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거리 전쟁… 국민들 뿔났다 (2) 국민도 ‘부글’ 기업은 ‘여유’ 실태

‘버티면 산다?’
먹는 음식에 장난을 치는 기업의 두둑한 ‘배짱’이 도마에 올랐다. ‘먹거리 파문’관련 해당업체의 늑장 대응이 화를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다. 식품업계는 그동안 이물질 사태가 벌어지면 즉각 수습에 나서지 않고 뭉그적대다 달랑 사과문만 발표하는 데 그쳤다. 이번 멜라민 파문도 마찬가지다. 팔짱을 끼고 ‘버티기’로 나오다, 이제 ‘배째라’식이다. ‘나몰라라’하는 업체들의 수수방관에 소비자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일이 터질 때마다 반복되고 있는 기업의 늑장 대처 실태를 되짚어봤다.

일단 버티기…그리고 호미 대신 가래로

1982년 10월 미국 시카고. 유명 진통해열제 ‘타이레놀’을 복용한 환자 7명이 갑자기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이 발생하자 제조사인 존슨&존슨의 시장점유율은 30%대에서 10% 아래로 곤두박질쳤다.
그러나 이 회사는 머뭇거리지 않고 즉각 원인 규명에 나섰다. 언론 매체를 통해 소비자들에게 “타이레놀을 복용하지 말라”고 알리는 동시에 미국 전역에서 판매되고 있는 타이레놀을 모두 회수해 폐기처분했다. 그 비용만 무려 2억5천만달러(약 2천7백억원)에 달했다.
당국의 조사 결과 제품 제조와는 전혀 상관없는 한 정신병자가 타이레놀을 몰래 훔쳐 독극물을 투입한 후 진열대에 다시 갖다 놓은 것으로 밝혀졌지만, 이물질을 넣지 못하도록 용기를 새로 제조하고 모든 정보를 공개하는 등 존슨&존슨의 자구책은 계속됐다. 그 결과 존슨&존슨은 추락한 명성을 회복했고, 시장점유율도 순식간에 이전 수준으로 올라섰다. 이 사건은 타이레놀 제품은 물론 존슨&존슨에 대한 소비자들의 신뢰를 높이는 계기가 됐다.
지난달 일본. 농약 성분이 남아 있는 오염된 공업용 쌀이 식용으로 유통된 것으로 조사되자 이를 납품받은 회사들은 우왕좌왕했다. 일본 정부는 건강문제를 일으켰다는 보고가 들어오지 않았다고 밝혔지만, 맥주업체 1위인 아사히맥주는 재빠른 대응에 나섰다. 문제의 쌀로 만든 자사의 소주 제품 전량을 자진 회수한 것.
아사히맥주는 지난 6월 출고된 ‘카노카’ 등 4가지 상표 65만병을 회수했으며, 회수비용으로 15억엔(약 1백67억원)을 쏟아 부었다. 아사히맥주 측은 “자체 조사 결과도 살충제가 남아있다는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지만, 신뢰 회복 위해 자진리콜을 실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1995년 3월 구미. 삼성전자 구미사업장에서 ‘불량제품 화형식’이 진행됐다. 당시 불량 휴대전화가 유통되고 있다는 보고가 올라오자 이건희 전 회장은 “전량 회수하라. 그리고 공장 사람들이 전부 보는 앞에서 태워 없애라”고 지시했다.
삼성전자는 곧바로 제품 회수에 들어갔고, 5백억원대의 제품이 한순간에 잿더미로 변해버렸다. 이 일화는 삼성전자를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케 한 원동력이 됐다.
