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스러진 달 (20)은밀한 계획

한국으로 밀입국 ‘성공할까’

소설가 황천우는 지금까지 역사소설 집필에 주력해왔다. 역사의 중요성, 과거를 알아야 현재를 알고 또 미래를 올바르게 설계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아울러 그 과정에서 ‘팩션’이란 장르를 만들어냈다. 팩트와 픽션, 즉 사실과 소설을 혼합하여 교육과 흥미의 일거양득을 노리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오래 전부터 의심의 끈을 놓지 않은 사건을 들추어냈다. 필자는 그 사건을 현대사 최고의 미스터리라 칭함에 조금도 주저하지 않는다. 바로 1974년 광복절 행사 중 발생했던 영부인 육영수 여사 저격사건이다.

“젊은 친구가 능력도 좋네. 나이가 20대 초반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러게 말이에요.”

“그러면 한국으로 갔다는 말인데.”

“홍콩으로 갔다고 하던데.”

“홍콩. 허허 그 친구 완전히 홍콩 갔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우리 한국에서는 홍콩을 완전히 꿈의 세상 정도로 비유하여 말하고는 하거든. 그러니까 일종에 횡재한 경우를 두고 홍콩 간다고 하지.”

영자가 홍콩을 되뇌며 미소를 흘렸다.

“그러면 나도 오라버니 덕에 오늘 밤 홍콩 갈 수 있겠네.”

동일이 앙증맞게 웃고 있는 영자의 볼에 가볍게 키스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영자가 이상한 눈초리로 동일을 주시했다.

“왜요?”

“왜는, 오늘 내친김에 영자 완전히 홍콩 보내주려 하지.”

“그런데 왜 일어나요?”

“오늘은 밤새 품으려고. 그러면 여기서는 곤란하고 호텔로 가야할 듯해서.”

호텔이라는 소리에 영자의 눈이 동그랗게 변해갔다.

“조금 기다렸다 같이 갈까?”

“그러면 좋겠지만 혹여 손님들이 함께 나가는 모습을 보면 좋아하지 않아요. 그러다 단골손님도 떨어져 나갈 수 있고. 그러니 오라버니 먼저 가요.”

“그래서 내가 먼저 일어나는 거야. 여하튼 먼저 가서 목욕재개하고 기다리고 있을 테니 가게 정리하고 곧바로 오도록 해.”

동일이 영자에게 호텔 이름과 룸 번호를 알려주고는 밖으로 나섰다. 음식점을 나서자마자 급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문석원이 홍콩으로 출국했다 하였지만 혹시나 모를 일이었다. 아무래도 박정희 대통령 암살과 관련되어 있을 수 있고, 그곳에서 다시 비자를 받고 한국으로 입국할 수도 있었다.


택시를 이용하여 영자와 만나기로 한 호텔에 도착했다. 그곳은 업무상 이용하기 위해 룸 하나를 전세 내 수시로 사용하는 호텔이었다. 마치 제 집 들어가듯 프런트로 다가가 영자에게 언급한 룸을 지목했다. 다행스럽게도 비어 있었다. 즉시 비용을 지불하고 정보부에서 사용하는 룸으로 들어갔다.

곧바로 공항에 근무하는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 사람에게 어제 홍콩으로 출국한 사람들의 인적사항을 점검했으나 문석원은 물론 난조 샤쿠겐이란 이름도 나타나지 않았다.

순간 불안한 마음이 일기 시작했다. 하여 어제 홍콩으로 출국한 사람들 중에 20대들의 이름을 모두 불러주기를 요청했다. 상대방이 친절하게도 아니 말투로 보아 동일과 긴밀한 관계로 짐작되는 사람이 차근차근 이름을 나열했다.

한순간 아베 기미코란 이름이 들려왔다.

“잠깐!”

동일이 그 대목에서 순간적으로 소리를 높였다. 문석원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이름이었기 때문이었다.

“이 사람은 여자입니다만.”

“그 여인에게 동행은 없었는가?”

연인 남편 이름으로 여권 발급
암살 작전의 서막…작전 성공?

상대방이 잠시 사이를 두었다.

“선배님, 이 사람이 제 남편과 함께 홍콩으로 신혼여행 가는 걸로 되어 있습니다.”

“남편 이름은?”

“아베 고타로로 되어 있습니다.”

동일이 아베 고타로를 되뇌며 통화를 끝냈다. 잠시 상황을 정리해보았다. 문석원이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 즉 연인의 남편 이름으로 여권을 발급받아 그 연인과 함께 신혼여행을 빙자하여 홍콩에 들어간 꼴이 되었다.

