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스러진 달 (26)여사님의 꾸중

시시각각 다가오는 운명의 날

소설가 황천우는 지금까지 역사소설 집필에 주력해왔다. 역사의 중요성, 과거를 알아야 현재를 알고 또 미래를 올바르게 설계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이 과정에서 ‘팩션’이란 장르를 만들어냈다. 팩트와 픽션, 즉 사실과 소설을 혼합하여 교육과 흥미의 일거양득을 노리기 위함이다. 그리고 오래전부터 의심의 끈을 놓지 않은 사건을 들추어냈다. 필자는 그 사건을 현대사 최고의 미스터리라 칭함에 조금도 주저하지 않는다. 바로 1974년 광복절 행사 중 발생했던 영부인 육영수 여사 저격사건이다.

호룡이 영웅적 행위라는 말에 힘을 주어 말하자 순간적으로 석원의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굳이 그런 교육은 필요 없을 텐데요. 저는 지금이라도 당장 실행할 마음의 자세가 되어 있습니다.”

“그걸 누가 모르는가. 하지만 자네가 하는 행위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는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누누이 말씀드리지만 제 목숨에 관해서는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호룡이 다가앉아 석원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오늘, 자네가 박정희 대통령을 제거하는 일자와 방식에 대한 논의가 있었네.”

“언제입니까!”

석원의 목소리가 절로 올라갔다.

“조총련 본부에서는 남조선의 국경일인 삼일절 혹은 8월 15일 광복절을 염두에 두었었네.”

“삼일절은 너무 이르지 않습니까?”


“그래서 결국 8월 15일로 날을 잡았네.”

“그건 또 너무 멀지 않습니까?”

“박정희 대통령 일정 때문에 그러하네. 평상시에는 박 대통령의 동선을 알기 힘들고 또 공적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현장에서 일을 성사시켜야 자네의 영웅적 행위가 더욱 빛을 발할 것이란 고려 하에 그리 정했네.”

“아무래도 그래야겠지요. 그런데 방식은?”

“일전에 자네가 이야기 했던 그 방식이 옳을 듯하네.”

“그러면 권총으로 저격하는 방식입니다.”

“어차피 대통령이 참석하는 행사장에서 암살하고자 한다면 그  방법 외에는 없다 보네.”  

순간 석원의 얼굴에 미소가 스쳐지나갔다.

“왜 그러는가?”


“권총 저격은 제가 생각하던 바입니다.”

“그건 나도 이미 알고 있고. 그리고 교육 관련한 내용인데. 자네가 도쿄의 조총련 본부 가까운 병원에 입원하여 조총련 간부들로부터 교육을 받는 방법으로 하기로 하였네.”

“병원에 입원해서요?”

“병원은 단지 자네의 거처로 삼으라는 이야기네.”

“그러면.”

“주로 조총련 사무실 혹은 관련 기관에서 교육받을 걸세.”

“무슨 말씀인지 대충 감을 잡겠는데 왜 하필 숙소가 병원입니까?”

“자네를 위해서네.”

“저를 위하다니요?”

“자네의 심리상태 조절을 위해 부득이 병원을 선택했네. 그곳에서 고통 받는 사람들의 상황을 살피며 자네의 마음을 다잡을 수 있도록 말일세.”

석원이 고통을 되뇌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울러 자네 명의가 아니라 다른 사람 명의로 입원하는 걸로 기록될 걸세.”

“그거야 아무러면 어떻습니까. 그런데 권총 말입니다.”

“권총이 어때서?”


“사실 제 경우 권총을 쏴본 적이 없습니다.”

“물론 그렇겠지. 그래서 그 부분도 생각해 두었네.”

“병원에서 그게 가능합니까?”

“병원에서는 물론 안 되지. 하여 이번에는 사상교육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그 후  다른 장소에서 권총 사격과 관련한 훈련이 실시될 것이네.”

“결국 마음을 다잡기 위해 일부러 병원 입원을 결정하신 거네요.”

“바로 그 이야기네. 그러니 조금도 개의치 말고 총련의 결정에 따라주었으면 좋겠네.”


“당연히 그리 해야지요. 그런데.”

석원이 호룡의 눈치를 살폈다.

“말하게.”

