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거리 전쟁…국민들 ‘뿔’났다 (1) 통제실 없는 식품안전정책

중국발 멜라민 파동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정부와 여당이 초강도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국민들의 우려와 분노는 더 커지고 있다. 식품업체들은 오히려 신뢰도 추락과 영업 위축을 하소연하고 있다. 잦은 식품 사고와 거기에 따른 정부 대책은 늘 사후약방문 격이었다. 결국 국민들은 자구책으로 유제품을 먹지 않는 것으로 대응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가 유제품에만 국한된 게 아니란 대두 등 멜라민이 첨가된 식품이 더 있을 수 있다는 정부의 입장에 ‘그럼 대체 무엇을 먹어야 한단 말인가’라는 국민들의 한탄이 터져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그동안 무수한 사고와 방지대책에도 나아지지 않는 수입식품 안전관리의 허점을 다시한번 드러낸 셈이다. 식품안전정책 부실에 대한 근본적인 원인과 처방을 진단해 보았다.

국민식탁 위협해도 뒷짐진 당국 “나만 안 먹으면 그만?”

온 국민이 멜라민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부와 여당이 초강도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소비자들의 우려와 분노는 더 커지고 있다.
‘납 꽃게’,‘기생충알 김치’, ‘말라카이트 장어’, ‘생쥐머리 새우깡’ 등 그동안 무수한 식품안전사고와 방지대책에도 나아지지 않는 수입식품 안전관리의 허점을 다시 한번 드러낸 것이다. 이러한 양상을 보면 다음 번에도 비슷한 형태의 대형 식품 사고가 터지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하기 어렵다.

소비자 안전은 뒷전
거짓 해명에 급급한 업체
지금과 같은 사태는 정부와 식품업계가 자초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소비자들에게 제때,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하지 않아 ‘식품업체들은 소비자 안전은 뒷전이고, 책임 회피와 돈벌이에만 급급했다’는 인식을 심어줬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사고가 발생한 직후 정부는 해당 제품이 수입되지 않았다고만 밝히고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다가, 전 세계로 파문이 확산되고 중국산 유제품을 원료로 사용한 과자 등도 위험하다는 여론이 들끓자 그제서야 조사 대상을 확대하는 모습을 보였다.
식약청은 지난달 28일 이미 발표한 3백5개 제품 이외에도 해태제과 4개 제품에서 추가로 멜라민 성분이 검출됐다고 밝혔다. 이번에 드러난 제품은 ‘미사랑 카스타드’ 3건과 ‘미사랑 코코넛’ 1건으로 현재까지 검출된 양 가운데 가장 많은 2백71.4ppm의 멜라민 성분이 검출됐다.
미사랑 카스타드(유통기한 08.09.24(46.1ppm)/08.11.30(155.3ppm)/09.0506(5.9ppm))와 미사랑 코코넛(유통기한 08.12.01/271.4ppm)에서 검출된 멜라민 양은 지난달 24일 첫 발견사례 1백37ppm에 비해 약 2배 가까이 되는 양이다.  
식약청은 1백37ppm의 멜라민이 함유된 과자를 60kg 성인이 낱개포장 40개 이상, 20kg 어린이의 경우 낱개포장 13개씩 매일 지속적으로 먹어야 신장염이나 신장결석 등 인체에 유해한 정도가 될 수 있다고 발표했다.

‘멜라민 검사’ 전방위 확대 … 책임 떠넘기기에 국민만 피해
식품 사고 방지와 안전성 제고 위한 총체적 대책 마련 시급

커피크림의 경우도, 멜라민 1.5ppm이 검출된 커피크림제품을 60kg 성인이 20kg 이상씩(커피 약 3천7백잔~4천잔 이상씩) 매일 지속적으로 섭취할 경우 신장염, 신장결석 등의 유해영향 발생이 우려되는 것으로 인체에 유해하지 않다는 평가를 내린 바 있다.
