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가 자기들만의 장난은 아니어야지.” 김영권의 <선감도>를 꿰뚫는 말이다. 박정희 군사정권 시절 청춘을 빼앗긴 한 노인을 다뤘다. 군사정권에서 사회의 독초와 잡초를 뽑아낸다는 명분으로 강제로 한 노역에 관한 이야기다. 작가는 청춘을 뺏겨 늙지 못하는 ‘청춘노인’의 모습을 그려냈다.

“형, 어디까지 가는 거야?”
“잔소리 말고 뛰어! 물살이 강한 걸 계산해 최대한 위로 올라가야 해.”
이윽고 피에로가 발을 멈춘 곳은 처음부터 물이 깊고 경사가 가파른 곳이었다. 나루오름에서는 정면으로 보이던 마산포가 저 멀리 대각선으로 건너다 보였다.
탈출 시작
“자, 시작이다!”
피에로가 문짝을 바다 위에 띄우며 앞서 들어갔다. 바다는 완강히 출렁거렸다. 용운은 문짝의 한 끝을 잡고 조심스럽게 따라 들어갔다.
대번에 목까지 물에 잠기면서 숨이 차올랐다. 아직 태풍의 뒤끝이 가시지 않은 탓에 물결은 생각보다 훨씬 센 편이었다. 높은 물결이 가뜩이나 숨이 찬 얼굴을 쉴 새 없이 덮쳐왔다.
“형, 무서워…….”
“당황하지 마. 물이 얼굴을 덮칠 땐 숨을 멈춰!”
피에로가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문짝에 의지해 발버둥을 쳤지만 속도는 답답하리만치 느렸다. 아무리 발버둥쳐 봐야 앞쪽으로보다 오히려 나루오름 쪽으로 떠내려가는 거리가 더 많았다.
문짝은 출렁대는 파도의 강한 리듬에 맞춰 쉬지 않고 흔들렸다.
“구름아, 그렇게 발만 꼼지락대지 말고, 한 손으로 물을 헤쳐 봐!”
피에로가 답답한 듯 소리쳤다. 하지만 달리 거머쥘 곳도 마땅찮은 문짝에서 한 손을 놓기란 쉽지 않았다. 기를 쓰고 두 발을 버둥거렸다.
한 시간쯤 지났으리라. 그들은 나루오름과 마산포의 일직선상을 비껴나고 있었다.
그만큼 물살의 흐름은 빨랐던 것이다. 그대로 가다가는 나루오름 선착장의 누구에게 발각되거나 아니면 망망대해로까지 떠내려가게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때였다. 방파제 쪽을 돌아나오는 한 척의 나룻배가 보였다. 염전 복구작업에 필요한 공구를 실어나르고 다시 나가는 배였던 것이다.
“머리 낮춰!”
피에로가 다급하게 부르짖으며 물속으로 숨었다. 그러나 그건 무의미한 행동이었다. 배가 마산포로 향하는 만큼 그 일직선상에 놓은 그들의 주위를 통과하는 건 당연하기 때문이었다.
“아……!”
얼마나 급했던지 갑자기 솟아오른 피에로는 판단력을 상실한 듯 문짝에서 떨어지더니 마산포를 향해 필사적으로 헤엄을 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처음 얼마간 빠르게 나간다 싶더니 20여 미터도 못 가서 허우적거렸다. 남은 기력을 한꺼번에 소모했기 때문이었다.
시퍼런 수면 위에서 자맥질을 해대는 피에로의 처절한 모습이 허연 물결에 몇 번인가 가려지곤 했다. 그의 신음 소리는 한낱 바람이 되어 물안개처럼 흩어질 뿐이었다.
“사람 살려요!”
용운은 저도 모르게 소리쳤다.
배가 천천히 이쪽으로 다가왔다.
“빨리 저놈부터 끌어올려!”
배에는 선원 외에 두 명의 수용소 직원까지 타고 있었다.
“이 새끼야! 뒈질려면 무슨 지랄은 못하냐? 너 어느 사야?”