“방금 전에 말씀드렸지만 8월까지는 기간이 너무 긴 듯합니다.”

호룡이 석원의 어깨가 들썩이는 모습을 살피며 가볍게 웃었다.

“임자, 안 사람의 성화가 여간 아니었네.”

“각하, 송구합니다.”

“경호도 좋지만 주한 외교사절 부인들에게 너무 심했던 게 아닌가.”

지난 삼일절 행사 시 고강도로 경호한 데 따른 질책이었다. 그 과정에 주한 외교사절들의 부인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핸드백까지 일시적으로 압수하고 오로지 손수건 한 장만 달랑 가지고 들어가도록 조처 취했었다.

그 일로 주한 외교사절단 부인들과 만남을 가졌던 육영수 여사에게 불평이 쏟아졌고 육 여사는 그 일을 박 대통령에 언급했던 터였다.

“그게, 저….”

박 실장이 뭔가 말하려다 급히 입을 닫았다.

며칠 전 정동일이 극비리에 박 실장을 찾았다.

“이번 삼일절 행사에서 경호를 철저하게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거야 당연한 거 아닌가.”

“제 말씀은 지난 시절의 경호가 무색할 정도로 치밀하게 해달라는 의미입니다.”

박 실장이 의혹에 가득 찬 표정을 지으며 동일의 얼굴을 찬찬히 살폈다.

“자네가 특별하게 부탁하는 사유는 무엇인가?”

“디데이를 이번 광복절로 잡고자 합니다.”

“광복절, 그런데 그게 무슨 관계있는가?”

“현 경호 상태라면 문석원은 대통령 각하에 대한 암살 시도는 물론 행사장 진입조차 어려울 것입니다. 하여 이번 행사의 경호에 대해 불평을 토해내도록 하여 주십시오. 특히 외국인들에게서요.”

박 실장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해서 광복절 기념식장은 경호를 자연스럽게 허술하게 하고 또 그렇게 해서 문석원이 쉽사리 행사장에 진입할 수 있도록 하자는 말일세.”

“바로 그런 이야기입니다.” 

“그건 알겠네만 디데이가 8월 15일이라 어찌 장담하는가?”

동일이 차주선에 관한 이야기를 은근히 내비쳤다.

“어차피 삼일절에는 힘든 문제 아닙니까. 갑자기 경호를 허술하게 한다면 냄새를 풍길 수 있습니다.”

“자네 말이 옳네. 그렇다면 일본 내에서의 일은 두 사람이 처리하는 겐가?” 

“그 사람은 오로지 저희 전략에 따라 움직일 뿐입니다.”

“그런데 말이야.”

박 실장이 잠시 뜸을 들였다.

“비록 그 사람이 중정의 정보원이라 하지만 현재 조총련의 고위직 인물 아닌가. 그런데 그런 사람을 전적으로 신뢰할 수 있겠는가?”

“신영수 부장께서 직접 천거한 인물입니다.”

“물론 그를 모르는 바는 아니네. 다만 그 이중간첩 노릇하다 처형당한 이수근이 생각나서 그런다네.”

“그와는 성격이 다릅니다.”

“그 무슨 이야기인가?”

동일이 슬며시 미소를 보이자 박 실장이 정색했다.

“그 사람의 역할에 대해섭니다. 그 사람의 역할은 오직 일본 내에서만 국한되고 정작 중요한 일들은 한국에서 이루어 질 터이니 너무 그 부분은 심려하시지 않아도 될 듯합니다. 아울러 그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어본 바 본인도 이 일의 중요성을 실감하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말인가.”

“어차피 이 일이 마무리되고 나면 그 사람의 경우 일본 내에서 활동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그에 따른 준비까지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기야 그럴 테지. 그런 경우 우리 쪽에서 도와주어야 할 일인데.”

박 실장이 잠시 생각에 잠겨들었다.

“그런 경우라면 그 사람에게도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 될 수 있습니다.”

