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 다단계 허벌라이프 가격의 비밀

6000원짜리 5만2000원에 '바가지 상술'

[일요시사 취재2팀] 임태균 기자 = 한국시장에서 활동하는 다단계업체들이 이구동성으로 내세우는 말이 있다. “진짜 품질 좋은 물건을 직접 판매로 싸게 판다. 광고비와 중간단계의 유통마진을 줄인 만큼을 소비자에게 돌려 준다”는 말이다. 실제로 많은 다단계 사업자들은 이러한 명분을 사실이라 믿고 활동을 하고 있다. 자신이 취급한 제품을 직접 사용해보고 주변사람에게 권하는 활동을 전개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믿음은 잘못된 것으로 보인다. 적어도 허벌라이프 사업자에겐 말이다.

한국허벌라이프의 매출구조에 대한 비난이 일고 있다. 원가는 터무니없이 낮은데 가격은 너무 높고, 품질도 사회통념상 좋은 물건이라고 부르기에도 부족하다는 것이다. 중견 식음료 제조기업의 최고재무책임자(Chief Financial Officer)를 맡고 있는 공인회계사 이모(48)씨의 지적은 명쾌하다. 원가가 낮은 제품을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으로 판매하고 있다는 것.

33만 소비자
알고 있을까?

“허벌라이프 제품 중 회원가가 5만2700원인 제품이 있다고 하면, 원가는 얼마일가요? 6300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잡비 같은 비용을 원가로 쳐줘도 판매가의 15% 수준에 불과합니다. 여기에 법으로 정해진 다단계 사업자 수당 35%를 합하면 판매가의 50%에 도달합니다. 그러면 나머지 50%는 뭘까요?”

이씨는 “판매가의 나머지 대부분이 미국 허벌라이프 본사로 가는 돈”이라고 단언했다. 미국허벌라이프가 한국허벌라이프를 앞세워 한국 소비자를 ‘고객’이 아닌 ‘호갱’ 취급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허벌라이프 매출 총이익이 2400억원입니다. 그런데 당기순이익은 760억 수준이예요. 왜 그럴까요? 회사운영비에 속하는 판매비와 관리비 항목에서 920억원 가량의 판매수수료가 미국 허벌라이프 본사로 빠져나가기 때문입니다. 라이센스 비용이라는 명목으로요. 정말 허벌난(?) 라이센스 비용 아닙니까? ‘허벌라이프’라는 이름 쓰는 명목으로 내는 돈치곤 말입니다.”


배당금 부분에 대한 지적은 충격적이다.

“그럼 매출액에서 라이센스 비용 빼고 남은 당기순이익을 봅시다. 760억이죠. 그런데 배당금으로 얼마 나가고 있나요? 770억원입니다. 이 배당금은 누가 가져간다? 한국허벌라이프 지분을 100% 출자한 미국 허벌라이프입니다. 결국 한국허벌라이프 사업자는 ‘봉’, ‘호갱’일 수밖에 없는 겁니다. 글로벌 기업이 한국 소비자를 아주 우습게 취급하고 있는 거예요.”

허벌라이프 재무제표를 기준으로 상품가격의 구성을 분석해 보면.

제품 판매가격이 5만2700원일 경우. 다단계 사업자를 위한 후원수당은 33.7%로 1만7700원이다. 그리고 라이센스와 배당금 명목으로 미국 허벌라이프 본사로 가는 비용이 1만6800원. 부가세를 비롯해 한국허벌라이프의 인건비 등 기타 운영비 등을 제외하면 제품원가 평균은 대략 6300원 정도다. 판매가의 15% 선이다.

이씨가 “6300원 짜리 물건을 터무니없는 가격으로 다단계 사업자에게 판매하고 있다”고 하는 지적은 “좋은 제품을 저렴하게 판매 한다”는 다단계 사업자의 주장이 허구임을 보여주고 있다.

본사 한국 소비자 ‘호갱’ 취급
원가 판매가의 15% 수준에 불과

그렇다면 다른 다단계 업체들도 마찬가지일까?


