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인물> 영원한 골프여왕 박세리

국민들 힘들 때 웃게 해줬다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골프여왕 박세리가 필드를 떠난다. ‘맨발 투혼’을 시작으로 20여년간 세계무대를 주름잡았던 그다. 최근 몇 년 동안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지만, 그는 최고의 현역 선수들과 겨룬 경기에서 유쾌한 승리로 국민을 기쁘게 했다.

박세리는 지난 17일 미국 애리조나주 와일드파이어 골프장서 열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JTBC 파운더스컵 1라운드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 은퇴를 발표했다. 공식 인터뷰에서 박세리는 “2016시즌이 내가 풀타임으로 투어 활동을 하는 마지막 해”라고 선언했다. 이어 “은퇴 결정이 쉽지 않았지만 지금이 그때라고 생각했다”며 “내 인생에서 또 다른 꿈을 이루고 싶다”고 밝혔다.

혹독한 훈련
두둑한 배짱

박세리는 은퇴 후 꿈이 후진 양성이라고 했다. 박세리는 “한국의 많은 유망주가 세계무대에서 활약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고 싶다”며 “그들이 자신들의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내 모든 걸 가르쳐주겠다”고 다짐했다. 박세리는 2016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의 한국여자골프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는다.

박세리가 은퇴하기로 한 배경은 부상이다. 지난 몇 년간 왼쪽 어깨뼈의 습관성 탈구로 재활에 힘써왔지만 회복이 더뎌지며 결국 은퇴를 결심한 것이다. 박세리는 지난 수년 동안 왼쪽 어깨뼈 습관성 탈구 등으로 고생했다. 지난해 2개 대회에 출전했으나 모두 기권하고 재활에 힘써왔다. 파운더스컵은 박세리가 지난해 6월 이후 9개월 만에 나선 대회다. 박세리는 이날 1라운드에서 버디 3개로 3언더파를 기록, 공동 36위에 올랐다.

박세리는 1977년 대전에서 3녀 중 둘째로 출생했다. 1989년 초등학교 6학년 때 골프광인 아버지 박준철에 이끌려 골프를 시작했다. 초등학교 시절 어린 나이에 훈련장에서 새벽 2시까지 혼자 남아 훈련을 하는 등 엄격한 훈련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박세리는 중3의 어린 나이에 이미 쟁쟁한 프로들을 제치고 우승했다. 아마추어 무대에서 30개의 트로피를 들어 올린 최고의 기대주가 됐다.

1996년에 프로로 전향했고 1년간 세계 최고의 교습가로 알려진 데이비드 레드베터로에게 혹독한 훈련을 받는다. 그 결과는 1997년 10월 퀄리파잉스쿨에 수석합격했다. 박세리는 현재 통산 12승을 올리며 투어 정상급 선수로 활동 중인 크리스티 커(미국)와 함께 공동 1위로 퀄리파잉스쿨을 통과, 대망의 미LPGA투어에 화려하게 입성한다.

박세리의 투어 첫 대회는 1998년 1월에 열린 ‘헬스 사우스 이너그럴’이다. 이 대회서 공동 13위를 기록, 데뷔전을 무난히 치러냈다. 하지만 이후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했다. 5월 초까지 참가한 9개 대회에서 공동 11위가 최고였을 뿐 나머지는 30∼40위권을 맴돌았다. 하와이서 열렸던 컵 누들스 하와이여자오픈에서는 컷오프를 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일대 사건은 4개월, 10번째 대회 만에 터졌다.

1998년 5월1 LPGA투어의 메이저타이틀인 맥도널드LPGA챔피언십에서 11언더파 273타를 기록하며 투어 데뷔 첫 승을 올린 것이다. 자신의 생애 첫 우승을 메이저대회에서 올렸고 그것도 대회 1라운드부터 한 번도 선두 자리를 뺏기지 않은 채 정상에 오르는 와이어 투 와이어(wire-to-wire) 우승이었다. 신인이 자신의 첫 승을 메이저대회에서 올린 것은 데뷔 해(88년)에 US여자오픈 정상에 오른 리셀로테 노이만(스웨덴) 이후 처음이었다.

