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절 특별기획> 일제강점기 4인의 지주일기 최초 공개

“상투 잘리는 순간 하늘이 무너졌다”

[일요시사 취재1팀] 신상미 기자 = 일제 말기에 들어 식민지 조선의 주민들은 일제가 일으킨 중일전쟁(1937)과 태평양전쟁(1941)으로 전시체제하의 고통스러운 삶을 강요받았다. 조선인으로선 처음 겪는 전시체제하의 일상생활은 끊임없는 동원과 수탈로 인해 의식부터 식생활에 이르기까지 통제받았다.

특히 조선은 대륙 침략을 위한 ‘병참기지’라는 역할이 주어져 타 식민지보다 더 깊숙하게 전쟁체제에 편입됐다. 이는 각종 공출, 징용, 징병, 부역, 헌금 등 제도로 정착돼 조선사회의 뿌리인 촌락과 농민의 일상까지 질적으로 변화시켰다. 당시 사회는 90% 이상의 인구가 농촌에 거주했고 이들은 대부분 가난한 소작농이었다.

서민들 역사 복원 
창씨개명과 정치동원

그간의 일제강점기 연구는 식민당국자가 발행한 자료를 중심으로 진행됐다. 식민 통치자의 시선으로 구성된 연구가 주를 이뤘으나 최근 <일기로 구성한 일제말 전시체제하의 일상>(김민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이라는 연구논문이 나와 일제강점기 평범한 사람들의 시선으로 ‘아래로부터의 역사 구성’을 시도했다. 특히 1930∼40년대에 전쟁 수행을 위해 수립한 지배체제는 해방 이후에도 연속성을 띠고 오랫동안 운영된 점, 현재에도 남북한 모두 그러한 구습과 제도가 남아있다는 점에서 아주 중요하다.

논문에 등장하는 일기는 모두 4편으로, 일기의 저자 중 3명은 보수적 유생이자 중소지주이고, 나머지 1명은 식민지기 소설에서 흔히 등장하는 문학적 감성을 가진 폐병을 앓는 신식 지식인이다.

정강일기(1938∼1948)의 주인공 김주현은 경제력과 구학력을 갖춘 유지다. 치재일기(1911∼1962)의 주인공 김인수(1892∼1962)는 평생 동안 전통 의복을 고수하며 양복을 비롯한 모든 서양문물을 거절했다.


8·15 이후에도 직접 짚신을 삼아 신었으며, 손자가 학교에서 상투가 잘려왔을 때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다”는 심정을 밝혔다. 김인수는 1925년 세상을 한탄하고 충북 중원군 동량면 하곡의 개천산으로 들어가 28년간 두문불출했다.

관란재일기(1912∼1947)의 저자 정관해(1873∼1949)는 보수적 유생이었지만 용인지역이 세상의 변화와 소식을 빠르게 수용하는 곳이어서 세상의 변화에 민감했다.

추탄일기(1936∼1942)를 쓴 박정락(1914∼1943)은 프롤레타리아 문예운동과 야학활동을 하다가 1932년 조선공산당 간부들이 일제 경찰에 체포될 때 외곽조직인 Y그룹 활동과 관련해서 함께 체포됐다. 감옥에서 나온 그는 독서와 글쓰기 등으로 소일하면서 지역 유지로 활동하다가 1943년 30세 때 지병인 폐병으로 사망했다.

이들의 일기를 통해 식민지기 농촌의 인력동원(징용, 부역, 징병)과 물자동원(강제저축, 공출, 헌금), 창씨개명 등의 양태를 엿볼 수 있다.

정강일기의 1941년 11월 기사에 의하면 “집집마다 가는 모래 1석, 물 1동이를 문 옆에 비치하고 일본 국기를 게양하라 했다. 물어보니 경방대 방공연습이라 한다. 방공이란 것은 외국 비행기가 내공하여 폭격하는 것을 방어하는 것이니, 과연 내공한다면 어찌 그것을 막아낼 수 있겠는가? 민심을 소동케 하는 것일 뿐이다”라며 염려하고 있다.

