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수 61명, 그들은 누구인가?

재소자들 부리며 왕처럼 생활

[일요시사 취재1팀] 신승훈 기자 = 우리나라는 1997년 12월30일, 사형수 23명에게 사형이 집행된 이래 지금까지 사형 집행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실질적 사형 폐지국’으로 분류돼 있지만 사형제 자체가 폐지된 것은 아니다. <일요시사>는 인면수심의 61명 사형수들이 저지른 과거 만행과 폭력성을 되짚어봤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육군 22사단 GOP에서 수류탄을 던진 뒤 총기를 난사해 5명을 살해하고 7명을 다치게 한 임 병장에게 지난 19일 사형을 선고했다. 이로써 임 병장은 지난해 8월 장모씨가 사형선고를 받은 이후 6개월여 만에 61번째 사형수가 됐다.

총기 난사 임 병장
61번째 사형 확정

우리나라 형법에서 사형을 규정하고 있는 범죄는 내란죄, 외환유치죄, 여적죄, 살인죄 등 16종이다. 특별 형법까지 포함하면 493개의 항목에서 살인죄를 규정하고 있다. 현재 생존한 61명의 사형수들의 공통점은 모두 살인을 저질렀다는 점이다. 특히 사형수들은 다른 범죄와 경합해 살인을 저지르거나 엽기적인 방법을 동원해 살인 행각을 벌여 사회에서 영원히 격리되는 법정 최고형인 사형을 선고받은 사람들이다.

먼저 임 병장을 포함해 군 형법의 적용을 받고 사형을 선고 받은 사람은 모두 4명이다. 1996년 강원도 철원군 육군 모 부대에서 상관의 욕설을 원인으로 사병 3명을 사살하고 상관 2명에 대해 살인미수를 저지른 김용식에게 1997년 사형이 확정됐다. 군 부대 총기 난사로 인해 사형선고를 받은 이들은 2000년대 이후 인원이 늘었다.

2007년 사형확정 판결을 받은 김동민은 경기도 연천군 최전방초소서 내무반에 수류탄을 투척하고 기관총 44발을 발사해 8명을 살해했다. 2013년에 사형이 확정된 김민찬은 최연소 사형수로 기수열외를 이유로 총기를 난사해 상관 등 4명을 살해했다.


임 병장까지 포함하면 2000년 이후 3명의 군인이 사형수가 됐다. 치정살인으로 인한 사형수는 6명에 달한다. 1997년 사형이 확정된 홍대복은 내연녀를 공범에게 강간케 하고 돌을 매달아 수장시키는 엽기적 방법으로 살인을 저지르는가 하면 지인의 부인을 칼로 찔러 살해하기도 했다.

1999년 사형이 확정된 이재복은 아내와 불륜이 의심되는 남성을 토막살해한 후 방화했다. 결별을 요구한 동거녀를 살해하고 2년 뒤 채무를 회피하려 내연녀와 7세 아들을 죽이고 공범까지 살해한 고흥수는 2000년 사형이 확정됐다. 2006년 사형이 확정된 장기수는 내연녀와 관계 복원을 위해 아내와 아들을 청산가리로 살해하고 범행 후 방화까지 하는 치밀함을 보이기도 했다.

임 병장 이전에 2015년에 사형이 확정된 60번째 사형수인 장모씨는 전 애인 A씨의 집에 배관수리공으로 위장해 침입한 뒤 A씨의 부모를 흉기로 살해 후 뒤늦게 귀가한 A씨를 감금하고 성폭행하기도 했다. 이처럼 치정문제로 인해 사형수가 된 이들이 전체 사형수의 10%에 해당한다.

대부분 극악무도한 살인범
범행 수법도 엽기·충격적

1996년부터 2000년까지 6명의 조폭이 사형 확정판결을 받았다. 강영성은 타 조직원 살해와 경찰관 2명을 살해한 혐의로 1996년 사형을 확정받았고, 안양AP파 조직원인 이우철·정병근·정병옥은 청부 폭력 사실을 폭로하려는 동료 조직원과 그의 여자친구를 살해한 뒤 시체를 암매장한 혐의로 사형수가 됐다.

