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속 불황 속설 오해와 진실

여기저기 불길한 징조 ‘불안하네∼’

[일요시사 경제팀] 양동주 기자 = 수치로 드러나는 지표는 ‘호황’과 ‘불황’의 반복을 예측하는 가장 신뢰할 만한 경제학적 접근법이다. 허나 멀게만 느껴지는 지표보다 확실히 규명되지 않은 이른바 ‘속설 경제학’에 사람들은 더욱 민감하게 반응한다. 흔히 통용되는 ‘불황징크스’는 과연 믿을 만한 것일까.

불황의 그늘이 드리워질수록 서민들의 삶은 팍팍해진다. 지갑이 얇아진 만큼 섣부른 소비는 금물이다. 정신적 충족과 위안을 얻기 위한 소비, 즉 큰돈이 들 법한 선택은 당연히 우선순위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모든 상품이 안 팔리는 건 아니다. 불경기를 틈탄 ‘불황징크스’는 서민들의 변화된 소비 패턴을 암시한다.

[불황의 척도]
미니스커트 효과

“불황에는 역시 미니스커트”라는 속설은 가장 친숙한 불경기 징크스다. 가라앉은 기분을 띄우거나 무거운 사회적 분위기를 환기하기 위해 미니스커트를 입는다는 것이다.

이번 겨울은 미니스커트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밑단이 퍼진 형태의 A라인 스커트와 타이트한 형식의 H라인 미니스커트 모두 불티나게 팔린다. 모직소재의 미니스커트와 발색이 오래 지속되는 틴트 제품이 인기상품에 올랐다.

물론 ‘불황=미니스커트’ 공식을 맹신할 필요는 없다. 1970년대 미국 경제학자 마브리의 ‘치마 길이 이론(Skirt-Length Theory)’에 따르면 여성의 치마 길이는 오히려 호황일수록 짧아진다. 지금도 미국 증권투자가들에게는 ‘롱 스커트=약세장’, ‘미니스커트=강세장’이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진다.

가장 큰 불황의 시기였던 1929년 미국 대공황 때 여성들의 치마 길이가 발등을 덮을 만큼 길었던 것도 미니스커트 속설을 의심케 한다. 국내에서도 외환위기를 겪은 1997년에 치마가 길어긴 전례가 있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경기와 상관없이 미니스커트는 꾸준히 인기몰이 중이다.

[작은 사치]
진해지는 립스틱

불황일수록 립스틱이 잘 팔린다는 ‘립스틱 효과’는 1930년 미국의 대공황 시기에 생겨난 용어다. 심각한 불황속에서 소비자들의 소비 심리가 움츠러들지만 립스틱 만큼은 매출이 급증한다는 것이다. 당시 경제학자들은 “많은 돈을 들이지 않고도 품위를 유지하려는 태도”라고 정의한 바 있다.
 

실제로 많은 여성들이 넉넉지 않은 자금 사정으로 인해 화장품을 사지 못하고 립스틱만 구매하는 경우가 많다. 슬픔, 우울함을 극복하는 작은 사치로서 립스틱만큼 만족감을 높이는 게 없다는 뜻이다. 특히 빨간색 립스틱은 얼굴을 화사하게 보이도록 해 인기가 높다. 일부에서는 빨간 립스틱 구매가 늘면 결국 경제에 빨간 불이 켜졌다는 것으로 인식하기도 한다.

한 글로벌 화장품 회사는 이와 관련해 립스틱 판매량과 경기의 상관관계를 보여주는 립스틱 지수를 만들기도 했다. 9·11테러 당시 불황기를 맞은 미국에서는 립스틱 지수가 크게 상승했는데 자연색 계통보다 화사하면서도 강렬한 와인색 립스틱이 인기였다고 한다.

[성욕도 연관]
콘돔 판매는?

불황형 상품으로 인식되던 콘돔시장은 최근 3년 사이에 급성장했다. 2011년 40억원대이던 콘돔 시장 소매 유통분야 판매액은 어느새 100억원을 바라보고 있다.

