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집권 4년차 재계 서열재편 시나리오

거침없이 덩치 키우다 하루아침에 공중분해

[일요시사 경제팀] 양동주 기자 = 2013년 첫발을 내디딘 박근혜 정부가 어느덧 4년차에 접어들었다. 그 사이 재계 판도에는 많은 변화가 감지됐다. 건실한 성장을 거듭한 곳이 있는 반면 거침없이 덩치를 키우던 몇몇 기업은 공중분해를 겪기도 했다. 변화의 소용돌이는 올해 역시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재계 판도가 올해 어떻게 변모할지 지켜보는 일은 나름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매년 4월1일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대기업집단) 지정 현황’을 발표한다. 직전년도를 기준으로 자산 5조원이 넘는 대기업집단을 공개하는 것이다. 달리 말하자면 상호출자제한기업에 이름을 올렸다는 것은 대기업이라는 큰 울타리에 묶였음을 의미한다. 그만큼 회사가 양적 성장을 거듭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대기업집단 지정은 재벌에 의한 시장경쟁 저해를 막기 위해 1987년 첫 도입됐다. 초창기 자산 4000억원이 기준이었지만 2002년 2조원, 2009년 5조원으로 상향 조정됐다. 대기업 집단으로 지정되면 경제력 집중을 막기 위해 상호지급보증금지 출자 총액 제한, 상호출자 금지 등 규제가 가해진다.

초고속 성장
순식간에 좌초

박 대통령의 임기 첫해인 2013년에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에 이름을 올린 일반기업은 총 51곳, 이들의 계열회사는 모두 1680개였다. 약 3년이 흐른 사이 이 명단에는 변화가 뒤따랐다.

2015년 4월 기준 상호출자가 제한된 대기업 집단은 총 61곳. 공기업을 제외한 일반기업은 49개에 이른다. 이들의 계열회사는 2016년 1월1일을 기준으로 1555개. 부임 첫해와 비교해 대기업 집단에 포함된 일반기업은 2개 줄었고 계열회사는 130개 가까이 감소했다.


세부항목을 살펴보면 그간 국내 기업 환경에 수많은 변화가 뒤따랐음을 실감할 수 있다. 3년 전까지만 해도 대기업으로 분류되던 몇몇 기업은 더 이상 이 명단에서 이름을 찾기 힘들다. STX, 동양, 한국금융투자, 웅진이 여기에 해당한다. 다만 대기업 집단에서 이름이 빠진 이유는 조금씩 차이가 있다. 일단 STX, 동양, 웅진은 그룹 좌초라는 공통분모를 갖는다.

10여년 만에 재계 13위까지 초고속 성장했던 STX는 무리한 M&A와 글로벌 금융위기에 따른 조선·해운 업황 악화로 그룹이 해체됐다. 한때 23곳에 달했던 계열사는 뿔뿔히 흩어졌고 강덕수 회장은 법정을 오고가는 데 바쁜 나날을 보내야 했다. 주력 계열사였던 STX팬오션은 ‘팬오션’으로 변경되어 얼마 전 하림에 인수됐다.

재계 순위 38위였던 동양은 자금난에 시달리다 2013년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만기를 앞둔 기업어음과 회사채를 상환하기 위해 동서인 담철곤 오리온그룹 회장에게 지원을 부탁했지만 끝내 거절당하면서 우려했던 위기가 몰아닥쳤다.

유동성 위기를 막지 못하고 ㈜동양과 동양레저, 동양인터내셔널, 동양네트웍스, 동양시멘트 등 동양 계열사 다섯 곳이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수많은 개인투자자들이 피눈물을 훔쳤고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은 ‘사기성 기업어음’ 발행 혐의로 검찰 조사를 감내해야 했다. 그룹의 공중분해는 당연한 수순이었다.
 

48위에 이름을 올렸던 웅진그룹은 좌초와 함께 순위권에서 멀어졌다. 그룹 지주사인 웅진홀딩스는 2012년 10월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 개시 결정을 받았다. 그룹 주력 계열사였던 웅진코웨이와 웅진패스원, 웅진케미칼, 웅진식품은 매각됐다. 남는 것은 웅진씽크빅을 비롯한 일부 사업에 불과하다.

새 정권 이후…대기업 흥망성쇠
STX·동양·웅진 등 빛바랜 영광

반면 한국금융투자는 공정위 소관을 벗어나면서 대기업 집단에서 사라졌다. 한국금융투자는 2009년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으로 처음 지정된 이래 2013년에 44위로 뛰어올랐다. 그러나 2014년 ‘금융업전업집단’으로 전환되면서 공정거래법상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에서 제외됐다. 금융업전업집단이란 말 그대로 금융업만 전담으로 하는 금융사를 뜻하는데 공정위가 아닌 금융당국의 관리·감독을 받는다.


