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 다단계 허벌라이프 가격의 비밀

6000원짜리 5만2000원에 '바가지 상술'

[일요시사 취재2팀] 임태균 기자 = 한국시장에서 활동하는 다단계업체들이 이구동성으로 내세우는 말이 있다. “진짜 품질 좋은 물건을 직접 판매로 싸게 판다. 광고비와 중간단계의 유통마진을 줄인 만큼을 소비자에게 돌려 준다”는 말이다. 실제로 많은 다단계 사업자들은 이러한 명분을 사실이라 믿고 활동을 하고 있다. 자신이 취급한 제품을 직접 사용해보고 주변사람에게 권하는 활동을 전개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믿음은 잘못된 것으로 보인다. 적어도 허벌라이프 사업자에겐 말이다.

한국허벌라이프의 매출구조에 대한 비난이 일고 있다. 원가는 터무니없이 낮은데 가격은 너무 높고, 품질도 사회통념상 좋은 물건이라고 부르기에도 부족하다는 것이다. 중견 식음료 제조기업의 최고재무책임자(Chief Financial Officer)를 맡고 있는 공인회계사 이모(48)씨의 지적은 명쾌하다. 원가가 낮은 제품을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으로 판매하고 있다는 것.

33만 소비자
알고 있을까?

“허벌라이프 제품 중 회원가가 5만2700원인 제품이 있다고 하면, 원가는 얼마일가요? 6300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잡비 같은 비용을 원가로 쳐줘도 판매가의 15% 수준에 불과합니다. 여기에 법으로 정해진 다단계 사업자 수당 35%를 합하면 판매가의 50%에 도달합니다. 그러면 나머지 50%는 뭘까요?”

이씨는 “판매가의 나머지 대부분이 미국 허벌라이프 본사로 가는 돈”이라고 단언했다. 미국허벌라이프가 한국허벌라이프를 앞세워 한국 소비자를 ‘고객’이 아닌 ‘호갱’ 취급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허벌라이프 매출 총이익이 2400억원입니다. 그런데 당기순이익은 760억 수준이예요. 왜 그럴까요? 회사운영비에 속하는 판매비와 관리비 항목에서 920억원 가량의 판매수수료가 미국 허벌라이프 본사로 빠져나가기 때문입니다. 라이센스 비용이라는 명목으로요. 정말 허벌난(?) 라이센스 비용 아닙니까? ‘허벌라이프’라는 이름 쓰는 명목으로 내는 돈치곤 말입니다.”


배당금 부분에 대한 지적은 충격적이다.

“그럼 매출액에서 라이센스 비용 빼고 남은 당기순이익을 봅시다. 760억이죠. 그런데 배당금으로 얼마 나가고 있나요? 770억원입니다. 이 배당금은 누가 가져간다? 한국허벌라이프 지분을 100% 출자한 미국 허벌라이프입니다. 결국 한국허벌라이프 사업자는 ‘봉’, ‘호갱’일 수밖에 없는 겁니다. 글로벌 기업이 한국 소비자를 아주 우습게 취급하고 있는 거예요.”

허벌라이프 재무제표를 기준으로 상품가격의 구성을 분석해 보면.

제품 판매가격이 5만2700원일 경우. 다단계 사업자를 위한 후원수당은 33.7%로 1만7700원이다. 그리고 라이센스와 배당금 명목으로 미국 허벌라이프 본사로 가는 비용이 1만6800원. 부가세를 비롯해 한국허벌라이프의 인건비 등 기타 운영비 등을 제외하면 제품원가 평균은 대략 6300원 정도다. 판매가의 15% 선이다.

이씨가 “6300원 짜리 물건을 터무니없는 가격으로 다단계 사업자에게 판매하고 있다”고 하는 지적은 “좋은 제품을 저렴하게 판매 한다”는 다단계 사업자의 주장이 허구임을 보여주고 있다.

본사 한국 소비자 ‘호갱’ 취급
원가 판매가의 15% 수준에 불과

그렇다면 다른 다단계 업체들도 마찬가지일까?