콘돔이 잘 팔리는 것은 건강한 성생활에 대한 인식이 확산된 측면과 함께 불황의 영향이 가세한 결과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고용 침체 및 퇴직자 증가, 소득 정체·감소에 따른 미래의 불안감으로 부부들이 출산 계획을 늦추는 데다, 가계경기 위축에 따른 외식 자제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함정이 있다. 콘돔업체들의 매출액 증가는 경기 불황 때문이 아니라 콘돔의 해외 수출량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콘돔 시장은 공공 시장과 상용 시장으로 구분되는데, 공공 시장의 규모는 약 20억개로 한국 기업들이 30퍼센트 이상을 공급함으로써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한다.

업계에서는 불황일수록 콘돔이 많이 팔린다는 속설에 신빙성이 없다는 입장이다. 업계 관계자는 “콘돔을 두고 불황의 골이 깊을수록 호황을 누리는 ‘열등재’ 상품으로 분류하는 건 단편적인 시각”이라고 말했다.

[불황의 표본]
정장 매출은?

흔히 정장 매출 감소는 불황의 영향으로 받아들여진다. 가정에서 의류비 지출을 줄일 때 여성복→아동복→남성복 순서로 이어지는데 남성복을 대표하는 정장의 수요 감소는 가장 뒤늦게 이뤄진다.

실제로 남성 패션시장에서 캐주얼 의류 매출비중은 정장 매출을 거의 따라잡았다. 캐주얼 매출 증가율은 줄곧 정장 매출 증가율을 앞서 왔다. 2004년 정장 매출이 남성 패션시장 전체에서 차지한 비중은 49.8%로 거의 절반 수준이었다. 하지만 이 비중은 매년 조금씩 떨어져 지난해에는 34%로 감소했다.

널리 알려진 미니스커트·립스틱 주목
점집, 복권, 도박…불안한 현재 자화상

정장의 위축은 경기 불황 탓이 크다. 계절별로 최소 1벌 이상의 정장을 입는 것이 추세였지만 성인 남성들이 얇아진 지갑 탓에 정장 구매를 크게 줄였다. 패션업계도 2009년 금융위기를 전후로 가두점 확장과 신규 진출을 최소화하고 있다.

다만 정장 판매 감소를 무조건 불황과 연결 짓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차라리 실용성을 강조하는 소비성향 때문이라고 보는 게 타당하다. 직장 내에서 캐주얼 착장이 트렌드로 굳어지면서 격식보다 실용성에 방점을 둔 소비 성향이 주류로 자리 잡았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뜨는 불황 효자]
고공행진 초콜릿

지출이 줄어들면 작은 투자로 높은 만족을 주는 상품이 뜬다. 초콜릿이 대표적이다. 게다가 초콜릿의 단맛은 불황의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으로 인식된다. 그러나 FTA 확대와 브랜드간 경쟁 등의 영향으로 예년 대비 가격부담이 많이 줄어들면서 초콜릿 판매가 증가했다고 보는 게 더 타당하다.

이를 반영하듯 최근 프리미엄 초콜릿의 인기는 그야말로 뜨겁다. 홈플러스가 최근 4년간 1월21일∼2월9일 자사 초콜릿 매출을 분석한 결과, 고급 상품군으로 분류되는 수입산 비중이 2013년 58.3%에서 올해 70.2%로 높아졌다.
 

2012년 10월 국내에 상륙한 벨기에 프리미엄 초콜릿 브랜드 고디바는 론칭 3년여 만에 매장 수를 24개까지 늘렸다.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국내 제과업체들도 고급 초콜릿 시장 공략에 나서고 있다. 74년 전통의 벨기에 초콜릿 명가 ‘구드런’과 손잡고 프리미엄 초콜릿 ‘Mr.B’를 출시한 오리온은 제품 알리기에 적극 나서고 있다. 롯데제과는 지난해 말 젊은 여성층을 겨냥한 프리미엄 초콜릿 브랜드 ‘샤롯데’를 선보이고 ‘샤롯데 헤이즐넛 클래식’ 등 6종의 제품을 출시한 바 있다.

[위로 받으려…]
문전성시 점집

점집들이 호황을 누리고 있다. 총선을 앞두고 정치인과 선거 관계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데다 취업난에 허덕이는 대학생과 취업준비생 등 젊은 세대까지 문을 두드리면서다. 갈수록 어려워지는 경제상황에 미래를 불안해하는 시민들의 발길까지 더해져 점집과 철학관, 역술원·사주카페가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사주카페 역시 사주를 보려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5000원의 타로점에서부터 1만5000원부터 시작하는 사주 등 끼니 값을 훌쩍 뛰어넘는 복비에도 선뜻 지갑을 연다. 장기불황과 극심한 취업난 등 불확실한 미래 속에서 상황이 나아지질 않다보니 무속과 역술 등에 의존하려는 경향이 높아지는 까닭이다.