조선총독부가 방공(비행기 폭탄) 훈련을 확대하면서 방공업무가 농촌 주민의 일상 속에 연래행사로 강요됐음을 드러내고 있다. 시골 유생에게 이것은 생경한 행정 간섭이었다. 현재에도 실시되는 방공훈련이 태평양전쟁 이후부터 시작됐음을 알 수 있다. 

집회와 시국동원에 대해선 치재일기가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각종 시국좌담회, 중일전쟁 승전축하회, 싱가포르 함락 축하회, 한구 함락 축하회, 군인출정 환송식 등의 시국집회와 가마니짜기 장려회, 양잠강습회, 식량좌담회 등의 생산 관련 모임이 나타난다.


보수적 유생 3명·신식지식인 1명 기록서
일제 수탈에 찌든 모습 생생하게 나타나

일기의 주인공은 전쟁 초기엔 시국집회에는 물론이고 유림간담회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그러나 면장이 불참에 대한 책임 추궁을 한 뒤부터는 시선을 의식해서 참석하는 횟수가 늘어났다.

치재일기는 창씨개명에 대해 주인공 김인수가 최대한 버티는 모습을 보여준다. 김인수는 “소위 창씨라 하는데 예로부터 지금까지 들어보지 못한 이야기”라고 하면서 거부의사를 밝혔다. 면에서 여러 차례 창씨를 강요하고 협박했으나 받아들이지 않자 마침내 주재소가 나섰다.

창씨 문제를 둘러싸고 식민권력과 일기의 주인공 사이에 팽팽한 긴장관계가 형성됐다. 그러나 주인공의 신변에 큰 문제가 일어나진 않았다. 이후의 일기에서도 창씨 때문에 주재소에 끌려가 곤욕을 치른 기사가 없는 것으로 보아 끝내 창씨를 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김인수는 운이 좋았던 것 같다. 일본식 이름이 없이는 학교에 입학할 수 없었고 취직을 하거나 배급표를 받을 수도 없었다. 조선 이름을 가진 사람들에게 총독부는 허가증을 발급해주지 않았고 우체부는 우편물을 배달하지 않았다. 그러나 많은 조선인들이 새 이름 안에 자기의 조선이름, 고향, 중요한 가문의 특징을 기발한 방법으로 반영해 넣었다.
 

힐디 강의 <검은 우산 아래에서>(2011, 산처럼) 속 구술자 중 한 명인 김원극(1918년생)씨는 여러 차례 종친회를 열어 창씨개명에 따를지 여부를 놓고 격한 토론을 벌였다고 진술한다. 세 번째 회합 만에 집안 큰 어른의 결정으로 창씨를 하기로 했다.

그러나 김씨는 “적어도 우리 지역(함북)에선 창씨를 하지 않은 사람들이 징용의 최우선 대상이 됐다”고 증언했다.  김씨는 가네쿠니(金國), 가네자와(金澤), 가네다(金田), 최(崔)씨는 야마모토(山本), 이(李)씨는 기모토(木元)라고 이름 짓는 식으로 자기의 정체성과 전통을 보호하고자 했다.

강제적 동원 후
죄인 다루듯 관리

정강일기의 주인공 김주현은 노동력의 강제동원을 비교적 정확하게 인식한 것으로 보인다. 1945년 1월19일자 일기에 따르면, “17∼55세의 조선 인민을 모두 저들의 모집 징용 장부에 기재하였다. 그 명목은 병정이요, 군속이요, 역부요 하며, 연령징용, 일반징용, 특별징용의 구별이 있다. 여자 역시 14∼25세로 미혼인 자, 과부인 자, 결혼했지만 자식이 없는 자는 방직공장과 군부조수로 징용한다. 남자는 말할 것도 없고 여자 역시 끌어가니 이는 오랑캐요 짐승”이라고 해 강제동원의 유형과 실태를 잘 정리했다.

치재일기에선 조선총독부의 선전용어인 ‘산업전사’라는 명칭으로 동원의 실태를 확인할 수 있다. 1941년 5월22일 장남이 산업전사로 부역을 나간 것이 최초의 기사였고, 1942년부터는 산업전사 선발에 관한 내용이 자주 언급됐다.

