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공단 사태 쪽박 찬 기업들 현주소

정부 믿다가 망하게 생겼다

[일요시사 경제팀] 양동주 기자 = 우려했던 일이 현실로 돌아왔다. 북한의 심상치 않던 움직임에 정부가 개성공단 운영 중단이라는 초강수를 들고 나온 것이다. 남북 간에 흐르는 미묘한 긴장감은 개성공단의 정상 운영이 언제쯤 이뤄질지 기약조차 할 수 없게 만든다. 개성에 발이 묶인 입주기업들의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날 조짐이다.

지난 10일 정부는 북한의 4차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에 대한 대응으로 개성공단의 운영 중단 조치를 결정했다. 사실상 이날부터 개성공단은 전면 폐쇄와 다름없는 상태에 돌입하게 된 셈이다.

우려가 현실로

개성공단 입주기업은 총 124곳. 정부는 지난달 12일부터 개성공단에 생산과 직결된 인원만 체류할 수 있도록 추가 제한 조치를 시행해왔고 공장 가동률은 약 80% 수준으로 떨어진 상태였다. 이런 상황에서 개성공단 전면 중단이 결정되자 최소 1조원에 달하는 경제적 피해가 우려되고 있다.

통일부 관계자는 “개성공단의 전면 중단 조치로 인한 피해금액을 정확하게 말할 수 없다”며 “현재로서는 1조원 규모의 피해액을 예상할 뿐 피해액 규모는 추후에 명확히 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의 올해 매출 예상액은 6000억원 수준이다. 출입 제한 조치가 시행된 한 달 동안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의 피해액은 400억원에 육박할 것으로 점쳐진다. 여기에 개성공단 조성을 위해 투자한 금액과 각종 부대비용을 포함하면 피해액은 한층 불어나게 된다. 일단 입주기업들은 개성공단 폐쇄의 직격탄을 피하기 힘들다. 벌써부터 우려는 현실이 되고 있다.


124개 입주기업 가운데 자회사·계열사 등을 형태로 개성공단에서 상품을 생산하고 있는 상장사는 좋은사람들, 신원, 인디에프, 로만손, 재영솔루텍, 한국단자공업, 자화전자, 쿠쿠전자, 태광산업 등 모두 9곳이다. 특히 개성공단 생산 비중이 높은 좋은사람들, 신원, 인디에프 등 섬유업종 입주기업의 피해가 막심할 것으로 예상된다.

내의류제품을 제조 및 판매하는 코스닥상장사 좋은사람들은 개성공단 생산량이 전체 비중의 20~25%를 차지한다. 개성공단 가동 중단이 실적에 상당부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좋은사람들은 북한에 의해 개성공단이 약 6개월간 중단된 2013년에도 영업이익이 77% 감소한 전례가 있다.

유가증권상장사 신원 역시 이번 개성공단 조업 중단으로 매출에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신원은 자회사 에스더블유성거나를 통해 신원에벤에셀개성을 100% 보유하고 있다. 신원 생산품목에서 개성공단이 차지하는 비중은 전체 생산량의 10%로 추정되고 있다.

유가증권상장사 인디에프는 장마감 후 공시를 통해 “모회사 글로벌세아가 100% 투자한 인디에프 개성이 개성공단 내 공장 가동 중단 여파로 의류제품 생산이 중단된다"고 밝혔다. 생산 중단 분야의 매출액은 428억4200만원으로 전체 매출액의 22.8%에 해당한다.

태광산업, 로만손, 한국단자공업, 쿠쿠전자 등 나머지 상장사들은 개성공단 매출비중은 대부분 5~10%에 불과해 그나마 피해가 덜하다. 다만 공장 중단 장기화 등을 대비해야 하긴 마찬가지다. 가동 중단이 장기화 될 경우 수백억원대의 투자자산이 제대로 된 관리 없이 묶이게 되기 때문이다.