막가파의 두목 최정수는 귀가하던 단란주점 업주를 납치해 승용차와 900만원을 뺏은 뒤 소금창고에 생매장해 1997년 사형판결을 받았다. 2000년 들어서 조폭조직에 마지막 사형수는 이순철이다. ‘영웅파’의 두목 이순철은 조직원 곽모씨를 살해한 뒤 사체를 수백 개로 토막냈다. 공범들끼리 비밀 유지를 목적으로 사체 장기 일부를 꺼내 나눠먹기도 한 것으로 알려진다.
 

패륜으로 인해 사형수가 된 이들은 3명이다. 2004년 사형판결을 받은 김근우는 자신의 빚을 갚아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어머니와 할머니를 살해했고, 형에게는 살인미수를 저질렀다. 2003년 사형판결을 받은 김중호는 재혼한 아내의 딸을 상습 성추행했다. ‘더 이상 성추행을 안한다’는 조건으로 아내가 고소를 취하하자 아내와 의붓딸 2명을 망치와 가위로 살해했다. 패륜 존속살해범 중 대표적인 인물은 1994년 사형을 언도받은 박한상이다.


1994년 5월 100억대 자산가인 한약상 부부의 집에 불이나 부부가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경찰은 처음에 단순 화재 사고로 처리했지만 부검과정에서 40여 군데 난자된 상태가 발견됐다. 이후 “박한상의 머리에 피가 묻었다”는 간호사의 증언과 박한상 다리의 이빨자국을 이야기한 친척의 제보 및 수사 끝에 범행 일체를 자백받았다. 유학생활 중 도박과 향락에 빠진 박한상은 도박 빚을 갚아주지 않는 부모를 원망하고 재산 상속을 목적으로 살해를 감행했다.

유영철, 강호순…
공포의 연쇄살인

박한상 패륜사건은 훗날 400만명의 관객을 동원한 <공공의 적>의 모티브가 됐다. 영화의 모티브가 된 또 다른 사건이 있다. 1995년 사형을 언도받은 성낙주가 저지른 ‘월곡동 H여관 모녀 살인사건’이다. 1994년 H여관에 장기투숙하던 당시 성낙주는 여관주인 전모씨와 그 딸인 여중생 이모양을 목졸라 살해하고 시신을 토막 내 암매장했다.

승려생활을 하던 성낙주는 1984년 승적을 박탈당하고 떠돌이 생활을 시작한다. 점집을 운영하면서 생계를 이어나가던 성낙주는 점집을 방문한 전씨와 처음 만나 내연관계로 발전하게 되면서 성낙주는 전씨 소유의 여관 카운터를 봐주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다툼이 잦아지자 전씨의 딸이 성낙주에게 결별을 요구했고 이에 분노한 성씨는 전씨의 딸 이양을 1994년 8월14일 목 졸라 살해한다.
 

일주일 뒤 여관에서 전씨에게 “가진 것도 없고 능력도 없는 당신을 내가 어찌 믿고 사느냐”는 말에 격분해 전씨도 토막 내 살해했다. 놀라운 점은 2명을 살해하고도 태연히 여관카운터를 지키고 있었다는 것. 성낙주가 카운터를 혼자 지키고 있는 것을 이상하게 여긴 전씨 친구의 신고로 덜미를 잡혔다.

이 사건은 2007년 9월 개봉한 영화 <마이파더>의 모티브가 됐다. 이 영화는 22년 만에 사형수 성낙주를 찾은 입양아 ‘애런 베이츠’의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돼 화제가 됐지만 살인범 미화로 논란이 돼 홍역을 치렀다.

61명의 사형수 중 연쇄살인을 저지른 사람은 총 5명이다. 인천 연수구 청학동 연쇄살인사건의 범인 오수현은 2명 살해, 3명 중상해를 입히고 4명을 성폭행해 1996년 사형판결을 받았다. 부산·경남 지역에 연쇄살인범으로 악명을 떨친 정두영은 부산 및 울산 등지에서 23건의 강도 사건을 벌임과 동시에 둔기로 내려쳐 9명을 살해하고 10명에게 중경상을 입힌 혐의로 사형을 언도 받았다.