업계관계자 김모(42)씨는 “총매출액 대비 매출원가 비율이 15% 정도라면 동종 업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라고 밝히고 있다. 체중조절용 건강식품을 판매하는 업계 평균에 훨씬 못 미친다는 것이다.

“허벌라이프의 원가비중은 식사대용식품이나 알로에겔을 생산하는 일반 건강기능식품 업체는 물론이고 동종 다단계 업체와 비교해도 훨씬 낮은 수준이다. 허벌라이프 제품은 고가로 판매되고 있다는 사실만 알았지 평균 원가가 이렇게 낮을지는 몰랐다. 조금 충격적이다.”

또 다른 업계관계자 서모(38)씨는 허벌라이프 제품과 여타 제품과의 가격비교를 권했다. 제주도에서 재배한 알로에를 250배 농축한 알로에겔이나 다이어트 쉐이크 등이 훨씬 저렴한 가격에 판매되고 있다는 것이다. 국내 유명 대기업 제품은 물론이고 뉴질랜드의 대형 건강기능식품 기업의 제품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네이버 검색창에 ‘다이어트 쉐이크’나 ‘알로에겔’을 쳐보세요. 허벌라이프의 1/3가격으로 판매되는 제품이 수두룩합니다. 그런 제품들 원가가 오히려 허벌라이프 제품보다 높을 겁니다. 비슷한 원료 가지고 만든 건강식품인데 허벌라이프가 좀 심한 편이죠!”

업계의 관점은 “원가가 15% 미만의 제품은 제품의 질이 지나치게 떨어지거나, 가격이 지나치게 높은 것”으로 모아지고 있다.

인터넷에선…
1/3 가격 판매

한편, 15% 가량의 제품원가 평균도 순수 원가는 아니라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경기도 양주에 위치한 체중조절용 조제식품 제조 공장 생산팀장으로 제직 중인 신모(42)씨는 “허벌라이프 제품이 미국으로부터 완제품으로 수입되는 만큼 그 제품원가에는 허벌라이프 제조공장 마진도 붙어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 허벌라이프가 제조과정에서 마진 붙이고, 한국으로 완제품을 보내면서 마진 붙이고, 또 거기에 다단계사업자의 후원수당이 붙고, 마지막으로 제품가의 50% 상당의 라이센스 비용과 한국허벌라이프의 마진이 붙은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허벌라이프와 같은 업체가 매우 낮은 원가로 물건을 들여와 지나치게 높은 판매가격으로 판매행위를 지속할 수 있었던 이유로 ‘다단계 사업자들의 맹목적인 충성심’을 들었다. 원래 다단계 업계의 기본 논리가 자신이 써보고 좋아서 남에 추천하는 것이고, 그런 사람들을 넓히는 것이 사업이 되는 것이지만 실제는 직접 사용해 봐도 효과는 알 수 없으나 조직을 잘 키워야 돈이 되는 것으로 변질됐다는 것이다.

따라서 다단계 사업자들이 ‘좋은 제품을 싸게 파는 것’ 보다 ‘비싸도 돈이 되는 것’에 집중하기 때문에 제품원가와 판매가격 사이의 격차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는 해석이다. 한 업계 관계자의 말이다.
 

 

부가세 포함 총 매출액

매출 원가


매출액 대비 매출 원가

2013년도 기준

568,298,074

63,488,629

약 12%

2012년도 기준


527,484,776

79,244,697

약 14%

▲허벌라이프 총 매출액과 매출 원가 (단위: 천원)

“6300원 짜리 물건이 물 건너 왔다고 5만2700원이라면 너무 하지 않나요? 좋은 제품보다 돈이 목적인 조직이라 넘어가는 것이지 정상적인 시장 같으면 먹힐 리가 없습니다. 회원만 구입가능하다는 것이 맹점입니다. 아무리 제품을 좋아해도 해외직구로 구매할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판매가격을 마음대로 높여도 사업이 되는 겁니다.”

허벌라이프의 제품이 좋은 제품인지 아닌지 역시 가격과 맥이 닿아있다. 취재 중 만난 업계관계자들은 하나같이 “허벌라이프가 NON-GMO 원료를 사용했다고 주장하는 것을 믿을 수는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단가 때문이다.