동일이 우회적으로 이야기를 건네자 박 실장이 빙긋이 미소 지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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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전국 한의과대학교에는 ‘졸업준비위원회’가 존재한다. 말 그대로 졸업 준비를 위해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조직이다. 하지만 내부에서는 “명목상 자발적인 가입을 독려하는 듯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강제로 가입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졸업준비위원회(이하 졸준위)는 졸업앨범 촬영, 실습 준비, 학번 일정 조율, 학사 일정과 실습 공지, 단체 일정뿐 아니라 국가시험(이하 국시) 대비를 위한 각종 자료 배포를 하고 있다. 매 대학 한의대마다 졸준위는 거의 필수적인 조직이 됐다. 졸준위는 ‘전국한의과대학졸업준비협의체(이하 전졸협)’라는 상위 조직이 존재한다. 자료 독점 전졸협은 각 한의대 졸업준비위원장(이하 졸장)의 연합체로 구성돼있으며, 매년 국시 대비 자료집을 제작해 졸준위에 제공한다. 대표적으로 ‘의텐’ ‘의지’ ‘의맥’ ‘의련’ 등으로 불리는 자료집들이다. 실제 한의대 학생들에게는 ‘국시 준비의 필수 자료’로 통한다. 국시 100일 전에는 ‘의텐’만 보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졸준위가 없으면 국시 준비 자체가 어려워진다”는 말이 정설이다. 한의계 국시는 직전 1개년의 시험 문제만 공개되기 때문에 시험 대비가 어렵기 때문이다. 국시 문제는 오직 졸준위를 통해서만 5개년분 열람이 가능할뿐더러, 이 자료집은 공개자료가 아니라서 학생이 직접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사실상 전졸협이 자료들을 독점하고 있는 셈이다. 이 자료집을 얻을 수 있는 경로는 단 하나, 졸준위를 결성하는 것이다. 졸준위가 학생들의 투표로 결성되면 전졸협이 졸준위에 문제집을 제공한다. 이 체계는 오랫동안 유지돼왔고, 학생들도 졸준위를 통해 시험 자료를 제공 받는 것이 ‘관행’처럼 받아들여왔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반드시 결성돼야만 한다는 기조가 강하다. 학생들의 반대로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시 전졸협은 해당 학교에 문제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은 모든 학생들의 가입 동의를 얻어야 가능하다. 졸준위 가입 여부는 실질적으로 선택이 아니다. 자료집은 전졸협을 통해서만 제공되기 때문에, 졸준위에 가입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는다는 인식이 학생들 사이에서 강하게 자리 잡았다. 학생들은 “문제를 얻기 위한 목적이 가장 크다”고 말한다.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경우 현실적으로 문제집을 받아볼 수 있는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학생들의 해당 학년 학생들을 모두 가입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실제 한 대학교에서는 졸준위 결성을 위한 투표를 진행했는데 익명도 아닌 실명 투표로 진행됐다. 처음에는 익명으로 진행했지만 반대자가 나오자 실명 투표로 전환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는 반대 의견이 나오기 어렵다. 실명으로 투표가 진행되는 데다, 반대표를 던질 경우 이후 자료 배포·학년 일정에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 실명 투표로 진행 가입시 200만원 이상 납부 필수 문제는 이 졸준위 가입이 무료가 아니라는 점이다. 졸준위에 가입하면 졸업 준비 비용(이하 졸비) 명목으로 학생들에게 돈을 걷는데, 그 비용이 상당하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한 대학교의 졸비는 3차에 걸쳐 납부하도록 했는데 1차에 75만원, 2차에 80만원, 3차에 77만원 등 총 232만원 수준이었다. 이는 한 학기 등록금에 맞먹는 금액이다. 금액 산정 방식은 졸준위 가입 학생 수에 따라 결정되는데, 한 명이라도 빠지게 되면 나머지 인원의 비용 부담이 커지게 된다. 심지어 2명 이상 탈퇴하게 된다면 졸준위가 무산될 수도 있다. 이 모든 사안은 ‘졸장’의 주도 하에 움직인다. 졸장은 학년 전체를 대변하며 전졸협과 직접 소통하는 역할을 맡는다. 