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스러진 달 (25)입원

일본정부와 엮어 외교분쟁 노리다

소설가 황천우는 지금까지 역사소설 집필에 주력해왔다. 역사의 중요성, 과거를 알아야 현재를 알고 또 미래를 올바르게 설계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아울러 그 과정에서 ‘팩션’이란 장르를 만들어냈다. 팩트와 픽션, 즉 사실과 소설을 혼합하여 교육과 흥미의 일거양득을 노리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오래전부터 의심의 끈을 놓지 않은 사건을 들추어냈다. 필자는 그 사건을 현대사 최고의 미스터리라 칭함에 조금도 주저하지 않는다. 바로 1974년 광복절 행사 중 발생했던 영부인 육영수 여사 저격사건이다.

“뭐든지 말씀하십시오.”

“범행에 사용될 권총에 대해서입니다.”

“권총 구하는 일은 그야말로 식은 죽 먹기지요. 북조선에 부탁해도 되는 일이고.”

“물론 북조선이나 암시장에서 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권총을 반드시 일본 정부와 연계시켜야 합니다. 아울러 두 자루를 부탁합니다.”

“무슨 특별한 이유라도 있습니까?”


“일본을 확실하게 엮어 넣으려 합니다.”

주선이 의미를 새기며 잔을 비워냈다.

“그런데 권총을 구하는 거야 그렇다고 해도 어떻게 한국으로 반입하겠다는 말입니까. 그리고 두 자루라니요.”

“한국으로의 반입 문제는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한국으로 가지고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아울러 한 자루는 이곳에서 문석원이 사격연습 하는데 그리고 한 자루는 실제 사건에 사용하려 합니다.”

“그런데 정 팀장께서 가지고 입국한다는 말은 무슨 의미입니까?”

“결국 제가 전해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떻게 정 팀장께서….”

“차 사장께서 제게 역할을 주시면 되지 않겠습니까.”

주선이 잠시 의미를 새기고는 미소를 보냈다.

“정 팀장의 말씀 충분히 이해하겠습니다. 그런데.”

주선이 말하다 말고 동일을 주시하며 뜸을 들였다.

“왜 그러십니까?”

“제가 들은 바로는 이 모두 정 팀장 개인의 생각에서 시작되었다고 하는데 참으로 기발한 발상입니다.”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마음이 더욱 무거워집니다.”

“허허, 그건 그렇다 하고. 정 팀장께서는 어떻게 문석원이 고도 난시인 점을 알아채셨습니까?” 

“고도 난시라고요?”

차주선이 이외라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 사실은 모르고 있었습니까?”

차주선의 말소리가 은근히 올라갔다.

“외람되지만 금시초문입니다.”

“아마도 하늘이 정 팀장을 아니 우리 대한민국을 도와주는 모양입니다. 그 친구 안경 벗으면 바로 앞 사람도 식별 못할 정도라 합니다.”

정동일이 가볍게 혀를 차자 차주선이 미소를 보냈다. 2월 초 차주선이 이호룡을 도쿄 조총련 본부로 호출했다. 물론 문석원의 박정희 대통령 암살과 관련해서였다. 호룡이 도착하자 의장실에서 여러 사람과 대화를 나누던 차주선이 호룡을 다른 방으로 안내했다.

“박정희 암살과 관련하여 자네 오기 전에 의장단과 긴밀하게 의견을 교환했네.”

“무슨 말씀들을 나누셨는지요.”

“결론은 항상 똑같네.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는 이야기지.”

차주선이 힘주어 이야기하자 이호룡이 가볍게 신음을 내뱉었다.

“무슨 문제 있는가?”

“열의가 식은 듯 보입니다.”

“그게 무슨 소린가?”

“전처럼 강한 의욕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면 안하겠다고 물러선다는 말인가?”

“그건 아닙니다만. 여하튼 현재로서는 확신이 서지 않습니다.”

다가오는 거사일…사격연습 돌입
권총 두 자루 밀매…거대한 음모


이번에는 차주선이 가볍게 신음을 내뱉었다.

“송구합니다, 위원님.”


