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집권 4년차 재계 서열재편 시나리오

거침없이 덩치 키우다 하루아침에 공중분해

[일요시사 경제팀] 양동주 기자 = 2013년 첫발을 내디딘 박근혜 정부가 어느덧 4년차에 접어들었다. 그 사이 재계 판도에는 많은 변화가 감지됐다. 건실한 성장을 거듭한 곳이 있는 반면 거침없이 덩치를 키우던 몇몇 기업은 공중분해를 겪기도 했다. 변화의 소용돌이는 올해 역시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재계 판도가 올해 어떻게 변모할지 지켜보는 일은 나름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매년 4월1일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대기업집단) 지정 현황’을 발표한다. 직전년도를 기준으로 자산 5조원이 넘는 대기업집단을 공개하는 것이다. 달리 말하자면 상호출자제한기업에 이름을 올렸다는 것은 대기업이라는 큰 울타리에 묶였음을 의미한다. 그만큼 회사가 양적 성장을 거듭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대기업집단 지정은 재벌에 의한 시장경쟁 저해를 막기 위해 1987년 첫 도입됐다. 초창기 자산 4000억원이 기준이었지만 2002년 2조원, 2009년 5조원으로 상향 조정됐다. 대기업 집단으로 지정되면 경제력 집중을 막기 위해 상호지급보증금지 출자 총액 제한, 상호출자 금지 등 규제가 가해진다.

초고속 성장
순식간에 좌초

박 대통령의 임기 첫해인 2013년에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에 이름을 올린 일반기업은 총 51곳, 이들의 계열회사는 모두 1680개였다. 약 3년이 흐른 사이 이 명단에는 변화가 뒤따랐다.

2015년 4월 기준 상호출자가 제한된 대기업 집단은 총 61곳. 공기업을 제외한 일반기업은 49개에 이른다. 이들의 계열회사는 2016년 1월1일을 기준으로 1555개. 부임 첫해와 비교해 대기업 집단에 포함된 일반기업은 2개 줄었고 계열회사는 130개 가까이 감소했다.


세부항목을 살펴보면 그간 국내 기업 환경에 수많은 변화가 뒤따랐음을 실감할 수 있다. 3년 전까지만 해도 대기업으로 분류되던 몇몇 기업은 더 이상 이 명단에서 이름을 찾기 힘들다. STX, 동양, 한국금융투자, 웅진이 여기에 해당한다. 다만 대기업 집단에서 이름이 빠진 이유는 조금씩 차이가 있다. 일단 STX, 동양, 웅진은 그룹 좌초라는 공통분모를 갖는다.

10여년 만에 재계 13위까지 초고속 성장했던 STX는 무리한 M&A와 글로벌 금융위기에 따른 조선·해운 업황 악화로 그룹이 해체됐다. 한때 23곳에 달했던 계열사는 뿔뿔히 흩어졌고 강덕수 회장은 법정을 오고가는 데 바쁜 나날을 보내야 했다. 주력 계열사였던 STX팬오션은 ‘팬오션’으로 변경되어 얼마 전 하림에 인수됐다.

재계 순위 38위였던 동양은 자금난에 시달리다 2013년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만기를 앞둔 기업어음과 회사채를 상환하기 위해 동서인 담철곤 오리온그룹 회장에게 지원을 부탁했지만 끝내 거절당하면서 우려했던 위기가 몰아닥쳤다.

유동성 위기를 막지 못하고 ㈜동양과 동양레저, 동양인터내셔널, 동양네트웍스, 동양시멘트 등 동양 계열사 다섯 곳이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수많은 개인투자자들이 피눈물을 훔쳤고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은 ‘사기성 기업어음’ 발행 혐의로 검찰 조사를 감내해야 했다. 그룹의 공중분해는 당연한 수순이었다.
 

48위에 이름을 올렸던 웅진그룹은 좌초와 함께 순위권에서 멀어졌다. 그룹 지주사인 웅진홀딩스는 2012년 10월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 개시 결정을 받았다. 그룹 주력 계열사였던 웅진코웨이와 웅진패스원, 웅진케미칼, 웅진식품은 매각됐다. 남는 것은 웅진씽크빅을 비롯한 일부 사업에 불과하다.

새 정권 이후…대기업 흥망성쇠
STX·동양·웅진 등 빛바랜 영광

반면 한국금융투자는 공정위 소관을 벗어나면서 대기업 집단에서 사라졌다. 한국금융투자는 2009년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으로 처음 지정된 이래 2013년에 44위로 뛰어올랐다. 그러나 2014년 ‘금융업전업집단’으로 전환되면서 공정거래법상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에서 제외됐다. 금융업전업집단이란 말 그대로 금융업만 전담으로 하는 금융사를 뜻하는데 공정위가 아닌 금융당국의 관리·감독을 받는다.