2003년에는 용인 연쇄살인범 허재필은 공범 김경훈과 함께 여성 6명중 2명을 성폭행하고 살해했다. 김경훈은 체포직전 자살했고 허재필은 재판과정에서 김경훈의 지시를 따랐을 뿐이라며 변명했지만 법원은 “열흘에 걸쳐 6명의 여성을 살해하고 강간한 행위가 결코 다른 사람의 강요나 지시에 의해 피동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 범죄”라고 강조하면서 허재필에 사형을 선고했다.

목숨만 붙어있는
저 세상 사람들

2004년에는 대한민국을 발칵 뒤집혀 놓은 희대의 연쇄살인마 유영철이 체포됐다. 유영철은 2003년 9월부터 2004년 7월까지 무려 20명을 살해했다. 연쇄살인 이전 14차례의 특수절도 및 성폭력 전력으로 11년을 전국 각지 교도소에서 보낸 유영철은 2003년 9월11일 출소해 2주 뒤 숙명여대 명예교수 이씨와 그의 부인을 처음 살해했다.

이후 서울 각지에서 주로 부유층 노인 및 출장마사지사 여성 등 총 20명을 살해한 혐의를 받았다. 유영철은 2005년 6월9일 성폭력범죄, 강간살인, 1급살인, 과실치사혐의가 인정돼 대법원에서 사형을 언도받았다. 강호순도 연쇄살인마로 악명을 떨쳤다.

강호순은 2006년 9월부터 2008년 12월까지 총 10명을 살해했다. 강호순이 살해한 것으로 드러난 부녀자는 노래방 도우미 3명, 회사원 1명, 주부 1명, 여대생 2명이다. 이어 여성 공무원 윤모씨를 살해했다고 자백했고 2005년 10월 장모 집에 불을 질러 자신의 장모와 처도 살해했다고 밝혔다.
 


특이할 점은 강호순은 경찰에 체포된 이후에도, 심지어는 사형이 확정된 이후에조차 반성의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오히려 같이 수감된 동료 재소자들을 노예와 다름없이 부려먹으며 왕처럼 생활해 담당 형사와 해당 교도소의 교도관들을 놀라게 했다고 전해진다.

아동을 대상으로 한 사형수가 8명으로 가장 많이 나타났다. 특히 1995년부터 1999년까지 무려 6명이 아동 관련 범죄로 사형 확정판결을 받았다. 여자를 납치해 살해한 뒤 시체를 유기한 성태수는 1995년 사형이 확정됐고, 1세 여아를 납치하고 감금해 9차례 성폭행하고 살해한 전석재도 1995년에 사형이 확정됐다.

아동 상대 강령범죄 최다
영화 단골 모티브로 등장

8세 남자아이를 납치해 소나무에 묶어 질식 살해하고 가족에게 돈을 요구한 전용재의 경우도 1995년 사형 언도를 받았다. 1997년 사형을 선고받은 임동수는 무단 주거침입해 4세, 6세 아동과 어머니를 살해했고 사형당하고 싶다며 범행 후 주부 시신 옆에 누워있는 만행을 저질렀다. 이원수는 6세, 9세 여아와 18세 여학생을 성폭행한 후 살해했다.

장세명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4세, 6세 어린이 2명을 유인해 성폭한 뒤 살해했고 이후 시체에 닻을 달아 바다에 유기하는 엽기적인 행태를 보였다. 2000년 이후에는 3명이 사형을 언도받았다. 박진봉은 10세 남자아이를 납치해 부모에게 금품을 요구하다 살해한 뒤 땅속에 은닉했다. 김해선은 귀가하던 11세 여아를 성폭행 후 살해하고 17세 여학생도 성폭행 후 고문하고 살해했다. 이어 12살 남동생도 목졸라 살해해 2001년 사형 확정판결을 받았다.

2007년에는 안양 초등생 유괴 살해 사건이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다. 초등생들의 실종 초기에 목격자 제보가 없어 사건은 미궁으로 빠져들었고 사건 발생 9개월이 흐른 12월31일 공개수사로 전환됐다. 실종된 것으로 알려진 이양과 우양이 각각 이듬해 3월11일, 3월19일 발견됐고 면식범으로 알려진 정성현이 2008년 3월17일 검거됐다.


이 사건으로 경찰은 초동수사가 부실했다는 것을 인정하기도 했다. 빚독촉을 이기지 못하고 살해를 저지른 경우도 있다.