8월 이강길이 산업전사로 선발됐으나 나이가 많아 불합격한 이야기나 5형제 중 장남을 제외한 4형제 모두 일본으로 모집돼 간 집 이야기, 남양군도로 끌려간 이웃집 아들은 생사불명이고, 남겨진 부인과 딸은 굶주림과 추위에 떨고 있다는 내용 등 산업전사에 관한 내용이 지속적으로 등장했다.

관란재일기에 따르면 중일전쟁이 일어난 해인 1937년에도 강제적인 동원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함흥의 해저철도 건설에 노동자를 모집하면서 신청자 중 가지 않으려는 사람을 경찰이 강제로 데려갔다고 썼다. 문촌리(관란재일기 주인공이 사는 마을)의 국내동원은 주로 ‘근로보국단’이라는 이름으로 추진됐다.


정강일기에선 집안 머슴과 둘째 아들, 막냇동생이 징용령으로 신체검사를 받고 징용을 갔다. 일제의 징용은 구체제의 신분질서를 무너뜨렸다. 징용이라는 이름 앞에선 양반과 천민의 구별이 없었던 것이다. 이후 월 평균 1회 이상 징용 관련 내용이 일기 속에 등장한다. 관란재일기와 치재일기는 모두 1944년 10월부터 산업전사나 근로보국단이 아니라 ‘징용’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정강일기는 “1943년 7월 저들의 북선 역부모집령이 몹시 심하여 소위 면리원이라는 자가 조석간에 마을마다 수색하여 저들의 공장에 부역할 만한 자(18세 이하 30세 이상자. 북선, 남양 등 정해진 바를 알지 못한다)를 보면 마치 죄인 다루듯이 바로 잡아간다. 이 같은 폐해가 2∼3달 가면 본지의 농사를 지을 자가 없어질 것이다”라고 적었다.

“창씨 안하면 징용 대상”
의식주 통제 실상 담아

치재일기의 1938년 12월엔 “오늘은 소위 군용모피의 독촉일이다. 저녁에 떠들고 요란을 피워 오늘 어쩔수 없어 기르던 개를 삶았다”는 기사가 나온다. 일제는 가마니, 개가죽, 돼지가죽, 백미, 대두, 면화, 누에, 소, 벼, 보리, 철기 등 전쟁물자를 민간에서 공출했다.

특히 군용 가마니를 할당 받아 온 가족이 모여 앉아 가마니 짜기에 열중하는 모습이 자주 등장한다. 가마니 짜기는 중일전쟁 전부터 부업으로 장려돼 왔으나 전쟁 이후엔 군수용 가마니에 대한 수요가 늘어났다. 이 때문에 군용가마니 공출은 2차대전 내내 사람들을 괴롭혔다.

가마니 짜기가 완료되자 ‘앓던 이 빠진 기분’이라고 쓴 관란재일기의 주인공 정관해의 심정은 그 고충을 잘 표현한 것이다. 식민당국은 가마니공출을 마을 단위로 할당한 뒤 주민들 중 완수하지 못한 분량은 완료한 집에 다시 할당했다.


김인수는 “식구들을 거느리고 매일 가마니를 짜니 가소로울 뿐이다”라고 적었다. 양반인 그가 가마니를 짜는 데 익숙하지 못해 할당량을 채우는 것이 쉽지 않았다. 가마니공출을 완료하지 못한 집은 지붕을 새로 이는 것을 금지했다.

정강일기 1942년 9월엔 “군면이원이 또 모미(보리와 쌀)를 수색하러 출장 나온다는 소리를 듣고 땅을 파서 5∼6일의 양식을 묻었다. 모두 가족의 바람을 따른 것이다. 다행히 저들에게 발각되지 않았다. 오호 고소하도다”라고 기록했다.

그러나 숨겨둔 곡물이 발견된 집은 호주를 잡아갔다. 공출량이 부족하면 주재소에 고발하겠다고 하거나 태형에 처한다고 협박했다. 공출에 비협조적인 집은 징용을 보내는 방법도 썼다. 박창서가 반드시 공출 때문에 징용을 간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으나 주민들에겐 그렇게 받아들여졌다. 