박 대통령 부임 당시 대기업으로 인정받았던 STX, 동양, 한국금융투자, 웅진이 각각의 이유로 3년이 지난 지금 자취를 감췄지만 이들의 공석은 금방 채워졌다. 한라, 한국타이어, 교보생명보험, 이랜드, 태영, 삼천리, 아모레퍼시픽, 중흥건설, 한솔 등이 빈자리를 대신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들 대다수는 올해 역시 대기업 집단으로 분류될 가능성이 크다. 일찌감치 대기업 편입을 확정지은 곳들도 제법 눈에 띈다.

하림그룹은 지난해 6월 4조4000억원 규모의 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팬오션을 인수하는 데 성공했다. 기존 자산 4조8000억원과 팬오션의 자산을 더하면 총 9조2000억원의 자산을 보유하게 됐다. 하림의 자산 규모는 재계 서열 30위권에 해당한다. 이로써 올해는 대기업 집단 편입이 사실상 확정된 셈이다.

기존 금호그룹에서 완전 분리된 금호석유화학은 올해부터 대기업 집단에 이름을 올릴 예정이다. 두 그룹은 지난해 12월 대법원 판결을 통해 완전 계열분리됐다. 대법원 판결로 금호석유화학 8개 계열사가 빠지게 되면서 금호아시아나그룹은 금호산업, 아시아나항공 등 24개의 계열사가 된다.

공정위는 그동안 금호석화 8개 계열사까지 합쳐 모두 32개 회사를 금호아시아나그룹으로 분류해 왔다. 금호석유화학은 2010년 그룹 구조조정 이후 사실상 독립경영 체제를 유지해왔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형인 박삼구 회장이, 금호석유화학그룹은 동생인 박찬구 회장이 이끌고 있다. 금호석유화학의 자산총액은 약 5조3000억원으로 알려지고 있다. 현재 재계 순위를 감안하면 50위 안팎이 예상된다.
 

최근 몇 년 간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SPC그룹 역시 눈여겨 볼 대상이다. SPC는 1945년 황해도 옹진에 문을 연 빵집 ‘상미당’에 뿌리를 둔 해방둥이 기업이다. 파리바게뜨, 배스킨라빈스, 던킨도너츠, 파스쿠찌, 빚은, 잠바주스 등 베이커리 및 식음료 프랜차이즈 브랜드와 종합식품기업 삼립식품 등을 운영하고 있다.

STX·동양
공중분해

SPC그룹은 가내수공업 수준이었던 국내 제빵업을 산업화시켰고, 1980년대 중반부터 프랜차이즈 사업을 잇달아 성공시키며, 국내 소매유통업의 선진화를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00년대부터는 해외 시장에 진출해 2014년 바게트의 본고장 프랑스 파리에 매장을 여는 등 세계시장에 K푸드 열풍을 선도하고 있다. 2013년에 매출 4조원을 돌파한 이후 가파른 상승세를 타고 있다. 지난해 매출 추정치는 약 5조원이다.

대기업 집단으로 인정받다가 목록에서 제외됐던 기업들도 유력 후보다. 2014년 코닝정밀소재는 삼성에서 계열분리가 이뤄지자마자 42위로 대기업 집단에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자산총액이 6조8000억원에서 4조1000억으로 급감하면서 지정 1년만에 탈락한 전례가 있다. 보유 자산총액이 5조원에 근접한 만큼 올해는 상호출자제한기업 명단에 이름을 올릴 가능성이 크다.

2012년까지 상호출자제한기업으로 분류됐던 대한전선과 유진그룹은 신사업 분야에 무리하게 투자했다가2008년 금융위기 이후 시작된 경기침체로 어려움을 겪어 왔다. 다만 추스르기에 성공할 경우 옛 영광을 재현할 수 있다는 기대가 여전하다.

2007년 서울증권, 2008년 하이마트 등을 인수하면서 막강한 자금력을 뽐냈던 유진그룹은 2008년 유럽발 금융위기로 이후 재무구조가 취약해졌다. 특히 부동산 및 건설경기가 경직되면서 주력사업인 레미콘 사업이 적자를 기록하며 위기를 겪었다. 이후 그룹의 재무위기를 부채질했던 하이마트를 롯데그룹에 매각하면서 덩치를 줄였고, 결국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에서 제외됐다.

하림·SPC 신규 진입 여부 촉각
요동치는 순위…곧 변동 움직임

대한전선 역시 무리한 인수합병이 화를 부른 경우다. 대한전선은 한때 이탈리아 프리즈미안, 알덱스, 남광토건 등 굵직한 인수합병 계약을 체결하며 재계의 주목을 받았으나, 인수 직후 관련 기업의 업황이 급격하게 꺾이면서 모기업의 재정까지 위협하는 상황이 됐다. 이에 따라 몇 년 전 손실을 감수하고 프리즈미안 지분을 털어냈으며, 남광토건은 법정관리행을 택하기도 했다.


