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회 필화사건’에 연루돼 육군고등군법회의에서 유죄를 선고받았던 경북대생들에게 38년만에 무죄가 선고됐다. 정진회 사건은 경북대 이념서클인 정진회 회원들이 1971년의 한일회담을 반대하는 내용이 담긴 ‘반독재구국선언문’을 작성해 반공법 위반죄로 기소됐던 사건이다.
지난 6일 서울고법 형사9부(부장판사 최상열)는 1970년대 ‘경북대 정진회 필화사건’에 연루돼 실형을 선고받았던 임구호(63), 이한용(59), 임규영(58)씨에 대한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임씨 등이 모임을 갖게 된 시기, 경위, 장소에 비춰볼 때 처음부터 구체적 목적이나 계획, 특히 당시 엄격히 금지된 헌법개정 반대운동이라는 목적 아래 만남을 가졌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이어 “선후배들이 사적으로 만나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서 당시 시국현안인 헌법개정안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고 해서 임씨 등에게 헌법개정 반대토론 등 목적이 있었다고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결국 임씨 등이 유신헌법개정안에 대한 반대토론이나 반대운동을 전개하는 방법을 모색하기 위해 옥내집회를 했다고 단정하기 어렵고 이를 인정할 증거도 없다”고 판시했다.
경북대 동아리 선후배관계인 임씨 등은 1972년 10월17일 유신헌법이 공표되고 대학휴교령이 내려지자, 10월27일부터 11월15일까지 대구 인근 다방과 음식점에서 만나 일상적인 대화 이외에 당시 시국현안인 헌법개정안에 관한 대화를 나눴다.
이를 적발한 수사기관은 11월께 ‘계엄사령부의 사전허가를 받지 않고 불법집회를 열었다’ 등 이유로 임씨 등을 연행한 뒤 1971년 ‘정진회 필화사건’의 혐의자인 여정남, 이현세 등을 만난 사실을 추궁하며 구타했다.
고문을 견디다 못한 임씨 등은 여씨 등을 만났다고 거짓 자백했고 결국 계엄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돼 1973년 1월11일 육군고등군법회의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시간이 흘러 임씨 등은 지난해 9월 “사적으로 만나 헌법개정안의 부당성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은 있지만 정치적 목적으로 집회를 가진 적이 없다”며 “이 같은 사정에도 불구하고 유죄를 인정한 원심판결에는 사실오인의 위법이 있다”고 재심을 청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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