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기 단상> 공제(空制)

  • 김삼기 시인·칼럼니스트
2022.06.27 09:21:55 호수 0호

공간은 변화를 계속 꾀하며 흐르는 존재

과연 “눈에 보이는 공간은 멈춰있고, 눈에 보이지 않는 시간은 흐른다”는 주장이 맞는 걸까? 우리 주변에서 계속 변하는 공간을 보면서 “공간이 멈춰있다“는 주장에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건물이 구식에서 신식으로 교체되고, 각종 물건들이 필요한 곳으로 움직이고, 도로도 공장도 계속 세워지면서 새로운 모습으로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간이 교체되고, 움직이고, 세워지면서 변한다는 것은 공간이 멈춰있지 않고 흐른다는 의미다. 어느 시점에서 순간적으로 보면 공간이 멈춰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전체를 놓고 볼 땐 분명 공간은 멈춰있지 않고 흐르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눈에 보이지 않는 시간이 흐르는 게 아니라, 무한대의 좌표로 존재하면서 멈춰있는 것이 아닐까?

태양은 태초부터 멈춰있었는데 자전하고 있는 지구상에 사는 우리가 태양이 움직이면서 뜨고 진다고 생각하듯이, 시간도 태초부터 무한대의 좌표로 멈춰있었는데 그 좌표 위를 지나가는 우리가 시간이 흐른다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태양도 변하지 않고 그대로 있고, 태양과 지구의 거리도 계속 그대로 있는데, 지구만 스스로 자전하고 있기 때문에, 태양과 불가분의 관계인 시간을 좌표 개념으로 봐도 된다는 게 개인적인 생각이다.


그런데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멈춰있는 시간은 흐른다”고 생각하고 “눈에 보이는 움직이는 공간은 멈춰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지금까지 인류는 “시간이 흐른다”는 명제 아래 시간을 과거-현재-미래라는 시제(時制)로 구분해 사용해왔다. 그러나 시간이 멈춰있는 좌표라 해도, 좌표 선상에서 사람이 이미 지나간 좌표는 과거, 지나가고 있는 좌표는 현재, 앞으로 지나가야 할 좌표는 미래라는 시제로 구분해도 될 것이다.

시간과 마찬가지로 공간도 멈춰있건 흐르고 있건 과거-현재-미래의 개념을 가지고 있다고 봐야 한다. 사람이 이미 지나간 공간은 과거, 지나가고 있는 공간은 현재, 앞으로 지나가야 할 공간은 미래가 되는데, 이를 공제(空制)라고 명명하면 어떨까?

멈춰있는 시간의 시제(時制)와 흐르고 있는 공간의 공제(空制)는 분명 다르게 해석돼야 한다. 시간은 하나의 좌표 선상을 인류가 같이 가는 여정이기에,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에게 시제(시간의 과거-현재-미래)가 동일하지만, 공간은 사람마다 공제(공간의 과거-현재-미래)가 제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공간의 현재가 다른 사람에게는 공간의 과거나 미래가 되고, 누군가에게 공간의 과거가 다른 사람에게는 공간의 현재나 미래가 된다.

결론적으로, 시간과 공간을 존재의 개념으로 보되, 시간은 좌표 선상에 그려진 점들로 멈춰있는 존재로, 공간은 변화를 계속 꾀하며 흐르는 존재로 봐도 될 것 같다.

시간이 멈춰있는데 사람이 가는 것이고, 공간이 흐르는데 역시 사람이 가는 것이다. 시간이건 공간이건 시제(時制)와 공제(空制)가 존재하는데, 사람이 서 있는 좌표(시간)나 공간이 현재고, 사람이 지나온 좌표(시간)나 공간이 과거고, 사람이 아직 가지 않은 좌표(시간)나 공간이 미래다.

과거-현재-미래는 시간의 시제(時制)도, 공간의 공제(空制)도 된다는 의미다.

나는 오래 전 도봉산 모 카페에 다녀왔고, 친구도 며칠 전 도봉산 모 카페에 다녀왔는데, 우리는 시제와 공제가 서로 같지 않아 만날 수 없었다.

만남은 시제(時制)와 공제(空制)가 서로 같을 때 성립된다.


지난주 초유의 치안감 인사 번복 사태가 발생하면서 대통령까지 나서서 국기 문란 사태라고 언급하자, 경찰청과 행안부가 1주일이 지난 지금까지도 책임공방을 벌이고 있다.

사실, 이번 사태의 책임은 경찰청과 행안부 간의 소통 역할을 하고 있는 경찰청에서 파견한 행안부 치안정책관에게 있거나, 아니면 치안정책관이 입만 열면 다 알 수 있는 뻔한 사태일 뿐인데, 왜 이렇게 호들갑을 떠는지 모르겠다.

치안정책관은 경찰청 소속이지만, 행안부에 파견된 공무원으로 치안감 인사 관련 과정에서 시제(時制)와 공제(空制)가 행안부와 같았기 때문에, 이유야 어떻든 이번 치안감 인사 번복 사태는 행안부의 책임이 더 크다는 생각이 든다.


※본 기고문은 <일요시사>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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