물론 이번에 검출된 양도 소량으로 인체에 심각한 정도로 유해한 것은 아니라는 게 식약청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그러나 문제의 핵심은 멜라민 검출 양이 많고 적음이 아니라 소비자가 도대체 어떤 제품을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식약청은 처음에는 조사 대상목록도 해당 식품업체에 피해를 줄 수 있다며 공개를 거부했다. 게다가 일부는 직접 시중에서 수거하지 않고 업체로부터 견본을 받아 조사한 것으로 드러나기까지 했다. 이후 멜라민이 검출되자 나머지 조사 대상을 밝혔고, 수백개에 달하는 조사 대상제품을 확인하기 어렵고 일부는 내용에 오류가 확인되는 등 도리어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해태 등 제과업체들은 사건 초기 제대로 확인도 하지 않은 채 무조건 “유제품을 사용하지도 않고 중국에서 들여오지도 않는다”며 발뺌을 했다. 그러나 식약청의 명단 발표 결과 거짓말로 밝혀졌다. 멜라민이 검출된 뒤에는 “어떻게 된 경위인지 조사하고 있는 중”이라며 “다른 제품은 문제가 없다. 검출 제품도 해로운 정도는 아니다”라고 무책임한 주장만 하고 있다. 더욱이 “식약청의 조치가 과도해 사업이 위축된다”며 불평스러운 입장만 내놓았다.
사고 때마다 땜질식으로 이것저것 대책을 쏟아놓고는 잠잠해지면 ‘규제 완화’라며 업계의 요구대로 도로 후퇴하는 정부의 오락가락 정책도 소비자의 신뢰를 갉아먹고, 정부 정책에 대한 권위를 떨어뜨린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식품 안전 정책 및
검사체계도 큰 문제
인체에 유해한 식품을 생산하는 나라와 기업도 큰 문제지만, 이번 멜라민 파동과 광우병 위험 미국산 쇠고기 수입 사태 등에서도 알 수 있듯 우리 정부의 허술한 식품 안전 정책 및 검사체계도 큰 문제라는 지적이 계속 나오고 있다.
정부는 9월22일 ‘식품안전기본법 시행령’과 ‘식품위생법 전면개정안’을 입법예고하면서 “선진국 수준의 식품안전관리 기반이 마련돼 소비자 신뢰를 높일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불과 이틀 뒤 멜라민 검출 사태가 벌어지면서 이를 완전히 무색하게 했다.
특히 중국산 식품의 안전성에 대해서는 소비자들이 우려를 넘어 공포감을 느낄 정도다. 전문가들은 만약 식품의약품안전청이 검사범위를 확대, 중국 이외 국가에서 수입한 유제품 함유식품이나 중국산 분리대두단백(햄 소시지 어묵 만두 이유식 등에 널리 쓰임)에서도 멜라민이 확인된다면 지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엄청난 사태가 일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집단 소송제만  4번째 발표
‘부처간 이기주의’가 원인
이에 대해 정부는 멜라민 검출 우려가 있는 모든 조사 대상제품을 공개하고, 수입식품 앞면(前面) 표시제와 집단소송제 도입 등 대책을 잇달아 내놨지만 사태는 진정되지 않고 있다. 따라서 원료의 원산지표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여건에서 과자나 유제품은 물론 가공식품 전반에 대한 소비 기피 현상마저 우려된다.
몇 해마다 한번씩, 주기적으로 발표되는 정부의 식품안전종합대책을 보면 전에 발표했던 내용을 되풀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번에도 정부는 ‘당정합동 식품안전+7’을 발표하고 향후 식품안전에 대해 강력히 대처하기로 했다고 밝힌 바 있다. 식품집단소송제 도입, 신호등 표시제, 식품안정행정 일원화, 식품위생사범 처벌강화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이번 대책은 겉으로 보기엔 정부가 매우 강력한 의지를 가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번에 발표된 대책은 과거 식품안전관련 사고가 있을 때마다 하던 이야기 그대로다. 제대로 시행조차 되지 못했던 대응책들의 종합판에 불과하다.