올 시즌 마치고 선수생활 은퇴 발표
잦은 부상 시달리다 필드 떠날 결심

1998년 7월 박세리는 아직도 우리 국민의 뇌리에 생생하게 남아 있는 명장면을 연출하며 세계 정상에 우뚝 선다. LPGA US오픈에서 20개 홀을 도는 연장전 끝에 우승컵에 입을 맞췄다. 당시를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절대 잊혀지지 않은 박세리의 ‘맨발 투혼’이 이 경기에서 나온다.

TV 공익광고에서도 활용된 당시 박세리가 US여자오픈에서 양말을 벗고 벙커샷을 날리던 모습은 많은 사람의 뇌리에 여전히 남아있다. 이 장면은 미국 스포츠 전문방송 <ESPN>이 US오픈 5대 명장면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미국 위스콘신주 콜러의 블랙울프런 골프장에서 끝난 US여자오픈 최종 라운드에서 박세리는 태국의 아마추어 제니 추아시리폰과 나란히 6오버파 290타로 공동 선두를 기록, 다음날 18홀 연장 승부를 치른다.

다른 모든 대회가 곧바로 서든데스 플레이오프를 치러 우승자를 가리는 것과는 달리 US여자오픈은 남자들의 US오픈과 마찬가지로 이튿날 18홀 연장전을 치르며 거기서도 승부가 나지 않으면 서든데스를 치른다.

다음날 열린 승부에서 박세리는 추가 18홀마저 비긴 뒤 가진 서든데스 연장 2번째 홀에서 버디를 잡아 파에 그친 추아시리폰을 극적으로 누르고 메이저 대회 2연속 우승을 금자탑을 쌓는다.

무려 92홀 만에 우열이 가려진 이 대회는 LPGA투어 역사상 가장 긴 승부로 남아 있다. 신인 선수가 같은 시즌에 메이저 타이틀을 두 차례나 차지한 것은 84년 줄리 잉스터(미국) 이후 14년 만에 박세리와 잉스터 단 둘만이 이 기록을 가지고 있다.

또한 4대 메이저대회(LPGA챔피언십, US여자오픈, 브리티시여자오픈, 나비스코챔피언십) 중 양대 타이틀로 평가 받는 LPGA챔피언십과 US여자오픈을 같은 시즌에 연거푸 우승을 차지한 경우는 99년 줄리 잉스터, 2001년 캐리 웹(호주) 등 투어 역사를 통틀어 6차례에 불과한 대위업이다.

한국스포츠 영웅
골프 대중화 기여

다른 모든 대회가 곧바로 서든데스 플레이오프를 치러 우승자를 가리는 것과는 달리 US여자오픈은 남자들의 US오픈과 마찬가지로 이튿날 18홀 연장전을 치르며 거기서도 승부가 나지 않으면 서든데스를 치른다.

박세리의 활약은 IMF(외환위기)로 실의에 빠진 국민에게 악전고투 끝에 우승하는 모습이 생중계되면서 박찬호와 함께 국민적인 영웅으로 떠올랐다. 연일 매스컴은 대대적으로 지면을 할애해 박세리의 일거수일투족을 보도했고 광복 후 대한민국이 수출한 최고의 히트상품이란 찬사가 이어졌다. 세계적인 시사 주간지 <타임>이나 <뉴스위크>, 그리고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 같은 스포츠 전문 잡지들도 박세리 특집을 다루기에 바빴다.
 

무명의 신인에서 두 달 사이 ‘골프여왕’으로 등극한 것이다. US여자오픈에 이어진 제이미 파 크로거클래식에서 또 다시 우승, 2주 연속 우승이자 시즌 3승째를 올렸다. 더욱이 이 대회 2라운드에서는 10언더파 61타를 쳤고 합계는 23언더파 261타였다.

지금은 깨졌지만 두 가지 스코어 모두 당시까지는 신기록으로 평가받았다. 2위를 무려 9타 차로 제친 완벽한 우승이었다. 이후 빅애플클래식에서 숨고르기를 했던 박세리는 한 주 뒤 자이언트 이글클래식에서 시즌 4승째를 올렸다.