‘신뢰·윤리 경영’의 사례들이다. 글로벌 경쟁시대에 신뢰와 윤리는 기업 운명을 좌우할 만큼 선택이 아닌 필수다. 국내 굴지의 식품회사들이 먹거리 파문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는 요즘 신뢰·윤리 경영은 더욱 부각되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근본적인 대책과 해결보다 사건의 본질을 숨기는데 급급한 실정이다.
끊이지 않는 ‘분유 파동’이 대표적이다. 2006년 9월 국내 분유업체 제품에서 대장균의 일종인 ‘사카자키균’이 검출, 한바탕 소동을 겪었다. 이 제품들을 전량 회수한 각 업체들은 다른 제품에서 사카자키균을 완전히 제거했다고 떠들어댔다. 그러나 지난해 4월 이유식 제품에서 또다시 사카자키균이 검출된데 이어 9월 한 업체의 조제분유에서 역시 사카자키균이 검출되기도 했다.
앞서 2000년 8월 중국산 ‘납 꽃게 파문’때도 업체들의 늑장 대응이 도마에 올랐다. 당시 해양수산부는 “전량 회수해 폐기하겠다”고 발표했지만, 회수까지 3달이나 걸렸다. 논란이 증폭되는 사이 중국산 납꽃게가 수입업자들의 은폐로 대량 유통되는가 하면 중국산 꽃게의 회수 및 폐기처분 조치 직후에도 여전히 판매돼 충격을 더했다.
지난해 2월 ‘식용유지 파문’도 상황은 비슷했다. 식약청은 옥수수유와 참기름, 들기름 등 10여개 제품에서 발암물질로 알려진 ‘벤조피렌’이 허용 권고기준을 초과, 해당업체에 자진 수거를 요청했으나 수거율은 지지부진했다. 업체들이 강제로 수거할 의무가 없다는 점을 악용한 것이다.
나중에 일부 제품은 회수되지 않은 채 시장에서 팔린 것으로 확인되기도 했다. 식약청도 자진 회수 권고 사실을 공개하지 않고 벤조피렌 발생을 자율적으로 줄이도록 촉구하는 선에서 사건을 넘겼다.
올 들어 먹거리 비상등에 불을 켠 ‘생쥐깡’과 ‘칼날 참치’파문도 기업들의 안이한 대처가 화를 키웠다. 지난 3월 농심은 1971년 첫 선을 보인 이후 ‘국민 간식’으로까지 불리며 오랫동안 국민적 사랑을 받았던 새우깡에서 생쥐머리로 추정되는 이물질이 검출돼 창립 이래 최대 위기를 맞았다. 문제는 사건을 ‘쉬쉬’한 농심의 태도다.
농심은 이물질이 나온 사실을 알고도 한달 동안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2월 말 충북의 한 소비자가 슈퍼마켓에서 산 새우깡에서 1.6㎝ 크기의 털이 난 이물질을 발견하고 회사 측에 통보했지만, 농심은 최근 식약청이 이 문제를 발표한 뒤에야 내부조사 사실을 털어놨다. 어이없는 사고를 터트리고도 이를 은폐하려다 위기를 자초한 셈이다.
‘칼날 참치’생산업체인 동원 F&B도 2006년 11월 참치캔에서 커터 칼날이 나왔다는 소비자 불만신고를 받았지만,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고 사건을 덮으려 했다. 동원 F&B는 이를 신고한 소비자에게 참치 선물세트를 주며 사태 무마를 시도했다. 제품 수거조치도 없었다. 동원 F&B는 지난 3월 참치에서 또다시 칼날이 나왔으며, 이후에도 여러 제품에서 잇달아 이물질이 발견돼 진땀을 흘렸다.