2000년 중국산 꽃게에서 납이 검출된 후 약속했던 식품위해요소중점관리기준(HACCP)은 농림부와 해수부가 업무를 떠넘기는 데 급급해 여전히 제대로 시행·확산되지 못하고 있다. 불량만두 이후 약속했던 식품안전정책위원회는 이제까지 회의 한번 열리지 않았다. 당시에도 정부는 식품피해 집단소송제 도입을 말했다. 하지만 기업의 반발로 시도조차 이루어지지 않았다. 2005년 기생충 김치 파동이후에도 수출국 현지 위생관리 강화와 위해식품 신속대응체계를 구축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중국산 수입 가공식품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생쥐 새우깡 사고가 났을 때도 집단소송제 이야기는 나왔다. 불과 두 달 전 발표한 ‘식품안전종합대책’에서 언급한 ‘식품안전사고 긴급대응단’은 아직 꾸려지지도 않았다. 계속 제기되었던 식품이력추적제 역시 오리무중이다.  
다시 말해 여론 잠재우기 용으로 전락한 다양한 대응책들은 늘 그렇듯 사고가 날 때만 반짝쇼로 들끓었을 뿐 시기가 지나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잠잠해졌다. 우려먹기 식의 이번 정부 대응책은 역시 전혀 신선하지 않다.
식품사고가 있을 때마다 집단소송제는 이번까지 총 4번 정도 언급했다. 한때 한나라당은 기업피해를 이유로 집단소송제를 반대했다. 먹어서 탈난 국민보다는 역시 기업이 우선이다. 2003년 학교급식 비리가 터졌을 때는 안전평가가 끝나지 않은 8개 식품첨가물을 사용금지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것도 역시 업계 피해가 우려된다며 사용이 허가되었다.

사태 주범은 농림수산식품부와 보건복지부의 ‘부처 이기주의’
‘당정합동 식품안전+7’… 알고 보면 재탕·삼탕 똑같은 대책

식품안전행정체계 일원화도 마찬가지다. 지난 정부 시절 이해찬 총리가 ‘식품안전처’를 야심차게 추진했지만 3·1절날 골프 파동으로 식품안전처의 논의는 물 건너갔다. 식품안전행정체계 일원화가 안되는 이유는 딱 하나다. ‘부처간 이기주의’라 불리는 농림수산식품부와 보건복지부의 싸움 때문이다.
결국 멜라민 사태도 식약청과 농림부가 서로 떠넘기다가 터져버린 사건이다. 초기에 식약청은 ‘사료와 분유의 문제’라고 농림부 소관이라고 했다. 농림부는 2007년부터 분유나 우유가 수입되지 않는다고 맞섰다. 결국 ‘손발 안 맞아 일 못하는’ 사태가 이번 파동의 주범이다.
국민들이 원하는 것은 단순하다. 안심하고 먹거리를 먹고 싶다는 것이다. 어떤 유해한 것들이 포함되어 있는지 알지도 못한 상태로, 사고가 터지면 반복되는 대응책을 이제는 신뢰하기는 어렵다. 결국 달라진 것은 없고 반복되는 식품안전 사고만이 뉴스를 뒤덮을 뿐인 상황에서 무엇을 먹어야 할지 국민들은 늘 불안하다.

진정성 통한 대응책 필요
소비자들 높은 관심도 중요
실제로 지금까지 정부가 추진하겠다고 내세운 정책들이 제대로만 작동했다면 수입식품의 안전성을 크게 높일 수 있었을 것이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문제는 진정성이다. 식품업계의 어려운 사정을 지나치게 깊이 헤아리려는 식약청의 태도로는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어떤 방법이 됐든 업계와 정치권으로부터 완전히 독립된 식품안전관리체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진정성을 가지고 사전예방의 원칙에 입각한 생산단계부터 소비까지 전 과정에 대한 위험 평가와 제거, 그리고 정보 공개를 비롯한 논의만 무성했던 각종 제도의 도입, 부처간의 행정 일원화. 이것이 바로 정부가 해야 할 일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대응책이 아니라 대응책을 ‘실현’하는 정부의 강력한 의지이다.
