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수 61명, 그들은 누구인가?

재소자들 부리며 왕처럼 생활

[일요시사 취재1팀] 신승훈 기자 = 우리나라는 1997년 12월30일, 사형수 23명에게 사형이 집행된 이래 지금까지 사형 집행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실질적 사형 폐지국’으로 분류돼 있지만 사형제 자체가 폐지된 것은 아니다. <일요시사>는 인면수심의 61명 사형수들이 저지른 과거 만행과 폭력성을 되짚어봤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육군 22사단 GOP에서 수류탄을 던진 뒤 총기를 난사해 5명을 살해하고 7명을 다치게 한 임 병장에게 지난 19일 사형을 선고했다. 이로써 임 병장은 지난해 8월 장모씨가 사형선고를 받은 이후 6개월여 만에 61번째 사형수가 됐다.

총기 난사 임 병장
61번째 사형 확정

우리나라 형법에서 사형을 규정하고 있는 범죄는 내란죄, 외환유치죄, 여적죄, 살인죄 등 16종이다. 특별 형법까지 포함하면 493개의 항목에서 살인죄를 규정하고 있다. 현재 생존한 61명의 사형수들의 공통점은 모두 살인을 저질렀다는 점이다. 특히 사형수들은 다른 범죄와 경합해 살인을 저지르거나 엽기적인 방법을 동원해 살인 행각을 벌여 사회에서 영원히 격리되는 법정 최고형인 사형을 선고받은 사람들이다.

먼저 임 병장을 포함해 군 형법의 적용을 받고 사형을 선고 받은 사람은 모두 4명이다. 1996년 강원도 철원군 육군 모 부대에서 상관의 욕설을 원인으로 사병 3명을 사살하고 상관 2명에 대해 살인미수를 저지른 김용식에게 1997년 사형이 확정됐다. 군 부대 총기 난사로 인해 사형선고를 받은 이들은 2000년대 이후 인원이 늘었다.

2007년 사형확정 판결을 받은 김동민은 경기도 연천군 최전방초소서 내무반에 수류탄을 투척하고 기관총 44발을 발사해 8명을 살해했다. 2013년에 사형이 확정된 김민찬은 최연소 사형수로 기수열외를 이유로 총기를 난사해 상관 등 4명을 살해했다.


임 병장까지 포함하면 2000년 이후 3명의 군인이 사형수가 됐다. 치정살인으로 인한 사형수는 6명에 달한다. 1997년 사형이 확정된 홍대복은 내연녀를 공범에게 강간케 하고 돌을 매달아 수장시키는 엽기적 방법으로 살인을 저지르는가 하면 지인의 부인을 칼로 찔러 살해하기도 했다.

1999년 사형이 확정된 이재복은 아내와 불륜이 의심되는 남성을 토막살해한 후 방화했다. 결별을 요구한 동거녀를 살해하고 2년 뒤 채무를 회피하려 내연녀와 7세 아들을 죽이고 공범까지 살해한 고흥수는 2000년 사형이 확정됐다. 2006년 사형이 확정된 장기수는 내연녀와 관계 복원을 위해 아내와 아들을 청산가리로 살해하고 범행 후 방화까지 하는 치밀함을 보이기도 했다.

임 병장 이전에 2015년에 사형이 확정된 60번째 사형수인 장모씨는 전 애인 A씨의 집에 배관수리공으로 위장해 침입한 뒤 A씨의 부모를 흉기로 살해 후 뒤늦게 귀가한 A씨를 감금하고 성폭행하기도 했다. 이처럼 치정문제로 인해 사형수가 된 이들이 전체 사형수의 10%에 해당한다.

대부분 극악무도한 살인범
범행 수법도 엽기·충격적

1996년부터 2000년까지 6명의 조폭이 사형 확정판결을 받았다. 강영성은 타 조직원 살해와 경찰관 2명을 살해한 혐의로 1996년 사형을 확정받았고, 안양AP파 조직원인 이우철·정병근·정병옥은 청부 폭력 사실을 폭로하려는 동료 조직원과 그의 여자친구를 살해한 뒤 시체를 암매장한 혐의로 사형수가 됐다.

막가파의 두목 최정수는 귀가하던 단란주점 업주를 납치해 승용차와 900만원을 뺏은 뒤 소금창고에 생매장해 1997년 사형판결을 받았다. 2000년 들어서 조폭조직에 마지막 사형수는 이순철이다. ‘영웅파’의 두목 이순철은 조직원 곽모씨를 살해한 뒤 사체를 수백 개로 토막냈다. 공범들끼리 비밀 유지를 목적으로 사체 장기 일부를 꺼내 나눠먹기도 한 것으로 알려진다.
 