실제 졸장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한 명이라도 탈퇴하면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이 오갔을 정도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졸준위가 결성되면 가입한 모든 학생들은 졸준위의 통제를 받는다.<일요시사>가 입수한 한 학교의 규칙문에 따르면 졸준위는 다음과 같은 규정을 두고 있었다. ▲출석 시간(8시49분59초까지 착석 등) ▲교수·레지던트에게 개인 연락 금지 ▲지각·결석 시 벌금 ▲회의·행사 참여 의무 ▲병결·생리 결 확인 절차 ▲전자기기 사용 제한 ▲비대면 수업 접속 규칙 ▲시험 기간 행동 규칙 ▲기출·족보 자료 관리 규정 등이다. 학생들이 이 규정을 어길 시 졸준위는 ‘벌금’을 부과해 통제하고 있었다. 금액도 적지 않았다. 규정 위반 시 벌금 2만원에서 50만원까지 부과할 수 있도록 정해져 있었다.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병결이다. 졸준위는 병결을 인정하기 위해 학생에게 진단서 제출을 요구하고, 그 내용(질병명·진료 소견·감염 여부 등)을 직접 열람해 판단했다. 제출 병원에 따라 병결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공지도 있었다. 한 병원의 진단서가 획일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단체가 학생의 개인 의료 정보를 열람해 병결 여부를 자체적으로 결정하는 방식은 학생들 사이에서 부담과 압박으로 작용했다. 질병이 있어도 벌금이 부과될 수 있고, 병결을 얻기 위한 절차가 학습보다 더 어렵다는 말도 나왔다. 규정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면 졸준위는 대면 면담을 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이 과정에서 3:1로 면담을 진행하는 등 학생이 위축될 수 있는 방식을 행하기도 했다. 전자기기 사용 불가 규칙 어기면 벌금도 이 같은 문제로 탈퇴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실제 A 대학 졸준위 전체 학번 회의에서 밝혀진 내용에 따르면 한 학생은 규정에 문제를 느껴 졸준위 측에 탈퇴를 의사를 밝혀왔다. 이 회의에서는 그간 탈퇴 의사를 밝힌 학생과의 카톡 대화 전문이 학생들에게 공개됐다. 공개된 카톡 내용에는 탈퇴 과정이 담겨있었는데 순탄하지 않았다. 졸준위 측은 탈퇴 의사를 즉각적으로 승인하지 않았고, 재고를 요청하거나 면담하는 방식으로 요청을 지연했다. 해당 학생이 다시 한번 탈퇴 의사를 명확히 밝힌 뒤에도, 졸장은 “만나서 얘기하자”며 받아주지 않았다. 심지어는 이 대화를 공개한 뒤 학우들에게 ‘졸준위에서 이탈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서약서를 받아내기도 했다. 졸준위 운영이 조직 이탈 자체를 문제로 판단하고,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압박을 가한 정황이 확인되는 대목이다. 해당 학우는 탈퇴 확인 및 권리 포기 동의서에 서명한 뒤에야 졸준위를 탈퇴할 수 있었다. 탈퇴 이후에도 갈등은 지속됐다. 목격자에 따르면 시험 기간 중, 강의실 앞을 지나던 탈퇴 학생은 졸준위 임원 두 명에게 “제보가 들어왔다”며 불려 세워졌다. 임원들은 이 학생이 학습 플랫폼 ‘퀴즐렛’을 사용한 점을 언급하며, 그 자료 안에 졸준위에서 배포한 기출문제가 포함돼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졸준위에서는 퀴즐렛에 학교 시험 내용이 있다며 탈퇴자가 보지 못하도록 사용자를 색출하기도 했다. 한편, 전졸협은 10년 전 자체 제작한 문제집으로 논란된 적이 있다. 당시 한의사 국가고시 시험문제가 학생들 사이에서 사용되는 예상 문제집과 지나치게 유사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시험이 끝난 직후 시험장 앞에서 수험생 60여명을 상대로 참고서와 문제집을 압수했고, 국가시험원까지 압수수색해 기출문제와 대조 작업에 들어갔다. 기형적 구조 문제가 된 교재는 ‘의맥’ ‘의련’ 등 졸준위 연합체인 전졸협이 제작·배포해 온 자료들이다. 학생들은 교재에 일련번호를 붙이고 신분증을 확인한 후 배포하는 등 통제된 방식으로 유통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제보자는 “학생들이 전졸협을 통해서만 기출문제를 구할 수 있는 구조는 기형적”이라며 “국가고시를 위해 몇백만원씩 돈을 받고 문제를 제공하는 건 문제를 사고파는 것”이라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