일방적인 폐쇄 결정…피해액 최소 1조
입주기업이 봉? 성에 차지 않는 보상안

개성공단 중단에 따른 실적 감소는 업체별로 조금씩 편차가 있지만 주가 동반 급락세는 모두에게 큰 부담이다. 재영솔루텍은 전 거래일보다 무려 23.9% 내린 1590원에 장을 마감했다. 재영솔루텍의 자회사인 재영솔루텍개성은 지난해 3분기 기준 매출이 약 60억원, 자산총액 123억원이다. 이 기간 다른 자회사 혜주솔루텍공업유한공사와 JYCO 모두 영업적자를 냈으나 유일하게 재영솔루텍개성만 9억3000만원 흑자를 기록했다.


좋은사람들(16.9%), 로만손(13.62%), 인디에프(18.44%), 신원(8.78%), 쿠쿠전자(5.90%) 등도 동반 급락세를 보였다. 개성공단 관련주 전체 시총은 단 하루만에 2500억원이 증발했다.

과거 개성공단이 중단됐을 당시에도 관련 기업들의 주가는 크게 주저앉았다. 2013년 초 1500원에 거래됐던 신원은 북한 핵실험에 이어 개성공단 중단에 2013년 4월에는 1200원대로 내려갔다. 좋은사람들 역시 연초 1700원에서 4월 1500원대로 하락했고 연말에는 1200원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개성공단 입주기업에 투자한 개인주주들의 손해도 불가피하다. 2014년 말 기준 개성공단 입주 상장사 전체 개인주주는 약 3만6000명에 이른다. 이미 증권가에서는 공단 폐쇄 조치가 입주기업들에 대한 투자심리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앞 다투어 밝힌 상황이다.

문제는 정부가 추진하는 피해보상 방안이 그다지 만족스럽지 않다는 데 있다. 통일부와 수출입은행·금융당국·중소기업중앙회 등 관련 부처는 2013년에 이어 또다시 피해를 보게 된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의 손실 보전을 위해 분주한 모습이다. 특별대책반을 꾸리고 1대 소통창구를 마련했으며 남북경제협력사업보험(경협보험)이 입주기업의 피해를 얼마나 축소할 수 있을지에 대한 논의에 돌입했다.

일단 입주기업들은 경협보험의 대상이다. 경협보험은 개성공단 투자기업이 피해를 볼 경우 남북협력기금을 통해 보상해주는 제도다. 사업 중단 조치에 따라 불가항력적인 상황이 발생한다면 보상받는다는 조건이 명시돼 있다. 다만 사업이 1개월 이상 정지돼야 보상을 받을 수 있다. 이 기간에 손실금이 계속 누적되더라도 방도가 없다.

그나마 입주기업들은 상황이 나은 편이다. 정작 이들에게 납품하는 5000여곳의 협력업체들은 구제방안마저 기대하기 힘들다. 당장 판로가 막히는 건 둘째고 공단이 언제쯤 재가동될지조차 장담할 수 없다. 협력업체에 종사하는 근로자자 12만5000명이 순식간에 실업자로 전락할 위기에 몰린 셈이다.

개성공단기업협회와 통일부 모두 보험가입 기업이 아니거나 회원사가 아니라는 이유로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2013년에도 같은 문제로 입주기업들이 협력업체들에 납품대금 지급을 미뤄 소송으로 이어진 사례들이 있었다. 하지만 대다수 협력업체들은 어쩔 수 없이 피해를 감내해야 했다. 통일부가 추산한 2013년 개성공단 한국기업들의 가동중단 피해 신고액 중 원청업체 납품채무는 2427억원이다.

입주기업들의 의견수렴을 거치지 않은 일방적인 정책 결정이란 점도 논란의 대상이다. 정부는 2013년 북측의 일방적 폐쇄 통보로 촉발된 개성공단 중단 사태 당시 어떠한 경우에도 정세의 영향을 받음이 없이 공단을 안정적으로 운영하겠다고 천명했지만 2년만에 공염불이 됐다. 보는 시각에 따라 정부가 남북경협의 신뢰를 스스로 무너뜨리고 향후 기업들에게 참여를 독려할 명분을 없앤 것이나 마찬가지인 사안이다. 