전쟁에 따른 상시적 물자부족은 촌락공동체 내부에도 균열을 가져왔다. 관지리는 공동체의 유대감이 강한 편이었다. 변종근 집에 도둑이 들어 양식과 옷을 모두 도난당하자 모두 어려운 형편에도 십시일반 해 도와줬다. 그런데 이 마을에서도 누군가가 곡식을 숨겨둔 것을 주재소에 밀고했다. 관란재일기에도 유사한 사건이 발견된다.

정강일기에선 막냇동생 김주해를 비롯해 김한표, 변종배, 백민교 등의 기사가 있다. 사위 김한표는 벌금을 내지 못해 징용당한 경우다. 1944년 2월29일자의 일기를 보면, 하곡마을에서 징용대상자 전체가 도주하는 사태가 벌어지자, 주재소는 가족을 감금해서 도망자가 출두하도록 했다. 출두하지 않은 집은 나이에 관계없이 사람을 끌고 가서 할당량을 채웠다.

정강의 장남도 징용을 피해 도망쳤다. 장남은 1943년11월에 황실불경죄로 체포돼 이듬해인 44년2월에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그러나 7월에 ‘전과자 징용령’으로 소환장을 받자, 몸을 피했다. 장남은 도피 도중 간간이 집에 들렀으나 연말까지 숨어있었다.

공포의 할당량
소극적 저항도

징용자들의 도주는 신문을 통해 알 수 없었던 정보를 유포시키는 기능도 했다.

정강일기 1945년 7월7일자 일기를 보면 징용갔던 “변한희가 일본 동경의 공장에서 도망쳐 와서 말하길, 동경은 영미의 폭격을 받아 거의 멸망에 이르렀다 한다. 듣고 보니 통쾌하지만, 왜놈들 죽는데 조선인도 죽으니 비통하다. 질아, 창흠, 병흠 소식이 거의 끊겨 우울하다”고 쓰고 있다. 전쟁 말기의 보도 통제로 인해 당시 조선인들은 제대로 된 소식을 들을 수 없었는데 징용을 다녀온 이가 일본 본토의 공습을 전해준 것이다.