재계 서열재편 수순은 명단 제외 및 신규 진입에 그치지 않고 재계 전반위로 확산될 조짐마저 보인다. 일단 지난해 지정된 49개 대기업 집단 가운데 32개 그룹(65.3%)의 순위가 바뀔 것이라는 전망이다. 기업 경영성과 평가사이트 CEO스코어가 대기업집단 49개 그룹의 2015년 자산 변동을 기준으로 올해 재계 순위를 예측한 결과다. 2015년 대기업 그룹의 구조조정과 M&A의 영향이 컸다.
 

19개 그룹은 순위가 올랐지만, 13개 그룹은 하락하고 16개 그룹은 순위변동이 없을 전망이다. 지난해 9월 MBK파트너스에 인수된 홈플러스는 출자총액기업집단에서 빠져 순위 집계에서 제외됐다. 재계 순위가 이처럼 크게 뒤바뀐 것은 지난 2008년 리먼 브라더스 사태 이후 처음이다. 2009년 5조원 이상 대기업 집단 40곳 중에서 무려 33곳(82.5%)의 순위가 바뀌었다.

자산을 크게 늘린 기업들이 다수 눈에 띄었다. 한화는 삼성종합화학(1조309억원)과 삼성테크윈(8232억원) 등을 인수하면서 자산이 일년 사이에 무려 17조4920억원 늘어난 55조4460억원을 기록했다. 롯데 역시 삼성SDI 화학부문, 삼성정밀화학, KT렌탈 등의 굵직한 M&A를 성사시키며 자산규모를 12조5360억원 늘리는 데 성공했다.

하림·SPC
다크호스 등장

SK(11조6160억원)와 현대차(10조4190억원) 등도 자산을 10조원 이상 불렸다. SK는 CJ헬로비전과 OCI머티리얼즈를 인수했고 현대차는 계열사인 현대제철을 통해 현대종합특수강(구 동부특수강)의 지분을 거머쥐며 자산을 크게 불렸다.

미래에셋(4조6430억원), GS(2조6230억원), LG(1조7430억원), 신세계(1조7290억원), 세아(1조2250억원) 등의 자산이 1조원 이상 늘었다.


한층 커진 자산 변동폭은 재계 서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10위였던 한화는 두 계단 오른 8위까지 뛰어오를 예정이다. 최근 KDB대우증권 인수 우선협상자가 된 미래에셋의 경우 인수를 완료하면 자산은 14조6340억원에 달해 금호아시아나, 현대백화점, 현대 등을 제치고 29위에서 19위로 뛰어오르게 된다. 자산규모도 지난해 말 9조9910억원에서 4조6430억원(46.5%)이나 불어난다.

반면 경영난을 겪었던 일부 회사는 순위 하락이 불가피할 조짐이다. 구조조정을 통해 동부제철, 동부특수강 등을 떼어낸 동부그룹은 20위에서 36위로 16계단이나 급락할 전망이다. 12월 현재 자산은 8조3220억원으로 지난해 말보다 6조3050억원(43.1%) 감소했다. 
 

금호석유화학과 계열분리된 금호아시아나는 3계단 하락이 확실시된다. 2014년 금호아시아나의 자산총액은 18조8000억원으로 재계 순위 17위였지만 금호석유화학이 빠지면 13조원 중반대로 줄어든다. 21위였던 현대그룹의 자산이 약 12조6000억원 수준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순위 하락은 불가피하다. 대우건설과 대한통운을 인수하며 한때 재계 7위까지 올랐던 과거의 위상은 갈수록 위축되는 모습이다.

이밖에도 대우건설, 동국제강, 한진중공업, 한라, 대성은 각각 2계단 떨어질 것으로 예측됐다. 현대종합상사 등의 계열분리를 결정한 현대중공업을 비롯해 한진, KT, 현대, OCI, 한국지엠 등은 1계단씩 내려앉아 총 13개 그룹의 순위가 이전보다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

가속화되는
서열 재편

이 같은 부침 속에서도 삼성, 현대차, SK, LG, 롯데, 포스코, GS 등 상위 1~7위 그룹은 순위 변동이 없었다. 이를 포함해 신세계(13위), CJ(14위), LS(15위), 대우조선해양(16위), S-Oil(26위), KCC(28위), 태광(39위) 등 총 16개 그룹도 이전 순위를 유지했다.

자산 규모로 보면 삼성그룹이 347조9300억원으로 압도적 1위였다. 현대차(204조5120억원), SK(164조40억원), LG(107조2620억원), 롯데(105조9430억원) 등이 100조원 이상으로 재계 자산 순위 톱5를 기록했다. 이 외에 포스코(82조3690억원), GS(61조1290억원), 한화(55조4460억원), 현대중공업(54조5530억원), 한진(36조5370억원)이 ‘10대 그룹’ 타이틀을 방어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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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