실제로 개성공단기업협회는 정부의 개성공단 가동 전면 중단 방침을 무리하고 성급한 조치로 받아들이는 인상이 짙다. 기업들의 피해 구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경우 소송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을 거듭 되풀이하고 있다.

막심한 손해

정기섭 개성공단기업협회 회장은 “2013년 공단 폐쇄 당시 정부가 밝힌 피해규모 1조566억원에는 영업 손실이나 영업권은 포함돼지 않았다”며 “이번에는 갑작스럽게 중단 결정이 내려지면서 손실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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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페이스북에 사과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도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를 숙였다. 사과는 짧았지만,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비난은 길었다. 사과 의견을 통해 확인되는 국면 전환 노림수는 ‘한동훈을 제외한 빅텐트’인 걸까? 국민의힘 공보실은 지난 2일 오후 10시54분 출입기자들에게 지난 3일 지도부 일정을 공지했다. 공보실에 따르면, 지도부의 일정은 ‘통상 일정’이었다.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의미다. 지난 3일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1주년이었다. 통상의 의미는? 지도부의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것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공개 사과 및 기자회견 일정이 없었단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다. 장 대표는 지난 3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 의견을 밝혔다. 장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었다”는 등 “정당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소지가 있는 주장부터 제시했다.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대해서도 “한국 정치의 연속된 비극을 낳았고, 국민과 당원들께 실망과 혼란을 드렸다”는 등 ‘탄핵 반대’ 의견을 유지했다. 장 대표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잘못은 하나로 뭉쳐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는 부분이었다. 자신에 대해서도 “당 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강조했다. “장 대표가 사과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은 같은 날 오전 4시50분경 이정재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확실시됐다. 장 대표는 페이스북 게시글에서도 “추 의원 구속영장 기각은 어둠의 1년이 지나고 두터운 장막이 걷히고, 새로운 희망의 길이 열리는 신호탄”이라면서 대정부 투쟁에 의미를 부여했다. 장 대표는 “이재명정권의 대한민국 해체 시도를 국민과 함께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사과 불가는 지난달 28일 대구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장외집회에서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다. 당시 그는 “비상계엄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우리가 흩어지고 분열한 결과, 이재명정권이 탄생했단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연설 대부분을 채웠다. 5일 간격으로 같은 얘기를 반복한 것이었다. 당시 장 대표가 주장한 민주당에 대한 비난의 핵심 내용은 ▲의회 폭거·국정 방해 ▲무모한 적폐 몰이에 따른 공무원 사찰 위협 ▲폭거로 인한 민생 파탄·국가 시스템 붕괴 ▲내란 몰이 등이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국민의힘의 비상계엄 관련 사과는 ▲송언석 원내대표 ▲유상범·김은혜 원내부대표 ▲최수진·최은석 원내대변인 등 원내 지도부 차원에서 나왔다. 송 원내대표 등은 지난 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께 큰 충격을 드린 비상계엄 발생을 막지 못한 데 대해 국민의힘 국회의원 모두는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군인·공직자·의료인·자영업자 등 비상계엄 선포 피해자들에게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하지만 이후의 메시지는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 등 장 대표의 주장과 크게 차이가 없는 내용이었다. 송 원내대표는 “국민의힘 의원들은 패배의 아픔을 딛고 분열과 혼란의 과거를 넘어서 다시 거듭나겠다”며 “소수당이지만 처절하게 다수 여당과 정권에 맞서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이전까지 국민의힘에서 장 대표에게 공개적으로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정치인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용태·김재섭·권영진·엄태영·이성권·조은희 의원 등이었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에서 진행된 장외집회 중 “국민의힘은 불법 계엄을 방치했으니,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일부 지지자들의 강한 항의를 받았다. 김재섭 의원은 지난달 28일 YTN 라디오 <더 인터뷰>에 출연해 “당 지도부의 사과가 없으면 제 나름의 사과를 해야 할 것 같다”며 “같이 메시지를 낼 국민의힘 의원들이 약 20명은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곧 “연판장을 돌리거나 기자회견을 할 수도 있다”는 압박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었다. 오 시장도 같은 날 채널A <김진의 돌직구 쇼>에 출연해 “중도층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라도 당 차원의 사과가 필요하다”며 “공당이라면 반성문을 쓰는 게 도리”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들은 당과 무관하게 대국민 사과를 했다. 