또한 먹거리 안전을 보장하려면 국민의 생명에 위해가 가든 말든 자기 뱃속만 채우려는 파렴치한 업자들에게 철퇴를 내리지 않으면 안 된다.
수입식품은 OEM이든, 반가공이든 검역을 대폭 강화해야 하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를 계기로 관심이 부쩍 높아진 원산지 표시제는 모든 식품으로 확대 적용하되 특히 소량 성분도 원산지 표시 룰 의무화하는 게 마땅하다. 위해 식품 수거체계를 개선해 현재 10%에도 못 미치는 회수율을 대폭 끌어올려야 한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 먹거리 안전 정책 수립과 집행의 일관성을 확립하는 게 무엇보다도 시급하다. 지금처럼 식품 안전 관리업무가 농림수산식품부, 지식경제부, 식약청 등으로 분산돼 있어 책임소재가 불분명한 체제로는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도 성과를 거두기 힘들기 마련이다. 정부와 여야는 식품 사고로 인해 국민이 허탈감에 빠지는 사태가 또다시 되풀이되지 않도록 이번에야말로 작심하고 근본적이고 총체적인 먹거리 안전체계를 확립해야 한다.
오상석 이화여대 교수는 “영국도 광우병 파동 이후 모든 정치적 논리를 배제하고 식품안전관리체계를 개편했다”며 “식품의 생산 판매 등 이해관계를 가진 측과 안전관리를 분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식품안전에 대한 소비자들의 높은 관심과 우려를 반영해 인원과 예산을 대폭 확대하고, 검역 검사능력을 키우는 한편, 식품업체에 대해서는 고의로 거짓정보를 퍼뜨리거나 소비자 안전을 위협할 경우 부당이득 환수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회사가 망할 정도의 징벌적 배상제를 도입해 경각심을 불러일으켜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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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빅텐트 타령 국민의힘, 왜?

또 빅텐트 타령 국민의힘, 왜?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이 당심 반영 비율을 늘린 지방선거 경선 규칙을 발표했다. 이어 장동혁 대표를 필두로 지방선거 전략으로 ‘반명 빅텐트론’을 지난 대선에 이어 또 거론했다. 국민의힘이 6년째 내리 실패한 전략을 또 끌고 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국민의힘이 지난달 25일 지방선거 경선 규칙을 발표했다. 국민의힘 지방선거 총괄기획단 대변인을 맡은 조지연 의원은 이날 국회에서 진행된 기획단 회의 후 “내년 지방선거 경선에서 당원투표 비중을 기존 50%에서 70%로 늘리기로 했다”고 밝혔다. 민심보다 당심으로? 국민의힘 지방선거 공천은 당원투표 70%와 국민 여론조사 결과 30%가 혼합돼 결정된다. 만 44세 이하 청년은 가점을 부여받고, 여성 신인은 만 45세 이상이어도 가산점이 부여된다. 광역의원 비례대표 후보자는 청년 인재 오디션을 거쳐 선출해 최우선 순위로 당선권에 배치할 예정이다. 지난 2022년 지방선거 당시 국민의힘 대표였던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시행했던 공직 후보자 기초 자격 평가는 기초자치단체장·기초의원 후보자들을 대상으로 진행된다. 국민의힘 지방선거 총괄기획단장은 5선 나경원 의원이 맡고 있다. 나 의원은 서울시장 출마 후보군 중 1명으로 거론된다. 현 시점에선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로 오세훈 서울시장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일각에선 “나 의원이 사심 때문에 경선 규칙을 정한 것 아니냐”고 의심한다. “오세훈 서울시장의 대중적 인기는 높지만, 당내 기반은 약하다”는 평가로부터 비롯되는 의심이다. 새로 정한 경선 규칙에 대해선 당내에서도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았던 김용태 의원은 지난 25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내년 지방선거를 시작으로 실질적인 수권 전략을 실현하려면, 공직선거 후보자 선출 규칙은 국민경선 100% 제도를 채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도 같은 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비판했다. 