[불황형 상품]
복권은 얼마나?

경기가 어려울 때 찾는 사람이 늘어나는 ‘불황형 상품’ 가운데 복권은 첫손에 꼽힌다. 지난해 복권 판매액은 3조5551억원으로 1년 전보다 2724억원 증가했다. 2003년 4조2342억원을 기록한 이래 최고치를 기록한 셈이다.

GDP 대비 복권판매액 비율은 2011년 이후 0.23% 정도로 유지되고 있다. OECD 평균은 0.45% 미국은 0.38%이다. 로또(온라인복권) 판매액은 3조2571억원, 2004년 이후 가장 많았고 올해 판매량은 더 많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합리적 소비 트렌드 변화상
징크스 맹신할 필요는 없어

복권위원회는 복권판매점 432개를 신규개설한 데다 복권에 대한 긍정적 인식 제고, 2014년 세월호 사고 이후 기저효과 등에 힘입어 판매량이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술·담배와 함께 대표적인 불황 상품인 복권의 판매량이 증가한 것은 현 경제 상황을 반영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합리적 소비]
[렌탈이 대세]

불황은 렌탈 시장을 키우는데 일조하고 있다. 경기침체의 여파로 돈은 지불하되 소유하진 않는 렌탈이 보편적인 소비 방식으로 빠르게 자리매김하고 있어서다. 이미 구매력이 약화된 소비자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고 있다. 더구나 한 번에 목돈을 들이지 않아도 고가의 다양한 상품을 사용할 수 있고, 주기적인 관리까지 받을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KT경제경영연구소에 따르면 국내 렌탈 시장 규모는 연평균 12%대의 성장률을 보이며 지난 2011년 10조6000억원에서 2015년 16조9000원으로 60%가량 커졌다.

신규 진출 업체가 늘면서 시장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업계 및 증권사 등에 따르면 현재 국내 렌탈 업체수는 무려 2만3000여개에 달한다. 명품, 유류, 잡화, 악기, 유아용 장난감 등으로 지속적으로 영역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다만 과거 정수기, 비데 등 생활 가전분야에서 렌탈이 보편화 된 상태였고 이전부터 렌탈시장의 급성장은 충분히 예견된 바 있어 굳이 불경기에 국한지을 필요가 없다는 주장도 곳곳에서 제기된다.

[실속형 신풍속]
[벌크상품 불티]

불황의 골이 깊어지면서 경제적 여유가 없는 사람들이 저렴한 가격에 대용량 제품을 구입하는 ‘벌크(Bulk)형 소비’ 성향이 심화되고 있다. 경기 침체로 세상이 각박해지면서 사람이 아닌 물건이나 음식을 통해 정신적 충족감과 위안을 얻는 소비자가 늘고 있는 것이다.

벌크형 소비는 전형적인 불황형 소비 트렌드로 꼽힌다. 대용량 식음료를 사서 집에 쟁여두면 알뜰한 소비를 했다는 만족감과 함께 혹시 닥칠지 모르는 불상사에 대한 불안감이 줄어든다. 이런 소비자 마음을 간파한 대용량 제품들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홍대 앞 커피전문점 ‘핵커피’는 1ℓ 대용량 커피를 4000원에 판매해 대박을 쳤다. 다른 커피전문점 아메리카노(용량 335㎖)가 4000원대에 팔리는 것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파격적이다.

온라인에서 판매되는 6㎏짜리 ‘금풍제과 포대건빵’(1만3300원) 역시 화제다. 큰 포대에 들어 있어 ‘인간 사료’로 불리는 히트 상품이다. 이 제품을 구매한 사람들이 SNS에 글을 올리면서 대박아이템으로 거듭났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단독> 경찰 압수 비트코인 ‘1400억’ 털린 내막