패륜으로 인해 사형수가 된 이들은 3명이다. 2004년 사형판결을 받은 김근우는 자신의 빚을 갚아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어머니와 할머니를 살해했고, 형에게는 살인미수를 저질렀다. 2003년 사형판결을 받은 김중호는 재혼한 아내의 딸을 상습 성추행했다. ‘더 이상 성추행을 안한다’는 조건으로 아내가 고소를 취하하자 아내와 의붓딸 2명을 망치와 가위로 살해했다. 패륜 존속살해범 중 대표적인 인물은 1994년 사형을 언도받은 박한상이다.


1994년 5월 100억대 자산가인 한약상 부부의 집에 불이나 부부가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경찰은 처음에 단순 화재 사고로 처리했지만 부검과정에서 40여 군데 난자된 상태가 발견됐다. 이후 “박한상의 머리에 피가 묻었다”는 간호사의 증언과 박한상 다리의 이빨자국을 이야기한 친척의 제보 및 수사 끝에 범행 일체를 자백받았다. 유학생활 중 도박과 향락에 빠진 박한상은 도박 빚을 갚아주지 않는 부모를 원망하고 재산 상속을 목적으로 살해를 감행했다.

유영철, 강호순…
공포의 연쇄살인

박한상 패륜사건은 훗날 400만명의 관객을 동원한 <공공의 적>의 모티브가 됐다. 영화의 모티브가 된 또 다른 사건이 있다. 1995년 사형을 언도받은 성낙주가 저지른 ‘월곡동 H여관 모녀 살인사건’이다. 1994년 H여관에 장기투숙하던 당시 성낙주는 여관주인 전모씨와 그 딸인 여중생 이모양을 목졸라 살해하고 시신을 토막 내 암매장했다.

승려생활을 하던 성낙주는 1984년 승적을 박탈당하고 떠돌이 생활을 시작한다. 점집을 운영하면서 생계를 이어나가던 성낙주는 점집을 방문한 전씨와 처음 만나 내연관계로 발전하게 되면서 성낙주는 전씨 소유의 여관 카운터를 봐주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다툼이 잦아지자 전씨의 딸이 성낙주에게 결별을 요구했고 이에 분노한 성씨는 전씨의 딸 이양을 1994년 8월14일 목 졸라 살해한다.
 

일주일 뒤 여관에서 전씨에게 “가진 것도 없고 능력도 없는 당신을 내가 어찌 믿고 사느냐”는 말에 격분해 전씨도 토막 내 살해했다. 놀라운 점은 2명을 살해하고도 태연히 여관카운터를 지키고 있었다는 것. 성낙주가 카운터를 혼자 지키고 있는 것을 이상하게 여긴 전씨 친구의 신고로 덜미를 잡혔다.

이 사건은 2007년 9월 개봉한 영화 <마이파더>의 모티브가 됐다. 이 영화는 22년 만에 사형수 성낙주를 찾은 입양아 ‘애런 베이츠’의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돼 화제가 됐지만 살인범 미화로 논란이 돼 홍역을 치렀다.

61명의 사형수 중 연쇄살인을 저지른 사람은 총 5명이다. 인천 연수구 청학동 연쇄살인사건의 범인 오수현은 2명 살해, 3명 중상해를 입히고 4명을 성폭행해 1996년 사형판결을 받았다. 부산·경남 지역에 연쇄살인범으로 악명을 떨친 정두영은 부산 및 울산 등지에서 23건의 강도 사건을 벌임과 동시에 둔기로 내려쳐 9명을 살해하고 10명에게 중경상을 입힌 혐의로 사형을 언도 받았다.

2003년에는 용인 연쇄살인범 허재필은 공범 김경훈과 함께 여성 6명중 2명을 성폭행하고 살해했다. 김경훈은 체포직전 자살했고 허재필은 재판과정에서 김경훈의 지시를 따랐을 뿐이라며 변명했지만 법원은 “열흘에 걸쳐 6명의 여성을 살해하고 강간한 행위가 결코 다른 사람의 강요나 지시에 의해 피동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 범죄”라고 강조하면서 허재필에 사형을 선고했다.