1999년 사형 언도를 받은 이동진은 빚 독촉을 받자 5촌 아저씨를 비닐로 질식시켜 살해했고 이어 부인과 딸, 금은방 종업원을 칼로 찔러 살해했다. 박종규는 빚 독촉하는 2명을 살해 후 암매장해 시체를 소각하는 엽기적 행태로 2003년 사형이 확정됐다.

최고령 사형수는 2010년 사형이 확정된 ‘보성 어부’ 오종근이다. 2007년 8월31일 당시 69세이던 어부 오종근은 전남 보성으로 여행 온 대학 신입생 커플 2명을 자신의 배에 태웠다. 여성을 성추행 하기 위해 남성을 먼저 바다로 밀어 살해한 뒤 저항하던 여성도 바다에 빠뜨려 살해했다. 이어 9월25일에도 같은 방법으로 20대 여대생 2명을 살해했다.

타살 증거를 찾지 못해 동반자살로 판단된 이 사건은 두 번째 피해자 중 한 여성이 남긴 휴대전화 문자가 발견된 후 실마리가 풀렸다. 내용은 ‘저희 아까 전화기 빌려드린 사람인데 배타다가 갇힌 거 같아요. 경찰 보트 좀 불러주세요’였다. 문자로 정황을 파악한 경찰은 보성 앞바다를 수색했고 오씨의 선박 내부에서 피해자의 신용카드와 볼펜, 여자의 것으로 보이는 긴 머리카락이 발견돼 오씨를 검거했다.

최고령 보성 어부
외국인 왕리웨이

오씨는 검거 후 “피해자들이 자기에게 배를 태워 달라고 한 것이 잘못”이라며 “돈도 안 받고 공짜로 태워준다니까 그게 좋아서 내 배를 탄 것이 아니냐”고 말해 공분을 샀다. 최초의 외국인 사형수는 2001년 사형이 확정된 중국인 왕리웨이다. 경기 안산서 둔기로 부녀자 8명을 중상해 입히고 이 중 2명을 강제추행한 후 돌과 쇠망치로 내리쳐 살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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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승자박’ 정청래 리더십 위기