[단독] 경찰 압수 비트코인 ‘1400억’ 털린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경찰이 압수한 비트코인 1700여개 중 1400개 이상이 사라졌다. 전체 피해액은 최소 1300억원에서 최대 1500억원 수준으로 추산된다. 충격적인 것은 탈취 시점과 방식, 그리고 접속 기기까지 모두 경찰 수사 과정과 맞물려 있다는 점이다. 단순 해킹으로 보기 어려운 정황이 잇따라 확인되면서 사건의 성격이 ‘내부 연루 의혹’으로 급격히 기울고 있다. 사건의 출발은 2021년 11월 광주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의 불법 도박사이트 수사였다. 광주청 수사과 소속 경사 김모씨 등은 범죄수익은닉 혐의 압수수색영장을 집행하며 불법 도박장 개설 혐의 등을 받은 비트세븐 거래소 대표 이모씨의 블록체인닷컴 지갑에 접속했다. 6분 간격 연결고리 당시 경찰은 피의자 이씨의 블록체인닷컴 지갑 계정에 접속해 비트코인 1798개를 확인했다. 경찰은 같은 날 오전 11시58분부터 약 40분간 27차례에 걸쳐 135개를 이체하며 1차 압수를 진행했다. 이후 접속이 차단됐다고 주장했지만, 불과 몇 시간 뒤인 11월10일 새벽과 오후, 경찰청 사무실에서 추가로 185개를 더 이체했다. 총 320개가 ‘정식 압수’됐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2021년 11월10일 오후 8시28분. 김 경사는 압수된 계정의 연동 이메일을 자신의 구글 계정으로 변경한다. 그리고 불과 12분 뒤인 8시40분부터, 지갑에 남아 있던 비트코인 1477개가 195차례에 걸쳐 외부 주소로 빠져나갔다. 압수 직후, 그것도 계정 권한이 경찰에게 완전히 넘어간 직후 벌어진 대규모 탈취였다. 블록체인닷컴이 제출한 IP 로그는 더욱 노골적이다. 11월9일부터 10일 오후 8시32분까지 모두 한국 IP를 사용한 수사관 접속 기록이다. 이후 마지막 김 경사의 접속 6분 뒤, 미국·우크라이나·캐나다 IP를 통한 접속이 연속으로 발생한다. VPN을 이용한 김 경사로 의심되는 ‘탈취자’의 접속이다. 수사관 로그인 → 6분 후 탈취 로그인 → 즉시 대량 이체로 이어진 것이다. 외부 해커의 우연한 침입이라 보기에는 타이밍이 지나치게 촘촘하고 정교하다. 결정적인 단서는 디바이스 로그다. 블록체인닷컴 측이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해당 계정에는 단 두 종류의 기기만 기록돼있다. 하나는 윈도우 기반 데스크톱, 다른 하나는 안드로이드 모바일이다. 이 중 안드로이드 접속은 단 한 번, 우크라이나 IP를 통해 이뤄졌다. 나머지 탈취 접속은 모두 윈도우 데스크톱이다. 문제는 그 윈도우 기기다. 로그에는 수사관이 사용한 윈도우 기기 외에 다른 데스크톱 기록이 존재하지 않는다. 즉, 탈취자가 사용한 윈도우 PC가 별도 기기였다면 반드시 추가 로그가 남아야 하지만 그마저도 없다. 탈취 접속에 사용된 윈도우 기기가 수사관이 사용한 기기와 동일하다는 것이다. 수사관 접속 후 VPN 유출 시작 경찰이 사용한 기기가 쓰였다? 탈취 당시 상황도 석연치 않다. 계정 연동 이메일이 김 경사의 개인 계정으로 바뀐 직후 탈취가 시작됐다. 이 과정에서 최소 198건의 출금이 발생했다. 정상이라면 동일 수량의 알림 이메일이 수신돼야 한다. 그러나 김 경사의 이메일에는 단 7건만 남아 있다. 나머지 191건은 흔적조차 없다. 더욱이 김 경사는 당시 사무실에 남아 있었고, 탈취 시간 동안 계정 재접속을 시도했다고 진술했다. 그럼에도 본인 이메일로 전송된 출금 알림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단순 실수로 보기엔 삭제 규모가 과도하다. 선택적 삭제 가능성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수사 협조 전문가 박모씨의 분석 자료에서도 이해하기 어려운 정황이 발견됐다. 박씨는 11월11일 저녁, 탈취 자금 흐름을 분석한 노드 자료를 김 경사에게 전달했다. 그런데 해당 자료에는 그 시점 기준 아직 발생하지 않은 미래 트랜잭션이 포함돼있었다. 실제 해당 거래는 다음 날 새벽에야 블록체인에 기록된 것으로 확인된다. 