목숨만 붙어있는
저 세상 사람들

2004년에는 대한민국을 발칵 뒤집혀 놓은 희대의 연쇄살인마 유영철이 체포됐다. 유영철은 2003년 9월부터 2004년 7월까지 무려 20명을 살해했다. 연쇄살인 이전 14차례의 특수절도 및 성폭력 전력으로 11년을 전국 각지 교도소에서 보낸 유영철은 2003년 9월11일 출소해 2주 뒤 숙명여대 명예교수 이씨와 그의 부인을 처음 살해했다.

이후 서울 각지에서 주로 부유층 노인 및 출장마사지사 여성 등 총 20명을 살해한 혐의를 받았다. 유영철은 2005년 6월9일 성폭력범죄, 강간살인, 1급살인, 과실치사혐의가 인정돼 대법원에서 사형을 언도받았다. 강호순도 연쇄살인마로 악명을 떨쳤다.

강호순은 2006년 9월부터 2008년 12월까지 총 10명을 살해했다. 강호순이 살해한 것으로 드러난 부녀자는 노래방 도우미 3명, 회사원 1명, 주부 1명, 여대생 2명이다. 이어 여성 공무원 윤모씨를 살해했다고 자백했고 2005년 10월 장모 집에 불을 질러 자신의 장모와 처도 살해했다고 밝혔다.
 


특이할 점은 강호순은 경찰에 체포된 이후에도, 심지어는 사형이 확정된 이후에조차 반성의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오히려 같이 수감된 동료 재소자들을 노예와 다름없이 부려먹으며 왕처럼 생활해 담당 형사와 해당 교도소의 교도관들을 놀라게 했다고 전해진다.

아동을 대상으로 한 사형수가 8명으로 가장 많이 나타났다. 특히 1995년부터 1999년까지 무려 6명이 아동 관련 범죄로 사형 확정판결을 받았다. 여자를 납치해 살해한 뒤 시체를 유기한 성태수는 1995년 사형이 확정됐고, 1세 여아를 납치하고 감금해 9차례 성폭행하고 살해한 전석재도 1995년에 사형이 확정됐다.

아동 상대 강령범죄 최다
영화 단골 모티브로 등장

8세 남자아이를 납치해 소나무에 묶어 질식 살해하고 가족에게 돈을 요구한 전용재의 경우도 1995년 사형 언도를 받았다. 1997년 사형을 선고받은 임동수는 무단 주거침입해 4세, 6세 아동과 어머니를 살해했고 사형당하고 싶다며 범행 후 주부 시신 옆에 누워있는 만행을 저질렀다. 이원수는 6세, 9세 여아와 18세 여학생을 성폭행한 후 살해했다.

장세명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4세, 6세 어린이 2명을 유인해 성폭한 뒤 살해했고 이후 시체에 닻을 달아 바다에 유기하는 엽기적인 행태를 보였다. 2000년 이후에는 3명이 사형을 언도받았다. 박진봉은 10세 남자아이를 납치해 부모에게 금품을 요구하다 살해한 뒤 땅속에 은닉했다. 김해선은 귀가하던 11세 여아를 성폭행 후 살해하고 17세 여학생도 성폭행 후 고문하고 살해했다. 이어 12살 남동생도 목졸라 살해해 2001년 사형 확정판결을 받았다.

2007년에는 안양 초등생 유괴 살해 사건이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다. 초등생들의 실종 초기에 목격자 제보가 없어 사건은 미궁으로 빠져들었고 사건 발생 9개월이 흐른 12월31일 공개수사로 전환됐다. 실종된 것으로 알려진 이양과 우양이 각각 이듬해 3월11일, 3월19일 발견됐고 면식범으로 알려진 정성현이 2008년 3월17일 검거됐다.


이 사건으로 경찰은 초동수사가 부실했다는 것을 인정하기도 했다. 빚독촉을 이기지 못하고 살해를 저지른 경우도 있다.

1999년 사형 언도를 받은 이동진은 빚 독촉을 받자 5촌 아저씨를 비닐로 질식시켜 살해했고 이어 부인과 딸, 금은방 종업원을 칼로 찔러 살해했다. 박종규는 빚 독촉하는 2명을 살해 후 암매장해 시체를 소각하는 엽기적 행태로 2003년 사형이 확정됐다.

최고령 사형수는 2010년 사형이 확정된 ‘보성 어부’ 오종근이다. 2007년 8월31일 당시 69세이던 어부 오종근은 전남 보성으로 여행 온 대학 신입생 커플 2명을 자신의 배에 태웠다. 여성을 성추행 하기 위해 남성을 먼저 바다로 밀어 살해한 뒤 저항하던 여성도 바다에 빠뜨려 살해했다. 이어 9월25일에도 같은 방법으로 20대 여대생 2명을 살해했다.