김민철 민족문제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일기에서 쉽게 확인되는 각종 국방헌금과 여러 유형의 공출은 전시체제기 농민들의 곤궁한 생활상을 잘 보여준다”며 “인적, 물적 수탈과 통제 하의 일상이 모여 집단기억(Collective Memory)으로 형성됐으며, 이것이 세대를 거쳐 지금까지 전승되고 있는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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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정청래·조국·김민석 세 사람이 삼각관계로 얽혔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연임을,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자당의 생존을, 김민석 국무총리는 청와대의 명을 받아 권력 싸움에 참전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세 사람이 만든 새로운 소용돌이가 여의도를 향하고 있다. 이들이 범여권 지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이목이 쏠린다. 여당 대표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그립감이 강해졌다. 지난 3일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도입을 담은 당헌 개정안이 재적 위원 과반의 찬성으로 문턱을 넘은 것이다. 이로써 오는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부터 대의원과 권리당원이 동일한 한 표를 행사하게 된다. 존재감 굳히기 민주당에 따르면 중앙위원 총 590명 중 87.29%인 515명이 투표에 참석했다. 이 중 찬성 312명(60.58%), 반대 203명(39.42%)으로 의결 요건을 충족했다. 이후 정 대표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핵심 공약이자 1호 공약이라고 할 수 있는 1인1표제를, 임기 안에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돼 보람 있게 생각한다”며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고 모든 법의 으뜸은 헌법이다. 헌법에서 명령하고 있는 보통·평등·비밀투표, 1인 1표제는 진작에 민주당에서 시행돼야 마땅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1인1표 시행으로 가장 직접적인 효과는 당내 계파가 해체되는 것이라고 예상한다”며 “10년이 넘게 1인1표제, 당원이 주인이 되는 정당, 당원 주권 시대를 부르짖었는데, 드디어 마침표를 찍게 돼 개인적으로도 무한한 기쁨”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1인1표제가 통과되자 권리당원 사이 지지도가 높은 정 대표의 연임 가능성이 탄력을 받았다는 해석이 제기된다. 지난해 8월 치러진 전당대회서 정 대표는 전국 대의원 투표에선 46.91%로 박찬대 의원(53.09%)에게 열세를 보였으나 권리당원 투표서 66.48%의 득표율을 기록해 박 의원(33.52%)을 앞질렀다. 다만 6대 4라는 투표 결과를 놓고 정치권의 분석이 엇갈렸다. 정족수보다 16명 많은 ‘턱걸이 통과’로 리더십을 굳히기엔 명분이 약하다는 점에서다. 1인1표제 재추진에 제동을 걸던 집단의 반대표가 늘어난 것 역시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 치러진 첫 투표 당시 투표율이 62.58%로 두 달 만에 20%p 올랐지만, 반대표 역시 102표에서 203표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에 민주당 권칠승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1인1표가 갖는 대의엔 다 동의하지만 현재 민주당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정당이 갖고 있는 당원 구조의 취약성 때문에 1인1표제하는 게 맞느냐는 것에 대한 회의는 좀 있는 것 같다”며 “후속 정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저는 대의엔 찬성하지만 지금 상태에서 그냥 (1인 1표제를) 적용하면 부작용이 있다”고 설명했다. 정 대표의 두 번째 승부수였던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도 여전히 불투명하다. 합당에 반대하는 최고위원들이 정 대표를 정면으로 들이 받으며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독주하는 정청래, 승부수는 던졌는데… “합당 못해” 마주하기도 전 무산 위기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혁신당과의 합당 논란이 벌써부터 차기 대권을 의식한 논의로 번져 걱정”이라며 “‘큰 배를 띄우려면 본류를 타야 한다’면서 마치 민주당을 조국 대표의 대통령 만들기 수단으로 여기는 발언까지 나오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은 이재명 대통령의 시간이지 차기 대권주자를 밀어줄 시간이 아니”라며 “야당도 아니고 여소야대도 아니고 과반 의석을 차지한 강력한 집권여당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60%에 육박하는데 왜 벌써부터 이런 얘기가 나오는지 괴이하기까지 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강득구 최고위원 역시 “어제(3일)부터 지방선거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됐고 중앙당과 시도당은 후보자 공모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런 시점에서 합당을 밀어붙이면 혼란만 커진다. 