‘자승자박’ 정청래 리더십 위기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리더십이 위기다. 1인1표제가 통과된 이후 힘을 받나 싶더니,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문제와 2차 종합특검 후보 논란 등 악재가 겹치면서 연임에 적신호가 켜졌다. 이재명 대통령도 시시각각 리더십 시험대에 올랐지만 결국 대권가도의 길을 걸었다. 정 대표도 무사히 ‘이재명의 길’을 걸을 수 있을까? 지난 10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를 ‘일시 중지’하기로 결론지었다. 늦은 시간까지 이어진 의원총회서 민주당 의원들은 대체로 지방선거 전 합당 추진을 중단하자는 의견을 낸 것으로 전해진다. 충분한 논의 없이 합당을 띄워 당을 혼란스럽게 하고, 당·청 관계까지 어색해진 만큼 ‘정청래 책임론’이 불거지면서 리더십은 타격을 입게 됐다. 더 좁아진 운신의 폭 이날 정 대표는 국회에서 비공개 최고위원회의를 연 뒤 브리핑에서 “오늘 민주당 긴급 최고위와 함께 지방선거 전에 합당 논의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대신 지방선거 후 통합을 추진하기 위한 ‘연대와 통합을 위한 추진준비위원회(이하 통합추진준비위)’ 구성을 결정하고, 혁신당에도 준비위를 구성할 것을 제안했다. 정 대표는 “당 대표로서 혁신당과 통합을 제안한 것은 오직 지방선거 승리와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한 충정이었다”며 “그러나 통합 제안이 당 안팎에서 많은 우려와 걱정을 가져왔고, 통합을 통한 상승 작용 또한 어려움에 처한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러 자리에서 의원들의 말씀을 경청했고 민주당 지지층 여론조사 지표도 꼼꼼히 살피는 과정에서 더 이상 혼란을 막아야 한다는 당 안팎의 여론을 무겁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당을 혼란케 한 점에 대해서도 사과했다. 정 대표는 “그동안 통합 과정에서 있었던 모든 일들은 저의 부족함 때문”이라며 “국민 여러분과 민주당 당원들, 혁신당 당원들께 사과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당초 이달 13일 입장을 밝히겠다던 혁신당은 날짜를 앞당겨 지난 11일 긴급 최고위원회를 열고 사안에 대해 입을 열었다. 혁신당 조국 대표는 통합추진준비위 구성에 동의하며 6월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열어뒀다. 민주당을 향한 뼈있는 말도 이어졌다. 조 대표가 “선거 후에는 통합의 의미가 무엇인지 확인하고 내용과 방식에 대한 논의를 책임감 있게 이어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 것이다. 그동안 혁신당은 민주당에 흡수되는 방법을 피하고자 했던 만큼 합치는 방식에 대한 합의점을 찾는 것이 합당의 최대 과제로 남아있다. 조 대표는 “양당 간 회동이 이뤄지면 먼저 민주당이 제안한 연대가 지방선거에서의 연대인지 아니면 추상적 구호로서의 연대인지 확인해야 한다”며 “지방선거 연대가 맞다면 추진준비위에서 그 원칙과 방법을 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모든 과정에서 양당은 상호 신뢰와 존중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진행해야 한다”며 “특정 정치인 개인과 계파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면 반드시 역효과가 난다. 국민과 양당 당원께 또다시 실망을 드리고 말 것”이라고 경고했다. 제동 걸린 민주당-혁신당 합당…다음 복안은? ‘쌍방울 변호인’까지…제대로 꽂힌 ‘2연타’ 조 대표는 정 대표의 사과를 수용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조 대표는 “정 대표께서 혁신당 당원에게 표명한 사과를 받아들인다”며 “혁신당 당원은 당으로 향해지는 비방과 모욕에 큰 상처를 입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고 밝혔다. 혁신당 박병언 선임대변인도 회견 후 기자들과 만나 “(민주당이) 단순히 연대라고만 표현했는데 우당 간 레토릭적 연대를 의미하는지, 실질적으로 두 당이 지선을 치러낸다는 선거 연대인지 분명히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며 민주당의 답변을 요구했다. 앞서 민주당은 합당이 아닌 ‘지선 이후 통합’이라는 단어를 썼는데, 민주당의 답변에 따라 향후 당의 대응이 달라질 것으로 풀이된다. 합당 논의가 중지되면서 당이 숨 고르기에 들어가나 싶더니 2차 종합특검으로 추천된 전준철 변호사가 새로운 불씨가 됐다. 민주당이 추천한 전 변호사는 2023년 ‘불법 대북 송금 사건’으로 구속 기소된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 등의 변호인으로 선임된 인물이다. 1심 이후 사임했지만, 친명(친 이재명)계에서는 “이재명 죽이기” “제2의 체포동의안 사태” 등 격하게 반발했다. 친청(친 정청래)계로 분류되는 이성윤 최고위원이 전 변호사를 추천하면서 반발이 더욱 거세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전 변호사는 검사 시절 김건희 주가조작 사건, 한동훈 채널A 사건 등을 담당했다. 