LPGA투어에 불어 닥친 ‘세리 광풍’은 무서웠다. 신인왕 타이틀은 당연히 박세리의 것이었다. 이 부문 2위였던 제니스 무디(스코틀랜드)와는 무려 904점의 격차가 있었고 시즌 9개를 대회를 남긴 시점에서 신인왕 타이틀을 확정지었을 만큼 일방적인 독주였다. 박세리는 아니카 소렌스탐(스웨덴)에 이어 단숨에 세계 랭킹 2위가 됐다. 그 때까지 소렌스탐-캐리 웹(호주) 양대 체제였던 미LPGA투어는 박세리를 포함한 ‘3강 체제’로 굳혀졌다.

신인왕 등 투어의 신데렐라로 떠올랐던 박세리에게 2년차 징크스도 없었다. 시즌 중반까지 다소 주춤했지만, 6월 들어 숍 라이트 클래식에서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을 차지했다. 7월 초에는 제이미 파 크로거 클래식에서 타이틀 방어에 성공, 투어 데뷔 후 처음으로 특정 대회 2연패에 성공했다.


시즌 마지막 대회인 페이지넷 투어챔피언십에서는 캐리 웹, 로라 데이비스(영국)를 상대 연장 승부를 펼친 끝에 우승, 전년도와 마찬가지로 시즌 4승(상금 랭킹 3위)을 기록했다.

동양인 최초
명예의 전당

2001년 투어 데뷔 3번째 시즌 박세리는 침체기를 맡게 된다. 단 1승도 올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별한 부상이나 나태함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준우승조차 하지 못했다. 3위가 최고 성적이었으며 상금 순위도 처음으로 10위권 밖(12위)으로 밀려났다.

하지만 박세리는 2001년부터 3년간 그야말로 전성기를 보낸다. 아니카 소렌스탐이 버티고 있어 상금왕이나 올해의 선수는 되지 못했으나 이 기간 무려 13승을 기록, 자신의 통산 승수(24승)의 절반 이상을 이때 몰아친다.

시즌 개막전인 유어라이프 비타민스클래식에 우승, 첫 단추를 잘 끼운 박세리는 제이미 파 크로거 클래식에서만 세 번째로 우승, 특별한 인연을 이어간 뒤 그 해부터 새로이 메이저대회로 편입된 위타빅스 브리티시여자오픈에서 우승, 자신의 세 번째 메이저타이틀을 획득하는 등 2001년 시즌에만 5승을 올리며 전성기의 서막을 연다.

박세리는 2004년 미켈럽 울트라오픈에서 통산 22승째를 기록하며 명예의 전당에 헌액될 수 있는 자격을 획득했다. 최고 선수의 자격증이라 할 수 있는 명예의 전당 헌액을 위해서는 총 27점이 필요하다. 일반 대회 우승 1점, 메이저 대회 우승 2점, 그리고 올해의 선수, 베어 트로피 등 타이틀 수상시 1점 등 점수가 부과되며 27점이 될 경우 투어 데뷔 10년을 마치는 해에 정식으로 헌액된다. 그런데 박세리는 자신의 투어 생활 7년 반 만에 조건을 구비했다.


US오픈 ‘맨발 투혼’ 명장면
IMF 당시 힘과 용기 북돋아

22승으로 22점, 이 중 4차례의 메이저 우승으로 추가 4점, 그리고 2003년 베어 트로피 수상으로 1점 등 27점을 모두 충족한 것이다. 이후 박세리는 투어 10시즌을 모두 채운 2007년 11월, 미LPGA투어 명예의 전당과 세계 골프 명예의 전당에 최연소로 헌액되는 영광을 안았다. 물론 동양인으로는 처음 있는 업적이다.

박세리가 길지 않은 기간에 많은 승수를 올리며 투어 최고의 선수로 우뚝 설 수 있었던 것은 그녀의 아버지 말처럼 ‘한 번 물면 절대 놓지 않는 사냥개 근성’에 있는 듯하다. 박세리는 일단 한 번 우승 기회를 잡으면 웬만해서는 실패하지 않는다.