업계관계자 김모(42)씨는 “총매출액 대비 매출원가 비율이 15% 정도라면 동종 업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라고 밝히고 있다. 체중조절용 건강식품을 판매하는 업계 평균에 훨씬 못 미친다는 것이다.

“허벌라이프의 원가비중은 식사대용식품이나 알로에겔을 생산하는 일반 건강기능식품 업체는 물론이고 동종 다단계 업체와 비교해도 훨씬 낮은 수준이다. 허벌라이프 제품은 고가로 판매되고 있다는 사실만 알았지 평균 원가가 이렇게 낮을지는 몰랐다. 조금 충격적이다.”

또 다른 업계관계자 서모(38)씨는 허벌라이프 제품과 여타 제품과의 가격비교를 권했다. 제주도에서 재배한 알로에를 250배 농축한 알로에겔이나 다이어트 쉐이크 등이 훨씬 저렴한 가격에 판매되고 있다는 것이다. 국내 유명 대기업 제품은 물론이고 뉴질랜드의 대형 건강기능식품 기업의 제품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네이버 검색창에 ‘다이어트 쉐이크’나 ‘알로에겔’을 쳐보세요. 허벌라이프의 1/3가격으로 판매되는 제품이 수두룩합니다. 그런 제품들 원가가 오히려 허벌라이프 제품보다 높을 겁니다. 비슷한 원료 가지고 만든 건강식품인데 허벌라이프가 좀 심한 편이죠!”

업계의 관점은 “원가가 15% 미만의 제품은 제품의 질이 지나치게 떨어지거나, 가격이 지나치게 높은 것”으로 모아지고 있다.

인터넷에선…
1/3 가격 판매

한편, 15% 가량의 제품원가 평균도 순수 원가는 아니라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경기도 양주에 위치한 체중조절용 조제식품 제조 공장 생산팀장으로 제직 중인 신모(42)씨는 “허벌라이프 제품이 미국으로부터 완제품으로 수입되는 만큼 그 제품원가에는 허벌라이프 제조공장 마진도 붙어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 허벌라이프가 제조과정에서 마진 붙이고, 한국으로 완제품을 보내면서 마진 붙이고, 또 거기에 다단계사업자의 후원수당이 붙고, 마지막으로 제품가의 50% 상당의 라이센스 비용과 한국허벌라이프의 마진이 붙은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허벌라이프와 같은 업체가 매우 낮은 원가로 물건을 들여와 지나치게 높은 판매가격으로 판매행위를 지속할 수 있었던 이유로 ‘다단계 사업자들의 맹목적인 충성심’을 들었다. 원래 다단계 업계의 기본 논리가 자신이 써보고 좋아서 남에 추천하는 것이고, 그런 사람들을 넓히는 것이 사업이 되는 것이지만 실제는 직접 사용해 봐도 효과는 알 수 없으나 조직을 잘 키워야 돈이 되는 것으로 변질됐다는 것이다.

따라서 다단계 사업자들이 ‘좋은 제품을 싸게 파는 것’ 보다 ‘비싸도 돈이 되는 것’에 집중하기 때문에 제품원가와 판매가격 사이의 격차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는 해석이다. 한 업계 관계자의 말이다.
 

 

부가세 포함 총 매출액

매출 원가


매출액 대비 매출 원가

2013년도 기준

568,298,074

63,488,629

약 12%

2012년도 기준


527,484,776

79,244,697

약 14%

▲허벌라이프 총 매출액과 매출 원가 (단위: 천원)

“6300원 짜리 물건이 물 건너 왔다고 5만2700원이라면 너무 하지 않나요? 좋은 제품보다 돈이 목적인 조직이라 넘어가는 것이지 정상적인 시장 같으면 먹힐 리가 없습니다. 회원만 구입가능하다는 것이 맹점입니다. 아무리 제품을 좋아해도 해외직구로 구매할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판매가격을 마음대로 높여도 사업이 되는 겁니다.”

허벌라이프의 제품이 좋은 제품인지 아닌지 역시 가격과 맥이 닿아있다. 취재 중 만난 업계관계자들은 하나같이 “허벌라이프가 NON-GMO 원료를 사용했다고 주장하는 것을 믿을 수는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단가 때문이다.