공천 기준, 경선 룰이 흔들린다”며 “합당 논의를 당장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정 대표는 전체 당원 여론조사와 토론 등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겠다며 의견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일련의 과정에 대해 한 정치권 관계자는 “공천권만 손에 넣으면 세력은 알아서 따라붙게 돼있다. 정 대표는 ‘축구 경기에서 1대 3이나 3대 0이나 같다’고 말하면서까지 1인1표제를 밀어붙였다. 당 대표 연임에 선을 긋고 있지만 연임을 통한 공천권 확보를 포석에 뒀다고 해석하지 않을 수가 없다”며 “조 대표를 끌어들여 본격적으로 자기 세를 넓히려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해석했다. 정 대표가 띄운 합당론에 혁신당이 휘말리는 듯한 그림이 됐다. 그동안 혁신당 조국 대표는 민주당과의 합당에 선을 그어왔지만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혔고, 이번 합당 논의 역시 자당을 살리기 위해 민주당의 손을 잡은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세를 불려야 하는 정 대표와 대권주자로서 도움닫기 공간이 필요한 조 대표의 니즈가 맞아 떨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테이블이 마련되기도 전 민주당 내 집안싸움이 불거지면서 혁신당과의 논의조차 시작하지 못했다. 합당 논의에 촉각을 세우는 사이 이번에는 혁신당이 추진하는 토지공개념을 놓고 이견이 갈렸다. 이언주 최고위원이 토지공개념에 반대 의사를 표하자 조 대표가 “헌법재판소가 합헌이라고 판시한 것. 어이없다”고 맞받아치면서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뿌리를 내린 것이다. 꼿꼿한 자존심 토지공개념이 난타전으로 번진 이유는 최근 집값 등 부동산을 저격하는 이재명 대통령과의 행보와도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다. 이 최고위원은 “토지공개념은 과거 공산주의 몰락 이전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AI 대전환과 글로벌 자본 유치, 기술 경쟁이 국가의 생존 과제가 된 지금의 시대 현실과는 분명한 괴리가 있고, 시대착오적이라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통령이 강력한 부동산 공급 대책을 내놓고 있는데 토지공개념 입법화를 주장하는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주장이 대두되면 대통령의 건강한 개혁 의지마저 희석되고 곡해돼 공격받을 여지가 크다”고 강조했다. 혁신당이 주장하는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그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을 골자로 한다. 지난 2일 열린 ‘신토지공개념 입법추진단 출범식 및 토론회’서 혁신당 차규근 의원은 입법을 비판한 여당을 향해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틀린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차 의원은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이라며 “헌법재판소도 1989년 토지거래허가제 사건 판결에서 모든 사람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해 토지 소유권은 절대적인 권리가 될 수 없으며, 공공복리 증진을 위해 의무와 제약을 수반하는 방향으로 변화해 왔다고 판시했다”고 설명했다. 이 최고위원의 주장을 반박하기도 했다. 차 의원은 민주당 강령을 언급하며 “토지 재산권 행사의 합리성을 담보하는 제도적 장치를 구축해 지대 수익으로 인한 경제 왜곡과 불평등을 방지한다고 명시돼있다”며 “현재 시행 중인 토지거래허가제와 개발이익환수제 역시 모두 토지공개념에 기반한 제도”라고 꼬집었다.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가 진행 중인 민주당 일각에서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토지공개념을 포기하지 않는 한 합당 논의는 불가능하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그럼에도 혁신당이 이를 추진하는 이유는 혁신당이 민주당에 흡수 합당되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는 분위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에 혁신당 DNA가 섞이는 게 아닌, 혁신당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민주당과 함께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점에서다. 논의를 띄운 이상 합당을 하든 약속을 파기하든 결과가 나와야 한다. 그러나 “주판알을 굴렸을 때 합당 가능성이 낮다”는 게 한 여의도 관계자의 전언이다. 로망을 현실로? 이 관계자는 “어떤 방법으로든 조 대표가 민주당과 함께한다면, 차기 당권을 놓고 정 대표와 경쟁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봤다. 이어 “두 사람(정 대표, 조 대표) 모두 대권주자로서 욕심이 있다. 시기가 언제가 됐든 다음 대선을 위해 경쟁하는 사이가 될 것”이라며 “종래에 서로를 집어삼키려는 계파 싸움으로까지 번질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조 대표를 등에 업고 빠른 보폭으로 걷는 정 대표의 시선 끝에는 김민석 국무총리가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 총리가 “당 대표에 로망이 있다”고 말하면서 8월 전당대회 출마설에 스스로 불을 지핀 것이 화근이다. 여기에 청와대에서까지 김 총리를 차기 당 대표로 세우려 한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정 대표의 셈법이 더욱 빨라졌다는 해석이다. 