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특집> ④어른은 알아야 할 세뱃돈 천태만상

아이들 대목…이젠 폰으로 전달

[일요시사 경제팀] 양동주 기자 = 명절이 되면 사람들은 불편을 감수하길 마다하지 않는다. 친인척들을 보기 위해 교통체증을 무릎 쓰고 멀고 먼 고행의 길을 떠나는 모습이 매번 반복된다. 다만 신권을 쥐어주던 보편화된 세뱃돈 풍속도는 조금씩 변화의 조짐이 나타난다. 물론 의미가 변화가 아닌 방법적인 측면이라고 봐야 한다.

민족의 대명절 설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설날이 되면 그간 왕래가 뜸했던 친인척들이 한자리에 모여 덕담을 주고받고 웃어른에게 세배를 한다. 이 때 빼놓지 않고 등장하는 게 바로 세뱃돈이다.

설 신풍속도

세배는 무사히 겨울을 넘기고 새 해를 맞은 것을 기념해 어른들에게 문안드리는 것에서 비롯됐다. 그리고 인사를 찾아온 이들에게 차례음식 등을 건네며 덕담을 주고받은 것이 현재 세뱃돈의 기원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해방 전까진 과일이나 떡 등을 싸주는 일이 많았지만, 이후 복주머니에 현금을 넣어주는 풍습이 생겨났다. 세뱃돈은 주로 신권이나 지갑에서 한번 접힌 정도의 깨끗한 돈으로 주는 게 일반적이다. 이는 새해 첫날 받는 돈이니 부정 타지 말고 기분 좋게 사용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최근에는 변화의 속도만큼이나 세뱃돈의 형식도 많이 바뀌었다. 스마트폰 보급이 확산되면서 이런 경향은 더욱 두드러진다. 관련 앱을 통해 손쉽게 세뱃돈을 선물할 수 있고 종이 상품권 대신 모바일 상품권이 인기를 끌고 있다.


모바일 상품권은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에서 구매가 가능하다. 간편하면서 직접 현금으로 주기에 부담이 될 수 있는 부분을 모바일 상품권이 대신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일반 상품권보다 5%가량 저렴해 부모들이 인터넷에서 구입해 아이들 스마트폰으로 직접 전송할 수 있다. 받는 이가 청소년일 경우엔 상품권의 사용처를 확인하기도 용이하다.

스마트폰 사용자에 필수인 데이터를 선물하는 빈도가 부쩍 증가하면서 세뱃돈을 대신할만한 모바일 상품의 종류도 한층 다양해졌다. SK텔레콤은 지난 1일부터 ‘T데이터쿠폰’을 구매하는 선착순 10만명 고객을 대상으로 ‘T데이터쿠폰 프로모션’을 시행하고 있다. T데이터쿠폰은 쿠폰에 기재된 용량만큼 스마트폰 데이터를 충전할 수 있는 선불형 데이터상품권으로 최소 100MB 부터 최대 5G까지 총 5종으로 구성되어 있다.

복주머니에 현금 옛말
디지털 트렌드로 변화

젊은 부부를 중심으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외화 세뱃돈 세트도 눈여겨 볼 만 하다. KEB하나은행은 설을 맞이해 외국통화 세뱃돈 3만세트를 지난달 27일부터 선착순 한정으로 판매하고 있다.

외국통화 세뱃돈 세트는 ‘행운의 2달러’를 포함해 미 달러화, 유로화, 중국 위안화, 캐나다 달러화, 호주 달러화 등 5개국 통화가 전액 신권으로 구성됐으며 실용신안 특허등록으로 국내 은행에서는 KEB하나은행만이 제공할 수 있다. 기본 세트에는 미국의 유명배우 그레이스 켈리가 선물을 받은 후 모나코의 왕비가 됐다고 알려진 행운의 2달러의 유래를 비롯해 각국 화폐 및 화폐 속 등장 인물에 대한 설명 등이 표기돼 있다.