유해물질 식품업체 안이한 대응 도마…사건 때마다 반복
‘나몰라라’수수방관에 소비자 속수무책 “불신만 키운다”
“국민들은 음식과 걱정 같이 먹는다”

더욱이 이 두 제품은 대부분 회수되지 않은 채 소비·유통된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새우깡과 참치캔의 회수율은 각각 7.2%와 36.4%에 그쳤다. 특히 농심은 행정기관이 명령한 회수량도 이행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생쥐깡’회수량은 지난 4월 식약청이 시행한 ‘위해식품 회수지침’시행 이전의 평균 회수율인 10.8%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이같이 국내에서 ‘위해’판정을 받은 식품 회수율은 극히 저조하다. 국회 보건복지가족위원회 소속 한나라당 손숙미 의원이 공개한 식품의약품안전청의 ‘위해 식품 회수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부터 올 6월까지 수입산 과자류 제품 가운데 8백64.5t이 위해 식품으로 분류돼 회수 조치가 내려졌지만 회수 물량은 9.9%에 불과했다. 미 식품의약청(FDA)의 위해식품 회수율은 평균 36% 정도다.
올해의 경우 6월까지 위해 식품으로 적발된 수입 과자 81.3t이 유통됐지만 회수량은 1.2%(1t)에 그쳤다. 올해 적발된 과자류 가운데 캔디와 캐러멜 등에서 발암물질 논란이 있는 ‘시클라메이트’가 검출된 경우도 38.6t에 달했지만 회수량은 0.7t에 머물렀다.
시민단체 관계자는 “먹는 음식에 장난치는 업체들은 국민 건강은 뒷전이고 어떻게든 사태 수습에만 급급하다”며 “제조회사가 진솔하게 경위를 파악하고 문제가 있으면 리콜 등으로 적극 대응해야 소비자들의 신뢰가 회복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번 ‘멜라민 파동’에 휩싸인 식품업계의 대응도 별반 다르지 않다. 멜라민 검출 제품이 늘어나면서 전국이 들썩거리고 있는데 반해 업체들의 느슨한 위기관리가 여론의 질타를 받고 있는 것.
해태제과 등 업체들은 멜라민 파문 초기 “자사 제품은 문제가 없다”고 하나같이 발뺌했다. 그러다 국내 식품에서도 멜라민이 검출되자 돌연 입장을 바꿨다. 손을 놓고 있다가 뒤늦게 전량 회수에 나선 것. 해태제과는 3천5백여명의 전 직원을 동원해 제품을 거둬들여, 9월말 현재 98% 정도 물량을 회수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대형마트 등을 제외한 영세 점포 등엔 아직도 버젓이 팔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제과도 당초 “중국산 제품은 1개뿐”이라며 멜라민 식품 유통 사실을 숨기다 식약청의 판매금지 품목에 일부 제품이 포함되자 슬그머니 말을 바꿨다.
소비자단체 관계자는 “업체들은 관련 제품 생산을 중단하고 유통 물량도 회수해 폐기하고 있지만, 그전에 판매된 제품들은 이미 소비자의 입속에 들어간 상태”라며 “업계의 ‘쉬쉬 관행’이 반복되자 소비자들은 해당업체가 생산하는 다른 제품에도 의심의 눈초리를 보낼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이에 따라 위해 식품 관련 법·규정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지난 1일 한나라당 이종혁 의원이 위해식품사범에 대한 벌칙을 강화하고 시급히 회수를 하도록 식품위생법 개정안을 발의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식약청은 위해 우려 식품으로부터 국민의 먹거리 안전을 위해 권장규격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법적 규제력은 없다.
이 의원이 발의한 식품위생법 개정안에 따르면 식품회수 위반 및 허위보고에 대해 현행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형에서 최대 10년까지 징역형을 받을 수 있게 했으며 벌금도 2억원으로 늘렸다. 이 의원은 “현재 식품안전사고를 일으킨 업체에 대해서 벌금이나 행정처분 등을 관대하게 처벌하는 것이 대부분이여서 식품안전사고의 재범률이 높다”며 “식품안전사고가 끊이지 않는 것은 관련 법상 사전규제와 사후 징벌 모두 미약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식약청도 저조한 회수율을 높이기 위해 신속한 회수시스템의 구축 등 이물사태 재발방지를 위한 대책을 내놓았다. 식약청은 “위해 우려 식품을 회수하지 않거나 은폐한 영업자에 대한 행정처분과 형사고발을 강화할 것”이라며 “위해식품의 원인규명과 신속한 회수를 위해 식품이력추적제도와 회수대상 식품을 정부가 직접 회수해 폐기처분하고 그 비용을 영업자에게 청구하는 행정대집행제도의 도입도 추진된다”고 설명했다.
‘먹거리 쇼크’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식품업계를 바라보는 소비자들의 불신 또한 되풀이되고 있다. 그동안 먹거리 사고가 터지면 그때뿐이었다. 언제까지 국민들은 음식과 걱정을 같이 먹어야 할까.


‘불량품 쉬쉬’쪽박찬 회사들
“소비자 우롱은 폐업 지름길”
자사의 불량품을 쉬쉬하다 한순간에 쪽박 찬 회사들도 하나 둘이 아니다.
일본 미쓰비시자동차는 2000년 일부 차량의 결함을 알고도 소비자들의 리콜 요구와 클레임을 감춰오다 내부 고발로 이런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미쓰비시는 무려 76만여대 리콜을 실시했다. 그러나 이는 판매 부진으로 이어져 2000년 3천6백억엔 적자를 기록했고, 주가도 40%나 폭락했다.
2004년 6월엔 주력 승용차와 트럭·버스 등의 차량 결함 은폐 사실이 들통 나기도 했다. 그해에만 일본 내 판매가 40%나 줄어들었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게 된 셈이다. 미쓰비시의 부도덕한 위기관리는 기업 이미지를 크게 훼손시켰고, 고객의 신뢰도 한순간에 무너뜨렸다.
일본의 햄·소시지 시장의 80% 가량을 차지했던 유키지루시식품회사는 2002년 문을 닫았다. 호주산 쇠고기를 일본산으로 속여 팔다 적발됐기 때문이다. 소비자가 등을 돌리자 파산을 면치 못했다.
1990년대 초반 급부상한 미국의 엔론 역시 분식회계를 일삼은 대가로 2001년 12월 문을 닫았다. 이 회사는 이익 부풀리기를 통한 분식회계와 이를 숨기기 위한 정·관계로비 등으로 시장의 신뢰를 잃어 결국 파산했다.
시민단체 관계자는 “사고를 숨기기에 급급해 잘못을 은폐하다 더 큰 위기를 자초하는 경우가 일어난다”며 “이런 안이한 조치는 소비자의 신뢰를 무너뜨리고 결국 매출에도 영향을 미치기 마련”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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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