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삼의 맛있는 정치> 트럼프 집권 시 모든 게 뒤집힐까?

2024.05.08 08:49:34 호수 0호

오는 11월5일로 예정돼있는 미국 대통령선거에 관한 관심이 뜨겁다. 아직 경선이 공식적으로 끝나지 않았지만,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공화당 후보 지명을 받을 것이 확실시된다. 민주당에서는 현직인 조 바이든 대통령이 재선에 도전하는 것으로 이미 정리된 상황이다.



트럼프 복귀에 대한 우려

결국 2024년 대통령선거는 2020년에 서로 경쟁했던 바이든과 트럼프의 리턴매치로 치러지게 됐다. 이미 한 번씩 겪었던 바 있는 대통령이었던 탓에, 이번 선거서 누가 승리하느냐에 관심이 없을만도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2016년 예상을 뒤엎고 백악관에 입성한 트럼프의 상식을 뛰어넘는 정책적 충격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고, 바이든 대통령도 기대와 달리 ‘미국 우선주의 (America First)’ 기조를 버리지 않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작금의 미국은 우리가 알던 미국이 아니다. 2021년 1월6일 연방의회서 벌어진 폭동으로 상징되는 미국의 정치 양극화는 그 어느 때보다도 심각하다.

일각에서는 내전 혹은 그에 준하는 소요 사태의 위험성에 대해 끊임없이 경고를 보내고 있다.


한국에선 혹시라도 트럼프 복귀 시 발생할 수 있는 일련의 변화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크다. 트럼프가 미국의 주류 정치인들과 달리 노골적으로 푸틴, 시진핑, 김정은과 같은 권위주의적 정치인을 가깝게 여긴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백악관에 복귀한다면 첫날, 딱 하루 동안 독재자가 되어 국경을 봉쇄하고 화석연료 개발에 힘쓰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동시에 2020년 대통령선거를 부정선거로 규정하면서, 재집권할 경우 국무부·국방부는 물론, 정보기관의 관료들을 대거 숙청할 것이라는 엄포도 놓고 있다.

한편으로는 중국 견제를 계속하는 것 같으면서도 대만 역시 미국을 상대로 불공정 무역을 해왔기 때문에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주장을 동시에 하고 있다. 우리에게는 방위비 분담 문제, 주한미군의 감축 혹은 철수 문제, 북핵 문제 등을 동시다발적으로 재고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지난 몇 년 동안 보조금을 받기 위해 미국에 투자한 기업들도 트럼프 복귀 후 정책 변화로 피해를 볼까 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런데 대통령 한 명이 바뀐다고 해서 정말 많은 것들이 한꺼번에 변할까?

미국 정치제도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두 가지를 살펴봐야 한다.

첫째, 미국 연방정부는 건국 이래 입법·행정·사법 간 삼권분립 원칙에 따라 견제와 균형이 작동하면서 운영됐다는 사실이다. 미국은 순수한 의미서 대통령제를 갖춘 국가로 우리의 대통령제와는 매우 다르다.

우리나라에선 입법부의 구성원인 국회의원이 대통령의 부름을 받아 장관으로 일할 수 있고, 대통령과 별도로 국무총리라는 직이 존재한다.

미국식 순수 대통령제에 비해 내각제적 요인이 많은 것이고, 이 같은 행정부와 입법부 간 모호한 경계가 역설적으로 한국의 대통령을 제왕적 대통령으로 만든다는 학계의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미국은 상대적으로 입법부와 행정부의 경계가 뚜렷하다. 대통령이 원하는 바를 행정명령(executiveorder)을 통해 시행할 수는 있지만, 그 영향력과 지속성은 연방의회를 통과한 법에 미치지 못한다. 또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발효한 행정명령은 사법부에 의해 제지되는 일이 흔하다.

미국 정치의 삼권분립 원칙과 연방제 관계


둘째, 미국은 연방제 국가라는 사실이다. 정치체제가 연방정부와 주 정부로 나뉘어 있는데 주 정부의 권한이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을 만큼 높아서 미국 땅에 실제로 50개의 다른 나라가 존재한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우리가 관광객 자격으로 미국서 경험하는 주 정부 간 차이는 서로 다른 자동차 번호판 정도에 불과하지만, 교육, 보건, 세금, 선거제도, 정부 형태 등의 거의 모든 영역에 걸쳐 주 간 차이가 존재한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연방정부 차원서 법과 정책이 바뀐다고 해도 주들이 그에 일사불란하게 따를 이유가 없는 것이 연방제도의 특징이다. 다시 말해 연방정부가 법을 개정하는 경우, 일부 주 정부는 그 법을 따르지 않은 채 저항할 수도 있고, 또 다른 주들은 연방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걸 수도 있다.

연방정부와 주 정부 간 위계질서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곧 연방정부의 입장에 주 정부들이 반드시 순응해야 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우리의 지방자치제와는 완전히 다르다. 미국 정치의 삼권분립 원칙과 연방제가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기 위한 사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2022년에 연방의회를 통과한 인플레이션 감축법(Inflation ReductionAct; IRA)이 좋은 예다. 많은 사람이 트럼프가 복귀하는 경우, 인플레이션 감축법의 폐지를 걱정하고 있다. 인플레이션 감축법서 보장된 보조금을 받기 위해 미국에 대규모 투자를 감행한 한국의 기업의 측면서 볼 땐 상당히 일리 있는 우려다.