이 최고위원은 “(전 변호사가) 윤석열·김건희 수사를 할 때 서슬 퍼런 윤 총장하에서도 결코 소신을 굽히지 않고 강직하게 수사했다”며 “이번 2차 종합특검의 중요성에 비춰 적임자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확한 팩트 확인 없이 전 변호사가 김성태 대북 송금 조작 의혹 사건을 변호했고, 그런 변호사를 추천함으로써 마치 정치적 음모가 있는 것처럼 의혹이 확산하는 것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정·이 차이는? ‘윤정부에서 탄압을 받은 변호사’를 강조했지만, 민주당을 설득시킬 명분이 부족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러자 이 최고위원은 “이번 2차 종합특검 추천 과정에서 조금 더 세밀하게 살피지 못한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앞으로는 더 세심히 살피겠다”고 사과했다. 정 대표도 거듭 고개를 숙였다. 정 대표는 해당 사태를 인사 검증 실패에 따른 ‘사고’로 규정하고 “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일의 책임은 당 대표인 저에게 있다. 대단히 죄송하다”며 사과의 뜻을 밝혔다. 지도부가 진화에 나섰지만 사태는 이 최고위원을 향한 사퇴 압박으로 이어졌다. 이번 사태가 단순한 인사 사고가 아닌 정청래 체제를 향한 불만이 표면화된 결과라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무산과 후보자 논란으로 정 대표의 리더십이 2연타를 맞으며 8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연임 가능성도 불투명해졌다. 정 대표는 직접 연임 여부를 밝히지 않았지만 1인1표제 등 당원의 힘을 강화하는 작업에 공을 들이며 대권주자로 나서기 위한 입지를 다지고 있다는 해석이 우세했다. 혁신당과의 합당 이후 지방선거를 승리로 이끈다면 공은 정 대표에게 돌아간다. 그 성과를 토대로 대표 연임에 성공한 뒤 차기 대권까지 밟는 이른바 ‘이재명의 길’을 염두에 뒀다는 것이다. 여의도가 바라본 이재명의 길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친문(친 문재인)계가 민주당을 꽉 쥐던, 시절 그는 한 줌의 계파도 없이 고군분투하며 기득권에 맞섰다. 온건파 사이에서 파격적인 개혁을 앞세워 당원들의 갈증을 해소했고, 이들을 ‘개딸(개혁의 딸)’로 묶어 본격적인 팬덤 정치에 나섰다. 당 대표 시절에는 대선에 출마하려는 대표의 사퇴 시한인 ‘대선 1년 전’에 예외를 두는 내용의 당헌을 바꾸면서 극심한 내홍에 시달렸다. 그럼에도 당시 이재명 대표는 자신 있게 뜻을 밀어붙였고 전당대회서 최종 득표율 85.4%로 연임에 성공했다. 리더십 심폐소생 권력의 정점에 선 이 대통령이 걸어온 길은 비주류에서 주류로 거듭나고 싶어하는 정치인들의 ‘롤모델’로 자리 잡았다. 정 대표는 그런 거친 이재명의 길 초입에 들어섰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사이다 화법’으로 지지 세력을 키우는 시도는 이 대통령과 매우 유사하다. 이 대통령도 성공하지 못했던 1인1표제를 정 대표는 해냈다”면서도 “서둘렀던 게 문제다. 합당도 시기가 적절하지 못했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어 “이 대통령은 당 대표이던 시절부터 모든 것이 순차적으로 맞아떨어졌다. 그때는 민주당이 야당이었고 윤석열·김건희라는 공공의 적이 있으니 친명과 비명(비 이재명)이 매일같이 싸워도 봉합할 명분이 충분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대통령과 정 대표의 차이는 측근의 유무다. 이 대통령은 성남시장일 때부터 함께해 온 이른바 ‘성남 라인’이 존재했고, 김현지 대통령비서실 제1부속실장 등 측근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존재했다”며 “친청을 자처하는 의원들이 있지만 이들을 측근이라고는 볼 수 없다. 김어준·유승민 두 사람이 정 대표에게 영향을 주는 인물로 꼽히지만, 그들조차도 자기 정치에 당 대표를 쓰는 느낌이 든다. 누가 중심이고, 누가 휘둘리는지 알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승부수를 던지지 않는 한 지방선거가 정 대표의 마지막 리더십 시험대가 될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린다. 지방선거에 사활을 걸어 ‘압승’을 끌어낸다면 무너진 리더십을 다지는 건 물론 8월 전당대회 출마 명분까지 얻을 수 있다. 당장은 정 대표가 타격을 받았지만 선거 국면을 통과하면서 과오가 희석되는 흐름에 기대를 건 셈이다. 민주당은 오는 4월 중순까지 모든 지방선거 공천을 마무리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다만 경선 규칙과 공천 룰 등을 두고 계파 간 갈등이 재점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모든 권력에는 비판이 따르기 마련”이라는 한 정치권 관계자의 말처럼 반대 여론을 찬성 여론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리더십이 판가름 난다. 시계를 돌려 2024년 4월, 이 대통령 역시 당 대표이던 시절 공천 시즌을 앞두고 ‘비명횡사’ 논란에 휩싸였다. 현역 의원 의정평가 하위 20% 통보를 박은 이는 6명으로 모두 비명계였던 만큼 의원들 대다수가 ‘친명’을 내세워 마케팅을 이어갔다. 이, 비주류서 180석 야당 대표로 지선 앞둔 대표님의 큰 그림은? 