“미국에서 생산되는 콩은 거의 GMO가 포함된 콩이다. 그래서 GMO가 없는 콩이 훨씬 비싸다. 생산단가에서부터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허벌라이프가 자체농장을 가지고 있다고 하여 생산단가가 차이나는 것은 아니다. 15% 정도의 원가비율을 맞추려면 GMO 콩을 사용하지 않고는 어려울 것이다.”

뻥튀기 과장광고
책임은 판매원이

한 건강식품 컨설던트는 “허벌라이프의 제품이 정말 의학적으로 확인될 수 있는 효과가 있다면 약으로 팔지 건강기능식품으로 팔겠습니까?”라며 의문을 제기했다. 허벌라이프를 먹고 아토피나 병이 나았다는 사업자들의 말은 모두 거짓말이라는 것이다.

결국, 허벌라이프 제품은 원가 비중이 지나치게 낮고 가격은 지나치게 높으면서도 효과 역시 의문이라는 것이 업계 전문가들의 중론인 셈이다.

이런 사실을 한국 허벌라이프 사업자들은 얼마나 알고 있을까? 일부 허벌라이프 사업자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먹는 비타민이나 의약품의 제품원가도 몇 백원 수준이다. 허벌라이프의 제품원가가 낮은 것도 이와 같은 측면에서 설명할 수 있다”는 주장을 피력했다. 허벌라이프 뉴트리션 클럽을 운영 중인 그는 “허벌라이프 역시 자체 연구소를 운영하기 때문에 기술 개발에 투자되는 비용이 반영된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십대 초반에 허벌라이프에 뛰어들어 최상위 직급인 밀리어네어 팀을 오랫동안 유지했던 한 사업자 강모(29)씨의 입장은 달랐다. “허벌라이프 제품이 여타 제품보다 비싸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이유로 “과장광고를 할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 놓았다. 다이어트 전후 사진을 올리거나, 아토피 등이 좋아진다고 하는 것 모두가 불법이지만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는 것.

매출 대부분 미국으로 송금
이익 전부 배당금으로 지급

“당장 제품을 팔아야 하기 때문에 효과가 없어도 있는 것처럼 스스로를 속이는 수밖에 없었다”는 게 강씨의 자백(?)이다. 그러면서 강씨는 한국 허벌라이프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았다.

“물론 한국 허벌라이프에서는 과장광고를 하지 말라고 한다. 그러면서 ‘사업자가 몸으로 느낀 것을 소비자와 나누라’고 한다. 문제는 그렇게 하면 사업이 안 된다는 것이다. 정작 사업자는 아무 것도 몸으로 느낀 것이 없는데 뭐라면서 영업을 하겠나? 그저 좋은 제품이라고 우길 수밖에.”

한국 허벌라이프가 다단계 사업자를 ‘독립회원’이라고 부르는 것은 회사와 사업자가 무관하다는 일종의 선긋기에 불과하다 게 몇 년간 공들인 조직을 정리한 그의 시각이다.

강씨는 “한국에서 다단계 판매 혹은 직접판매(Direct selling)가 부정적 인식이 강한 이유는 다단계 업체들 스스로의 탓이 크다”고 지적하고 있다. 각종 부작용에 대한 사건·사고가 잇따르는데도 제품에 대한 맹목적인 인식을 유도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을 현혹시켜 왔다는 것. 그리고 사회에 물의를 일으킨 다단계 업체들의 공통점은 원가가 낮은 제품을 비싸게 팔았다는 것과 효과나 효능을 부각시키는 과장광고를 일삼았다는 점을 들었다. 한국 허벌라이프의 제품원가 평균이 15% 수준인 것 역시 일반인들이 다단계 사업자를 부정적으로 보게 하는 원인이라는 것이다.

“좋은 제품?”
“동의 못해!”

한편, 한국 허벌라이프의 답변을 듣고자 연락을 취했지만 취재기자의 전화는 책임 있는 답변자와 연결되지 않았다. 국내 33만명 이상의 다단계 판매 사업자와 관계 맺고 있는 허벌라이프. 또 그들로 인해 꾸준히 판매되고 소비되고 있는 무수한 제품들. 허벌라이프에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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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