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효기간 끝난 문화상품권의 민낯

2025.09.15 14:58:29 호수 1549호

“내 돈이 기업 수익으로?”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문화상품권의 유효기간을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유효기간이 지나면 소비자가 돈을 주고 산 상품권의 권리가 사라지고, 그 돈은 발행사의 몫이 된다. 발행사들은 회계상 부채 관리라고 설명하지만, 실제로는 ‘낙전수입’이 적자 보전의 수단으로 활용되면서 의혹의 시선이 쏠린다.



문화·도서상품권은 백화점 상품권이나 온누리상품권과 달리 유효기간이 명확히 설정돼있다. 이는 발행 구조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백화점 상품권은 결국 자사 매장에서 소비로 이어지기 때문에 무기한 사용을 허용해도 회계상 위험이 크지 않고, 온누리상품권은 정부가 정책적으로 발행하는 수단이라 소비자 신뢰를 우선해 사실상 무기한 사용을 인정한다.

회계상 위험?

문화상품권과 도서상품권은 발행일로부터 5년의 유효기간을 두고 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현금을 주고 구입한 만큼 현금과 동일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유효기간이 지나면 상품권은 이내 휴지 조각이 된다.

소비자들은 상품권이 선불 결제수단인 만큼 현금과 동일하게 취급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유효기간이 끝나면 잔액이 기업에 귀속되는 구조 때문에 소비자들의 손해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소비자원은 상품권 유효기간과 관련해 소비자 불만이 반복적으로 제기된다고 지적해 왔다.

하지만 기업의 입장은 다르다. 기업은 유효기간을 둘 수밖에 없는 이유로 ‘부채 문제’를 들고 있다. 상품권은 발행과 동시에 회사 장부상 부채로 기록된다. 소비자가 상품권을 실제로 사용하기 전까지는 언제든 정산해야 하는 돈인 것이다. 따라서 유효기간이 없다면 끝없이 부채가 쌓이는 모양새가 된다.


재무 건전성을 해치지 않기 위해 일정 시점에서 부채를 털어낼 필요가 있고, 그 장치가 바로 유효기간이라는 설명이다. 또 장기간 사용하지 않고 쌓인 상품권이 특정 시점에 대거 사용되면 정산 자금을 즉시 마련해야 하는데, 이는 기업의 현금흐름에 부담을 줄 수 있다고 한다. 이른바 ‘유동성 리스크’가 발생한다는 주장이다.

상품권 유효기간 논란의 핵심은 ‘낙전수입’이다. 소비자들은 낙전수입을 통해 기업이 소비자의 돈을 가져가고 있다고 주장한다. 낙전수입은 소비자가 기한 내 사용하지 못해 기업이 가져가는 금액을 뜻한다. 상법상 상사채권의 소멸시효는 5년으로, 이 시효가 끝나면 소비자가 권리를 행사할 수 없고 기업 이익으로 귀속된다.

5년 지나면 무조건 ‘휴지조각’
적자 보전 수단으로 활용, 왜?

문화상품권 발행사들은 과거부터 낙전수입에 크게 의존해 왔다. 한국문화진흥은 2015년과 2016년 영업손실이 있었지만, 각각 73억원과 71억원의 낙전수입으로 이를 메웠다. 해피머니도 2015년과 2016년 영업손실 규모를 각각 113억원, 80억원 기록했지만, 낙전수입 50억원, 49억원을 통해 순손실을 줄일 수 있었다.

북앤라이프 도서문화상품권을 발행하는 한국도서보급 역시 영업손실을 낙전수입으로 보전했다. 낙전수입에 대한 의존은 비단 과거의 일만은 아니다. 2019년 한국문화진흥은 102억원의 낙전수입을 기록하며 적자를 면했고, 2023년 해피머니 역시 41억원의 낙전수입 덕분에 순손실을 줄일 수 있었다.

이는 낙전수입이 상품권 발행사의 중요한 수익원으로 기능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하지만 이는 “소비자의 돈으로 적자를 메운다”는 비판이 지속적으로 나오는 이유기도 하다.

최근에는 모바일 상품권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카카오나 KT엠하우스 같은 주요 업체들은 유효기간이 지나더라도 자동으로 환불 적립금이나 포인트로 전환해주는 제도를 도입해 소비자 피해를 줄이고 있다.

유효기간 자체는 종이 상품권보다 짧게 설정되는 경우가 많지만, 만료 뒤에도 일정한 보완 장치가 마련돼있어 낙전수입 규모가 상대적으로 줄어드는 구조다.

낙전수입과 부채관리 사이 줄타기
“소멸시효 인지 어려워…폐지” 주장

반면 지류 형태의 문화·도서상품권은 여전히 낙전수입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다. 발행일로부터 5년이 지나면 사용이 불가능하고, 이 기간 내에 잔액 환불을 요구할 수 있지만 소비자 인지도가 낮고 절차도 복잡해 실제 환불로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다.


낙전수입을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한 논의는 오래전부터 이어져 왔다. 2017년 국회에서는 ‘상품권법’ 제정안이 발의됐다. 소멸시효가 지난 상품권 가액을 서민금융진흥원에 출연하도록 하는 것이 골자였다.

그러나 법안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계류됐다가 결국 폐기됐다. 2024년에는 국민권익위원회(이하 권익위)가 선불 전자 지급수단의 미사용 충전금 소멸 문제를 지적하며 제도 개선을 권고했다.

전체 선불 충전금 시장에서도 낙전수입은 꾸준히 늘어, 2021년부터 2023년까지 3년간 사업자에게 귀속된 미사용 충전금은 2116억원에 달했다. 또 2024년 상반기에만 239억원이 기업 수익으로 귀속된 것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상당수 이용자는 상품권 가치 소멸 사실조차 알지 못했고, 사전 안내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이에 권익위는 충전금 소멸 제도를 명확히 고지하도록 약관 개정을 추진 중이다.

같은 해 국회 국정감사 자료에서는 선불 업자의 낙전수입이 연간 480억원에 달한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특히 티머니가 상반기에만 114억원의 낙전수입을 기록하는 등 시장 규모가 커질수록 낙전수입도 늘고 있는 상황이다.

아전인수

기업과 소비자 간 입장은 끝내 좁혀지지 않고 있다. 한 소비자는 “현금처럼 쓸 수 있을 줄 알고 샀는데, 기한이 지나면 무효화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면서 “지류 상품권은 소멸시효에 대한 인지가 어려우므로 유효기간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다.

<imsharp@ilyosisa.co.kr>


<기사 속의 기사> 페이머니도 낙전수입?

티머니, 카카오페이, 네이버페이 등 선불 전자 지급 수단에서 발생하는 낙전수입이 다시 도마에 올랐다.


금융감독원 자료에 따르면 선불 업자 82개사의 충전금 총액은 2019년 1조6700억원에서 2024년 상반기 2조8890억원으로 246% 증가했다.

같은 기간 낙전수입도 꾸준히 늘어, 주요 업체 33곳의 수익 규모는 2021년 443억원, 2022년 421억원, 2023년 489억원을 기록했으며 2024년 상반기에만 239억원에 달했다.

가장 많은 낙전수입을 올린 곳은 티머니로 상반기에만 114억원을 챙겼다.

문제는 소비자 인지 부족이다.

국민권익위원회 조사에서 응답자의 64%는 충전금 소멸 제도를 몰랐고, 74%는 사전 안내를 받지 못했다고 답했다.

이 때문에 충전금을 현금처럼 여겼던 이용자들은 유효기간 만료 후 잔액이 기업 몫으로 돌아가는 사실에 불만을 터뜨리고 있는 상황이다.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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