공천 갈등은 당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졌고 민주당이 패배했던 2012년 총선이 되풀이될 것이란 당내 우려가 커졌다. 하루가 멀다고 나오는 사퇴 요구에 이 대표는 “툭 하면 사퇴 요구를 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런 식으로 사퇴하면 1년 내내 대표를 바꿔야 한다”며 오히려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친명과 비명 간의 갈등은 “환골탈태 과정에서 생기는 약간의 진통”으로 진단했다. 이 대표의 리더십이 총선의 최대 걸림돌로 여겨졌지만, 180석 공룡 야당을 탄생시키면서 여론을 뒤집었다. 정 대표 역시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고 (합당 논란을)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 지방선거 승리에 올인하겠다”며 반전의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기습 행동으로 당을 흔들지 종잡을 수 없어 잃어버린 신임을 되찾는 것이 지방선거를 앞둔 첫 번째 과제로 여겨진다. 정 대표는 ‘억울한 컷오프를 최소화하는 것’에 방점을 찍었다. 지난 11일에는 “공천 과정 전반의 불공정·불합리한 사례를 사전에 점검해 신뢰받는 공천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노력하겠다”며 공천신문고 구성 안건을 의결했다. 이날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민주당이 합당 과정에 여러 가지 내홍을 겪고 걱정을 끼쳐드렸지만 그런 와중에도 할 일은 빈틈없이 해왔다”며 “민주당은 공정한 경선을 통한 공천, 투명한 공천이 지방선거 승리의 요체임을 여러 차례 밝혀왔다. 당 대표의 이 같은 의지가 (공천신문고) 제도를 통해서 충실히 반영되고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말한다”고 강조했다. 정 대표가 ‘이재명 모델’로 노선을 잡았지만 ‘제2의 ○○○’이라는 꼬리표가 오히려 발목을 잡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대선을 앞두고 과감하게 오른쪽으로 핸들을 꺾은 이 대통령의 ‘중도 보수’ 전략까지 정 대표가 따라 할 수 있겠냐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문재인 전 대통령에 실망한 사람들이 정권교체에 손을 들어줬다. 이 대통령이 임기를 마칠 때 즈음이면 정권 유지든 교체든 국민의 마음속에 새로운 잣대가 세워질 것”이라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좌우 통합을 이뤄낼 지도자를 원할지, 지금보다 조금 더 강경한 지도자를 원할지는 현 정부에 달려 있다. 그 시대에 맞는, 또 국민이 원하는 사람이 차기 대권주자로 분류될 것”이라고 봤다. 신선한 뉴페이스? 이어 “이 대통령은 후임자를 키우지 않는다고 한다. 미래의 민주당은 당 대표도, 차기 대권주자도 ‘포스트 이재명’이 아닌 새로운 모델이 필요하다”며 “이 대통령의 행보가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라 이재명 그림자에만 메어서는 민주당이 앞으로 나아갈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극단으로 치닫는 여야 갈등 지난 12일 이재명 대통령이 설을 앞두고 민생 회복과 국정 안정을 위한 초당적 협력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여야 대표를 오찬에 초대했지만, 약속 시간을 한 시간 앞두고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불참을 통보했다. 장 대표는 “(이번 회동이) 부부 싸움하고 둘이 화해하겠다고 옆집 아저씨 불러놓는 꼴이라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며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 이어 “오늘 회동에 가면 여야 합치를 위해 무슨 반찬을 내놨고, 쌀에 무슨 잡곡을 섞었고 그런 것들로 오늘 뉴스를 다 덮으려 할 것”이라며 “대한민국 사법시스템 무너지는 소리를 덮기 위해 여야 대표와 대통령이 악수하는 사진으로 모든 걸 다 덮으려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날 밤 민주당이 추진하는 이른바 ‘재판소원법’과 ‘대법관증원법’이 국민의힘 반발 속에 여당의 주도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한 것에 대한 불만을 표현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정청래 대표는 SNS를 통해 “국민과 대통령에 대한 예의는 눈곱만큼도 없는 국민의힘의 작태에 경악한다”며 “본인이 요청할 때는 언제고 약속 시간 직전에 이 무슨 결례인가. 국민의힘, 정말 ‘노답(답이 없음)’”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청와대도 “이번 회동은 국정 현안에 대한 소통과 협치를 위한 자리였다. 그런 취지를 살릴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는 데 깊은 아쉬움을 전했다”고 밝혔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