리드를 잡으면 그대로 지키고 추격권 내에 있으며 반드시 뒤집는 그야말로 승부다.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과 역전승이 많고 역전패는 거의 없다는 것이 이를 입증한다. 그의 뛰어난 승부 근성을 숫자로 대변하는 것이 바로 연장전 결과다. 박세리는 지난 10년간 총 5차례에 걸쳐 연장전을 치렀다. 결과는 5승 무패. 통산 24승 중 5승이 100% 승률을 자랑하는 연장 승부 끝에 얻어진 것이다.

그의 라이벌인 캐리 웹과 아니카 소렌스탐과 비교하면 얼마다 박세리의 근성이 강한가를 알 수 있다. 웹은 총 10번의 연장전에서 4승 밖에 올리지 못했다. 여섯 번의 연장 패배 중에는 박세리에게 진 것이 세 번이나 된다. 소렌스탐은 16승6패로 매우 강한 면모를 보였지만 박세리의 그것과는 거리가 있으며 현재 당대 최강으로 불리는 로레나 오초아는 아이러니하게도 연장전서는 단 1승도 없이 3패만을 기록 중이다.

세계무대 주름
‘박키즈’들 활약

10년의 세월이 흘러 ‘박세리 키즈’들인 박인비(KB금융그룹), 신지애(스리본드), 최나연(SK텔레콤), 유소연(하나금융그룹) 등은 LPGA 무대에 본격적으로 등장해 막강한 실력을 자랑하며 한국의 이름을 드높였다.

이후에도 박세리의 영향을 받은 많은 한국 선수들이 미국 무대를 접수했다. 박세리의 영향력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지난해 한국 낭자들은 역대 한 시즌 최다승인 15승을 합작하며 여자 골프 최강국임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켰다.

박세리가 외로이 LPGA 무대에서 뿌린 씨앗은 박세리 키즈의 탄생으로 이어졌고 한국이 세계 여자 골프계에서 주도국으로 자리매김하는 계기가 됐다. 박세리는 떠나도 박세리 키즈는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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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 최대 변수 송영길, 왜?

