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아트인> 동양적인 미덕 갖춘 서양화가 김서연

2014.12.15 11:50:47 호수 0호

"삶의 의미 비우고 지우니…"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순백의 캔버스가 작은 조각으로 무수히 나눠졌다.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서양화와 판화를 전공한 김서연 작가는 캔버스 천을 칼로 자르는(혹은 파내는) 형태의 작업을 하고 있다. 작가는 캔버스를 조각하는 일에 대해 "빈집을 두드리는 것 같은 무모한 시도일지 모른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김 작가의 작업은 '비움으로써 더욱 채워지는' 동양적인 미덕을 갖췄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시도'로 평가될 수 있다.



지난 10일부터 서울 삼청로 갤러리도스에서는 김서연 작가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 전시 제목은 '무의미로의 회귀'다. 김 작가는 자신의 작업노트에서 "의미를 담기보다는 더 의미 있는 것들을 찾아 나서기 위해 의미를 비우고, 지우는 시간과도 같았다"고 지난날을 회상했다. 나아가 그는 "무의미는 의미 없음이 아니라 오히려 의미를 견고하게 만드는 이면"이라고 부연했다.

무의미의 이면을 찾아서

김 작가는 몇 해 전부터 캔버스에 색을 더하는 붓질을 내려놓고, 화면을 잘라 패턴을 만드는 조각 작업에 몰입했다. 원근법 등을 활용해 사물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는 방식의 작업은 어느새 고전이 됐다. 현대미술에서 캔버스는 단순히 물감을 칠하는 바탕재의 역할이 아닌 작품을 완성시키기 위한 재료 이상의 가치로 인정받게 됐다.

'김서연의 캔버스'는 오려지고 뚫어지는 과정을 거쳐 현실을 오롯이 드러낸다. 2차원이 가진 평면의 한계를 벗어나 다양한 표현의 가능성도 제시했다. 김 작가는 캔버스를 반복해서 조각하는 무의미한 순간 속에서 감춰진 삶의 의미를 찾고자 했다. 천을 한 조각씩 떼어낼 때마다 많은 잡념이 조각에 달라붙었다. 내면에서 소용돌이마냥 휘몰아쳤던 감정들은 캔버스의 파편과 함께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역설적이게도 무의미한 시간 덕분에 의미 있는 '중심'이 들어앉을 토대가 구축됐다.

사각의 캔버스를 '현실'이라는 벽으로 가정해보자. 작가는 "캔버스 너머를 꿈꾸기 위해 삶에서 멈춤이 필요했다"고 했다. 견고한 벽에선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작가는 자신의 작업이 "침묵 이전의 소리를 듣기 위한 귀기울임의 시간이었다"고 자평했다. 또 "낮 동안의 모든 일들을 덮어주고 보듬어주는, 이런 밤과 같은 시간이 있었기에 어쩌면 나는 위로 받을 수 있었고, 다시 삶으로 돌아갈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갤러리도스서 '무의미로의 회귀' 전시
순백의 캔버스 천 칼로 잘라 형태 완성

갤러리도스는 김 작가의 작업 중 평면에 칼을 댄 행위에 주목했다. 기존 회회가 보여주던 공간의 물리적 개념이 오려냄을 통해 완전히 다른 공간으로 탈바꿈했다는 해석이다. 또 오리는 행위만큼 오려내고 남은 빈 공간에 중요한 감상점이 있다고 소개했다. 김 작가의 작업은 비어있는 공간을 회화의 주요 요소로 인식한 결과물이며, 이는 작가의 작품세계를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 가운데 하나다. 잘라짐 틈을 통해 작가는 '비워냄의 철학'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하찮고 의미 없다"는 것은 모든 존재가 태생적으로 안고 있는 본질에 가까운 불안이다. 이 같은 불안을 극복하기 위해 인간은 끊임없이 내 안의 '캔버스'로 무언가를 채워 넣는다. 그렇다고 불안이 해소되진 않는다.

갤러리도스는 '무의미'에 대해 "우리를 둘러싸고 있으며 절대적으로 인정해야 할 존재"라고 규정했다. "무의미한 것으로부터 의미를 찾는 과정은 관객 스스로가 자신을 새로이 인식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해설이다.

비움의 철학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분홍빛 레이스를 연상시키는 패턴물과 흰 종이에 몽돌을 올려놓은 편지 등으로 서정미를 높였다. 작가의 표현처럼 밤을 헤치며 칼로 오려내는 고된 시간. 그 끝자락에서 캔버스의 조각들은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그리고 캔버스는 아름다운 레이스가 되었다. 지난밤 꿈속에서 누군가 건넨 예쁜 레이스처럼.

 

<angeli@ilyosisa.co.kr>

 

[김서연 작가는?]


▲이화여대 서양학과 및 동 대학원 회화·판화 전공
▲개인전 Uncanny Encounter 낯선 만남(스페이스 선, 2012) 무의미로의 회귀(갤러리도스, 2014)
▲그룹전 HOAST(뉴욕, 2007) Being&Nothing-ness(런던, 2009) YOOFESTA(서울, 2011) Home sweet home(청주, 2013) 등 다수
▲미술세계 대상전(1998) 수상
▲SBS드라마 <야왕> 협찬

 

저작권자 ©일요시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Copyright ©일요시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