윤 의원은 “민심이 곧 천심이고, 민심보다 앞서는 당심은 없다”며 “민의를 줄이고 당원 비율을 높이는 것은 민심과 거꾸로 가는 길이고, 폐쇄적 정당으로 비칠 수 있는 위험한 처방”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최근 사법부 압박 논란과 대장동 항소 포기 문제까지 있었는데도 우리 당 지지율은 떨어지고 여당 지지율이 오르는 이유는 무엇이겠느냐”며 “여당이 잘해서가 아니라 진정성 있는 성찰과 혁신 없이 표류하는 야당에 대한 국민적 실망이 더 크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라고 강조했다. 한국갤럽이 지난 18일부터 20일까지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정당 지지도 여론조사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지지율은 43%였고,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4%였다. 지난 7월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만 18세 이상 1003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전화 면접 여론조사 당시 국민의힘 지지율이 19%를 기록했던 것에 비하면 높지만, 두드러진다고 보긴 어렵다. 내부 비판 이어지는데 당심 비중↑ 비상계엄 사과 두고도 ‘옥신각신’ “국민의힘의 지지율이 당분간 크게 오르긴 어렵다”는 일각의 예측도 있다. 다음 달 3일은 비상계엄 1주년이라서 윤석열 전 대통령의 재임 중 실정과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불참 ▲윤 전 대통령 체포 저지 시도 ▲심야 대선후보 교체 시도 등 지난 1년 동안 국민의힘이 여론으로부터 비난을 받았던 행보들이 다시 주목받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국민의힘 일부 소장파 의원들은 비상계엄 사과 등을 통한 윤 전 대통령과의 확실한 절연을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지난 24일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좀 더 명확한 메시지를 낼 필요가 있다는 얘기가 당내에서도 나온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역사와 국민 앞에 누군가 사과해야 할 상황이고, 국민의힘이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예측할 수 없었던 돌발적인 계엄이 있었고, 탄핵에 이어 정권을 잃은 후 국정의 주도권을 넘겨줬다”고 강조했다. 반면 같은 당 김재원 최고의원은 같은 달 26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일회성 사과로 과거의 잘못을 끊어내고 새로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사과를 자꾸 하는 것은 오히려 현 상황을 악화시킬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민의힘은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어떤 정치를 할 것인지 고민하는 게 필요하다”며 “사과하는 것보단 앞으로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는 게 더 낫다”고 역설했다. 장 대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히고 있다. 그는 같은 달 25일, 경북 구미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를 방문한 후 “사과 메시지를 내는 것은 지금 말씀드릴 단계는 아닌 것 같다”며 “국민의힘이 지금 싸워야 할 대상은 무도한 이재명정권과 의회 폭거를 이어가는 민주당”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구미역 광장에서 진행된 민생 회복·법치 수호 경북 국민대회에 참석해 “저들이 똘똘 뭉쳐 우리를 공격하고 손가락질할 때, 우리가 우리를 향해 손가락질·비판하는 게 부끄럽다”고 목소리 높였다. 그러면서 “대한민국과 자녀 세대를 위해 소리치는 우리가 아스팔트 세력이라고 손가락질당하는 게 부끄러운 게 아니라, 나라가 쓰러져가는데도 한마디도 못하는 게 부끄러운 것”이라고 강조했다. 해당 발언은 “사과해야 한다”는 일부 주장에 대한 반박으로 풀이된다. 돌발적인 계엄이다? 이재명 대통령·민주당에 대한 투쟁을 강조하는 장 대표의 주장은 빅텐트론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나 의원도 지난 1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대통령과 민주당을 비판하면서 “국민의힘은 네 탓 공방을 벌이면서 분열에 빠져 있다”며 “정당의 뿌리를 흔드는 내부는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하나로 뭉쳐 민주당의 독재 완성 계략에 단호히 맞서야 한다”고 했다. 