타살 증거를 찾지 못해 동반자살로 판단된 이 사건은 두 번째 피해자 중 한 여성이 남긴 휴대전화 문자가 발견된 후 실마리가 풀렸다. 내용은 ‘저희 아까 전화기 빌려드린 사람인데 배타다가 갇힌 거 같아요. 경찰 보트 좀 불러주세요’였다. 문자로 정황을 파악한 경찰은 보성 앞바다를 수색했고 오씨의 선박 내부에서 피해자의 신용카드와 볼펜, 여자의 것으로 보이는 긴 머리카락이 발견돼 오씨를 검거했다.

최고령 보성 어부
외국인 왕리웨이

오씨는 검거 후 “피해자들이 자기에게 배를 태워 달라고 한 것이 잘못”이라며 “돈도 안 받고 공짜로 태워준다니까 그게 좋아서 내 배를 탄 것이 아니냐”고 말해 공분을 샀다. 최초의 외국인 사형수는 2001년 사형이 확정된 중국인 왕리웨이다. 경기 안산서 둔기로 부녀자 8명을 중상해 입히고 이 중 2명을 강제추행한 후 돌과 쇠망치로 내리쳐 살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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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고객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쿠팡의 태도가 도마 위에 올랐다. 현재까지 대응만 봐서는 국민은 물론, 정부와도 전면전을 벌일 기세다. 새어나간 정보의 범위와 규모가 ‘역대급’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최악의 사태임에도 불구하고 쿠팡의 고개는 꺾일 줄 모르고 있다. 일각에서는 ‘뭘 믿고 저러나’ 소리가 나오는 중이다. 쿠팡의 고객 개인정보 유출 사건, 이른바 쿠팡 사태가 점입가경이다. 사태가 일어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수습은커녕 국민의 화만 돋우고 있다. 쿠팡의 대응 태도가 미지근한 수준을 넘어 뻔뻔한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 김범석 의장은 모습을 비추지 않고 보상안은 꼼수로 가득하다. 국민을 조롱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한 달 만에 고개 숙여 지난해 11월 말 3370만명에 이르는 쿠팡 고객의 개인정보가 ‘탈탈’ 털렸다. 앞서 쿠팡은 4500여건의 고객 정보가 유출됐다고 정부 당국에 신고했지만 2주 만에 그 수치는 7500배까지 늘어났다. 전 국민의 65% 수준이며 지난해 4월 SKT 개인정보 유출 사태 범위(2300만명)를 훌쩍 넘는 사태였다. 쿠팡은 이커머스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갖고 있다. 대형마트 등이 규제에 막혀 뒷걸음질 칠 때 쿠팡은 로켓배송으로 시장을 싹쓸이했다. 전날 저녁에 주문해도 새벽이면 물건이 문 앞에 와 있는 총알 배송에 소비자는 쿠팡으로 몰렸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비판을 받던 물류센터는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 사태는 아이러니하게도 쿠팡이 국민의 실생활에 얼마나 스며들어있는지를 바로 보여줬다. 쿠팡 사태가 터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은 “쿠팡이 경쟁자가 없는 시장 지위를 누리고 있고 한국 고객이 데이터 유출에 덜 민감해 보인다”며 “잠재적 고객의 이탈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놨다. 그래서일까? 쿠팡은 역대 최악의 정보 유출 사태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도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대통령이 언급하고 정부 차원의 TF가 꾸려졌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힘겨루기’를 하는 태도를 보이는 중이다. 최근에는 정부의 반박에도 자체 조사 결과를 고집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보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쿠팡은 지난달 25일 ‘정보 유출자는 3300만개 계정에 접근했으나 실제 저장한 정보는 3000여개에 불과하며 제3자 유출 정황은 없는 등 피해가 미미하다’는 내용의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면서 “(유출자는)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언론 보도를 접한 이후 저장했던 정보를 모두 삭제하고 범죄에 사용한 노트북을 파손해 하천에 던졌다”고 주장했다. 쿠팡은 “잠수부들이 벽돌에 담긴 쿠팡 가방에 든 노트북을 하천에서 회수했고 유출자가 클라우드 계정에 등록한 일련번호와 해당 노트북의 일련번호가 일치하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어 “범행에 사용된 PC 와 노트북 등 모든 장치를 회수해 안전하게 확보했고 글로벌 보안업체들의 조사 결과도 진술 내용과 같았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 매출 90% 나오는데 정보 유출 태도·대응 낙제점 쿠팡이 발표한 대로라면 고객 정보 유출 피해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든다. 