그동안 김 총리의 대표 도전설은 꾸준히 회자했다. 지난달 23일 국무총리실은 공지를 통해 서울시장 선거 여론조사에서 김 총리 이름을 빼달라고 요청했고, 이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김 총리가 서울시장이 아닌 민주당 당 대표를 노리는 게 아니냐고 봤다. 여기에 김 총리가 한 유튜브를 통해 정 대표와 차기 대표 자리를 놓고 경쟁할 수 있다는 관측에 대해선 “민주당의 당 대표는 굉장히 자랑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당연히 로망은 있다”고 말하면서 본격적으로 불씨를 댕겼다. 다만 김 총리는 “세상(일)이 욕심을 낸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안다. 욕망의 정치로 뭔가를 풀려고 하지 않는 편”이라며 조심스럽게 입장을 전했다. 그러던 중 민주당-혁신당 합당 논쟁에 김 총리가 뛰어들면서 당권을 둘러싼 경쟁이 시작됐다는 관측이 다시 나왔다. 김 총리는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총리공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런 시점, 이런 방식으로 진행될 줄은 몰랐다”며 정 대표의 합당 방식을 꼬집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뿌리 깊은 정당이기에 당원들의 뜻을 묻는 민주적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통합 자체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김 총리는 당 대표 선출 전당대회 출마설과 관련해 “(앞서 대표직에 대해 언급한) 로망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많은 말들을 불러올지는 몰랐다”며 “(당시 대표 출마 여부는 직접적으로 묻지 않기에) 국정에 전념한다고 했고, 오늘 기자간담회 내용을 주의 깊게 보면 굉장히 강력한 국정 전념 의지가 담겨있다는 것을 알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는 서울시장 선거로 본인(김민석)이 할 생각 없는데 서울시장 선거와 관련돼 거론되는 것이 국정 운영에 도움도 안 돼 거론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며 “당과 관련한 부분에 대해서도 제가 대표라는 평소 로망을 이야기한 것이고 또 합당 등 모든 문제들은 당의 질서 속에서 충분히 논의될 것으로 보고 제가 더 이상 현재 당내 문제와 연관돼서 소환되거나 호출되거나 이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민석 카드’ 청와대가 띄웠다? “당 대표 로망” 한마디에 ‘술렁’ 이후 김 총리는 3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전날 신년 기자간담회를 언급하며 “기자간담회의 핵심은 한층 높은 ‘책임감’으로 국정에 ‘전념’한다는 것이다. 정책 관련한 질문에는 훨씬 적극적으로 답하겠다”며 출마 의지가 없음을 강조했다. 김 총리가 거듭해서 출마설에 선을 긋지만 계속해서 이름이 오르내리자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를 정 대표의 대항마로 김 총리를 띄우기 위한 청와대의 물밑작업으로 봤다. 김 총리는 지난 총선 상황실장을 맡아 합을 맞춰오는 등 이 대통령과 연이 깊은 인물로 이 대통령의 의중인 ‘명심’을 등에 업어 민주당 수석최고위원 자리까지 오르기도 했다. 지난 2024년 민주당 전당대회서 김민석 의원의 최고위원 후보로 출마했지만, 사전 득표율이 저조했다. 이에 이재명 대표 후보는 첫 지역 순회 이후 김 후보와 함께 차 안에서 유튜브 라이브를 진행하면서 “(김 후보) 왜 이렇게 표가 안 나오느냐”며 “제 선거를 도와주느라 본인 선거(운동)를 못 해 결과가 잘못되면 어쩌나 부담된다”고 언급했다. 이후 민주당 커뮤니티 등에서는 “이재명이 김민석을 낙점했다”는 글이 퍼졌고, 빠르게 순위가 뒤집혀 단숨에 수석최고위원으로 올라섰다. 이처럼 청와대에서 정청래 체제의 힘을 빼기 위해 다시 한번 ‘김민석 카드’를 띄우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청와대가 정 대표를 견제하는 것은 정 대표가 ‘당원 주권 정당’ 등을 명분으로 당을 강하게 쥘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점에서다. 한 여권 관계자는 “정 대표의 행보가 모두 이해는 간다. 명분도 좋다. 문제는 시기가 너무 빨랐던 것”이라며 “이재명정부 출범 극초기부터 갈등이 불거졌다. 청와대 입장에서는 대놓고 발톱을 드러내는 정 대표가 장기간 민주당을 주무르는 게 달갑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집안싸움이 격화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혁신당 역시 합당 논의가 잘 풀리지 않을 경우 조 대표의 탓으로 돌리는 것을 우려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방선거가 끝나는 대로 정치권의 시선은 8월 민주당 전당대회로 쏠리는 만큼 6월 전 합당 논의가 매듭을 지을지가 최대 관건이다. 숨길 수 없는 불편한 심기 혁신당 황현선 인재영입위원회 부위원장(전 사무총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 대통령과 김 총리, 정 대표를 모조리 언급하며 현 상황을 직격했다. 황 위원장은 “이 싸움(합당)의 최대 피해자는 이 대통령이다. 언젠가 후계 전쟁이 벌어질 것을 예상했겠지만 집권 1년도 안 돼 심각한 내분에 직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친K(김민석 국무총리) 세력이 선공을 하고, 선방 맞은 친J(정청래 대표)의 반격도 시작될 것”이라며 “지금은 대통령 눈치보며 권력투쟁을 벌이겠지만 총선에 다다를수록 눈치 보지 않는 싸움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