여당 최대 변수 송영길, 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전 대표가 돌아왔다. 3년의 옥살이 끝에 무죄를 선고받은 만큼 명분과 서사를 모두 거머쥐었다. 두 팔 벌려 환영했지만 송 전 대표를 바라보는 정청래 지도부의 고심이 깊은 모양새다. 앞으로 치러질 각종 선거의 변수가 된 송 전 대표의 쓰임새는 무엇일까? 지난달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송영길 전 대표의 무죄가 확정됐다. ‘돈봉투 사건’을 주도하고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으나 검찰이 상고를 포기하면서다. 송 전 대표는 “돈봉투 의혹 사건, 2심 무죄에 이어 최종 무죄가 확정됐다”며 “긴 시간 함께 걱정해 주시고, 흔들림 없이 믿어주시며 끝까지 곁을 지켜주신 많은 분의 성원에 다시 한번 깊이 감사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진실은 결국 가려지지 않았다. 이제 더 단단해진 마음으로, 책임 있게 앞으로 나아가겠다”고 강조했다. 돌아온 큰형님 송 전 대표는 지난 2021년 민주당 전당대회 경선을 앞두고 6000만원의 상당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지역 본부장에게 현금이 든 돈봉투를 건네고, 민주당 윤관석 의원을 통해 국회의원에게 나눠줄 돈봉투 6000만원을 제공하는 데 개입한 혐의 등을 받았다. 아울러 그의 외곽 후원 조직인 ‘사단법인 먹고사는문제 연구소(이하 먹사연)’를 통해 기업인 7명으로부터 후원금 명목의 불법 정치자금 총 7억6300만원을 챙긴 혐의 등도 있다. 당초 1심 재판부는 송 전 대표에게 징역 2년을 선고했으나 서울고법 형사1부(부장판사 윤성식)는 이를 뒤집고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원심 판단이 돈봉투 사건과 먹사연 사건 범죄 사실의 관련성을 인정한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먹사연 사건 관련 공소 사실의 경우 압수물이 영장 없이 증거로 사용됐다”고 판단했다. 송 전 원내대표의 복귀는 화려했다. 무죄가 선고된 날 서울고등법원 현장에는 민주당 강득구·김교흥·김상욱·박선원·부승찬·전현희 의원 등 10여명이 모였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 역시 자신의 SNS에 “송 대표의 무죄 판결을 축하한다. 그동안 고생 많으셨다”며 “검찰 전횡을 바로잡는 검찰개혁에 더 매진하겠다”고 작성했다. 이 판결로 송 전 대표는 ‘정치 검찰의 희생양’이라는 강력한 명분을 얻었다.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도 논평을 통해 “정치 검찰의 서슬 퍼런 칼날을 이겨내고 돌아오신 송 전 대표를 환영한다”며 “이재명정부 성공을 향해 연대와 통합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송 전 대표는 이날 민주당 인천시당을 찾아 복당 신청서를 제출했고, 그달 27일 최종 의결됐다. 정 대표는 “송 전 대표의 복당을 진심으로 환영한다”며 “앞으로 민주당 발전과 이정부의 성공을 위해 큰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하고 요청드린다”고 말했다. 또한 정 대표는 “탈당 후 당의 요청이 아니면 다른 경선에서 20% 감산되는 불이익을 받는데, 당 대표인 제가 요청해 (감산이 없도록) 처리하는 것이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인천시당에 복당을 신청한 것이 서울시당으로 이첩됐던 것을 중앙당 당원자격심사위원회로 보내라고 지시해 복당했다”고 말했다. “정치 검찰 피해자” “이재명의 은인” 정점 찍은 서사…‘송 사용법’ 고심 송 전 대표는 2021년 전당대회서 당의 주류였던 친문(친 문재인)계를 꺾으며 비주류에서 주류로 거듭났다. 그런 그에게는 이재명 대통령과 끈끈한 연결고리가 있다. 같은 해 치러진 민주당 대선 경선 과정서 두 사람의 관계가 본격화됐고, 송 전 대표가 당시 이재명 경기도지사를 밀어줬다는 이른바 ‘이심송심’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대선에서 패배한 이재명 후보를 국회로 이끈 인물 역시 송 전 대표다. 그는 2022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인천 계양을 지역구에서 사퇴했고, 그때 이 후보가 보궐선거를 통해 당내에 입성했다. 당시 그는 이 후보의 전략공천을 환영하는 입장을 밝히며 “당의 단단한 결정과 이재명 (당시) 상임고문의 결단이 당원과 지지자들에게 희망의 메시지가 됐다. 