국민의힘에선 각종 선거와 정국에 대응할 때마다 빅텐트론이 거론됐다. 시작은 황교안 당시 자유한국당 대표가 재임했던 지난 2019년이다. 이듬해엔 “각 정당·정파가 참여하는 통합추진위원회를 구성해 모든 자유민주 세력과 손을 맞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황 전 대표는 “통합 없이는 절대 이길 수 없단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며 “이 나라를 망치려는 사람들은 통합을 두려워한다”고 말했다. 황 전 대표가 주장했던 빅텐트론은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란 헌법 가치를 공유한다면, 태극기 세력부터 중도 보수 인사까지 아우른다”는 것이었다. 그의 주장을 토대로 자유한국당은 미래통합당으로 바뀌었다. 황 전 대표는 제21대 총선 패배 후 물러났다. 이 대표는 빅텐트론에 일관적으로 반대하면서 세대 포위론을 토대로 지난 2022년 대선을 지휘했다. 지난 6월 대선에 출마했던 이 대표는 국민의힘 등 보수 각계로부터 후보 단일화 요구를 받았다. 이 대표는 당시에도 국민의힘 등에서 주장했던 ‘반명 빅텐트론’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대선을 완주했다. 일각에선 국민의힘의 빅텐트론을 놓고 “혁신 요구가 나올 때마다 제기되는 주장”이라고 비판한다. 빅텐트론의 핵심은 통합이다. 통합은 정치권에서 반대 계파·의견을 억압하는 수사로 활용되는 예가 잦다. 빅텐트의 핵심은 조정 능력이다. 여기엔 다양한 계파·의견을 조율해 갈등을 최소화하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장 대표는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체제 전쟁 깃발 아래 모일 수 있는 모든 우파가 함께 모여서 이재명정권이 사회주의 독재체제로 가려는 걸 막기 위해 연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주장하는 ‘체제 전쟁’의 근거는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 ▲민주당의 배임죄 폐지·대법관 증원 시도 등이다. 장 대표는 공식적으로 국민의힘과 관계없는 황 전 대표가 지난 12일 내란 선동 혐의를 받아 내란 특검에 의해 체포되자 “우리가 황교안이다”라는 구호를 외쳤다. 이어지는 재탕 삼탕 이어 “국민의힘만으로 이재명정부·민주당과 싸우긴 어렵다”며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주도하는 자유통일당 ▲고영주 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이 주도하는 자유민주당 ▲새누리당 조원진 전 의원이 주도하는 우리공화당 ▲황 전 대표가 주도하는 자유와혁신 등을 연대 대상으로 지목했다. 이들은 모두 부정선거론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그에 반해 개혁신당과 이 대표는 부정선거론을 강하게 비판한다. 장 대표가 주장하는 빅텐트론은 김문수 전 대선후보 등이 주장했던 빅텐트론과 큰 차이가 없다. 당시 김 전 후보는 “민주당 이재명 후보를 이기기 위해선 어떤 경우든 힘을 합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한덕수 전 총리 ▲황 전 대표 ▲이낙연 전 총리 ▲이 대표 등을 통합 대상으로 지명했다. 권성동 당시 원내대표는 김 전 후보·한 전 총리의 단일화를 지지하면서, 당시 당내 주류와 불화했던 국민의힘 김상욱 당시 의원(현 민주당 의원)에게 “스스로 거취를 결정하라”고 요구했다. 이는 장 대표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에게 당원 게시판 의혹 관련 압박을 가한 것과 비슷하다. 당시 권 전 원내대표는 “당원 대부분은 민주당 이 후보에게 대항하기 위해선 반명 빅텐트가 필요하단 의견을 갖고 있다”며 “지도부는 당원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는 부정선거론을 주장하는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연대를 주장하면서, 개혁신당과의 연대설도 공개적으로 부정하진 않는다. 일각에선 “오 시장이 장 대표·이 대표의 가교 역할을 한다”고 관측하고 있다. 오 시장은 지난 9월 “개혁신당과의 연대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한 이후 꾸준히 개혁신당과의 연대를 주장하고 있다. 