박 대통령 부임 당시 대기업으로 인정받았던 STX, 동양, 한국금융투자, 웅진이 각각의 이유로 3년이 지난 지금 자취를 감췄지만 이들의 공석은 금방 채워졌다. 한라, 한국타이어, 교보생명보험, 이랜드, 태영, 삼천리, 아모레퍼시픽, 중흥건설, 한솔 등이 빈자리를 대신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들 대다수는 올해 역시 대기업 집단으로 분류될 가능성이 크다. 일찌감치 대기업 편입을 확정지은 곳들도 제법 눈에 띈다.

하림그룹은 지난해 6월 4조4000억원 규모의 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팬오션을 인수하는 데 성공했다. 기존 자산 4조8000억원과 팬오션의 자산을 더하면 총 9조2000억원의 자산을 보유하게 됐다. 하림의 자산 규모는 재계 서열 30위권에 해당한다. 이로써 올해는 대기업 집단 편입이 사실상 확정된 셈이다.

기존 금호그룹에서 완전 분리된 금호석유화학은 올해부터 대기업 집단에 이름을 올릴 예정이다. 두 그룹은 지난해 12월 대법원 판결을 통해 완전 계열분리됐다. 대법원 판결로 금호석유화학 8개 계열사가 빠지게 되면서 금호아시아나그룹은 금호산업, 아시아나항공 등 24개의 계열사가 된다.

공정위는 그동안 금호석화 8개 계열사까지 합쳐 모두 32개 회사를 금호아시아나그룹으로 분류해 왔다. 금호석유화학은 2010년 그룹 구조조정 이후 사실상 독립경영 체제를 유지해왔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형인 박삼구 회장이, 금호석유화학그룹은 동생인 박찬구 회장이 이끌고 있다. 금호석유화학의 자산총액은 약 5조3000억원으로 알려지고 있다. 현재 재계 순위를 감안하면 50위 안팎이 예상된다.
 

최근 몇 년 간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SPC그룹 역시 눈여겨 볼 대상이다. SPC는 1945년 황해도 옹진에 문을 연 빵집 ‘상미당’에 뿌리를 둔 해방둥이 기업이다. 파리바게뜨, 배스킨라빈스, 던킨도너츠, 파스쿠찌, 빚은, 잠바주스 등 베이커리 및 식음료 프랜차이즈 브랜드와 종합식품기업 삼립식품 등을 운영하고 있다.

STX·동양
공중분해

SPC그룹은 가내수공업 수준이었던 국내 제빵업을 산업화시켰고, 1980년대 중반부터 프랜차이즈 사업을 잇달아 성공시키며, 국내 소매유통업의 선진화를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00년대부터는 해외 시장에 진출해 2014년 바게트의 본고장 프랑스 파리에 매장을 여는 등 세계시장에 K푸드 열풍을 선도하고 있다. 2013년에 매출 4조원을 돌파한 이후 가파른 상승세를 타고 있다. 지난해 매출 추정치는 약 5조원이다.

대기업 집단으로 인정받다가 목록에서 제외됐던 기업들도 유력 후보다. 2014년 코닝정밀소재는 삼성에서 계열분리가 이뤄지자마자 42위로 대기업 집단에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자산총액이 6조8000억원에서 4조1000억으로 급감하면서 지정 1년만에 탈락한 전례가 있다. 보유 자산총액이 5조원에 근접한 만큼 올해는 상호출자제한기업 명단에 이름을 올릴 가능성이 크다.

2012년까지 상호출자제한기업으로 분류됐던 대한전선과 유진그룹은 신사업 분야에 무리하게 투자했다가2008년 금융위기 이후 시작된 경기침체로 어려움을 겪어 왔다. 다만 추스르기에 성공할 경우 옛 영광을 재현할 수 있다는 기대가 여전하다.

2007년 서울증권, 2008년 하이마트 등을 인수하면서 막강한 자금력을 뽐냈던 유진그룹은 2008년 유럽발 금융위기로 이후 재무구조가 취약해졌다. 특히 부동산 및 건설경기가 경직되면서 주력사업인 레미콘 사업이 적자를 기록하며 위기를 겪었다. 이후 그룹의 재무위기를 부채질했던 하이마트를 롯데그룹에 매각하면서 덩치를 줄였고, 결국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에서 제외됐다.

하림·SPC 신규 진입 여부 촉각
요동치는 순위…곧 변동 움직임

대한전선 역시 무리한 인수합병이 화를 부른 경우다. 대한전선은 한때 이탈리아 프리즈미안, 알덱스, 남광토건 등 굵직한 인수합병 계약을 체결하며 재계의 주목을 받았으나, 인수 직후 관련 기업의 업황이 급격하게 꺾이면서 모기업의 재정까지 위협하는 상황이 됐다. 이에 따라 몇 년 전 손실을 감수하고 프리즈미안 지분을 털어냈으며, 남광토건은 법정관리행을 택하기도 했다.