이 상임고문은 우리 민주당과 현재 한국 정치에 큰 자산”이라고 치켜세우며 “이번 지방선거 승리의 큰 구심점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 후보가 국회 입성에 성공하고 당 대표직을 따내는 등 정치인으로서 성공가도를 걸었던 반면, 송 전 대표는 서울시장 선거에서 패배하며 정치적 치명상을 입게 됐다. 이때부터 민주당 지지자 사이에서는 송 전 대표가 ‘자신을 희생하고 후배에게 지역구를 물려준 정치인’이라는 인식으로 남았다. 2023년 두 사람에게 본격적인 위기가 찾아왔다. 돈봉투 의혹 수사가 송 전 대표를 덮쳤고, 이재명 대표는 거리를 두는 전략을 택했다. 민주당은 당 전체의 타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송 전 대표의 자진 탈당을 압박했고, 송 전 대표 역시 당에 부담을 주지 않겠다며 당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3년 만에 무죄를 선고받은 송 전 대표가 자신의 서사를 어떻게 활용할지 이목이 쏠린다. 과거의 영광을 누렸던 그가 복귀하자 현 수장인 정 대표의 셈법만 복잡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지방선거, 전당대회, 나아가 다음 대선까지 송 전 대표가 차후 진행될 모든 선거의 변수가 됐다. 6월 치러지는 지방선거 및 재보궐선거가 첫 번째 관문이다. 복당 이후 송 전 대표는 자신의 지역구였던 계양을로 이사오면서 이곳에서 치러질 보선에 출사표를 던질 것이란 해석이 나왔다. 계양구는 송 대표의 정치적 고향으로, 지난 2000년 해당 지역에서 당선돼 16대 국회에 입성한 뒤 17·18·20·21대 총선까지 내리 승리했다. 이때 쌓은 조직력을 기반으로 2010 민선 5기 인천시장에도 당선됐다. 굴리는 주판알 인천 계양에 출마가 유력한 김남준 청와대 대변인과의 교통정리 여부가 변수다. 송 전 대표는 YTN과의 인터뷰서 김 전 대변인도 계양을 출마 의사를 밝힌 것에 대해 “당 지도부가 잘 판단하고 결정할 것”이라며 “지역구라는 게 정치인들이 마음대로 정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고, 국민과 당원의 뜻이 중요하다. 당 지도부가 여러 가지를 검토해서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에게 지역구를 물려준 중진과 대통령의 최측근인 신인 정치인의 대결구도가 예상되는 만큼 시선은 지도부의 교통정리에 쏠렸다. 정 대표와의 신경전도 예상된다. 정 대표가 당 대표 연임에 도전할 것이란 관측이 우세한 가운데 송 전 대표가 국회에 입성하면 차기 당권을 노릴 것이란 관측이 나오면서다. 송 전 대표가 실제 당권에 도전할 경우 정 대표를 비롯해 ‘차출설’이 제기되는 김민석 총리와 함께 3파전 구도를 형성할 것으로 전망된다. 여론조사에서는 벌써 송 전 대표의 이름이 거론된다. 지난달 26일 <뉴스토마토>가 23일부터 24일까지 이틀간 만 18세 이상 전국 성인남녀 1034명을 대상으로 ‘민주당 8월 전당대회에서 다음 세 사람이 맞붙는다면, 누가 민주당을 이끌 차기 당대표로 적합하다고 보는지’를 묻는 말에 답변은 ▲정청래 대표 21.6% ▲송영길 전 대표 19.4% ▲김민석 국무총리 18.8%로 집계됐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0%이며 ARS(RDD) 무선전화 방식으로 진행됐다. 응답률은 1.8%로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그동안 정 대표는 강경 개혁파로서 외연 확장성이 부족하다는 게 단점으로 지적돼 왔다. 정 대표의 강경 노선이 지지층 결집에는 효과적이지만, 중도층과 무당층을 포섭해야 하는 전국 단위 선거에서는 한계를 보일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제기된 것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이 대통령과 비슷한 중도·실용주의적 성향인 송 전 대표는 민주 당원의 또다른 선택지가 될 수 있다. 이미 온라인 공간에서는 ‘뉴이재명’ 그룹이 송영길 역할론에 불을 지피면서 그의 존재감을 키워주는 상황이다. 거침없는 저격수 따라서 송 전 대표 본인이 나서지 않더라도 정 대표의 리더십에 불만을 가진 세력이 정청래 VS 송영길 구도를 만드는 등 당내 경선을 앞두고 판이 깔릴 가능성이 제기된다. 결국 모든 권력투쟁의 종착지가 그렇듯 그가 2027년 치러질 대통령 선거에까지 영향을 미칠지 이목이 쏠린다. 송 전 대표는 복귀와 동시에 활발한 활동을 이어갔다. 최근 친청(친 정청래)·친문으로 분류되는 김어준씨의 유튜브 채널 ‘뉴스공장’을 정면으로 비판하는가 하면, 코로나바이러스 백신을 두고 ‘대국민 사기’라며 문재인 전 대통령의 책임을 거론하기도 했다. 그는 한 라디오를 통해 ‘이재명 대통령 공소 취소 거래설’의 근원지인 ‘뉴스공장’을 향해 “괴물과 싸우다가 괴물이 되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라”고 충고했다. 