오 시장은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 소속 중진 정치인이자, 서울시민의 일상을 책임지는 시장으로서 그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그날의 충격과 실망을 기억하는 모든 국민께 거듭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지난 3일 국회에서 “비상계엄 선포 당시 집권여당의 일원으로서 비상계엄을 미리 막지 못하고 국민께 커다란 고통과 혼란을 드린 점에 대해 거듭 국민 앞에 고개 숙여 사죄드린다”면서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존중 ▲윤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단절 ▲국민의힘 체질 개선·재창당 수준의 혁신 등을 약속했다. 이어지는 각자 플레이 장 대표에게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후 자체적으로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한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대체로 수도권에 기반을 둔 소장파다. 이들 중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면 가장 큰 손해를 볼 정치인으로는 오 시장과 김재섭·김용태 의원이 거론된다. 오 시장은 높은 개인 인기를 바탕으로 민주당의 서울시장 탈환 공세에 맞서고 있다. 김재섭 의원의 지역구 서울 도봉갑은 원래 민주당 텃밭이었다. 김 의원은 지난해 총선 당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1094표 앞서 어렵게 이겼다. 지난해 12월7일 국민의힘의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집단 이탈에 동참했을 때도 지역구에서 규탄 집회가 개최되는 등 홍역을 치렀다. 김용태 의원도 경기 가평·포천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박윤국 한국도자재단 이사장에 2774표 앞서 어렵게 금배지를 다는 데 성공했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강경 보수화가 진행된다”는 지적이 각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 우려는 장 대표가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자유통일당 ▲우리공화당 ▲자유민주당 ▲자유와혁신 등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깊어졌다.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지금은 연대를 논의할 때가 아니”라면서 선을 그었다. 최근 국민의힘에선 “한동훈 전 대표를 축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만한 밑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다. 국민의힘 여상원 윤리위원장은 지난달 17일 사의를 표명했다. 여 위원장은 “당에서 ‘물러나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며 “굳이 능욕당하면서 자리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돼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답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윤리위원회가 ‘계파 갈등 조장’을 이유로 윤리위에 넘겨진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 주의 조치만 내린 것 때문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국민의힘 우재준 청년 최고위원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원하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고 윤리위원장을 사퇴시키는 게 정당한 일이냐”며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드는 민주당과 뭐가 다르냐”고 정면 비판했다. 이어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28일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한 조사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당원 게시판 의혹은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올라온 윤 전 대통령 부부 비방글 작성에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밝혀 당원에게 알릴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던 바 있다. 윤 전 대통령 부부는 정치적으로 몰락해 서울구치소에 갇혔고,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국민의힘이 당원 게시판 의혹을 밝혀낸 후 거둘 수 있는 실익으로는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친한(친 한동훈)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거론된다. 구 친윤(친 윤석열)계가 거둘 수 있는 이익이다.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보수 성향 유권자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명확하게 나뉜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갈등하면서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던 이력이 있다. 이 때문에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일색이 되는 걸 막는 방파제·상징”이란 분석이 오랫동안 있어왔다. 친한계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의원 중 상당수는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소장파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리위원장 쫓아낸 이유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선 “윤 전 대통령이 정치에서 폭력을 동원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몰랐던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정치의 본질은 대화·토론·협상이다. 