또 유출자와 접촉해 장치를 확보했으니 추가 피해는 없다. 전체적으로 사건이 축소되는 것이다. 쿠팡의 발표에 정부는 강하게 반발했다. 쿠팡의 조사 내용은 사전에 정부와 어떤 논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됐다는 설명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는 “정보 유출 종류와 규모, 경위 등은 민관합동조사단이 조사 중인 사안”이라며 “쿠팡이 발표한 내용은 조사단에 의해 확인된 바 없다”고 밝혔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과도 “쿠팡 측이 제출한 진술서와 노트북 등 증거물을 분석 중”이라며 “사실관계를 면밀하게 확인하겠다”고 했다. 논란이 계속되자 쿠팡은 정부의 지시를 받아 조사를 진행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경찰은 사전 협의가 없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사실관계가 엇갈리고 있는 것이다. 쿠팡은 지난달 26일 내놓은 입장문에서 “정부의 지시에 따라 수주간 진행한 조사였다”고 선을 그었다. 같은 달 9일 정부가 쿠팡 측에 유출자와 접촉할 것을 제안했고 14일 쿠팡은 유출자를 처음 만난 뒤 해당 사실을 정부에 보고했으며 16일에는 정부 지시에 따라 유출자의 데스크톱과 하드드라이브를 정부에 제공했다는 게 쿠팡 측 주장이다. 하지만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도 “쿠팡의 입장문 형식의 보도자료에서 정부와 협력했다는 내용 중 일부 국정원으로 추정되는 부분도 사실과 다르거나 왜곡된 부분이 있다”고 반박했다. 쿠팡이 자체 조사와 관련해 정부와 사실 공방을 벌이고 있는 와중에 김범석 쿠팡 의장이 사건 발생 한 달여 만에 사과했다. 그동안 박대준 전 대표가 청문회 등에서 뭇매를 맞고 있는 동안에도 김 의장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랬던 그가 정부의 압박이 거세지자 처음으로 입을 연 것이다. 5만원 상당 속사정은? 김 의장은 지난달 28일 “쿠팡의 창업자이자 이사회 의장으로서, 쿠팡 전체 임직원을 대표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저희의 책임으로 발생한 이번 데이터 유출로 인해 많은 분께서 자신의 개인정보가 안전하지 않다는 두려움과 불안을 느꼈고 사고 초기부터 명확하게 직접적으로 소통하지 못한 점으로 인해 큰 좌절감과 실망을 안겨 드렸다”며 “사고 직후 미흡했던 초기 대응과 소통 부족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김 의장은 한 달 만에야 입을 연 부분에 대해 “무엇보다 제 사과가 늦었다”면서 “모든 사실이 확인된 이후에 공개적으로 소통하고 사과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돌이켜보면 이는 잘못된 판단”이라고 고개를 숙였다. 비판과 질책을 겸허히 받아들인다고도 했다. 하지만 자체 조사 논란에 대해서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김 의장은 “쿠팡은 조사 초기부터 정부에 전면적으로 협력해 왔다”며 “일련의 과정에서 많은 오정보가 확산하는 상황에서도 정부의 ‘기밀 유지’ 요청을 엄격히 준수했다”고 주장했다. 김 의장의 사과는 국회 6개 상임위원회가 참여하는 대규모 연석 청문회를 이틀 앞두고 나왔다. 정부가 범부처 TF를 과기부 총리 산하로 확대하고 다각도로 압수수색과 조사를 진행하는 등 대응 수위를 높이는 상황에 압박을 느꼈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그러나 사과와는 별개로 김 의장은 청문회에 불출석하겠다고 밝혔다. 김 의장뿐만 아니라 동생인 김유석 쿠팡 부사장, 강한승 전 쿠팡 대표 등이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하면서 쿠팡에 대한 부정적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여기에 쿠팡이 내놓은 보상안도 도마 위에 올랐다. 쿠팡은 지난달 29일 고객 정보 유출 사태와 관련해 총 1조6850억원 규모의 보상안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전체적으로 보면 1인당 5만원 상당이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뜯어보면 쿠팡의 ‘꼼수’가 보인다. 청문회는 나 몰라라 보상안은 ▲쿠팡 전 상품 구매 이용권 5000원 ▲쿠팡이츠 5000원 ▲쿠팡트래블 2만원 ▲명품 플랫폼 알럭스 2만원 등으로 구성됐다. 소비자들은 보상금의 상당 부분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 등 평소 이용 빈도가 낮은 서비스 이용권 위주로 구성된 점을 지적했다. 실제 이번 보상안을 통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를 처음 알게 됐다는 소비자도 있다. 시민단체도 쿠팡의 보상안에 반발했다. 