다시 전화기를 들어 홍콩 주재 한국 영사관으로 전화를 걸었다. 급하게 중정 요원을 찾았다. 어제 오늘 사이에 아베 고타로란 사람이 한국 비자를 받았는지 여부를 질문했다. 다행스럽게도 그런 일은 없었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그 사람에게 혹시 그런 사람이 비자를 신청할 수 있으니 그런 일이 발생하면 급히 연락 달라는 부탁과 함께 통화를 끝냈다.

다시 상황을 정리해보았다. 연인을 대동하고 출국한 일로 보아 암살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렇다면 단순한 여행이란 말인가. 성생활이 자유롭기로 소문난 일본 사회지만 부부를 빙자해서 외국으로 여행을 떠난 일이 쉽사리 납득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잠시 후 자신을 찾아올 영자를 생각해보았다. 그 생각에 이르자 ‘씨익’ 하고 미소를 머금었다.

“홍콩에 다녀온 소감은 어떤가?”

문석원이 홍콩 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이호룡에게 전화를 걸었고, 오사카 시내 한적한 다방에서 만남을 가지고 있었다.

“난생 처음 타본 비행기도 그렇고 홍콩이란 나라 정말 대단하였습니다.”


“홍콩 입국 시 별 문제 없었는가?”

“그냥 여권만 살펴보고는 아무런 제지도 없던데요.”

“홍콩이란 나라가 그래. 그러나 남조선은 다르지.”

석원이 남조선을 되뇌며 슬그머니 이를 갈았다.

“그런데 여권은?”

“제가 보관하고 있습니다. 기미코 역시 그걸 원하고 있고요.”

“당연하겠지. 혹여나 기미코가 보관하고 있다 고타로에게 발각이라도 된다면 문제될 소지가 다분하거든.”
“다시 한 번 부장님의 아이디어에 찬사 보냅니다.”

“찬사라니 이 사람아. 자네 각오에 비하면 그야말로 아무것도 아니지. 그나저나 이제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워야지 않겠나.”


“당연합니다. 하루 빨리 남조선으로 건너가 박정희를 죽이고 말겠습니다.”

박정희라는 부분에 힘이 들어갔다. 순간 이호룡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행히 어느 누구도 두 사람에게 시선을 주지 않고 있었다.

“자네 지금부터는 매사에 신중하게 처신하도록 하게.”

문석원이 자신의 경솔함에 대해 미안하게 생각한다는 듯 슬그머니 뒤통수를 긁적였다.

“자네의 영웅적 계획이 조총련을 통해 북조선 김일성 수령께 보고되었다네. 그러니 이제 자네는 개인 문석원이 아니라 전 조선 인민의 영웅이란 말이야. 그러니 항상 영웅답게 진중하게 임하도록 하게나.”

말을 마침과 동시에 호룡이 봉투를 건넸다.

“집어넣어.”

“무엇입니까?”

“돈일세. 어차피 이제부터는 다른 일은 못할 게 아닌가. 그러니 향후 일이 마무리될 때까지 되는대로 자금을 대 주겠네.”

“너무나 감사합니다.”

“그렇게 많은 금액은 아니지만 요긴하게 쓰도록 하게. 그리고 일이 마무리되면 영웅에 해당하는 대가를 지급받을 걸세.”

“반드시 성공하도록 하겠습니다.”

“당연히 그래야지. 그러면 자리에서 일어나세.”

석원이 무슨 말이냐는 듯 호룡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자네를 격려하기 위해 북조선과 조총련의 고위 인사가 기다리고 있네. 그러니 그리로 가서 인사드리고 함께 식사하도록 하세나.”

이호룡의 뜻밖의 제안에 고무된 석원이 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나다 탁자를 건드렸다. 탁자 위에 있던 컵이 쓰러지면서 물이 흘러내렸다.

“죄송합니다, 너무나 흥분되어‥...”

“사람하고는, 그렇게 좋은가.”

“당연하지요.”

석원이 급히 호룡의 뒤를 따르며 목소리를 높였다. 두 사람이 다방과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고급 횟집에 도착하자 안내원이 두 사람을 안내했다. 인도된 방에 들어서자 한눈에 보아도 중후한 맛이 풍기는 남자와 역시 귀티가 물씬 풍기는 여자가 나란히 앉아 들어서는 호룡 일행을 미소 지으며 바라보고 있었다.

“인사드리게. 오면서 말했던 분들이시네.”

호룡의 제안에 석원이 마치 갈피를 잡지 못하는 듯 우왕좌왕했다.

“이 사람이 너무나 과분하여 그런 모양입니다.”  

“너무 그럴 것 없네. 편히 자리하게나.”

남자가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석원을 바라보았다. 석원이 조신하게 자리 잡자 호룡이 밖으로 나가려 고개 돌렸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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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