영국 하원에선 20세기 초까지 의원이 총칼을 이용해 결투·난투를 했다. 물리적 폭력이 아닌 ‘언어폭력’ 선에서 공방을 이어가는 정치 문화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정착됐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전 세계에 줬던 충격은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했다고 믿었던 대한민국에서 군을 동원해 정적을 제거하려던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는 사과 메시지를 먼저 짧게 발표하면서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은 길게 이어가는 형식의 사과 의견을 밝혔다. 사과엔 ▲직접적인 반성 ▲분명한 잘못 인정 ▲재발 방지 약속 ▲보상 약속 등 4개의 원칙이 제기됐는데 “상대방 비판에 더 중점을 둔 사과는 역설적으로 ‘반성을 하는 게 맞느냐’는 비판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당시 대국민 사과를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후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 전 대통령은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국민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후속 조치 중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미흡했고, 우려를 덜어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을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라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당시 크게 불거졌던 각종 우려를 ‘괴담’으로 규정지었다. 이 때문에 촛불 시위 세력이 제시한 재협상 시한과 맞물린 시점에서 사과가 나온 점을 감안할 때 국면 전환을 위한 명분 쌓기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각종 의혹이 광범위하게 제기돼 근거 자료들까지 제시되는 시점에서 “취임 후 일정 기간 일부 자료들에 대해 최순실씨의 의견을 들은 적은 있지만, 청와대 보좌 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의 해명은 신뢰를 잃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두 전직 대통령의 사과처럼 자신의 주장을 뒤에 배치한 후 더 큰 비중을 부여하는 형식을 유지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이런 사과 형식은 국면 전환·지지층 결집 목적을 가진 이들이 활용한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고대 로마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있었던 마르쿠스 브루투스·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연설이 꼽힌다. 카이사르 살해를 주동한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에 대한 내 사랑은 카이사르를 사랑하는 다른 분보다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단언한다”고 선언한 후 “로마를 더 사랑해서 카이사르를 죽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라를 위해 눈물을 머금고 가장 사랑하는 친구를 죽였다”고 강조했다.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 암살에 가담한 사람들은 모두 존경할 만한 분들”이라고 선언한 후 카이사르를 찬양하면서 그의 유언장을 공개했다. 유언의 핵심 내용은 “내 재산을 로마 시민에게 기증한다”는 것이었다. 또 카이사르가 살해당할 당시 입었던 칼자국과 피로 얼룩진 옷도 공개했다. 흥분한 로마 시민은 암살자들의 집을 습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토니우스·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정국을 장악했다. 불리한 내용을 먼저 짧게 거론한 후 유리한 내용을 장황하게 거론하는 형식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즐겨 이용된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가 짧은 사과 의견을 밝힌 후 이재명정부·민주당을 비중 있게 비판한 것도 강경 보수 세력에겐 강한 인상을 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장 대표는 비상계엄의 원인을 ‘의회 폭거’라고 규정했다. 이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카이사르가 된다. 비상계엄 해제에 찬성해 사실상 윤 전 대통령 몰락에 가담한 한 전 대표와 친한계는 브루투스 일당이 되는 구도가 그려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강경 보수 세력은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해 어떤 의견을 제시할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공나형 전남대 학술연구교수는 지난 2022년 발표한 논문 <대통령의 공적 사과 담화에서 드러나는 ‘개입’ 양상>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1993년 쌀 시장 개방을 수용하면서 밝힌 대국민 사과와 박 전 대통령의 최순실 게이트 관련 대국민 사과를 분석했다. 공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선의로 행한 행위가 어쩔 수 없는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고 강조하면서 결과의 부정성에 관여하는 자신의 의도의 비중을 제거했다”고 분석했다. 박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자기 고백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만, 그 고백의 원인이 되는 행위에 대해선 소극적”이라고 분석했다. 12월3일 조용히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어쩔 수 없었다”는 항변과 상대방 비판을 내용으로 채웠다. 그러면서 민주당 심판·보수 재건·대여 투쟁을 강조했다. 결국 두 사람의 답은 ‘한 전 대표를 제외한 빅텐트’ 방침 재확인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의 12월3일은 이렇게 조용히 지나갔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