송 전 대표는 “(‘뉴스공장’에) 섭외를 받아도 안 나가고 싶다”며 “특정 언론 유튜브에 국회의원들이 줄 서서 알현하듯이 있는 모습이 좋은 건 아니다. 우리가 국민의힘에 대해서 고성국이나 전한길 비판하듯이 우리 스스로도 돌이켜볼 면이 있다”고 꼬집었다. 여기에 친명인 강득구 의원도 김씨의 방송에 출연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히면서 그에게 힘을 실었다. 강 의원은 “큰 틀에서 송 전 대표의 문제 제기에 뜻을 같이 한다”며 “(최근) 김씨는 김 총리의 미국 출장을 두고 ‘차기 주자 육성 프로그램처럼 보인다’고 해석했다. 해석은 자유이지만 다소 자의적인 판단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고 비판했다. 8월 전대 ‘정·송·김’ 3파전? 6월 지선·재보선 첫 번째 관문 코로나 백신 논란에 대해서는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 조국 대표가 참전하면서 사태를 키웠다. 조 대표는 “송 전 대표는 두 가지 음모론을 여전히 믿고 주장하고 있다. 첫째, 극우 변희재가 주장한 최순실 태블릿 PC 조작론. 둘째, 코로나 백신 국가적 사기론”이라고 지적했다. 앞서 송 전 대표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최순실 태블릿PC 조작설’을 주장해 온 변희재씨와 손을 잡은 이유를 묻는 질문에 “(JTBC와 검찰, 특검이 태블릿 PC 조작을 통해 박근혜 탄핵 수사에 활용했다는 의혹이) 법률가인 제가 보기에도 일리 있는 주장이라 공감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조 대표의 부산 출마’ 필요성을 언급한 송 전 대표를 비판했다. 조 대표는 “최근 송 전 대표께서 느닷없이 저와 혁신당을 향해 ‘호남 이삭줍기 말고 영남으로 가라’고 말씀하셨는데, 호남 출마자들이 어떻게 이삭이냐”며 “모욕과 폄훼”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혁신당 후보들은 지난 총선 시기에 송 전 대표가 손을 잡았던 극우 인사 변희재·최대집씨보다 훨씬 훌륭한 사람들”이라며 다시 한번 송 전 대표의 과거 행적을 거론했다. 광폭 행보를 보이는 송 전 대표는 ‘뉴이재명 바람’에 올라탔다. 지난 15일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이 개최한 ‘뉴이재명 토론회’ 현장에 나타나 지지자와 인사를 나눴다. 송 전 대표의 축사가 끝나자 지지자들은 연신 “송영길”을 외치기도 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송 전 대표는 이 대통령이 쓸 수 있는 최고의 칼”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송 전 대표와 이 대통령, 두 사람은 혁신과 쇄신을 강조하는 등 성격이 비슷하다”며 “정부·여당에 타격을 입히는 ‘당정 갈등설’을 부인하는 것도, 논란을 만드는 것도 정 대표다. 이정부의 성공을 바라는 지지층이 봤을 때 이 대통령이 어떤 의중을 전달할 때 정 대표가 아닌 송 전 대표의 입을 빌리는 편이 쉬울 수도 있다”고 예상했다. ‘쏘리재명’ ‘쏘리영길’ 그러면서 “뉴이재명은 송 전 대표에 대한 부채 의식이 있다. 3년 동안 옥살이를 하게 했다는 미안함과 이 대통령에게 지역구를 물려준 일 등, 송 전 대표의 희생정신을 높게 평가할 것”이라며 “이런 여론이 확산하면 앞으로 치러질 모든 당내 선거에서 송 전 대표가 승산이 있다고 계산해 어떤 방식이든 (출마를) 결심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송영길 소나무당 어디로?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전 대표가 지난 2024년 옥중 창당했던 소나무당이 해체했다. 송 전 대표는 무죄를 선고받자 “소나무당을 해산하고 더불어민주당으로 복당하겠다”고 말했다. 소나무당 시도당위원장 협의회(이하 협의회)는 입장문을 내고 송 전 대표의 결정을 받아들였다. 협의회는 “송영길 대표의 소나무당 해산 및 더불어민주당 복당 천명은 바로 그 위임에 따른 책임 있는 정치적 결단”이라며 “이는 개인의 정치적 유불리를 위한 선택이 아니라, 소나무당이 존재했던 이유와 역할을 다른 방식으로 완성해 나가겠다는 결정이라 우리는 이해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소나무당은 해산하지만, 이 과정에서 만들어진 정치적 신뢰와 연대의 경험은 각자의 자리에서 계속 이어질 것”이라며 “송 대표의 정치적 결단을 존중하며 그의 정치적 행보를 함께 지켜보고 응원하는 시민들과 새로운 방식의 역할을 모색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