“자네가 송구할 일이 아니지. 여하튼 자네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번 삼일절 행사에는 투입하기 힘들다는 이야기로고.”

“삼일절 행사요?”

“박정희 대통령이 공식적으로 외부에 확실하게 노출되는 날이 남조선 국경일 외에 더 있겠는가.”

“그야 지당한 말씀입니다만, 아무래도 삼일절에는….”

“그렇다면.”

차주선이 말하다 말고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다가갔다. 잠시 말없이 창밖을 바라보다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그러면 결국 광복절을 디데이로 잡아야 한다는 이야기로고.”

“그러면 가능하겠습니다.”


“그런데 이 부장. 자네도 잘 알고 있겠지만 이번 건에 우리 조총련은 물론 김일성 수령의 관심도 지대하다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잠시 전 의장단과 대화를 나누었다네. 이 일이 성사되기까지 내 소관 하에 일처리 하기로 말일세.”

“하면, 저는.”

“지금처럼 지속해주면 될 듯하네. 그리고 거사에 앞서 먼저 문석원에게 확고한 사상과 자긍심을 심어주어야겠네. 지금처럼 그저 젊은이의 객기만으로 접근하면 낭패 보기 십상이네.”

“특별한 방법이라도 있습니까?”

“한 달 정도 집중적으로 정신교육을 강화토록 하세.”

호룡이 이외의 방안인지 그저 차주선을 바라보기만 했다.

“일종의 세뇌교육일세.”

“북조선으로 보냅니까 아니면 만경봉호입니까?”

“그 방법은 안 되네. 그런 경우 일본 내에 있는 남조선 기관 애들에게 포착될 우려가 있네. 그러니 병을 위장하여 병원에 입원시키도록 하게.”

“병원이오?”

“이곳과 가까운 곳에 있는 아카후토 병원에 입원시키도록 하고 수시로 이곳에 불러들여 정신교육을 강화토록 하세.”

“하면 이제 본격적으로 총련에서 개입하겠다는 의미입니다.”

“이 사안의 중요성에 대해 방금 전에 말하지 않았는가.”

호룡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 자네는 지금 바로 오사카로 돌아가서 이러한 사실을 문 군에게 전하게.”

차주선이 말을 마침과 동시에 봉투를 꺼내들었다.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생계 보조비로 쓰라 하게. 그리고 병원장에게는 내가 별도로 이야기할 터이니 문 군으로 하여금 입원하면서 원장을 찾으라 이르게. 물론 입원할 때 본명을 써서는 안 되네.”

“무슨 사유라도 있습니까?”

“만사 조심해서 처리하자는 의미일세.”

이호룡이 더 이상 묻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차주선에게 인사하고 조총련 본부를 벗어난 이호룡이 곧바로 오사카 이코노구 문석원의 집을 향했다. 중간에 슬쩍 봉투의 내용을 살펴보았다.

무려 30만 엔이 들어 있었다. 잠시 생각에 잠겨들었던 호룡이 그 중에서 10만 엔을 꺼내 자신의 주머니에 넣고 20만 엔을 다시 봉투에 넣었다. 호룡이 석원의 집에 이르자 마침 홀로 집안을 지키고 있었다.

“집 사람은 어디 갔는가?”

호룡이 집안에 들어서면서 주위를 살펴보았다.

“저 혼자 있습니다.”

호룡의 방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겠다는 듯 석원이 차분하게 말을 받았다.

“본부에서 지령이 하달되었네.”

호룡이 앉자마자 봉투를 꺼내 석원에게 건넸다. 그 자리에서 내용물을 확인해 보았다. 20만 엔이란 적지 않은 금액을 살피며 다시 넣었다.

“지령이란 무엇입니까?”

“이제 구체적으로 거사에 임하자는 이야기로 먼저 자네에 대한 사상 교육이 실시될 것이네.”

석원의 표정이 마뜩치 않게 변해갔다. 호룡이 건넨 봉투에 이상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작용했을지도 몰랐다.

“사상교육이란 무엇을 의미하는지요?”

“말 그대로 자네의 영웅적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하여 자네의 마음을 확고하게 재무장하는 일을 의미하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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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