블록체인 구조상 발생하지 않은 거래를 사전에 확인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해당 자료가 사후 수정됐거나, 탈취 경로를 사전에 알고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이씨는 사건 발생 한 달 뒤 탈취 사실을 인지하고 검찰에 진정을 제기했다. 이후 추가 진정까지 제출했지만, 수사는 2024년까지 사실상 진행되지 않았다. 그러다 뒤늦게 수사가 이뤄졌고, 결과는 반전이었다. 탈취 의혹은 규명되지 않은 채, 오히려 피해자가 허위 고발을 했다며 무고 혐의로 기소된 것이다. 국가 수사기관이 압수한 비트코인이 경찰 손을 거친 직후 대량으로 사라졌으나, 코인의 주인은 구속되고 경찰은 의심에서 벗어났다. 단순 해킹이라 보기에는 시점과 방식, 그리고 이후 수사 흐름까지 모든 것이 비정상적이다. 법원도 이미 “누군가 계정에 접근해 비트코인을 이체했다”고 판단했고, 검찰은 수사 정보 유출 의혹까지 제기하고 경찰을 상대로 압수수색을 벌였다. 정작 탈취 의혹을 제기한 당사자는 무고 혐의로 법정에 서 있는 상황이다. ‘누가 훔쳤는가’라는 본질적 질문은 여전히 답을 얻지 못한 채 사건은 미궁으로 빠졌다. 알림 191건 흔적 없이… 경찰은 1일 전송 한도 때문에 압수가 며칠에 걸쳐 이뤄지는 사이, 이씨 측이 이를 빼돌렸다고 판단했다. 반면 이씨 측은 정반대 주장을 펼쳤다. 계정 접근권한을 사실상 장악한 수사기관 내부에서 탈취가 이뤄졌을 가능성을 제기한 것이다. 사건은 단순 범죄수익 환수 문제를 넘어 ‘압수된 국가 관리 자산이 어떻게 사라졌는가’라는 근본적 의문으로 확장됐다. 광주지법 항소심은 도박공간 개설과 범죄수익은닉 혐의 자체는 유죄로 인정하면서도, 사라진 1476개 비트코인에 대해서는 이씨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누군가 이씨의 블록체인 계정에 접근해 당시까지 남아있던 비트코인 대부분을 다른 지갑으로 이체해 갔다”고 판시했다. 이는 곧 해당 비트코인의 이동 주체가 이씨로 특정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그 결과 1심에서 600억원대에 달했던 불법 도박장 개설 혐의 등에 대한 추징금은 항소심에서 15억원 수준으로 대폭 줄어들었다. 이 판결은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 법원이 최소한 “외부 혹은 제3자의 개입 가능성”을 인정했다는 점에서다. 즉, 단순히 피고인이 숨기거나 빼돌린 사건이 아니라, 압수된 계정에 대한 추가 접근이 있었고 실제 자산 이동이 발생했다는 사실 자체는 부정되지 않았다. 검찰 역시 이 사건을 단순히 피고인 책임으로만 보지 않았다. 2023년 11월 검찰은 광주경찰청과 서부경찰서를 상대로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수사 정보가 외부로 유출됐을 가능성과 압수 과정의 적법성을 확인하기 위한 조치였다. 이 과정에서 사건 브로커와 거액 자금 흐름까지 거론되며 사건은 더욱 복잡한 양상으로 번졌다. 단순한 도박사이트 수사가 아니라 수사 기밀, 로비, 가상자산 이동이 뒤엉킨 구조적 사건으로 확장된 것이다. 최근 공판에서는 또 다른 쟁점이 드러났다. 증인으로 출석한 전문가 박씨 측 인물은 사라진 비트코인의 이동 경로를 분석한 결과 특정 거래소 계열 지갑으로 이어지는 흐름이 확인된다며, 도박사이트 운영 세력이 직접 자금을 이동시켰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의심받는 수사관 반면 이씨 측은 사건 직후 오히려 검찰에 진정을 제기하며 탈취 의혹을 먼저 제기한 점을 강조하며, 스스로 범행을 저질렀다면 그런 행동을 할 이유가 없다고 반박했다. 또 블록체인닷컴 측 자료에 따르면 ‘탈취자’는 VPN을 이용해 해외 IP로 접속했으며, 일부 접속은 데스크톱 환경에서 이뤄진 것으로 분석됐다. 만약 이 분석이 사실이라면, 압수 과정에서 사용된 기기와 탈취에 사용된 기기가 동일하거나 밀접하게 연관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다만 이 같은 기술적 분석은 현재까지 법원에서 확정된 사실이 아니라는 점에서 추가적인 검증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메일 기록 역시 의문을 키운다. 탈취 과정에서 수백건에 달하는 출금이 발생했다면 이에 상응하는 알림 메일이 존재해야 정상이다. 