
 
과실 두고 공방
 
“억울하다. 3월에 입원해서 한 달 동안 심장내과, 외과, 가정의학과, 감염내과, 중환자실에서 마루타로만 이용당하다가 사망에 이르렀다. 유가족을 농락했다.”
 
2014년 4월 발생한 사망사고를 두고 환자의 유가족은 신촌세브란스병원과 길고 긴 진실공방을 거듭하고 있다. 양측의 지리한 평행선은 아직까지 좀처럼 좁혀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유가족은 신촌세브란스병원과의 사이가 이렇게 틀어질 것이라고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심장수술을 받고 치유됐던 전력을 감안하면 자신들에게 신촌세브란스병원은 은인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수술 이후 심장 통증을 호소했던 이씨의 아버지가 지난해 3월 신촌세브란스병원에 재입원을 결정한 것도 신뢰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병세 호전에 대한 기대도 잠시, 입원한 지 약 한 달이 지난 즈음 환자는 싸늘한 주검으로 되돌아왔다.
 
심장수술 받고 재입원…5개 진료 우왕좌왕
상태 호전 통보 후 일주일 만에 주검으로 
 
병원측에서 밝힌 사인은 ‘폐혈성 쇼크’ 및 ‘다발성 장기부전’. 환자의 병력과 치료과정을 감안하면 일정부분 납득 가능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가족은 신촌세브란스병원의 무책임한 의료행위에 대해 강력히 비난하고 있다. 
 
바쁜 직장생활로 환자를 자주 찾지 못하는 점을 악용해 병원이 환자를 여러 진료과로 돌려가면서 마루타처럼 이용했고 결국 사망했다는 게 유가족이 말하는 핵심이다. 사실상 의료사라는 것이다.
 
유가족 이경준씨는 “입원 이후 약 한 달간 환자는 심장내과, 외과, 가정의학과, 감염내과, 중환자실 등 총 5곳의 진료과를 떠돌며 병마와 싸워야 했다”며 “각 병과에서 환자몸을 빌어 이것저것 실험하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고 울분을 토했다.   
 
겉으로 드러난 의료진 간 커뮤니케이션 부재는 유가족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로 되돌아왔다. 특히 전날 밤부터 당일 아침까지 의료진이 보여준 모습은 유가족이 환자의 사망을 병원측 과실로 바라보는 단초로 작용한다.
 
사망 전날 밤 환자의 상태가 호전돼 퇴원까지 고려할만하다는 소식을 전공의로부터 접하고 희망에 부풀었던 유가족은 반나절이 지난 다음날 아침 난 데 없이 사망에 임박했다는 병원의 급전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허겁지겁 달려온 유가족에게 의사가 건넨 말은 전공의와 전혀 달랐다. 치료에 대한 인지가 부족한 전공의를 장기간 배치해 부적절한 대응으로 일관했다고 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유가족 이씨는 “마치 의료진 간 소통은 없고 환자를 살피는 사람마다 주관대로 진료 한 것처럼 느꼈다”며 “온몸에 멍이 번지는 증상에 대해서도 간호사는 정상, 의사는 병세 악화라고 말하는 등 소견이 제각각이었다”고 설명했다.
 

사망을 앞둔 시점에서 보여준 병원의 태도 역시 유가족의 공분을 사기에 충분했다. 이른 아침 전보를 받고 급하게 달려온 유가족에게 의료진은 사망할 수 있으니 준비하라고 천연덕스럽게 말할 뿐 납득할만한 소견을 묻는 유가족을 무시했다는 것이다.
 
“마루타로 이용” vs 
“억울하면 소송”
 
결국 사망 임박 급전 일주일 뒤 이씨는 사망했고 이후 유가족은 신촌세브란스병원에 진실규명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신촌세브란스병원은 여전히 시큰둥하다. 의학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기에 더 이상의 대답은 곤란하다는 입장과 억울하면 법정소송을 하라는 고압적인 자세 역시 변함없다.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 의료분쟁조정신청을 했지만 신촌세브란스병원은 조정절차마저 거절했다. 한국소비자원에 넣은 피해구제신청 역시 최근 실망스러운 결과물로 돌아왔다. 소비자원에서 의뢰한 2명의 전문의 가운데 한명은 병원측 과실이 없다는 소견을 제시했고 다른 한명은 세브란스측이 최선을 다했다고 볼 수 없으나 잘못했다고 보기도 힘들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유가족이 추가적인 법적 절차를 밟을 수도 있지만 소비자원이 내린 결론에서 내용이 크게 달라지길 기대하긴 힘들어진 셈이다. 
 
고압적인 자세
 
그 사이 의료사고 진실규명 과정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점을 체감한 유가족의 한숨은 커져만 가고 있다. 환자 사망 시점에서 이미 일 년 반이라는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 유가족들이 정신적 충격에서 쉽사리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이씨는 “아버지가 꿈속에 나와 배고픔과 고통을 호소하는데 그때마다 가슴이 메인다”며 “어머니를 비롯한 유가족 모두 정신적 공황상태를 여전히 겪는 중”이라고 말했다. 
 
 
<기사 속 기사> 의료분쟁 중재율 
 

턱없이 낮은 의료분쟁 조정·중재율은 이전부터 논란이 된 부분이다. 통상 의료분쟁에 관한 조정 및 중재 역할은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을 거친다. 다만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환자가 의료분쟁 조정·중재를 신청해도 의료기관이 거부할 경우 개시될 수 없다는 허점을 지니고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김기선 새누리당 의원의 자료에 따르면 의료분쟁조정중재원 개원 후 지금까지 의료기관의 조정·중재 참여율은 43%에 불과하다. 조정 신청 접수는 2012년 503건, 2013년 1398건, 2014년 1895건, 올해 8월말까지 1189건 등 총 4985건으로 해마다 증가추세지만 조정 개시는 2106건에 그쳤다. 특히 상급종합병원은 조정 과정에 불참하는 비율이 65.5%, 종합병원은 61.1%. 병원급은 47.2%로 나타났다. 큰 병원일수록 의료분쟁 조정에 불참하는 비율이 높다. 
 
조정개시 불발 사유는 실제 의료기관의 참여거부 80.87%(2253건)와 무과실주장 16.87%(470건)이 97.74%를 차지했다. 반면 중재 건수는 2012년부터 2015년 8월까지 총 6건에 불과했다. 환자 권익보호를 위해서라도 조정·중재를 자동개시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는 대목이다.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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