인플레이션 감축법은 연방 상·하원서 단 한 명의 공화당 의원의 지지도 확보하지 못한 채, 당시 의회 다수당이었던 민주당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여 통과시킨 법이다. 게다가 공화당서 달가워하지 않는 친환경에너지 정책, 증세, 처방한 약 가격 인하 등의 내용을 담고 있어서, 트럼프 역시 장외서 이 법을 노골적으로 비판한 바 있다.

그렇다면 트럼프가 재임하게 된다면 인플레이션 감축법을 폐지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미국 연방헌법은 연방의회에 입법 권한을 명확히 부여하고 있다. 따라서 대통령이 연방의회를 정식으로 통과한 법을 일방적으로 폐기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

인플레이션 감축법을 깔끔하게 무효로 하려면 그 법을 무효로 한다는 내용을 담은 새로운 법을 연방의회서 통과시켜야 한다. 그러므로 인플레이션 감축법의 지속 가능성을 걱정한다면 오는 11월 대통령선거뿐 아니라 연방의회 선거까지 자세히 살펴봐야 한다.


혹시라도 트럼프가 백악관으로 복귀하고 연방 상·하원 다수당이 모두 공화당이 되는 결과가 나온다면, 인플레이션 감축법의 폐기를 위한 첫 단추가 끼워진 셈이 된다. 만약 연방 상·하원 중 한 곳이라도 민주당이 다수당이 된다면, 민주당 반대 때문에 의회서 법을 폐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물론 트럼프가 대통령의 자격으로 일방적으로 인플레이션 감축법을 무효화하려는 행정명령을 발효할 수는 있지만, 이 경우 대통령이 의회의 권한을 침해했다는 이유로 연방 사법부에 의해 제동이 걸릴 가능성이 농후하다.

한편 백악관에 복귀한 트럼프가 인플레이션 감축법 집행을 위한 행정부 차원의 시행세칙을 수정해 법을 고사시키려는 시도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행정부 관료들의 저항이 있을 수 있다.

통념과 달리 미국 행정부 관료들이 대통령의 의지를 정책 집행에 반영하지 않는 경우는 흔하다. 역대 대통령들이 발효하고 싶어 했던 행정명령 중 상당수가 관료들의 반발 혹은 태업으로 인해 좌초됐다는 사실만 봐도 여실히 증명된다.

연방의회, 주 정부 포함 다차원적 로비

또 주 혹은 자신의 지역구를 대표하는 연방의원과 대통령 간 갈등의 소지도 무시할 수 없다. 인플레이션 감축법의 핵심 내용 중 하나인 신재생에너지 친화적인 정책은 화석연료 활용도를 높이고자 하는 공화당의 입장과는 정면으로 배치된다.

트럼프 역시 지구온난화를 거짓 주장이라 믿고 있고, 그 믿음을 재임 중 파리협정서 일방적으로 탈퇴함으로써 여실히 보여준 바 있다. 일반적으로 트럼프 친화적인 정치인들은 친환경정책에 부정적이다.

2020년 대선이 부정선거라고 목소리를 높인 대표적인 인물일 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정치 현안에 대한 견해를 봐도 트럼프와 차별성을 찾을 수 없다.

이들은 화석연료 중심의 에너지정책이 미국의 국익에 부합한다고 말하면서도 한국 기업이 태양광 패널 공장을 그린 하원의원의 지역구에 건설하는 것에 대해서는 놀랍게도 적극 환영한다.

평소 그의 언사를 보면 친환경 산업에 대한 부정적 견해가 논리적으로 일관성이 있지만, 공장 건설이 자신의 지역구 주민들의 이익에 직결되기 때문에 정반대의 태도를 보이는 것이다.

이 같은 사례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다음과 같다.

대통령이 바뀐다고 해서 이전 행정부의 정책이 뒤집힐 가능성은 생각보다 크지 않다는 점이다. 이전 행정부 시절 연방의회를 정식으로 통과한 법은 새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바꿀 수 없다.

여러 가지 우회로를 찾아볼 수는 있겠지만 대통령의 일방적인 행보는 대부분 소송의 대상이 된다. 게다가 행정부 관료들이 대통령의 의지에 따라 시행세칙을 수정해 집행하리라는 보장도 없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미 법의 내용에 적응한 주 정부 혹은 의원들이 대통령과 각을 세울 수 있다는 점이다. 공화당 정치인 중 아무도 인플레이션 감축법에 찬성표를 던지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 법이 시행되는 과정서 자신의 지역구가 이득을 본다면 이미 처지가 바뀌었을 수 있다.

그래서 미국 연방 행정부 차원의 로비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것이다. 연방의회, 주 정부, 주 의회를 모두 포함해 다차원적으로 로비를 수행한다면 대통령이 바뀐 후 혹시 있을지 모르는 후폭풍을 피할 수 있다.

김명삼 대기자
<hntn118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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