그러나 일부 기록만 남아 있고 상당수는 확인되지 않는다는 주장도 나온다. 만약 실제로 알림이 발송됐음에도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면, 이는 단순 오류가 아니라 의도적 삭제 가능성까지 의심할 수 있는 대목이다. 결국 이 사건은 세 가지 축으로 압축된다. 첫째, 경찰이 압수한 가상자산이 왜 완전히 확보되지 못했는가. 둘째, 압수 이후 누가 해당 계정에 접근해 자산을 이동시켰는가. 셋째, 그 과정에서 수사기관 내부 혹은 외부 세력의 개입이 있었는가다. 상식적으로 국가가 압수한 자산은 그 어떤 개인소유보다도 안전하게 보호돼야 한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는 정반대 결과가 나타났다. 압수 직후 대규모 자산이 사라졌고, 책임 소재는 규명되지 않았으며, 의혹을 제기한 당사자는 오히려 피고인 신분이 됐다. 계정 변경 직후 사라져 이메일 변경 직후 작업 이 사건이 단순한 형사사건을 넘어서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만약 압수된 자산조차 안전하게 관리되지 못한다면, 국가 형사사법 시스템에 대한 신뢰 자체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특히 가상자산과 같이 추적과 관리가 기술적으로 가능한 자산에서 이런 일이 발생했다는 점은 더욱 심각하다. 현재까지 드러난 정황만 놓고 보면, 이 사건은 ‘탈취’가 아니라 ‘내부 유출’ 가능성을 강하게 의심케 한다. 한편, 지난달 15일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인물은 범행 주체가 경찰이 아니라 탈취범으로 지목된 이씨와 그의 아버지일 가능성이 크다는 취지로 증언했다. 광주지방법원 형사10단독 유형웅 판사는 범죄수익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 등을 받고 있는 이씨 부녀에 대한 속행 공판기일 재판을 열었다. 이씨 부녀는 2021년 11월 경찰 압수수색이 진행되던 중 자신의 블록체인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 1476개를 빼돌린 혐의로 기소됐다. 검사는 이날 A씨를 증인으로 신청해 신문했다. A씨는 과거 이씨 측 부탁을 받고 비트코인 환전에 도움 준 인물이다. 현재는 코인 관련 별도 사기 혐의로 보석 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A씨는 이날 검사의 질문을 받고 “이씨 지갑에서 사라진 비트코인 1400여개의 행방을 쫓기 위해 거래 내역을 분석한 결과, 비트세븐 거래소와 연결된 지갑이 다수 등장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경찰은 일일 전송 제한량이 걸려 있어 이씨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을 여러 날에 걸쳐 경찰 지갑으로 옮겨 압수했는데, 같은 시기 탈취범은 순식간에 이씨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 1400여개를 빼간 것으로 나타났다”고 증언했다. 그러면서 “경찰과 달리 이씨 지갑에서 순식간에 다량의 비트코인을 탈취해 간 점, 탈취된 비트코인 이동 경로에 비트세븐 거래소 지갑이 활용된 점을 고려할 때 탈취범은 비트세븐 거래소를 통제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며 사실상 이씨 부녀를 겨냥했다. 구속된 코인 주인 A씨가 언급한 비트세븐 거래소는 정상적인 가상자산 거래소가 아니라, 이씨 부녀가 해외에 서버를 두고 운영했던 도박사이트라는 주장이다. 비트세븐 거래소와 관련해 이씨는 도박공간 개설 혐의 등으로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확정받았다. 다만 해당 재판에서 사라진 비트코인 1476개에 관한 추징(현 시세 기준 약 1620억원) 책임은 인정되지 않아, 검찰은 범죄수익은닉 혐의를 적용해 이씨를 부친과 함께 추가 기소했다. A씨의 증언에 대해 이씨 부녀 측은 즉각 반박하는 대신 별도 의견서를 재판부에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