재계 서열재편 수순은 명단 제외 및 신규 진입에 그치지 않고 재계 전반위로 확산될 조짐마저 보인다. 일단 지난해 지정된 49개 대기업 집단 가운데 32개 그룹(65.3%)의 순위가 바뀔 것이라는 전망이다. 기업 경영성과 평가사이트 CEO스코어가 대기업집단 49개 그룹의 2015년 자산 변동을 기준으로 올해 재계 순위를 예측한 결과다. 2015년 대기업 그룹의 구조조정과 M&A의 영향이 컸다.
 

19개 그룹은 순위가 올랐지만, 13개 그룹은 하락하고 16개 그룹은 순위변동이 없을 전망이다. 지난해 9월 MBK파트너스에 인수된 홈플러스는 출자총액기업집단에서 빠져 순위 집계에서 제외됐다. 재계 순위가 이처럼 크게 뒤바뀐 것은 지난 2008년 리먼 브라더스 사태 이후 처음이다. 2009년 5조원 이상 대기업 집단 40곳 중에서 무려 33곳(82.5%)의 순위가 바뀌었다.

자산을 크게 늘린 기업들이 다수 눈에 띄었다. 한화는 삼성종합화학(1조309억원)과 삼성테크윈(8232억원) 등을 인수하면서 자산이 일년 사이에 무려 17조4920억원 늘어난 55조4460억원을 기록했다. 롯데 역시 삼성SDI 화학부문, 삼성정밀화학, KT렌탈 등의 굵직한 M&A를 성사시키며 자산규모를 12조5360억원 늘리는 데 성공했다.

하림·SPC
다크호스 등장

SK(11조6160억원)와 현대차(10조4190억원) 등도 자산을 10조원 이상 불렸다. SK는 CJ헬로비전과 OCI머티리얼즈를 인수했고 현대차는 계열사인 현대제철을 통해 현대종합특수강(구 동부특수강)의 지분을 거머쥐며 자산을 크게 불렸다.

미래에셋(4조6430억원), GS(2조6230억원), LG(1조7430억원), 신세계(1조7290억원), 세아(1조2250억원) 등의 자산이 1조원 이상 늘었다.


한층 커진 자산 변동폭은 재계 서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10위였던 한화는 두 계단 오른 8위까지 뛰어오를 예정이다. 최근 KDB대우증권 인수 우선협상자가 된 미래에셋의 경우 인수를 완료하면 자산은 14조6340억원에 달해 금호아시아나, 현대백화점, 현대 등을 제치고 29위에서 19위로 뛰어오르게 된다. 자산규모도 지난해 말 9조9910억원에서 4조6430억원(46.5%)이나 불어난다.

반면 경영난을 겪었던 일부 회사는 순위 하락이 불가피할 조짐이다. 구조조정을 통해 동부제철, 동부특수강 등을 떼어낸 동부그룹은 20위에서 36위로 16계단이나 급락할 전망이다. 12월 현재 자산은 8조3220억원으로 지난해 말보다 6조3050억원(43.1%) 감소했다. 
 

금호석유화학과 계열분리된 금호아시아나는 3계단 하락이 확실시된다. 2014년 금호아시아나의 자산총액은 18조8000억원으로 재계 순위 17위였지만 금호석유화학이 빠지면 13조원 중반대로 줄어든다. 21위였던 현대그룹의 자산이 약 12조6000억원 수준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순위 하락은 불가피하다. 대우건설과 대한통운을 인수하며 한때 재계 7위까지 올랐던 과거의 위상은 갈수록 위축되는 모습이다.

이밖에도 대우건설, 동국제강, 한진중공업, 한라, 대성은 각각 2계단 떨어질 것으로 예측됐다. 현대종합상사 등의 계열분리를 결정한 현대중공업을 비롯해 한진, KT, 현대, OCI, 한국지엠 등은 1계단씩 내려앉아 총 13개 그룹의 순위가 이전보다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

가속화되는
서열 재편

이 같은 부침 속에서도 삼성, 현대차, SK, LG, 롯데, 포스코, GS 등 상위 1~7위 그룹은 순위 변동이 없었다. 이를 포함해 신세계(13위), CJ(14위), LS(15위), 대우조선해양(16위), S-Oil(26위), KCC(28위), 태광(39위) 등 총 16개 그룹도 이전 순위를 유지했다.

자산 규모로 보면 삼성그룹이 347조9300억원으로 압도적 1위였다. 현대차(204조5120억원), SK(164조40억원), LG(107조2620억원), 롯데(105조9430억원) 등이 100조원 이상으로 재계 자산 순위 톱5를 기록했다. 이 외에 포스코(82조3690억원), GS(61조1290억원), 한화(55조4460억원), 현대중공업(54조5530억원), 한진(36조5370억원)이 ‘10대 그룹’ 타이틀을 방어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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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