참여연대는 “1인당 5만원 보상이라고 했지만 현금이 아닌 구매 이용권으로 사실상 강제 소비를 유도하는 방식”이라며 “보상이 아니라 매출 확대를 위한 마케팅에 불과하다”는 내용의 논평을 발표했다. 쿠팡의 행보는 사사건건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국민을 조롱하고 정부를 기만하는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쿠팡이 미국 시장에 상장한 기업이지만 매출 대부분을 우리나라에서 벌어들이는 상황인데도 이 같은 태도를 보이는 것에 분노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회원 탈퇴, 보상안 거부, 집단소송 참여 움직임이 거세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심지어 이재명 대통령도 쿠팡 사태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쿠팡 사태가 일어나고 사흘 뒤인 지난달 2일 “쿠팡 때문에 국민의 걱정이 많다”면서 “사고 원인을 규명하고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관계부처는 해외 사례를 참고해 과징금을 강화하고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도 현실화하는 등 실질적인 실효적 대책에 나서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뒤늦은 사과·꼼수 보상안 도마 위에 이래서 정치권 인사 영입했나? 의혹 12일에도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반복되는 것에 대해 “경제 제재가 너무 약해서 규정 위반을 밥 먹듯이 한다”며 “앞으로는 규정을 위반해 국민에게 피해를 주면 엄청난 경제 제재를 당해서 ‘회사가 망한다’는 생각이 들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규정을 위반하면 난리가 나야 하는 것 아니냐”며 “그런데 위반해도 태도를 보면 ‘그래서 어쩔 건데’ 이런 느낌이 든다”고 지적했다. 정부도 쿠팡에 강력하게 경고하며 전방위 대응을 예고했다. 실제로 같은 달 29일, 배경훈 부총리 겸 과기부 장관 주재로 ‘쿠팡 사태 범정부TF’ 회의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과기부와 경찰청, 개인정보위원회, 금융위원회 등은 역할을 분담해 신속한 조사를 진행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배 부총리는 “쿠팡이 국내 고객 정보 3000만건 이상을 유출한 것은 명백한 국내법 위반 사항으로 정부는 쿠팡이 관련 법령을 위반한 사실이 확인될 경우, 다른 기업과 동일하게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상황에 따라서는 영업정지 여부도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 사방에서 몰아치는 압박에도 쿠팡이 연달아 이상한 행보를 보이자 ‘믿는 구석’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그 정도로 쿠팡의 현재 대응 방식을 이해할 수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쿠팡이 미국 기업인 것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 증시가 쿠팡의 모든 결정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라는 것이다. 실제 쿠팡이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한 다음 날 미국 뉴욕 증시에서 쿠팡의 주가는 6% 급등했다. 국내에서는 쿠팡의 ‘셀프 조사’에 분통을 터트리고 있는데 미국 시장에는 호재로 작용한 것이다. 쿠팡이 정치·국회 인사를 대거 영입한 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정치권 인사를 영입해 쿠팡 관련 각종 논란을 틀어막고 있다는 의혹이다. 해당 의혹은 ‘강력 경고’ ‘전방위적 대응’ 등의 수사를 사용하고 있지만 실제 조사는 흐지부지될 것이라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나오는 배경으로도 꼽힌다. 변죽 울리다 무사통과? 실제 최근 원내대표직에서 사퇴한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의원이 국정감사를 한 달여 앞둔 시점에 박대준 전 쿠팡 대표 및 대관 총괄과 오찬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쿠팡이 일용직 퇴직금 미지급 사건에서 검찰 외압 의혹, 물류센터·배송 기사의 과로 및 산재 사망 문제가 제기된 상황이었던 만큼 적절성 논란이 불거졌다. 김 의원은 그달 16일 자신의 SNS에 “공개 일정이고 적어도 5명이 (함께) 식사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만남보다 대화의 내용이 중요한 것 아니냐? 참고로 지난해 7월16일 쿠팡 물류센터도 방문했었다”고 적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