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격 리뷰> 바얀 신도 천우희처럼…‘랑종’

2021.07.20 12:23:16 호수 1332호

[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영화 <황해> 개봉 후에 나홍진 감독의 가까운 지인이 유명을 달리했다. 나 감독 개인이 보기에 인간적으로 매우 훌륭한 사람이 사고를 당한 것. 신에 대한 믿음도 깊었던 사람이었다고 한다. 충격을 받은 나 감독은 그 상황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고 한다. 



‘인간이 피해자가 되는 데 이유가 없구나. 어떻게 해서 피해를 봤는지는 알겠는데, 왠지는 모르겠다. 현실에서는 그 이유를 찾을 수 없다. 인간이 존재하는 데 이유가 있듯 죽음에 대한 이유도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나홍진 감독에겐 이 같은 질문이 던져졌다. 그 답을 얻지 못한다면 스스로 존재할 이유가 없다고도 생각했다. 

이유를 찾기 시작했고, 방향은 신의 존재로 향했다. 현실에서 이유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기독교인인 그는 가톨릭, 불교, 무속신앙 취재에 열을 올렸다. 무당 암자에 몇 달씩 들어가 있다는 소식도 들렸다. 오랜 기간 취재 끝에 탄생한 영화가 바로 <곡성>이다.

<곡성>은 한국 영화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문제작으로 꼽힌다. 도대체 이 영화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에 관객들은 혼돈에 빠졌다. 그리고 5년이 지난 2021년 나 감독은 자신의 세계관을 더 공고히 하는 새 작품으로 관객들과 만났다. 

제목은 <랑종>. 시나리오 단계부터 <곡성>보다도 강렬한 탓에 한국에서는 도저히 개봉할 수 없겠다는 판단이 든 나 감독은 태국의 반종 피산다나쿤(이하 반종) 감독과 협업한다. 


코로나19가 극성하는 이 시기에 오컬트 장르로 60만 관객에 육박하는 누적 관객 수를 보이고 있다. 2016년에 그랬던 것처럼 많은 관객이 나 감독의 세계관에 홀리고 있다. 

<랑종>의 플롯은 단순한 편이다. 수학능력시험 문제 출제자의 태도로 여러 갈래로 해석이 가능한 장면을 집어넣고,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스토리를 꼬아버리는 나 감독의 기존 영화와는 궤를 달리한다. 

전작들이 문제를 푸는 과정에서 하나라도 어긋나면 이상한 답이 나오는 수준이었다면, <랑종>은 비교적 순방향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어려운 문제도 딱히 없다. 그럼에도 <랑종>이 제시한 화두가 쉽지만은 않다. 

님(싸와니 우툼마 분)이라는 무당이 있고, 이 무당의 조카 밍(나릴야 군몽콘겟 분)이 귀신에 들린 것 같은 현상을 보인다. 처음에는 바얀 신을 받아들이지 않아 발생한 현상으로 보였지만, 수많은 악령이 밍에게 들어간 것을 확인한다. 

악령으로부터 조카와 딸을 보호고자 했던 님과 노이(씨라니 얀키띠칸) 가족은 퇴마를 진행한다. 하지만 결과는 충격적이다. 

나 감독은 <랑종>을 제작한 이유로 <곡성>에서의 일광(황정민 분)의 전사를 써보고 싶어서였다고 밝혔다. ‘일광은 왜 악령(외지인‧쿠니무라 준 분)과 손을 잡았을까’라는 질문에서 출발했다. 이는 곧 사람들은 왜 악한 행동을 하는가라는 질문으로도 이어진다. 

<곡성>을 통해 나 감독이 말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랑종>을 통해 더욱 분명해진다. <곡성>에서 천우희가 연기한 무명은 선한 신으로 묘사된다. 이른바 정의에 가까운 곳에 힘썼던 무명은 마지막 단계에서 종구를 설득하는  데 실패한다. 

이 시퀀스만 놓고 보면 무명은 과연 종구(곽도원 분)를 설득하려 하는 의지가 있었는지, 혹은 정말로 악신을 막으려고 하는지, 그들을 막을 능력은 있는지 묻게 된다. 성경에 쓰인 대로라면 전지전능한 신이어야 하는데, 오히려 무능과 의지박약의 형태를 띤다. 

인간 사이에서 벌어질 수 없는 불의한 일을 목격한 나 감독은 마치 관객이 무명을 바라보듯, 신을 정의를 위해 힘쓰지 않는 모호한 존재로 생각하고 있었다. 

<랑종>에서도 그 생각이 변하지 않았다. 되려 선한 신에 대한 이미지는 더욱 희미해졌다. 선한 신으로 여겨지는 바얀 신은 무명보다도 더 방관한다. 어떤 형태도 띠지 않으며, 심지어 목이 잘리기도 한다. 무능과 방관의 태도가 겹친다. 


모든 충격적인 상황이 끝나고, 인터뷰 장면이 나온다. 바얀 신을 섬기고 있던 님이 ‘사실 내가 바얀 신을 모시고 있는지 아닌지 확신할 수 없다’며 매우 불안한 눈빛을 보인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곳으로 들어가 엉엉 운다. 

바얀 신을 섬긴다며 타인과 자신을 속여왔던 삶을 부정한 것이 너무 힘들어서였을까, 아니면 자신의 거짓된 삶과 정확히 마주하면서 두려움이 급격히 커진 탓일까? 그 울음이 구슬프게 들린다. 

이 장면은 신의 존재를 누구보다도 뜨겁게 탐구해온 나 감독이 여전히 답을 찾지 못한 자신의 심정을 표현한 것처럼 느껴진다. 신이 자신 앞에 컴백하길 바라는 강렬한 열망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것에 대한 슬픔이다. 

인간이 혼령에 빙의되는 것은 물론 개의 혼령마저 인간에게 빙의된 것이나 밍을 지나치게 관음적으로 표현한 태도, 생명을 처절하게 죽이는 행위 등에 받아들이기 어려운 관객들이 적지 않아 보이지만, 이는 본질과는 동떨어진 지적으로 보인다. 

<곡성>과 마찬가지로 <랑종> 역시 관객과 소통하기 위함보다는, 나 감독이 여전히 신의 존재에 답을 찾지 못했다는 보고서이자, 악에 대한 기록이다.

<랑종>을 일광의 전사라는 측면에서 보면, 사람들이 악과 손을 잡는 건 악이 더 강해서, 그리고 악의 힘이 분명한데 반해 선은 너무 모호하기 때문으로 귀결된다. 

<곡성>을 제작한 이유로 그는 선량한 사람들이 더 힘들고 다치는 사회적 분위기라고 말한 적이 있다. 당시 신이 너무 필요하기 때문에 신에 대한 의심이 더 커지기 전에 신이 돌아오길 바란다고 했다. 

<랑종>까지 제작한 나 감독의 눈에 세상은 여전히 악의 힘이 선의 그것보다 더 강해 보이나 보다. 혐오가 더욱 팽배해지고 여전히 현실에서 총과 칼을 인간에게 들이미는 장면을 보면 그 시선에 동의하게 된다. 

나 감독의 질문은 언제까지 이어질까. 나 감독이 이런 류의 영화를 접고 다른 주제에 관심이 쏠린다면, 그건 아마도 세상이 좀 더 나아져 있기 때문일 테다. 그런 세상이 하루빨리 오길 고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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