이후 정치권 일각에선 “오 시장이 서울시장으로 다시 출마하고, 이 대표가 경기도지사 야권 단일 후보로 출마하면 수도권에서 보수 진영이 선전할 수 있다”는 기대를 하고 있다. <미디어토마토>가 지난달 28일부터 이틀 동안 서울특별시 거주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무선·ARS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오 시장은 보수 진영에서 민심 27.5%·당심 50.3%의 지지를 얻어 서울시장 후보 중 가장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민주당이 서울시장 후보를 선출한 후 ‘여당 프리미엄’을 앞세워 오 시장에 대한 공세를 이어간다면, 재선을 장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국민의힘이 중도층의 민심을 끝내 얻지 못하면, 오 시장으로선 힘겨운 선거가 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체제 전쟁” 명분으로 사과 거부 홍 “국힘은 보수 참칭 사이비 레밍” 당내에서도 나 의원 등 막강한 경쟁자가 있어 본선행을 확실하게 장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대표는 지난달 23일 “국민의힘 내부에서 변화·쇄신 목소리가 전혀 안 나온다”며 “연대를 함께할 가능성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국민의힘은 지난 대선에 이어 1990년대식 ‘뭉치면 이긴다’ 구호만 내세운다”며 “그 전략으로 패배한 사람은 황 전 대표였는데, 같은 선택을 하면서 다른 결과가 나오길 기대하는 건 이해가 안 간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내부에도 연대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국민의힘 지도부에서 강경 보수의 주장을 가장 강하게 내세우는 김민수 최고위원은 같은 달 25일, 채널A 유튜브 채널 ‘정치시그널’에 출연해서 “이 대표는 당내 많은 분쟁을 가져온 사람이라서 화합을 해칠 가능성이 있다”며 “개혁신당과의 연대는 득보다 실이 더 많을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김 최고위원의 주장은 오 시장의 주장에 대한 반박으로 해석되고 있다. 김 최고위원은 “개혁신당은 보수 정당인지, 진보 정당인지 모르겠고, 그 사이에 있다고 생각한다”며 “저는 최고위원이 되기 전부터 우측으로의 연대를 주장했다”고 설명했다. 대선은 기동전·총력전 성격이 강한 반면, 지방선거는 진지전 성격이 강하다. 선거의 성격이 다르지만, 국민의힘에선 똑같이 ‘반명 빅텐트’라는 구호를 거론하고 있다. 역사엔 위기 상황에서 변화를 거부했다가 돌이킬 수 없는 위기를 맞이한 사례가 다수 기록돼있다. 변화를 거부하는 세력이 그 집단을 주도할 때, 이 사례는 더욱 빈번하게 재현된다. 중국 청나라에선 수구파를 이끌던 서태후가 변법자강운동을 주도하던 광서제에게 반대해 정변을 일으켜 성공한 후 광서제를 유폐했다. 중국 정부가 지난 2008년 광서제의 능을 공식 발굴 조사한 결과, 광서제는 급성 비소 중독으로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어 3세 나이로 즉위한 청나라 황제는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영화 <마지막 황제>의 주인공인 선통제다. 선통제는 영화 제목 그대로 마지막 황제였다. 광서제의 개혁 시도는 청나라의 마지막 몸부림이었다. 자신에게 유리한 정보만 취사 선택해 그 정보를 근거로 자신의 주장을 전개하고, 불리한 정보는 의도적으로 외면하는 성향을 확증편향이라고 한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지역구 관리에만 능하고, 기득권·이익 추구에만 관심을 두는 의원들이 당을 주도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언더 찐윤’이란 집단이 거론된다. 확증편향 소탐대실 일각에선 국민의힘이 변화·혁신에 거부감을 느끼면서 같은 선택을 반복하는 핵심 이유로 언더 찐윤을 거론한다. 홍준표 전 대구시장은 지난 6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은 이념도 없는, 보수를 참칭한 사이비 레밍 집단”이라고 주장했다. 이미 여러 번 선거에서 패배한 전략임에도 확증편향·소탐대실을 근거로 같은 선택을 고집한다면, 무리 지어 절벽에서 떨어지는 레밍과 비교되는 수모를 또 겪을 수도 있다. 하지만 국민의힘에선 또 빅텐트론이 반복되고 있다. 빅텐트는 국민의힘 주변을 배회하는 유령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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