“미국에서 생산되는 콩은 거의 GMO가 포함된 콩이다. 그래서 GMO가 없는 콩이 훨씬 비싸다. 생산단가에서부터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허벌라이프가 자체농장을 가지고 있다고 하여 생산단가가 차이나는 것은 아니다. 15% 정도의 원가비율을 맞추려면 GMO 콩을 사용하지 않고는 어려울 것이다.”

뻥튀기 과장광고
책임은 판매원이

한 건강식품 컨설던트는 “허벌라이프의 제품이 정말 의학적으로 확인될 수 있는 효과가 있다면 약으로 팔지 건강기능식품으로 팔겠습니까?”라며 의문을 제기했다. 허벌라이프를 먹고 아토피나 병이 나았다는 사업자들의 말은 모두 거짓말이라는 것이다.

결국, 허벌라이프 제품은 원가 비중이 지나치게 낮고 가격은 지나치게 높으면서도 효과 역시 의문이라는 것이 업계 전문가들의 중론인 셈이다.

이런 사실을 한국 허벌라이프 사업자들은 얼마나 알고 있을까? 일부 허벌라이프 사업자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먹는 비타민이나 의약품의 제품원가도 몇 백원 수준이다. 허벌라이프의 제품원가가 낮은 것도 이와 같은 측면에서 설명할 수 있다”는 주장을 피력했다. 허벌라이프 뉴트리션 클럽을 운영 중인 그는 “허벌라이프 역시 자체 연구소를 운영하기 때문에 기술 개발에 투자되는 비용이 반영된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십대 초반에 허벌라이프에 뛰어들어 최상위 직급인 밀리어네어 팀을 오랫동안 유지했던 한 사업자 강모(29)씨의 입장은 달랐다. “허벌라이프 제품이 여타 제품보다 비싸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이유로 “과장광고를 할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 놓았다. 다이어트 전후 사진을 올리거나, 아토피 등이 좋아진다고 하는 것 모두가 불법이지만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는 것.

매출 대부분 미국으로 송금
이익 전부 배당금으로 지급

“당장 제품을 팔아야 하기 때문에 효과가 없어도 있는 것처럼 스스로를 속이는 수밖에 없었다”는 게 강씨의 자백(?)이다. 그러면서 강씨는 한국 허벌라이프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았다.

“물론 한국 허벌라이프에서는 과장광고를 하지 말라고 한다. 그러면서 ‘사업자가 몸으로 느낀 것을 소비자와 나누라’고 한다. 문제는 그렇게 하면 사업이 안 된다는 것이다. 정작 사업자는 아무 것도 몸으로 느낀 것이 없는데 뭐라면서 영업을 하겠나? 그저 좋은 제품이라고 우길 수밖에.”

한국 허벌라이프가 다단계 사업자를 ‘독립회원’이라고 부르는 것은 회사와 사업자가 무관하다는 일종의 선긋기에 불과하다 게 몇 년간 공들인 조직을 정리한 그의 시각이다.

강씨는 “한국에서 다단계 판매 혹은 직접판매(Direct selling)가 부정적 인식이 강한 이유는 다단계 업체들 스스로의 탓이 크다”고 지적하고 있다. 각종 부작용에 대한 사건·사고가 잇따르는데도 제품에 대한 맹목적인 인식을 유도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을 현혹시켜 왔다는 것. 그리고 사회에 물의를 일으킨 다단계 업체들의 공통점은 원가가 낮은 제품을 비싸게 팔았다는 것과 효과나 효능을 부각시키는 과장광고를 일삼았다는 점을 들었다. 한국 허벌라이프의 제품원가 평균이 15% 수준인 것 역시 일반인들이 다단계 사업자를 부정적으로 보게 하는 원인이라는 것이다.

“좋은 제품?”
“동의 못해!”

한편, 한국 허벌라이프의 답변을 듣고자 연락을 취했지만 취재기자의 전화는 책임 있는 답변자와 연결되지 않았다. 국내 33만명 이상의 다단계 판매 사업자와 관계 맺고 있는 허벌라이프. 또 그들로 인해 꾸준히 판매되고 소비되고 있는 무수한 제품들. 허벌라이프에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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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