직원 하나가 주먹으로 용운의 이마를 치며 호통쳤다. 그렇잖아도 정신이 없는데다 다리마저 후들거리던 용운은 그대로 주저앉았다.
태풍의 뒤 끝이 채 가시지 않은 탓
조국 발전의 역군 만들 신성한 학원
직원이 사공에게 뱃머리를 돌리도록 부탁했다. 배는 곧 염전 옆 방파제에 도착했고, 피에로와 용운은 작업을 지휘하던 사감 선생 앞으로 끌려갔다.
사감 선생이 싸늘한 미소를 띠고 쏘아보았다. 소름 끼치는 미소였다. 용운은 일시에 모든 기력이 빠져나가 그대로 주저앉고만 싶은 기분이었다.
“요것들이 정말 미쳤나 보군. 미친 개는 개가 아니듯이 미친 놈은 더 이상 인간 대접을 해줄 수 없다!”
한껏 뒤틀린 얼굴로 노려보던 사감 선생이 표독스럽게 씹어뱉었다.
“이 새끼들, 내 오늘 본때를 보여 주지. 아예 죽여 버리고 말겠어!”
사감은 버들가지 회초리를 꺾어 들더니 마구 휘둘렀다. 회초리는 휙 소리를 내며 칼처럼 공기를 갈랐다. 혼줄이 빠질 만큼 예리한 아픔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시작일 뿐이었다. 한번 손을 댄 사감은 그것을 자극제 삼아 정신착란 같은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버들가지 회초리를 던져 버리더니 주먹을 마구 휘둘렀다. 이어 구둣발로 가슴을 차서 뒤로 벌렁 넘어뜨렸다. 그러고는 발길로 머리며 등짝을 가리지 않고 후려찼다.
사감은 찬바람을 일으키며 말했다.
“이 자식들, 살가죽이 벗겨져도 좋으니까 매타작할 몽둥이를 준비해! 엎드려 뻗쳐, 이 자식들아!”
사감은 미친 듯이 몽둥이로 마구 두드려팼다. 피에로는 비명을 올리면서 옆으로 빙글 몸을 돌렸다. 그러고는 선생의 다리를 부여잡고 벌벌 떨며 애원했다.
“다시는 그러지 않겠어요. 한번만 살려 주세요.”
사감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오랫동안 별러 오기나 한 듯 탈출 욕구를 뿌리째 뽑으려고 설쳤다.
바닷가 한쪽의 검은 바윗돌 틈새에 거무스름한 두 개의 나무기둥이 2미터쯤 사이를 두고 서 있었다. 마치 십자가처럼 가로장이 달린 그것은 오래 전부터 ‘징벌의 기둥’으로 불리었다.
어느덧 저녁 어스름이 내리기 시작했다.
사감은 완장을 찬 원생들을 시켜 두 탈주범을 각각의 기둥에 매달도록 했다. 웃옷을 벗긴 채 가로장에 두 팔을 묶인 그들은 발끝으로만 겨우 바위를 딛고 선 꼴이 되었다.
“그렇게 바닷속으로 들어가고 싶었으니 거기서 원이 없도록 실컷 바다 구경을 하면서 깊이 반성하도록 해라!”
사감이 큰 소리로 쩌렁쩌렁하게 말했다. 그는 고개를 돌려 주위에 빙 둘러선 원생들을 바라보았다.
거울로 삼다
“선감학원은 결코 너희들을 핍박하는 곳이 아니다. 원장님의 말씀처럼, 이곳은 온갖 우범지대를 거쳐 인생 종착역으로 밀려온 쓰레기 같은 인간들을 갱생시켜 조국 발전의 역군들로 만들려는 신성한 학원이다. 그런데도 국가의 큰 은혜를 저버리고 탈출하여 다시 육지로 가서 악행을 저지르려는 자들이 있으니 유감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길을 잃고 방황하다가 악의 소굴로 빠져드는 어린 양들을 그냥 둘 수는 없는 것이다. 여러분들도 저들의 꼴을 거울로 삼아 마음속의 유혹을 떨쳐내 버리기 바란다.”
<다음 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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