세뱃돈으로 빳빳한 신권을 주는 대신 펀드 통장을 만들어주는 광경도 그리 낯설지 않다. 세뱃돈이 당장 아이들의 군것질에 사용되지 않게 펀드 계좌를 만들어 향후 대학등록금 혹은 결혼자금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해주는 일이다. 유망한 기업에 장기 투자하면 예금에 비해 자산을 불리기에도 안성맞춤이다. 아이들은 투자와 목돈 마련의 개념을 동시에 정리할 수 있고, 부모들은 은행 통장에 돈을 넣어두는 데 익숙했던 오랜 투자 습관과 이별하는 계기도 될 것이다.

대표적인 주니어 상품으로 어린이펀드가 있다. 시중 금융ㅅ들은 다양한 종류의 어린이 펀드를 판매되고 있다. 운용 방식은 일반 펀드와 유사하지만 보통 10년 이상 목표로 투자하는 상품인 만큼 장기적인 안목으로 운용된다. 증권사를 비롯한 각 판매사는 상품 가입자에게 다양한 이벤트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에 아이들은 펀드에 투자할 뿐만 아니라 교육 및 여가 활동에도 참여할 기회를 잡을 수 있다.
 


어린이 펀드를 판매하는 증권사들은 상품을 판매하는 데 그치지 않고 다양한 혜택을 제공한다. 상해 및 질병에 대비한 보험서비스 혜택이나 주말영어 캠프 참여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가장 보편화된 방법은 마음을 담는다는 뜻에서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선물을 직접 사다주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보다 10일 가량 앞당겨진 설날과 신학기 기간이 겹치면서 대형 아동복 매장에 설빔 및 신학기 선물을 찾는 고객들이 증가하고 있다.

아동복 매출이 상승세를 보이는 까닭은 아동복 성수기인 설날과 신학기 기간이 맞물렸기 때문이다. 더불어 최근 저출산의 영향으로 한 가구당 1∼2명의 자녀를 위해 부모는 물론 조부모, 삼촌, 이모 등의 지갑이 쉽게 열린다는 의미인 ‘에잇 포켓(Eight Pocket)’ 소비 트렌드 현상도 이유로 들 수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유통업계는 아동복 및 책가방 할인 행사를 전개하며 설 특수를 노리기에 여념이 없다.

사이버머니 대세

유통업계 관계자는 “모바일상품권 수요가 증가한데다 창의적인 상품이 속속 나타나면서 세뱃돈 대신 평소 필요한 것들을 꼼꼼히 체크해 선물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며 “세뱃돈의 진짜 의미를 자녀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바람이라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djy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세뱃돈 변천사, 50년 사이 5000배↑

세뱃돈은 그동안 물가상승과 경제상황, 화폐의 변화상을 반영하며 꾸준히 올랐다. 1971년 연령대별 평균 세뱃돈은 미취학 아동 50원, 국민학생 100원, 중·고교생 200원 등이었다. 당시 짜장면 한 그릇이 30원이었으니 결코 적은 돈이 아니었다. 1982년 500원 지폐가 동전으로 바뀌고 1000원이 지폐의 최소단위가 되면서 세뱃돈도 크게 올랐다.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어느새 만원짜리가 보편화됐다.

그러다 1998년 IMF 위기를 겪으며 세뱃돈 액수는 다시 줄어들기 시작했다. 특히 설을 앞두고 1000원권과 5000원권의 수요가 IMF 이전보다 2배 가까이 늘었다. 이때문에 신권교환행사를 가진 백화점들은 1000원권이 동이 나 한바탕 소동을 벌이기도 했다. 2000년 이후 다시 1만원권이 인기를 회복하며, 세뱃돈은 최대 5만원까지 껑충 뛰었다. 약 50년 사이에 세뱃돈은 5000배, 물가 상승과 구매력 등을 감안하면 50배 정도 오른 셈이다.

세뱃돈은 화폐의 시대 변화상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2006년에는 23년 만에 나온 5000원 신권이 인기를 끌었고, 2009년 5만원권이 처음 등장했을 때 세뱃돈은 덩달아 뛰었다.

최근 여론조사 기관의 직장인 설문조사에 따르면 대학생 세뱃돈은 5만원(38.6%)이 적당하다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이밖에 미취학 및 초등학생은 1만원(59.5%), 중고등학생은 3만원(32.6%)으로 각각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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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